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1월 29일 금요일

[우리 동네 랜드마크 모두의 도서관] 도서관은 토론의 장…연구소·대학과 도시 문제 해결 협업, 벨기에 겐트 드 크룩 도서관(2024.11.22.)

 벨기에 겐트 드 크룩 도서관

책 쌓아놓은 듯한 독특한 외관 눈길
14개 분관…겐트 등 벨기에 고서적 소장
매년 한가지 주제 기술적 해결 방안 도출
사회 취약자 겪는 이슈 관심…워크숍 진행
100개 학교와 연결…학교 찾아 프로모션
NGO와 이민자 돕기 프로그램 진행

벨기에 수도 브뤼셀에서 기차로 40분이면 도착하는 겐트는 인근의 브뤼헤와 함께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는 매력적인 도시다. 12세기에 축조된 그라벤스틴 고성(古城)을 비롯해 오래된 성당과 도심을 흐르는 운하 등 중세의 느낌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도시를 걷다보면 마치 과거로 시간여행을 떠나는 기분이 든다. 인구 30여만명의, 플랑드르(네덜란드어를 쓰는 지역) 지역을 대표하는 겐트는 대학도시로 그 어느 중소도시보다 활력이 넘쳐나는 곳이기도 하다.

10월 겐트 공공도서관인 드 크룩도서관(Bibliotheek De Krook)을 찾았을 때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건물 앞에서 도서관 문이 열리기를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이었다. 교사와 함께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부터 청소년, 장년층, 그리고 나이든 노인들까지 50여명의 대기자들은 오전 10시 직원이 반갑게 인사하며 문을 열자 행복한 표정으로 도서관에 들어섰다.

겐트 도심을 흐르는 스켈트강 옆에 자리한 드 크룩 도서관은 독특한 외관이 먼저 눈길을 끈다. 건물은 2017년 ‘BBC 선정 아름다운 도서관’에 선정되는 등 개관 당시에 화제가 됐었다. 굴곡진 강의 라인을 따라 자리한 건물은 각 층마다 각기 다른 형태로 자유롭게 구성돼있는데, 특히 어느 자리에서 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풍경을 연출한다. 구부러진 건물은 마치 책을 쌓아놓은 듯한 모습이며 철근과 유리 등을 주소재로 한 건물은 인근의 오래된 건축물과 대비를 이루며 현재와 과거, 오래된 것과 새 것을 잇는 접점 역할을 한다. 도서관 이름 ‘크룩’(Krook)은 ‘구부러짐, 꺾어짐’이라는 뜻의 네덜란드어에서 따왔다.

겐트시는 2005년 도서관을 조성하기로 결정한 후 12년 간의 준비 과정을 거쳐 지난 2017년 드 크룩의 문을 열었다. 당시 도서관 건립은 6500만유로(약 940억원)가 투입된 대규모 사업으로 낙후된 지역을 재생시키는 의미도 있었다. 도서관 건립의 목표를 사람들이 다양한 방식으로 세상을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것으로 삼은 겐트시는 도서관이 단순히 책을 만나는 장소를 넘어 더 많은 미션을 수행하는 공간이 될 수 있게 겐트 대학 등 지역 기관들과 협업을 진행했다. 도서관은 장르별로 잘 정리된 서가와 학습 및 작업 공간, 독서 및 스토리텔링 코너, 전시 공간, 독서 카페 및 체험 계단, 메이커스 공간, 어린이실 등으로 구성돼 있으며 특히 고문서 보존실에는 17세기 도서를 비롯해 벨기에 및 겐트 관련 서적 18만여권이 소장돼 있다. 시내 14개의 분관을 두고 있는 크룩의 지난해 방문객은 90만명 수준이었다.

도서관에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도시가 직면한 사회 현안에 대한 혁신적 해결책을 찾는 데 도서관을 비롯해 다양한 지역 기관들이 협업을 진행한다는 점이다. 특히 이 과정에서 도서관 방문자들을 적극적으로 참여시켜 좀 더 현실적인 해결방안을 찾으려 애쓴다.

이런 협업은 도서관 조성 단계에서부터 진행됐으며 현재 도서관과 겐트시, 겐트 대학, IMEC(나노 전자공학 및 디지털 기술에 대한 플랑드르 연구센터)가 주축이 돼 프로젝트를 진행, 도시 정책을 결정하는 데 시너지 효과를 내고 있다.

각 참여단체는 장기간의 토론과 워크숍 등을 통해 1년 동안 매진할 한 가지 주제를 정하고 해결 방안을 찾아간다. 올해는 의료 관련 주제가 선택됐고 협업 기관과 지역의 의사, 스타트업 기업 등이 정책을 개발하고 해결책을 모색하고 있으며 이때 도서관은 토론의 장을 만드는 역할을 한다.

협업을 통해 각자가 경험한 것들을 공유하면 사고가 확장되는 건 당연합니다. 개별적으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것보다 함께 모여서 하면 훨씬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현대 사회에서는 모든 사람이 새로운 기술의 혜택을 골고루 받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죠. 지역 사회의 발전을 위해 가장 필요한 일이기도 하고요. 어떤 이슈를 정하는지가 중요한데 특정 분야에서 뒤떨어질 수밖에 없는 취약자들을 위한 사회적 이슈가 주된 관심입니다. 주거문제, 교통문제 등 많은 주제가 있겠죠. 이 문제를 해결했을 때 어떤 사람들이 혜택을 받는지도 철저하게 따져보죠. 취약자를 직접 만나고 토론과 워크숍 등을 통해 기술적인 해결방안 등을 모색합니다. 개별적으로 진행하는 것보다는 취약자들을 위한 프로그램은 전체적으로 모여서 하는 게 필요다고 생각합니다.”

겐트 대학의 제론 보레오니옹씨는 “프로젝트의 주체들이 도서관 안에 함께 상주하며 수시로 대화를 나누고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것도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도서관은 100여개 지역 학교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도서관은 다양한 종류의 책 읽기, 깊이 읽기, 부모와 함께 읽기 등 5가지 과제를 기반으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기획해 학생과 교사, 부모들에게 독서와 도서관 이용에 대한 동기를 부여한다. 뉴스레터를 제작해 전달하고 특히 학교로 직접 찾아가 다양한 프로모션을 진행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다. 문해력이 떨어지고 있는 학생들을 위한 프로그램도 꾸준히 진행하며 12세까지의 학생들은 학교의 의지에 따라 8주에 한번씩은 도서관을 정기적으로 방문한다.

학교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마이크 소머스씨는 “학생들이 도서관과 친해질 수 있도록 학교로 찾아가 다양한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교사들과도 소통을 많이 한다”며 “장래에 교사가 될 학생들에게는 워크숍 참여 등 다양한 기회도 제공한다”고 말했다.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이 모델로 참여한 포스터를 도서관 곳곳에서 만날 수 있는 점도 인상적이었다. 네덜란드어에 익숙치 않은 이민자들의 이용을 독려하고, 동기 의식을 부여하기 위한 것이다. 도서관은 이민자들의 정착을 돕는 NGO 단체들과 협업을 통해 공공기관에 이메일 쓰기 등 이민자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운영하며 ‘원어민이 아닌 사람을 위한 함께 읽기’ 등 다양한 독서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도서관은 책과 독서를 사랑하는 지역민들을 위한 디지털 플랫폼으로 겐트 독서 공동체를 위한 ‘겐트 리드(Ghent Reads)’를 운영한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나만의 북클럽 만들기’로 도서관이 제공하는 책 가운데 한 권을 골라 5명 정도가 함께 읽고 토론 내용을 제출하면 사이트에 올려 공유한다. 또 지역 도서관을 비롯해 카페, 공원 등 책읽기 좋은 장소를 소개하고 부두 등 도심 곳곳에서 문학작품을 만날 수 있는 ‘거리의 시’, 작은 책장에 놓인 책 한권을 가져가고 자신의 책 한권을 두고 가는 ‘도서 교환 케비닛’에 대한 정보도 제공한다.

/글·사진=벨기에 겐트 김미은 기자 mekim@kwangju.co.kr

http://m.kwangju.co.kr/article.php?aid=173224440077655136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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