공공도서관의 성공 여부
「도서관」 : 국립중앙도서관이 「관보館報」를 창간한 것은 1946년 3월 1일. 46배판 크기의 팸플릿 4페이지 「관보」는 그해 12월까지 제10호를 냈습니다. 이듬해인 1947년 1월 1일부터는 제호를 「문원文苑」으로 바꾸고 프린트판이었던 것을 활판으로 하는 동시에 내용도 연구 논문, 신간 소개, 잡지 색인 등을 실었습니다. 1950년 6월 12일 제49호까지 「문원」은 계속되다가 6.25로 중단되었으며, 1953년 11월에야 제50호 속간호를 낼 수 있었습니다. 제50호부터는 종서판을 횡서판으로 바꾸었고, 페이지도 12면으로 늘렸습니다. 1956년 1월에 발간된 제54호는 페이지수가 54면으로 늘었습니다. 1958년 7월에 발간된 제55호부터는 제호를 「국립도서관보」로 바꾸었으며, 1963년 12월에 발간된 제100호까지 같은 제목과 형태로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예산 문제로 중단되었던 「국립도서관보」는 1966년 1월에 제목을 「도서관」으로 바꾸고 46배판 50여 면으로 제2차 속간, 제101호를 내게 됩니다. 제101호의 「도서관」을 넘겨보니 박정희 전 대통령의 휘호 「온고지신溫故知新」이 있었습니다.
엄대섭 嚴大燮 선생은 ‘마을문고진흥회장'으로서, 「도서관」 1966년 5월 제105호에 「공공도서관과 마을문고」, 1966년 8월 제108호에 「마을문고의 활동」이라는 글을 싣고 있습니다. 다음은 「마을문고의 활동」의 한 대목입니다. 엄 선생 글 답지 않게 비문도 보입니다만, 띄어쓰기를 조금 고쳐 여기에 옮겨놓습니다. '공공도서관 발전사'를 염두에 두면서 '작은 도서관인 마을문고'가 '공공도서관의 산파 구실을 하는 선구자가 될 수 있다'고 언급하는 대목이 눈에 띕니다.
“공공도서관 발전사를 볼 때 그 성공여부는 그 사회 실정에 알맞은 운영을 하느냐 못 하느냐에 달려 있다. 한국의 실정을 이러한 군립 또는 시립 도서관이 지역사회의 문화 센터로서 기능을 발휘하여 자연 부락에까지 봉사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어야 한다. 관내의 모든 부락민에게 직접적으로 봉사하려는 작은 도서관인 마을문고는 또한 그 지방의 공공도서관이 없는 경우에 그 지방도서관의 산파 구실을 하는 선구자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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