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4월 3일 목요일

도서관이 없는 나라

 1.

도서관 없는 나라가 민주주의를 하고 지식정보 사회를 발전시킨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망상이다. 공공도서관은 정치적으로 필요하고 사회문화적으로 필수적이며 경제적으로도 불가결하다.

-도정일, 공공도서관 확충이 필요하다, 한겨레 2001.11.19. 


2.

책 읽을 권리는 국민의 기본적 문화 향수권의 하나이다. 그것은 알권리이고 지식에의 접근권이며 문화 민주주의의 조건이다.

-도정일, ‘책 읽는 사람들의 사회, 출판문화 2001.5.23.

 

3.

책맹은 문맹과는 다르다. 문자를 모르는 것이 문맹이다. 그러나 문자도 알고 높은 교육도 받았고, 그래서 책을 읽자면 읽을 수도 있지만 죽지 못해 읽어야 할 경우를 제외하고는 책 읽기 싫고 책 읽을 줄 모르는 것이 책맹이다.

-도정일, 책맹사회, 씨네21 2001.6.19.

 

4.

책 없이도 인간은 기억하고 생각하고 상상하고 표현한다. 그러나 책과 책 읽기는 인간이 이 능력을 키우고 발전시키는 데 중대한 차이를 낸다.

 

책을 읽는 문화와 책을 읽지 않는 문화는 기억, 사유, 상상, 표현의 층위에서 매우 다른 개인들을 만들어내고 상당한 질적 차이를 가진 사회적 주체들을 생산한다.

 

책의 세계는 정신의 자기 회귀를 강화하는 고독한 성차과 불안한 의심의 극장, 의식이 의식을 만나 협상하고 교섭하는 대화의 극정, 인간이 유한성의 조건 속에서 그 유한성에 보복할 모든 가능한 책략들을 꾸미는 음모의 극장이다.

-도정일, 고독한 성찰과 불안한 의심의 극장, 교수신문, 2008. 1. 29.

 

5.

동네 도서관은 무엇보다도 시민의 사회적 능력 중에 기본이 되는 잘 읽고 잘 쓰고 정보를 다루는 능력, 이른바 리터러시의 요람이다. 이 리터러시가 부단히 강화되는 곳에서만 판단력을 가진 시민, 책임 있는 사회인, 유능한 경제인 나온다.

-도정일, 보르헤스의 천국과 도서관, 한겨레, 2006.1.20.

 

6.

공생을 위한 수단들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이반 일리치가 생각한 대표적인 공생의 도구는 세 가지--도서관, 자전거, 그리고 시다.

-도정일, 공생의 도구, 중앙도서관 2004.2.22.

 

7.

공공도서관은 사회의 토대시설이고 이 시설은 주민들의 생활권 안에 있어야 한다.

-도정일, 소년 완서의 도서관, 씨네21. 2002.2.12

 

8.

그날 오래도록 자리를 뜨지 못한 설계자 정기용의 마음을 나는 안다. 개관과 함께 설계자는 건물을 넘기도 떠나야 한다. 지난 몇 달 턱없이 적은 경비와 시간 제약 속에서 설계 아이디어를 살려내기 위해 밤새우며 작업해온 현장소장, 시공자, 관리자 들도 떠나야 한다. 그들의 땀과 노심초사를 사람들은 기억해줄까? 그들이 장차 도서관에 들렀을 때 직원들은 누구시죠?”라고 묻지 않을까? “개관식 때 우리는 참 쓸쓸합니다.” 시공회사 유탑엔지니어링의 현장소장 모득풍씨의 말이다. 쓸쓸했을 사람들이 어찌 그뿐이랴. 쓸쓸한 사람들이여, 쓸쓸함에 이끌려라. 삶은 결국 쓸쓸함의 길이가 아닐 것인가? 오 쓸쓸함이여, 그대도 인생의 진실 하나를 보게 하는구나.

-도정일, , 쓸쓸함이여, 스승이여. 경향신문 2003. 11.12.

2025년 4월 2일 수요일

L'Heure Joyeuse: 프랑스 최초의 어린이 도서관이 100주년을 맞아

L'Heure Joyeuse는 프랑스에서 어린이를 위해 특별히 설립된 최초의 도서관이었습니다. 1차 세계 대전 이후인 1924, 미국의 선물로 파리의 라틴 지구에 문을 열었습니다. Heure Joyeuse는 문자 그대로 "해피 아워"로 번역되는데, 어린이 도서관에 이상한 이름처럼 들립니다. 그러나 이 문구는 1924년 당시에는 오늘날과는 전혀 다른 의미를 가졌습니다. 4년간의 충격적인 전쟁 이후 프랑스 어린이들의 삶에 기쁨을 되찾아줄 장소가 필요하다는 것을 암시합니다. 

1차 세계 대전 이전에 프랑스의 어린이들은 자신의 연령대에 맞게 쓰인 책을 제한적으로만 접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는 어린이들의 독서 요구를 충족시킬 만한 시설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았고, 대부분의 도서관은 학자들만을 위한 공간이었습니다. 이런 공간은 종종 "책 묘지"라고 불렸는데, 책이 검은색 먼지 덮개로 덮여 있었고 찬장에 보관되거나 자물쇠와 열쇠로 잠긴 선반에 보관되었기 때문입니다. 소수의 공공 도서관만이 어린이를 위한 소규모 컬렉션을 제공했는데, 대개 뒤쪽 구석에 숨겨져 있었습니다. 이는 영국과 미국의 도서관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습니다. 영국과 미국의 도서관은 책에 대한 무료 접근을 제공했고, 특히 어린 독자를 위해 큐레이팅된 컬렉션이 있는 전담 어린이 부서를 갖추기 시작했습니다. 진보적인 프랑스 사서이자 작가인 외젠 모렐은 이러한 영어권 도서관 중 일부를 방문하여 변화를 옹호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그의 에세이 "La Librairie publique"에서 미국 모델을 기반으로 한 무료 프랑스 공공 도서관과 어린이 도서관을 호소했습니다. 

전쟁 후, 여러 미국 자선 단체가 프랑스 재건을 도왔습니다. 깊은 영향을 미친 단체 중 하나는 Anne Murray Dike 박사와 상속녀 Anne Morgan이 설립한 American Committee for Devastated France(CARD)였습니다. 프랑스 북부에서 수행된 이 단체의 구호 활동에는 어린이 부서가 있는 도서관을 만드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뉴욕 공공 도서관의 어린이 사서인 Jessie Carson이 이 노력을 이끌었습니다. 북부에 있는 5개의 도서관 외에도 CARD는 파리에 최초의 현대 공공 도서관을 설립했습니다. 1922년에 설립된 Fessart Library에는 전담 어린이 섹션이 포함되었습니다. 

CARD는 책의 힘을 믿는 유일한 조직이 아니었습니다. 191811월 휴전 다음 날, 미국의 여성 그룹이 어린이 도서관 도서 위원회를 결성했습니다. 그들의 목표는 유럽 어린이들에게 책을 제공하여 전쟁의 트라우마에서 치유하고 평화로운 미래를 준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었습니다. 도서 위원회는 파리와 브뤼셀이 각 도시의 어린이를 위한 무료 시립 도서관을 자금 지원하는 데 도움을 주었습니다. 파리의 어린이 도서관인 L'Heure Joyeuse19241112일에 문을 열었습니다. 

최초의 Heure Joyeuse 사서인 Claire Huchet Bishop, Marguerite Gruny, Mathilde Leriche는 해당 분야의 진정한 개척자였습니다. 그들은 혁신적인 사서 원칙과 관행을 실험했는데, 그 중 많은 것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용되고 있습니다. 

L'Heure Joyeuse를 만든 원래의 아이디어는 학교 밖에서 아이들과 책을 아늑하고 매력적인 환경에서 함께 모으는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창립자들은 벽에 그림을 걸고 테이블에 꽃을 놓았습니다. 미국에서 주문 제작한 어린이용 나무 가구를 주문했습니다. 

또 다른 목표는 모든 연령대와 사회적 배경의 어린이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창립자들은 당시 파리 중심부에 있는 사회경제적으로 다양한 지역으로, 다양한 국가와 종교를 가진 가족들이 사는 rue Boutebrie에 위치를 선택했습니다. 이 도서관은 소년 소녀에게 서비스를 제공했는데, 이는 1920년대에 혁명적인 행위에 못지않았습니다. 

L'Heure Joyeuse의 사서들은 아이들이 강력한 독자가 되도록 돕기 위해 다양한 전략을 사용했습니다. 그 중 하나는 미국에서 수입된 관행인 스토리 타임으로, 아이들에게 번역된 외국 문학을 소개하기도 했습니다. 창립 사서들은 뛰어난 스토리텔러였습니다. 도서관 건물이 개관하기도 전에, 후에 로버트 맥클로스키가 그림을 그린 The Man Who Lost His Head , French Children's Books for English-Speaking Children 등의 저자가 된 위셰 비숍은 공원을 포함한 다른 장소에서 스토리텔링 세션을 열었습니다. 

L'Heure Joyeuse는 오락적 독서와 관련된 모든 문제에 혁신을 구현했습니다. Roger Cousinet, Maria Montessori, Ovide Decroly, Célestin Freinet와 같은 교육 개혁가들에게 영감을 받아 "활동적 학습" 방법론을 도입한 사서들은 어린이들에게 그 공간을 "자신만의" 공간으로 만들도록 격려했습니다. 6~16세 어린이들에게는 책임이 주어졌습니다. 여기에는 도서관 도우미가 되고, 책을 빌리고, 어린 아이들을 돕고, 행사를 조직하는 것이 포함되었습니다. 매달 연장자 독자들은 두 명의 리더를 선출했습니다. 한 명은 남자이고 한 명은 여자였습니다. 리더들은 규율을 포함하여 도서관 생활에 대한 결정을 내렸습니다. 이러한 자율성과 자유는 도서 위원회의 보다 전통적인 위원들 중 일부를 놀라게 했지만 어린이들은 매우 감사하게 여겼습니다. 

사서들은 어린이 책은 성인용 책보다 훨씬 더 신중하게 선택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고품질 컬렉션을 보장하기 위해 새로운 문학적, 미적 기준을 정의해야 했습니다. Huchet Bishop, Gruny, Leriche는 컬렉션에 보관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각각의 잠재적인 책을 읽고 평가했습니다. 초보 독자를 위한 흥미로운 책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 그들은 스스로 책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사서들은 또한 능동적 학습을 기반으로 다른 창의적인 활동을 개발했습니다. 어린이들은 연극 제작에 참여하고, 도서관의 신문 "L'Heure Joyeuse", "Le Rat Joyeux"에 기사를 썼으며, 자신이 선택한 다양한 주제에 대한 전시회를 조직했습니다. 모든 활동은 도서관의 다양한 컬렉션을 사용하는 것이었으며, 독서를 꺼리는 사람들에게 흥미를 유발하도록 설계되었습니다. 

창립 사서들은 모든 어린이가 절판되었거나 부모가 사기에는 너무 비싼 책, 예를 들어 쥘 베른 소설의 아름다운 헤첼 컬렉션이나 아서 래컴이 삽화를 그린 작품 등 접근하기 어려운 책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어린이가 도서관에서 열람할 수 있지만 집으로 가져갈 수 없는 희귀 도서를 수집하기 시작했습니다. 원래 컬렉션에 속했던 역사적 제목은 오늘날에도 16세기로 거슬러 올라가는 10만 권 이상의 아동 도서가 있는 유산 컬렉션으로 어린 독자에게 제공됩니다. 

영어: Book CommitteeL'Heure Joyeuse의 가시성을 높이고 방문객을 유치하기 위해 파리의 중심부를 선택했습니다.그들의 계획은 효과가 있었습니다.어린이 학습과 사서업을 전문으로 하는 많은 전문가와 학자들이 도서관을 자주 찾았습니다.수년에 걸쳐 이 도서관은 여러 유명한 작가와 일러스트레이터( Babar 의 제작자인 Jean de Brunhoff 포함 )와 출판사를 유치했습니다.Père Castor 컬렉션의 편집자인 Paul Faucher1929L'Heure Joyeuse에서 독자들에게 첫 그림책을 테스트했습니다.그는 재능 있는 16세 소년으로 전문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Pierre Belvès를 발견했습니다.L'Heure Joyeuse는 또한 동일한 조직, 원칙 및 관행을 사용하여 프랑스에서 다른 어린이 도서관을 설립하는 데 영감을 주었지만 이러한 것은 1970년대까지 프랑스에서 일반화되지 않았습니다. 

1974, L'Heure Joyeuse는 거리를 따라 6 rue des Prêtres-Saint-Séverin에 있는 더 넓은 장소로 이전했습니다. 또한 두 개의 새로운 섹션이 만들어졌습니다. 대형 비닐 레코드 컬렉션(현재는 CD)과 앞서 언급한 역사적 컬렉션입니다. 2015, 역사적 서적, 잡동사니, 아카이브 컬렉션은 19세기에 지어진 완전히 개조된 건물인 Médiathèque Françoise Sagan으로 이전되었습니다(이 시설은 대규모 공공 도서관이지만 더 이상 어린이 전용은 아닙니다). 

L'Heure Joyeuse의 이야기를 젊은이와 노인 모두에게 들려주는 전시회가 20241112일부터 2025323일까지 Médiathèque Françoise Sagan에서 개최됩니다. 역사적 컬렉션, 보관 사진 및 문서, 도서관의 원래 가구를 포함한 유물이 유명 일러스트레이터인 Serge BlochGérard Lo Monaco가 디자인한 전시 공간에 전시됩니다. 스토리 타임을 포함한 공개 행사도 개최됩니다. Fonds patrimonial Heure JoyeuseUniversity of Sorbonne Paris Nord20253월에 "아동 문학, 도서관 및 국제 이해"에 대한 국제 컨퍼런스를 개최하여 기념 행사를 마무리합니다. 

1924, L'Heure Joyeuse의 창립자들은 책과 도서관이 재건 과정에서 아이들이 외상을 입은 세상을 다루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이곳이 관용, 자유, 자기 구성과 같은 가치에 대해 어린 마음이 일어나고 아동 문학을 통해 지식과 상상력을 증진할 수 있는 장소가 되기를 바라며 믿습니다. 

The Horn Book Magazine 202411/12월호 에서 발췌 .

출처 : https://www.hbook.com/story/lheure-joyeuse-the-first-childrens-library-in-france-turns-100


버스 정류장을 도서관으로 ‘보고, 빌리고, 타고’(Browse, Borrow, Board)

 버스 정류장을 도서관으로

보고, 빌리고, 타고’(Browse, Borrow, Board) 

미국 보스턴 시.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시간을 즐겁게 하기 위해 버스 정류장을 도서관으로만드는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고. 프로젝트의 이름은 보고, 빌리고, 타고’(Browse, Borrow, Board). 보스턴 시의 일부 버스 정류장에 디지털 팝업 도서관으로 연결되는 QR 코드가 설치되어 있으며, 이를 스마트폰으로 읽는 것만으로 디지털 서적을 빌릴 수 있다고. 공공도서관 시스템(public libraries)과 공공교통 시스템(public transit)의 통합 시도라고 할 수 있을 듯합니다.

참고: https://www.bpl.org/browse-borrow-board/

https://www.mass.gov/info-details/browse-borrow-board-free-digital-multilingual-library-content-for-transit-riders

 

2025년 4월 1일 화요일

“헌법재판소의 주인은 국민입니다”--천주교 사제·수도자 시국선언문 20250330

천주교 사제·수도자 시국선언문

“헌법재판소의 주인은 국민입니다”

1. 어두울 때마다 빛이 되어 주시는 분들의 수고에 경의를 표합니다. 아울러 치유와 회복이 절실한 모든 분에게, 특히 산불로 쓰라린 아픔을 겪고 계신 많은 분에게 하느님의 위로가 있기를 빕니다. 불안과 불면의 혹한을 견디느라 고생이 많았는데 기다렸던 봄에 이런 재앙을 당하고 보니 슬프기 그지없습니다.

2. 울창했던 숲과 집이 하루아침에 잿더미가 되어 사라진 것처럼 일제와 싸우고 독재에 맞서 쟁취했던 도의와 가치들이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습니다. 작년 그날 마음에서 지운 윤석열 씨를 새삼 거론할 필요가 있겠습니까마는 여전히 살아서 움직이는 대통령의 수족들이 우리 역사에 무서운 죄를 짓고 있는 현실에 대해서는 몇 가지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3. 먼저 공직의 타락입니다. 대통령 권한대행인 국무총리는 “국회가 선출한 3인을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하지 않은 것은 헌법상의 의무 위반”이라는 헌재의 결정을 듣고도 애써 공석을 채우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헌재의 결정은 민주적 절차를 거쳐 내려진 법적 판단이니 반드시 존중되어야 한다”며 국민을 훈계합니다. 총리의 이중적 처신은 헌법재판소가 초래한 것이기도 합니다. “피소추인이 헌법수호와 법령을 성실히 준수해야 할 의무(헌법 제66조, 제111조. 국가공무원법 제56조)를 위반했다”고 말한 뒤, 그렇다고 “파면할 만한 잘못”, 곧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면서 직무에 복귀시켰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지만 죄인으로 볼 수 없다? 이게 무슨 소리입니까! 서울중앙지법이 내란수괴를 풀어주고, 검찰총장은 법원의 결정을 존중한다며 맞장구치는 자신감이 대체 어디서 생겨났겠습니까? 대한민국을 통째로 태우려던 불길은 군을 동원한 쿠데타를 넘어 사법 쿠데타로 번졌으며 걷잡을 수 없는 형국이 되고 말았습니다.  

4. 그 다음은 헌법재판소의 교만입니다. 억장이 무너지고 천불이 납니다. 신속하고 단호한 심판을 기다렸던 시민들의 분노는 폭발 직전입니다. 사회적 불안과 혼란이 임계점을 넘어섰습니다. 화재를 진압해야할 소방관이 도리어 방화에 가담하는 꼴입니다.

여덟 명 재판관에게 묻겠습니다. 군경을 동원해서 국회와 선관위를 봉쇄 장악하고 정치인과 법관들을 체포하려 했던 위헌·위법행위를 단죄하는 것이, 명백한 사실도 부인하고 모든 책임을 아랫사람에게 돌리는 자의 헌법 수호 의지를 가늠하는 것이, 그를 어떻게 해야 국익에 부합하는지 식별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입니까? 가타부타 아무 말도 못하고 있는 재판관들에게 성경의 단순한 원칙을 전합니다. “너희는 말할 때 ‘예’ 할 것은 ‘예’ 하고, ‘아니요’ 할 것은 ‘아니요’라고만 하여라. 그 이상의 것은 악에서 나오는 것이다.”(마태 5,37) 한참 늦었으나 이제라도 당장 정의로운 판결을 내리십시오. 헌법재판소의 주인인 국민의 명령입니다.  

5. 주권자인 국민은 법의 일점일획조차 무겁고 무섭게 여기는데 법을 관장하고 법리를 해석하는 기술 관료들이 마치 법의 지배자인 듯 짓뭉개고 있습니다. 서부지법에 난입했던 폭도들 이상으로 법의 뿌리를 흔들어대기도 합니다. 아무도 “이처럼 올바른 규정과 법규들을 가진 위대한 민족이 또 어디에 있느냐?”(신명 4,4)고 자부할 수 없습니다. 잠자리에 들어도 대부분 잠들지 못하는 날, 듣는 목소리가 있습니다. “정신 바짝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인 악마가 으르렁 대는 사자처럼 먹이를 찾아 돌아다닙니다. 굳건한 믿음을 가지고 악마를 대적하십시오.”(1베드 5,8-9) 정의 없는 국가란 ‘강도떼’나 다름없다고 했는데, 지금은 그만도 못한 ‘사자들’이 우리 미래를 가로막고 있습니다.

6. 머리 위에 포탄이 떨어졌고, 땅이 꺼졌고, 새싹이 움트던 나무들은 시커멓게 타버렸습니다. 하지만 새로운 시작이 멀지 않습니다. 어제도 오늘도 많은 분들이 밤낮 낮은 데서 궂은일 도맡아 주고 계시므로 올해 민주 농사는 원만하고 풍요로울 것입니다. 화마도 태울 수 없고, 내란 세력도 빼앗을 수 없는 귀한 마음으로 약한 존재들을 보살핍시다. 미력한 사제, 수도자들이지만 저희도 불의의 문을 부수고 거짓의 빗장을 깨뜨리는 일에 힘을 보태겠습니다.

2025. 3. 30.

아름다운 하느님 나라를 꿈꾸며

사순절 제4주일에

천주교 사제, 수도자 일동

윤석열 내란으로 드러난 네 가지 착각--이재성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윤석열 내란으로 드러난 네 가지 착각


이재성 한겨레신문 논설위원


‘윤석열 내란 사태’ 이후 대한민국 헌법은 세번 무너졌다. 처음엔 대통령에 의해, 다음엔 대통령 권한대행‘들’에 의해, 세번째는 헌법재판소에 의해.

헌법재판소는 한덕수 권한대행의 헌법 위반에 면죄부를 주었고, 윤석열 대통령의 헌법 파괴에 대해서는 선고를 미룸으로써 반헌법세력에 용기를 주고 헌정질서 문란을 방조하고 있다. 헌법은 축구 경기장의 터치라인 같은 것인데, 선수들이 터치라인 밖으로 공을 몰고 나가 플레이를 이어가는데도, 심판이 휘슬 불기를 주저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상 헌법이 없는 상태가 넉달째 지속되고 있다.

내란 사태의 장기화는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었던 가치와 통념이 착각에 불과했음을 깨닫게 한다. 첫째, 헌법재판관들은 헌법만 생각할 거라는 착각이다. 온 국민이 티브이 생중계로 지켜본 헌정 파괴의 현장만으로 윤석열 대통령 파면은 당연한 일인데도 유례없이 선고가 늦어지는 것은, 어떤 결정이 자기(진영)에게 유리한지 계산하는, 헌법보다 정치를 우선하는 재판관이 있다는 뜻이다. 모든 절차를 만장일치로 진행하고 있다던 심리가 언제 누구에 의해 어그러졌는지 결국 드러날 것이다. 이들이 헌재의 문을 닫게 만들 수도 있다. 헌재는 1987년 6월 항쟁의 성과이지만,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하는 대신 군부독재 세력에 내어준 타협의 산물이기도 하다. 만약 헌법을 다시 쓴다면, 국회가 의결한 대통령 탄핵소추안을 국민이 투표로 결정하게 해야 한다. 헌법재판소를 해체하고, 국회를 상하 양원으로 재편해 미국처럼 상원이 헌재 기능을 하게 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국무위원뿐만 아니라 검사와 판사, 감사원장과 방송통신위원장의 탄핵도 국회가 할 수 있게 된다.

두번째 착각은 헌법 제1조가 주는 착시에서 비롯한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선언은 아름답지만, 우리는 이 정언명령을 이행할 법률 체계와 정치 제도를 아직 완성하지 못했다. 아니, 헌법 제1조는 영원히 지향해야 할 유토피아 같은 것이다. 법과 제도를 아무리 완벽하게 갖춰놓더라도 빈틈을 파고들어 사익을 추구하는 바퀴벌레들은 언제나 나타나기 마련이라고 동서고금의 역사가 가르친다. 약간의 과장이 허용된다면, 현재의 대한민국은 ‘유사’ 민주공화국이며, 차라리 사법귀족정(judicial aristocracy)에 가깝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세번째는 우파 엘리트에게도 애국심이 있을 거라는 착각이다. 한덕수와 최상목 두 권한대행의 심장에 나라를 먼저 생각하는 마음이 한 조각이라도 남아 있다면, 태연하게 헌법을 어겨가며 마은혁 헌법재판관 임명을 거부하는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지귀연 판사처럼 법을 일부러 잘못 해석해 내란 우두머리의 구속을 취소하거나, 심우정 검찰총장처럼 윤석열 한 사람에게만 ‘즉시항고 포기’라는 전무후무한 특혜를 베풀지 않았을 것이다. 이들은 시정잡배만도 못한 애국심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성실하게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중이다. 자신은 위헌과 불법을 저지르면서 국민에게는 법을 지키라고 명령하는 모순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는 철면피들이다. 대중의 상식과 엘리트 도덕률의 괴리 현상은 거의 망국 직전의 위기 수준이다. 최상목과 심우정의 미국 국채와 주식 투자는 평범한 애교로 보일 정도다. 나라의 운명에 대한 고려가 없는 이들은 ‘매국 우파’라 불러야 마땅하다.

네번째 착각은 정치의 사법화 또는 사법의 정치화가 문제라는 나태한 인식이다. 이런 진단은 윤석열 ‘검찰정권’ 3년 동안의 극적인 변화를 설명하지 않거나 무시하는 무책임한 수사가 되었다. 여야가 상대를 인정하지 않고 작은 일도 법정으로 끌고 가는 관행이 정치의 사법화와 사법의 정치화를 낳았다면, 검찰은 그 흐름에 올라타 지난 3년 동안의 정치를 좌지우지했다. 이재명에 대한 무차별 수사와 기소는 하나의 예에 불과하다. ‘검찰 정치’라는 본질을 은폐하는 개념은 이제 폐기하고, 모두가 아는 구조적 결함을 근본적으로 수술해야 한다.

이상의 네가지 착각은 연결돼 있다. 해법도 연결돼 있다. 더 많은 민주주의, 선출되지 않은 권력의 민주화다. 국가의 기능을 대리하라고 세금을 써서 고용한 엘리트들이 사익을 추구해온 세월이 너무 길었다. 강고한 기득권 카르텔이 된 그들은 헌정질서를 부수고 그들만의 나라를 세우려 하고 있다. 그들의 저의를 국민이 모르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체제 안에서 평화롭게 사태가 해결되길 기다릴 뿐이다. 회생과 도약이냐 파국과 혁명이냐, 헌재의 결정에 달렸다.

san@hani.co.kr

이재성 기자


헌법 없는 권력, 권력 없는 헌법-강성현 교수(성공회대, 사회학자)

 <헌법 없는 권력, 권력 없는 헌법>

: 2025년 한국 헌정 위기 시나리오와 결정적 분기점


        - 강성현 교수(성공회대, 사회학자)


Ⅰ. 위기의 현재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대통령 탄핵이라는 중대한 헌정적 갈등을 단지 하나의 정치 이벤트로 겪고 있는 것이 아니라, 헌법 기능 자체가 구조적으로 정지되어가는 심각한 체제 위기 속에 있다고 판단한다. 2025년 2월, 국회는 대통령 윤석열에 대한 탄핵소추안을 가결했고, 그에 따라 대통령은 직무에서 정지되었다. 이후 국무총리 한덕수가 대통령 권한대행으로 복귀했다. 표면적으로는 헌정 질서가 절차를 따르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대통령은 없고, 권한대행은 법의 시간과 기능을 조정하며, 헌법재판소는 판단 능력을 상실한 상태에 가까워지고 있다. 나는 지금 이 상황을 헌법이 비워진 자리에서 권력만 남은, 위험한 예외 상태라고 본다.


Ⅱ. 헌정 기능 정지의 기원: 탄핵 이후 한덕수 체제


한덕수는 권한대행으로 복귀한 직후,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인 마은혁의 임명을 거부했다. 헌법재판소가 이 거부를 위헌이라고 판결했지만, 그는 여전히 지명을 미루고 있다. 나는 이 행위를 단순한 인사상 판단이 아니라, 헌법재판소의 구성 자체를 마비시킴으로써 탄핵 인용 가능성을 원천적으로 차단하려는 정치적 전략이라고 판단한다. 윤석열의 복귀 가능성을 열어둔 채, 헌정 기능을 최소한으로 봉쇄하고, 시간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체제의 중심을 재조정하는 시도다.


그는 중립적 관리자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로는 무언가를 기다리고 있는 듯 보인다. 복귀인가, 공백인가, 혹은 자신을 중심으로 한 비윤 카르텔의 질서 재편인가. 나는 그가 단순히 시간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헌정의 리듬 자체를 설계하려고 한다고 느낀다. 이처럼 법과 정치, 권력과 헌법 사이의 모든 경계가 뒤섞이고 있는 현재의 국면에서, 나는 가장 유사한 사례를 1979년 최규하 체제에서 찾는다.


Ⅲ. 반복되는 질서 있는 붕괴: 최규하의 실패와 2025년의 교훈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가 김재규의 총탄으로 사망한 직후, 국무총리 최규하는 헌법에 따라 대통령 권한대행에 올랐다. 그는 곧바로 “질서 있는 이양”을 강조하며 유신체제의 연착륙을 말했지만, 실제로는 통일주체국민회의라는 간접 선거 체제를 유지하며 권력의 틀을 자신과 기존 내각 중심으로 유지하려 했다. 나는 당시 최규하가 유신을 해체하려 했다는 통념에 동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비군사적 질서를 지속할 수 있다고 판단하고, 시간을 조정하는 방식으로 자신의 권력을 정비하려 했다고 본다.


그러나 이 공백의 시간 동안, 신군부는 군 내 조직과 정보권력을 완전히 장악했다. 12.12 군사반란을 통해 전두환과 하나회는 실질적인 권력의 주인이 되었고, 최규하는 형식적 권력만을 가진 채 실질적인 통제력을 상실했다. 나는 이 사례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가 무력의 동원이 아니라 시간의 점유였다고 생각한다. 최규하가 헌정의 틀을 유지하려 한 바로 그 시간 동안, 군은 권력의 틀을 장악했다. 그리고 정치적 결단을 미룬 그의 선택은 결과적으로 독재의 정당화에 기여했다.


2025년 현재의 한덕수 권한대행 체제도 놀라울 만큼 이 패턴과 닮아 있다. 그는 중립을 주장하지만, 그 중립은 결정하지 않는 방식으로 권력을 행사하고 있다. 나는 그가 헌법재판소 구성 지연이라는 ‘사소한’ 절차 속에 담긴 정치적 기획의 본질을 알고 있다고 믿는다. 그리고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상황은 위기다. 그는 최규하처럼 밀려날 수도 있지만, 그가 만들어낸 공백의 시간 속에서 더 위험한 권력 구조가 완성될 수도 있다. 나는 지금의 시간이 단지 무기력이 아니라, 누군가가 설계한 정치적 침묵일 수도 있다고 본다.


Ⅳ. 검찰·경찰·사법부의 선택이 결정할 정국의 향방


나는 지금의 헌정 위기를 단지 대통령과 국회의 갈등으로 보지 않는다. 실질적으로 이 체제의 향방을 결정지을 주체는 검찰, 경찰, 사법부, 이 세 권력기관이다. 이들은 모두 헌법에 따라 독립된 기능을 부여받았지만, 동시에 윤석열 정권의 핵심 권력 기반으로 기능해온 이력도 있다. 지금 이 순간 이들이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느냐에 따라, 헌법의 복귀냐, 통제의 체제냐, 혹은 공백의 심화냐가 결정될 것이다.


1. 검찰: 권력의 심장 혹은 폭력의 도구


나는 검찰을 윤석열 정치의 본체로 본다. 윤석열이 대통령에 오르기 전부터, 검찰은 단지 수사기관이 아니라, 정치적 의사결정의 핵심축이었다. 그는 검찰총장 시절 청와대와 여당을 수사 대상으로 삼았고, 대선 과정에서는 ‘정권 교체의 도구’로 기능했다.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검찰은 내각보다 더 중심적인 권력 행위 주체로 존재해 왔다.


윤석열 탄핵 이후, 검찰 조직은 일견 조용한 듯 보인다. 그러나 나는 이 침묵이 자기보호와 전략적 대기라고 본다. 만약 윤이 복귀할 경우, 검찰은 가장 먼저 정치적 보복의 선봉에 설 것이다. 윤 정권을 비판한 언론인, 교수, 시민단체, 변호사, 판사까지 광범위한 수사 대상이 될 수 있다. 이미 과거 조국 전 장관, 유시민, TBS, 시민언론, 정의당 등을 상대로 한 수사 방식은 그 시범 운영처럼 보인다.


검찰은 보복과 통제를 ‘법적 정당성’이라는 외피로 포장할 수 있는 매우 효율적인 조직이다. 나는 이 조직이 복귀 후 ‘합법적 공포 정치’를 재현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판단한다. 동시에 검찰 내부에는 일정 정도의 피로감과 이탈도 존재한다. 특히 중간 간부 이하에서 ‘정치검찰’ 프레임을 견디기 어려워하는 흐름이 있다. 윤 복귀 이후 무리한 수사 지시에 따른 내부 균열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하지만 구조적으로는 여전히 윤석열 복귀 시 가장 즉각적으로 가동될 국가폭력 기관이다.


반면, 탄핵 인용이 확정되면 검찰은 한동안 정체 상태에 빠질 것이다. 주요 수사 라인이 방향을 잃고, 친윤 인사들은 내부에서 도려낼 수 없을 만큼 장악된 상태다. 탄핵 인용 이후의 검찰개혁 논의는 이때부터 실질적으로 다시 재개될 수 있다. 나는 검찰이 법적 책임이 아니라, 정치적 책임을 지는 방식으로 전환되지 않는다면, 어떤 체제에서도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내부 파괴자로 남게 될 것이라 본다.


2. 경찰: 복귀 체제의 통제자, 혹은 거리 민주주의의 최후 장벽


경찰은 윤석열 정권 하에서 고위 간부진을 중심으로 급속한 친윤화가 이루어진 조직이다. 이상민 장관 체제와 행안부 경찰국 신설을 통해 경찰에 대한 직접 통제 구조가 강화되었고, 윤심에 부합하는 간부들이 주요 보직을 차지했다. 그 결과, 윤석열 복귀 시 경찰은 물리적 통제 체제의 전위조직으로 작동할 가능성이 크다.


나는 이 시나리오에서 경찰이 거리 시위 해산, 시민단체 단속, 야당 행사 통제, 언론사 앞 저지선 설치 등 물리적 억압의 선봉에 설 수 있다고 본다. 이미 과거 용산참사 당시 경찰 작전, 이태원 참사 대응 실패 등에서 보였던 현장 통제 중심주의는 복귀 이후 강화될 수밖에 없다.


그렇지만 경찰은 검찰과 달리 수직 통제력이 약하고, 지역과 계급별로 이질성이 크다. 나는 일선 경찰 조직 내부에서 복귀 체제에 대한 불복종과 내부 이탈 가능성도 존재한다고 본다. 특히 2022년 경찰서장 회의 사태 이후 형성된 내부 자율권 요구 흐름은 여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탄핵 인용 이후 경찰 조직은 두 갈래로 나뉠 수 있다. 하나는 헌정 회복에 따라 경찰 권력의 민주적 통제가 본격화되는 흐름, 다른 하나는 친윤 고위직의 내부 저항이다. 나는 탄핵 인용 직후 경찰 인사와 조직 개편이 늦어진다면, 특정 지역이나 현장에서 자의적 해석에 따른 충돌이 일어날 위험도 크다고 판단한다.


3. 사법부: 침묵하는 중립인가, 조율된 회피인가


사법부는 지금까지 가장 조용하면서도 가장 위험한 행위자였다. 나는 대법원과 하급심 판결들을 보며, 사법부가 중립을 가장한 선택적 판단을 해왔다고 본다. 일부 재판에서는 명백한 정치적 고려가 있었고, 윤 정권의 법리 논리를 정당화해주는 방향의 결론이 반복되어 왔다.


윤석열이 복귀할 경우, 사법부는 ‘대통령 복귀는 합헌적 절차에 따른 결과’라는 해석을 따를 가능성이 크다. 이후 정치보복이나 시민사회의 저항을 ‘형법상 내란 선동’, ‘공무집행 방해’, ‘가짜뉴스 유포’ 등으로 규정할 경우, 사법부는 권력에 대한 비판을 탄압하는 법률적 정당화 기구가 될 수도 있다. 특히 형사재판에서 선별적 기소에 대한 무비판적 수용, 구속영장 발부, 집회금지 가처분 기각 등이 이어진다면, 법정은 사실상 정치 탄압의 무대가 될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나는 사법부 내부에서 위험을 인지하고 자율성을 지키려는 흐름도 있다고 본다. 일부 판사 모임, 연구회, 지방 법원에서의 조심스러운 논의, 법관회의 소수 의견 등은 사법 독립의 불씨로 남아 있다. 탄핵 인용 이후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다면, 사법 개혁의 발판이 마련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현재 시점에서 사법부는 여전히 정치적 방향에 따라 해석 가능한 판결을 양산할 수도 있는 불안정한 제3권이다. 나는 이 상태가 지속된다면, 복귀 이후에는 법이 아니라 판결의 이름으로 민주주의가 유린될 수 있다고 경고한다.


요약하자면, 나는 검찰이 윤석열의 복귀 이후 즉시 가동될 보복 정권의 두뇌, 경찰이 그 팔과 다리, 그리고 사법부가 그 정당성의 가면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본다. 반대로 탄핵이 인용되고 민주주의가 회복된다면, 이 세 기관 모두는 해체가 아닌 철저하게 민주주에 입각한 재정립과 통제를 요구받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지금 이 기관들의 움직임을 감시하고, 이들의 선택이 어디로 기울어질지를 분석하는 것은 단순한 정세 해석이 아니라, 민주적 헌정 질서 회복의 핵심 조건이라고 나는 판단한다.


Ⅴ. 네 가지 시나리오: 대한민국은 어디로 향하는가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네 개의 주요 정치 경로 앞에 서 있다고 본다. 이 네 가지 시나리오는 단순한 가능성 나열이 아니라, 각기 다른 권력 구성, 제도적 조건, 그리고 정치적 결단의 방향에 따라 실현 가능한 구체적 시나리오들이다. 이 시나리오는 독립적으로 작동할 수도 있고, 상호 전환되거나 결합되어 더 복잡한 상황을 만들어낼 수도 있다. 아래에서 나는 각 시나리오가 성립되기 위한 조건, 전개 양상, 핵심 행위자의 역할, 시민사회의 반응, 그리고 장기적 결과를 종합적으로 분석한다.


시나리오 1. [정상회복형] 헌법이 제 역할을 할 때 가능한 길


이 시나리오는 헌법재판소가 제 역할을 하고, 국회와 권한대행이 헌정질서 회복을 위한 결단을 내릴 경우에 가능한 유일한 이상적 경로다. 이 경우, 한덕수 권한대행은 마은혁 재판관을 신속히 임명하고, 헌법재판소는 문형배·이미선 재판관의 퇴임 전에 8인의 전원 일치로 윤석열 탄핵을 인용한다. 그 결과 윤은 대통령직에서 파면되고, 복귀 시도는 법적으로 차단된다.


이후 국회는 국무위원 탄핵 절차를 통해 책임 정부의 구성을 촉구하거나, 과도내각 구성을 협상하게 된다. 정치권은 조기 대선 일정, 개헌 논의, 권력구조 개편 등 실질적 헌정 회복을 위한 협상에 들어간다. 시민사회는 거리에서 헌법 수호의 정당성을 재확인하고, 광장과 언론, 문화적 공간에서 새로운 민주주의 논의를 이끌어낸다.


나는 이 시나리오가 실현된다면, 단순한 대통령 파면 이상의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 본다. 정치권의 책임 구조가 회복되고, 검찰과 경찰, 사법부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가능해지며, 특히 윤 정권에서 파괴되었던 정치 윤리와 행정 책임, 공공 규범이 다시 복원될 수 있다. 그러나 이 시나리오는 모든 핵심 주체가 동시에 결단을 내려야 하며, 특히 헌재의 단일한 의지와 국회의 초당적 협력이 필수적이다. 그 점에서 실현 가능성은 낮지만, 도달 가능한 유일한 정상적 경로다.


시나리오 2. [동결관리형] 아무도 결단하지 않을 때 생기는 구조


이 시나리오는 권력기관 모두가 결단을 회피하거나 책임을 유예할 경우에 발생한다. 한덕수는 헌법재판관을 지명하지 않고, 헌재는 문형배·이미선 퇴임 이후 6인 체제로 전환되어 심리를 진행하지 못하게 된다. 국회는 윤석열 탄핵 소추 이후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정치권은 각자의 계산에 따라 침묵하거나 눈치를 본다. 시민사회는 분열, 피로, 전략 부재로 인해 거리에서 이탈하고, 언론은 ‘혼란보다는 안정’을 외치며 모든 것을 침묵시킨다.


나는 이 시나리오가 현재 가장 현실적인 경로라고 본다. 왜냐하면 이 경로는 누구에게도 정치적 책임을 요구하지 않으며, 기존 체제를 유지하면서도 외형적 질서를 보장하는 듯 보이기 때문이다. 이 체제에서는 행정부가 돌아가고, 예산이 집행되며, 법률이 통과된다. 그러나 실질적 권력은 존재하지 않고, 모든 정치적 판단은 유예된다. 이것은 헌법이 없는 나라가 아니라, 헌법이 있어도 작동하지 않는 국가다.


나는 이 상황을 가장 위험한 ‘무정치의 정치’라 본다. 정치적 선택이 불가능해지면, 결국 가장 폭력적인 주체가 그 공백을 점유하게 된다. 그것이 자본일 수도, 극우일 수도, 또는 군 내부 조직일 수도 있다. 정치는 멈췄지만 통치는 지속되는 이 구조야말로 민주주의가 가장 쉽게 붕괴하는 방식이다.


시나리오 3. [복귀통제형] 윤이 돌아올 때 민주주의가 사라진다


이 시나리오는 헌재가 탄핵을 인용하지 못하고, 윤석열이 대통령직에 복귀하는 경우다. 나는 이 복귀가 단지 권력의 회복이 아니라, 법과 사법, 공권력을 활용한 보복과 통제 체제로의 이행일 것이라 본다. 복귀 직후 검찰은 정적 수사에 돌입하고, 경찰은 거리 통제를 강화하며, 국민의힘과 극우 매체는 ‘내란 음모’ 프레임으로 반대 세력을 공격할 것이다. 거리와 뉴미디어의 극우는 광기화 국면으로 들어설지도 모른다.


나는 이 시나리오가 계엄 없는(-지만) 계엄상태, 형식적 법치 속의 사실상 독재 체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본다. 법률은 유지되지만, 그 해석과 집행이 독점된다면 그것은 이미 민주주의가 아니다. 사법부는 복귀를 정당화하고, 언론은 자율적 통제를 강화하며, 시민사회는 감시와 체포, 고립으로 분해된다.


이 경로가 현실화될 경우, 나는 민주주의 회복이 최소 10년 이상 유예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더 나아가 시민들은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와 냉소를 학습하게 되고, 정치는 권력만 남는 비정치의 장으로 전락하게 된다.


시나리오 4. [공백격돌형] 모든 기능이 정지될 때 발생하는 무정부 상태


이 시나리오는 국회가 국무위원 탄핵을 다수 가결해 국무회의가 기능 정족수를 상실하고, 윤의 복귀도 헌재의 인용도 이뤄지지 않는 상태에서 발생한다. 나는 이 시나리오를 실질적 ‘헌정 공백 상태’라고 규정한다. 대통령은 복귀하지 못하고, 대행 체제도 멈추며, 행정권은 마비된다. 국가 기능의 정지는 곧 시민사회의 급진적 재등장과 정치적 충돌로 이어진다.


거리에서는 시민들이 거국내각을 요구하고, 촛불이 다시 타오를 수 있다. 동시에 극우 세력은 이를 ‘내란 선동’으로 규정하고 폭력적으로 조직화될 수 있다. 경찰 내부는 갈등하고, 검찰은 선택을 요구받으며, 일부 군 내 조직은 ‘질서 유지를 위한 개입’이라는 명분을 세울 수 있다.


이 시나리오는 민주주의 재구성의 가능성과, 전체주의적 복귀의 위험을 동시에 담고 있다. 나는 이 경로를 가장 불확실하지만, 동시에 가장 급진적인 체제 전환의 계기로 본다. 그러나 그 전환은 결코 안정적이거나 평화로운 과정이 되지는 않을 것이다.


(* 시나리오 유형 명명, 내용 정리 및 서술에 챗지피티의 조력을 받으며 작성했음)


Ⅵ. 이 모든 것을 멈출 수 있는 단 하나의 조건


이 네 가지 시나리오 모두를 종결시키고, 대한민국의 헌정질서를 다시 작동시킬 수 있는 유일한 조건이 있다. 나는 그것이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의 전원 일치에 의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인용 결정이라고 확신한다. 이 결정은 단지 법적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헌법이 자기 자신을 구제하는 마지막 정치적 수단이자, 대한민국이 민주공화국임을 다시 선언하는 역사적 행위다.


지금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수호자이자, 체제의 최종 관리자이며, 역사의 피고석 앞에 선 주체다. 재판관 한 사람 한 사람은 이제 법률 문구의 해석자에서, 헌법정신의 책임자로 전환되었다. 나는 그들이 이 순간 헌법의 이름으로 침묵하거나, 다수의 선택에 기대거나, 타이밍을 놓친다면, 이 나라는 더 이상 헌정국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라 본다.


전원 일치는 어렵고, 두려운 결정이다.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그것이야말로 헌법정신의 실현이다. 나는 이 결정을 단지 탄핵 인용 여부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다시 쓸 수 있는 마지막 문장이라 생각한다. 만약 이 결정을 하지 못한다면, 시나리오 2·3·4가 연쇄적으로 펼쳐지며, 복귀와 보복, 공백과 충돌, 침묵과 붕괴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이다.


나는 헌재가 지금 이 순간, 자신이 헌법의 마지막 문장이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가져야 한다고 믿는다. 그들이 내리는 결단이 바로, 우리 모두가 다시 헌법 아래 살아갈 수 있느냐를 가를 것이다. 지금 우리가 기다리는 것은 윤석열의 복귀가 아니라, 헌법의 복귀다. 그리고 그 복귀는 단 하나의 결단에서 시작된다.


결론: 헌법이 돌아오지 않으면, 민주주의는 끝난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단순히 한 대통령의 정치적 생존을 둘러싼 갈등을 겪고 있다고 보지 않는다. 이 사건은 훨씬 더 깊고 구조적인 문제를 드러내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탄핵 이후, 권한대행 체제가 출범했지만, 나는 그것이 단순한 헌법적 승계가 아니라, 헌법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권력을 공백 속에 고정시키려는 체제 전략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중심에 있는 한덕수 총리는 ‘시간’을 권력화하고 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모든 것을 결정하려는 방식이다.


나는 이 시간이 단순히 정치의 지연이 아니라, 정치적 복귀 혹은 체제 붕괴를 위한 여유 기간이라고 판단한다. 한덕수는 헌법재판소 재판관 임명을 고의로 지연시키고 있으며, 헌재는 이 상태에서 조만간 6인 체제로 전환된다. 그렇게 되면, 대통령 탄핵 인용은 불가능해지고, 윤석열의 복귀는 기술적으로는 열려 있게 된다. 나는 이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사전적 전략과 구조적 공모의 결과라고 본다.


이 모든 과정에서 가장 강력하고 동시에 침묵하고 있는 주체는 검찰, 경찰, 사법부다. 나는 그들이 침묵함으로써 윤석열 복귀에 필요한 기반을 유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탄핵 인용 이후에도 자신들의 권력을 지키기 위해 움직이고 있다고 본다. 검찰은 정치적 보복의 중심, 경찰은 거리 통제의 실행 주체, 사법부는 보복을 정당화하는 기구로 전환될 수 있다. 이 세 기관이 어떻게 움직이느냐에 따라, 우리가 앞으로 겪을 나라는 민주공화국이 될 수도 있고, 준법의 탈을 쓴 국가폭력 체제가 될 수도 있다.


나는 이 구조적 위기 속에서 대한민국이 갈 수 있는 길을 네 가지 시나리오로 나누어 분석했다. 첫 번째 정상회복 시나리오는 헌재의 결단, 국회의 후속 조치, 시민사회의 조직화가 모두 결합해야 가능한 길이다. 두 번째 동결관리 시나리오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시간을 흘려보냄으로써 헌법이 기능을 정지하고, 권력만 유지되는 가장 현실적인 길이다. 세 번째 복귀통제 시나리오는 윤석열이 돌아오고, 보복과 억압이 다시 제도화되는 경로이며, 나는 이것이 가장 파괴적인 민주주의의 사망선고가 될 것이라고 본다. 마지막 네 번째 공백격돌 시나리오는 행정부의 기능이 멈추고 거리에서의 충돌과 저항이 이어지는 경로로, 급진적 체제 전환과 위기의 폭발을 수반하게 될 것이다.


이 네 가지 시나리오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헌정질서의 파괴 또는 복원을 예고한다. 그러나 나는 이 모든 가능성을 종결시키고, 위기를 ‘제도 안에서’ 정리할 수 있는 단 하나의 선택이 존재한다고 확신한다. 그것은 바로 헌법재판소 재판관 8인의 전원 일치에 의한 탄핵 인용이다. 이 결정이 내려지는 순간, 대통령 복귀는 불가능해지고, 권한대행 체제도 그 명분을 상실하게 되며, 정치권은 헌정 회복을 위한 새로운 전환점에 도달할 수 있다.


이 결정은 단지 헌법 해석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역사의 선언이자, 헌법이 여전히 민주주의의 최종 심급으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유일한 방식이다. 나는 지금 헌법재판관들이 단순히 법률을 따지는 판사들이 아니라, 공화국의 존립 조건을 결정짓는 마지막 정치 주체라고 본다. 그들은 자신이 아니라,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결단해야 한다. 전원 일치는 어렵지만, 바로 그 어려움 속에 헌법정신의 진실이 있다.


만약 헌재가 이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면, 나는 이 나라는 더 이상 ‘헌정국가’라 부를 수 없다고 본다. 헌법은 공백 속에서 무력화되고, 윤석열은 복귀하거나 그 복귀 가능성만으로도 정국을 통제하게 될 것이다. 한덕수는 중립을 가장한 권력 장악자, 국회는 탄핵 이후 무력한 대립 구조, 시민사회는 분열과 탄압 속에서 방향을 잃게 된다. 헌재가 결정하지 않는 순간, 모든 결정은 더 파괴적인 방식으로 거리에서, 조직에서, 혹은 우발적 폭력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다.


나는 이제 정치권, 시민사회, 그리고 각자의 위치에 선 사람들 모두가 이 질문을 던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이 나라에서 헌법은 살아 있는가?”라고. 그 질문에 지금 헌재가 답하지 않는다면, 언젠가 거리에서 피 흘리는 시민이 답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를 막는 유일한 길이, 지금 이 순간의 결단이다.

우리는 윤석열의 복귀를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헌법의 복귀를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지금, 여기서 시작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