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1월 17일자 주간경향 959호의 글, '신동호가 만난 사람' ‘녹색당 전임강사’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신동호 기자는 이 글에서 김종철 선생을 '우리 시대의 가장 불온한 사상가'라고 부르고 있다. 녹색당에 대한 이야기가 주요 내용이다. 기본소득제, 은행의 공공화, 추첨민주주의에 대한 생각들. 그리고 현쟁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복지논쟁에 대한 비판. 복지가 아니라 민주주의다라는 주장. 그 기사를 옮겨 놓고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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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색당 성공 가능성 낮다고 체념할 순 없어”
누구나 알고 있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는 얘기가 있다고 가정해보자. 더구나 그 얘기가 진실이라면… 틀림없이 그건 ‘불온한 진실’일 것이다. 과격한 진실이나 불편한 진실보다 더 말하기 어려운, 그래서 오랫동안 마음 한 구석에 숨겨왔던, 그런데 더 이상 묻어둘 수 없는 어떤 이야기가 있는지 생각해보자.
김종철 <녹색평론> 발행인 겸 편집인. 그는 이야기한다. 1인 출판에 가까운 방식으로 20년 넘게 해온 그 이야기를 이제는 좀 다르게 하려고 한다. 녹색당 당원으로서…. 먼저 녹색담론의 최전선을 지켜온 녹색평론에 대한 세평 두 마디를 소개하고 이야기를 시작하자. ‘우리 시대의 가장 불온한 책’, ‘다른 건 안 믿어도 녹색평론은 믿는다’, 한 구절로 줄이고 보니 바로 ‘불온한 진실’이다.
그의 앞에 서면 모든 체제와 주의와 사상이 작아지는 느낌이다. 정부·여당은 말할 것도 없고 민주통합당, 심지어 통합진보당, 나아가서 진보신당마저도 근본적으로 아주 잘못된 토대 위에 서있기는 마찬가지다.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 등 진보진영 최고 원로·석학의 담론도 그의 비판 대상에서 자유롭지 않다. 헤겔을 비롯한 동서고금의 위대한 사상이나 이론이 아예 ‘구라’가 되기도 한다.
인터뷰 중 그는 ‘죄송한 말씀이지만…’ ‘불행한 얘기지만…’ 등의 조건절을 몇 차례 붙였다. 불온한 진실을 말하기 위한 그 특유의 어법처럼 들렸다. 마찬가지로 매우 실례가 될지 모르지만, 한 번쯤은 그를 ‘우리 시대의 가장 불온한 사상가’라고 강렬하게 표현해보고 싶다. 불온한 진실을 말하는…. 녹색평론 122호 마감과 녹색당 지원 강연 등으로 빡빡한 일정 중이던 그를 지난 1월 4일 서울시내 한 커피전문점에서 만났다.
녹색당에 참여하게 된 이유만 말씀해도 오늘 인터뷰는 다 될 것 같습니다.“그거 하려면 수십 시간 걸리죠. 그냥 기사 쓰기 좋게 어떻게 요령 있게 말하나, 그게 고민인데…. 결정적인 계기는 하승수 변호사나 저나 후쿠시마 사태죠. 시민운동이나 환경운동 차원에서 아무리 부르짖어도 대중한테 전달이 안 되고 정치세력화하지 않으면 언론도 주목하지 않으니까 소수라도 국회에 나가서 발언권을 얻는 게 현실적으로는 중요하다, 그리고 녹색당이라는 걸 만들어야 전국에 산재해서 분산적으로 하고 있는 환경운동 내지 풀뿌리 지역운동이 결집해서 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런 것이죠.”
2~3년 전까지만 해도 녹색당에 대해 소극적이지 않았습니까.“해봐야 되지 않을 것이라는 체념이 많았죠. 그 시간에 지역에서 뜻 맞는 사람끼리라도 같이 생태공동체나 지역운동을 일구는 것이 더 보람이 있겠다, 그리고 세월이 가서 그것이 연결되면 좋겠다, 이런 생각이었어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가 돌아가는 꼬락서니가 새만금 때도 그랬고 결정적으로 이명박 정부 들어서 4대강이라는 터무니없는 공사를 하면서 난장판을 만들어놨잖아요. 근처에서 지역운동을 하던 사람들도 다 깨졌고요. 이런 걸 목전에서 보면서 그 방식만 고집한다는 게 공허하잖아요.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어떻게 할까…, 목까지 찼는데 후쿠시마가 탁 터졌단 말이에요.”
그와 녹색평론이 표방해온 것은 생태주의와 소농공동체다. 인간 생존의 자연적 토대가 급속히 붕괴되고 있다는 인식에서 농업 중심 사회의 재건과 생태적·사회적 위기와 모순의 척결을 말해왔다. 기성 정당의 틀로서는 이런 목표가 성취될 수 없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저는 진보신당이 현존하고 있는 정당 중에서 가입할 만한 거의 유일한 정당이라고 봅니다. 그런 정당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활동해서 힘을 키우는 게 낫지 않으냐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그건 아니라는 게 제 생각이에요.
진보신당도 결국은 계급정당이잖아요. 계급운동을 통해서 말하자면 사회주의적인 사회를 실현하려는 것인데, 거기에는 전제가 있어야 돼요. 바로 산업 발전이에요. 산업노동자 세력을 중심으로 하기 때문에 산업이 발전돼야 되고, 그러기 위해서는 경제성장을 안 할 수 없는 것이죠. 결국 화석연료에 기반을 두고 있는 지금의 이 산업시스템을 부정할 수 없는 것이라고요. 녹색당과는 이슈별로 연대할 수 있겠지만 근본 출발은 다를 수밖에 없는 것이죠.”
자칭 ‘녹색당 전임강사’라는 얘기를 들었는데, 주로 어떤 강연을 합니까.“녹색당보다 후쿠시마 사태 이후 원자력 관계 집회가 많고 저한테 요청도 오고 하니까 그런 얘기를 슬슬 하다가 녹색당이 추진되면서 요즘은 녹색당 얘기를 주로 합니다.”
녹색당의 성공 가능성이 어느 정도라고 생각합니까.“전체적으로 보면 굉장히 비관적이죠. 녹색당을 하자고 얘기하면 제 앞에서는 얘기를 안 하지만 사람들이 다 비웃는다는 걸 제가 압니다. 괜찮은 사람들도 그게 되겠느냐, 실현성 없는 얘기를 하지 말라고 해요. 그 심정 제가 잘 알아요. 그런데 그렇다고 해서 주저앉아 있을 수 없잖아요. 지금 제 심정이 그렇습니다. 꼭 성공한다는 생각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살아 있는 한 그냥 체념하고 있는 것도 말이 안 되잖아요.”
비록 탈핵운동이 환경운동권을 넘어 교수·변호사·의사 등 전문가 그룹으로 확산되는 움직임이 있긴 하지만 사회 전반적인 인식 수준으로 볼 때 아직 길이 멀지 않겠습니까.“독일을 보면 녹색당이 성립한 지 30년 걸려서 원자력발전소 폐기 결정을 내렸잖습니까. 그러니까 우리도 30년 걸릴 것이라고 하죠. 저는 그렇게 안 봅니다. 인류 역사를 보면 한 쪽에서 한 30년 걸려서 실험이 성공하면 다른 쪽에서는 잘 하면 10년이면 되지 않겠습니까. 그런 식으로 용기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는 원자력 정책에서 독일과 일본이 극명한 대비를 보이는 역사적 배경을 분석한 뒤 한국의 미래를 나름대로 희망적으로 전망했다.
“독일은 68혁명 세대가 시민운동을 하고 녹색당 운동을 해서 사회를 합리적으로 만들었어요. 일본은 (원자력 사고의) 당사자로서 저렇게 세계에 대해서 테러를 가해놓고 책임을 지는 사람도 없고 계속 원자력 발전을 하겠다고 하잖아요. 그건 일본의 68세대가 대기업으로 들어갔기 때문이에요. 주류가 제도권에 흡수돼버리니까 남은 소수가 대중과 고립돼 적군파처럼 아주 과격한 쪽으로 나가 완전히 사멸해버린 거죠. 그게 결정적 차이죠. 그러니까 독일의 경우를 보면 우리가 체념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한국 사람들은 더듬거리다가도 불이 붙으면 속도가 빠르잖아요. 절망은 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선생님과 녹색평론이 중시해온 농업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위기에 처했는데, 이 부분은 어떻게 헤쳐나가야 합니까.“제가 뭐 정답을 갖고 있는 건 아니지만 문제 제기는 할 필요가 있지 않겠어요. 예를 들어서 쿠바와 북한이 왜 그렇게 차이가 나겠습니까. 기후 탓만이 아닙니다. 카스트로는 농서를 100권 이상 읽은 사람이에요. 지속가능한 사회라는 것을 1차 산업, 말하자면 농업이 확보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었던 사람이에요. 소련에서 밀을 국제 시세 이하로 아주 싸게 제공해주는데도 그렇게 간 거죠. 물론 쿠바도 순탄하지는 않지만 어떻든 세계가 살아가야 할 바람직한 노선의 하나를 보여준 건 사실이란 말이에요. 거기서 한국 사회가 배워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공생공락의 가난, 고르게 가난한 사회를 지향하고 성장을 그만 하자고 하면 대중이 받아들이겠습니까.“제 얘기가 그거예요. 당위성이나 옳고 그르고를 떠나서 현실적으로 그런 세월이 온다는 거죠. 그것도 당장…. 50년 후, 100년 후가 아니고 10년 안에 옵니다. 준비를 안 하면 북한이 1990년대 당했던, 대거 굶어죽는 사태가 일어나는 거죠.”
백낙청 교수의 ‘적당한 성장론’이나 최장집 교수의 ‘정당정치 강화론’ 등에 대해서 굉장히 논쟁적인 반론을 제기한 것도 그래서였군요.“그분들이 저와 거리가 없는 대가들이죠. 기본적으로 화석연료 시대가 끝난다는 생각이 없었으니까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거예요. 기존의 정당정치는 한마디로 자기가 속하고 있는 계층이나 계급의 이익에 따라서 국가 예산을 배분하기 위해서 국회에서 논쟁하는 것이란 말이에요. 앞으로 경제성장이 안 되면요, 그렇게 갈라먹을 국가 예산이 없습니다. 지난 200년 내지 300년 동안 이른바 근대 정당정치를 뒷받침했던 경제·사회구조가 지금 무너지고 있습니다. 근본적인 전환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러니까 보통 사회과학자들이 서로 논쟁하는, 그런 수준이 아닌 거죠.”
백 교수와의 논쟁도 마찬가지라고 한다. 경제성장을 마구잡이로 해서는 안 되겠지만 그렇다고 안 할 수는 없으니까 적당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게 백 교수의 ‘적당한 경제성장론’이다. 그는 이게 책상머리의 말장난이자 그야말로 형용모순(가령 ‘둥근 사각형’처럼 형용하는 말이 형용을 받는 말과 모순되는 일)이라고 일축한다.
“경제성장은…(웃음) 하면 하고 말면 마는 것이지 적당한 게 있을 수가 없어요. 글쎄 백 선생님은 제 스승이기도 하고 그만큼 많이 생각하는 분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뭐라고 버릇없이 말하기는 그렇지만 진짜 자본주의, 산업주의 논리를 모르시고 하시는 말씀이 아닌가 싶어요. 폭삭 망하든지 아니면 그냥 미친 듯이 가든지 둘 중 하나죠. 백 선생님은 화낼 이야기지만 이중과제라는 것도 그래요. 근대 적응과 극복? 자본주의를 어떻게 긍정하면서 또 어떻게 극복합니까. 혼신을 다해가지고 극복하려 해도 잘 안 되는데…. 어차피 지금 자본주의 방법으로 살 수밖에 없어요. 그렇다고 그걸 수용이라고 하면 안 되잖아요. 그게 무슨 가치 있는 것이라고 수용입니까.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사는 것일 뿐이지….”
4월 총선에서 녹색당이 어떤 공약을 내걸었으면 합니까.“구질구질한 공약 많이 내걸 필요 없어요. 확실한 것 한두 가지만 내걸자고 제안했습니다. 채택될지는 모르지만…. 첫째 농민에게 한 달 100만원 기본 소득을 주는 것이에요. 그게 농업을 살리는 가장 확실한 길입니다. 지금 귀농 희망자가 의외로 많아요. 현재 국가 예산으로도 충분해요. 정부에서 FTA 농업대책이라고 설정한 돈 있잖아요. 그게 순전히 속임수라는 걸 알지만 그래도 그 중에서 실제로 집행할 돈이 대부분 대농 지원, 도로 등 시설 건설, 말하자만 토건업자 주머니에 다 들어간다고요. 그 돈으로 농민들 월급 주라는 말이에요.”
이른바 ‘기본소득제’에 더해 그가 제안하는 또 하나의 정책은 ‘은행의 공공화’다. 돈이란 건 공공재 중에서도 공공재로서 은행이 올리는 막대한 수익은 그 지역과 공익을 위해 쓰여야 한다는 개념에 바탕한 것이다. 그는 미국에서 유일하게 주립은행을 운영하면서 재정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노스다코타 주의 예를 들었다.
“노스다코타 주립은행에 자극받아 캘리포니아를 비롯해서 여러 주에서 시민단체들이 주립은행 만들기 운동을 하고 있어요. 저도 여기에 힌트를 받은 거예요. 왜 이렇게 (금융을) 민간업자한테 맡기냐는 말이에요. 단 몇 개라도 공립화하자, 공립화 안 하면 사회화하자, 중앙정부가 못 받아들인다면 예를 들어서 경상남도나 강원도 같은 곳에서 실험적으로 보여주자, 이런 아이디어를 녹색당을 통해 실현해보려고 해요. 기존 정당에서는 생각도 못 하는 것이죠. 기득권층하고 결탁이 돼 있는 문제잖아요. 저는 진보정당에서조차 못 꺼낼 거라고 생각해요. 노사문제이기도 하니까요.”
기성 정당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그 구조에서는 불온(?)하기 짝이 없는 것처럼 보이는 그의 아이디어는 ‘추첨민주주의’로 이어진다. 그는 현행 국회의원 지역구 제도는 국가 예산을 왜곡시키고 국가 차원의 합리적 결정을 어렵게 한다고 보고 완전 비례대표제를 주장한다. 비례대표 선출이나 검찰총장, 대학 총장 등도 선거제와 추첨제, 경우에 따라서는 임명제 등을 병행할 것을 제안했다.
올해 선거가 참 중요할 텐데, <주간경향> 독자와 국민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입니까.“우선 정권 바꿔야죠. 그리고 요즘 복지 얘기하는 것, 저는 마음에 안 들어요. 복지는 기본적으로 경제성장을 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지난번에 어설프게 하다가 정권 빼앗기니까 이번에 후회해서 마치 복지가 시대정신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그거 아닙니다. 복지는 이명박 정권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봐요. 진보적인 지식인들이 복지 소리 그만 하고 민주주의 얘기를 더 확실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좀 더 철저한 민주주의 사회를 실현하자, 이 이상의 시대정신이 없다고 생각해요. 강자가 약자를 털어먹는 사회를 지양하자, 정의롭고 공정한 사회로 가야 한다, 이 이야기를 철두철미하게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2012년 1월 11일 수요일
2012년 1월 10일 화요일
self-publishing
Key points from the full video interview (below) include:
- Self-publishing was a learning opportunity — Some authors are curious to learn the finer aspects of what goes into making a book, and Scott quickly learned a lot with the "Mindfire" experience. [Discussed at the 1:05 mark.]
- Blogging and book writing have always gone hand-in-hand for Scott — His blog is a wonderful sounding board and helps him shape whatever book he's currently working on, including the title, cover and more. [Discussed at 2:10.]
- Self-publishing is both easy and hard — Technology makes it easy to publish almost anything these days; it's all the work that goes not only into the writing, but also into the editing, cover design, proofreading, indexing, marketing, etc., that makes it so challenging. [Discussed at 4:35.]
- Self-publishing also requires self-promotion — Author platforms are more important today than ever before; it's true for traditional publishing, too, but even more so for self-published products. [Discussed at 8:25.]
- The PR effort required was the biggest surprise — Berkun used a giveaway campaign to build momentum and extend his future reach. [Discussed at 9:54.]
- How can traditional publishers avoid losing authors to self-publishing? — Berkun turns the question around and asks why this decision is an either/or. [Discussed at 17:14.]
- The opportunity to learn from self-published authors — Editors often abandon their authors who test the self-publishing waters when what they should really be doing is talking more with them to learn what's working and what's not. [Discussed at 20:43.]
Additionally, the 10 most common questions Berkun is asked about self-publishing can be found here, and our entire interview can be viewed in the following video.
출판계 전망
출판계에 대한 '엇갈린' 두 개의 전망. 하나는 세계일보 인터넷판에 2011년 12월 30일에 올려져 있는 기사, 정승욱 선임기자와 김은진 기자의 보도, 우울한 한 해... 출판사 10곳 중 8곳 '빨간불' 또 하나는 경향신문 인터넷판 2012년 1월 9일자 주영재 기자의 보도, 인문 정치서적 열풍, 전자책 성장 이어질 듯 이라는 기사. 함께 묶어 놓고 읽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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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출판계 결산
“내년에는 더 큰 위기 온다” 긴장하는 모습 역력‘팔리는 책’ 만 팔려 양극화 현상 갈수록 심화
올해 출판계는 우울한 한 해였다. 연초부터 경제 전반에 암운이 드리워지면서 독자들은 책 사보는 데 주저했고, 이 때문에 출판사들은 살얼음판의 1년을 보냈다. 내년에는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면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SNS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종이책의 인기가 예전만 못했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책 사는 데 인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된 것 같다. 그나마 자금력을 앞세운 중·대형출판사가 베스트셀러 몇 종을 냈으나, 80% 이상의 대다수 출판사들은 적자 경영에 근접해 있거나 팍팍한 실정이다.
중견 편집자들이 자주 모여 담론을 벌이는 서울 홍대 부근 카페들이 한산한 것도 이런 척박한 현실을 반영한다. 출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부나 대형 기업들이 매년 독서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올해는 이런 연례 행사도 없다.
지난 2월 아동서적 전문 총판인 평화당이 부도를 냈고, 6월 중순엔 홈플러스에 책을 납품하는 대형총판 KG북플러스가 문을 닫았다. ‘생각의 나무’ ‘이레’ ‘문이당’ 같은 중규모 출판사들도 부도를 냈다. 대형 서적 유통사들이 잇따라 부도를 낸 여파다.
출판계의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은 인기있는 책들을 만들어 그나마 먹고살 만하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민음사가 낸 ‘스티브 잡스’ 전기의 경우, 첫 판을 10만부나 찍어 팔았고 지금도 열기는 이어지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센델·김영사), ‘아프니까 청춘’(김난도·쌤앤파커스)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의…’ ‘아프니까…’ 이 두 권은 내용이 좀 빈약했으나 마케팅 내지 제목 덕분에 인기를 끌었다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소형 출판사는 죽을 맛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판매량이 지난해보다는 조금 늘었다지만 ‘팔리는 책’만 팔리는 양극화 현상이 그것이다.
교육·정치 관련 사회적 이슈와 함께 쏠쏠하게 팔렸던 책들은 ‘변방의 사색’(이계삼·꾸리에), ‘닥치고 정치’(김어준·푸른숲),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리더스북) 등이 꼽혔다. 변방의 사색은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일선 교육 현장을 개탄하고, 탁상공론에 매몰된 교육 당국자들을 비판하면서 미래 교육 개혁을 제시한 현직 교사의 에세이다. ‘시골의사…’는 자기 개인의 성공을 바라는 종래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자기혁명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번역물로는 ‘웃음(베르나르 베르베르)’이, 전집물로는 민음사의 ‘사기’ 전 6권이 눈에 띈다. 이밖에 오프라인 서점의 잇단 폐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등 국내 문학작품의 해외 수출, 중국 관련 책들의 인기 등이 올해 출판계 이슈로 나왔다.
지상사 최봉규 사장은 “올해는 소셜미디어의 대표격인 스마트폰 보급이 어느 해보다 늘었기에, 출판계에 미치는 영향도 그에 비례했다”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출판 불황에 빠졌지만, 종이책 독자가 태블릿PC로 상당수 옮아간 과도기인 측면도 있다”고 풀이했다. ‘꾸리에’ 강경미 대표는 “올해엔 소셜미디어가 확산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양서 위주의 책 판매보다는 감각적이고 쉽게 읽히는 책들이 팔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늘졌던 일반 출판 시장과 달리 아동·청소년 물에는 ‘스크린셀러’(영화와 베스트셀러가 조합된 신조어) 바람이 거셌다. 출간 이후 100만부 넘게 팔린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은 2011년 최고 화제작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동명영화 흥행에 따라, 원작동화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재진입하는 것은 물론 애니메이션 그림책까지 출간돼 높은 사랑을 받았다.
엄마들의 입소문을 따라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주도하는 유아 책 분야에서는 ‘우리 아빠가 최고야’(킨더랜드)의 앤서니 브라운, ‘구름빵’(한솔수북)의 백희나, ‘괜찮아’(웅진주니어)의 최숙희 등 인기작가들의 그림책이 수년간에 걸쳐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다.
청소년 분야는 ‘EBS 공부의 왕도’(예담프렌드) ‘17세의 공부법’(들녘) 등 EBS 방송과 관련한 공부법 도서들이 상반기에 관심을 모았다. ‘불량가족 레시피’(문학동네) 같은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교육 관련 분야에서는 ‘아이의 자존감’(지식채널) ‘아이의 사생활’(지식채널)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한국경제신문사) 등이 주목을 끌었다. EBS 프로그램 내용을 책으로 엮은 육아서인데 불안한 부모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하며 자녀교육서 시장을 주도했다. 또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예담)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웅진씽크빅)와 같이 엄마와 아이들의 심리를 다룬 책들이 인기를 모았다.
정승욱 선임기자·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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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문가들이 본 2012년 출판계
새해 출판계 전망은 대체적으로 밝았다. 출판전문가들은 인문서적의 강세, 전자책 시장의 확대, 정치관련 서적의 붐을 올해 눈여겨 볼 흐름으로 꼽았다. 지난해 10%대의 성장세를 기록한 인문학 관련 서적은 올해에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전자책 표준화 작업 등으로 전자책 시장은 질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과 대선으로 정치·경제 면에서 다양한 이슈들을 다룬 책들도 붐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 인문학 서적 성장세 지속
교보문고의 경우 지난해 인문서의 판매권수는 전년 대비 12.3%, 판매액은 15.2% 증가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출판계가 주목하는 인문서의 저자는 강신주, 가라타니 고진, 슬라보예 지젝,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이다. 지난해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1·2권을 낸 철학자 강신주씨는 올해 후속편을 잇따라 출간한다. 오는 4월 도서출판 b에서 나올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세계화한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새로운 모델을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마르크스 이론 등에서 찾으려는 책이다. 2007년 출간된 같은 저자의 <세계공화국으로>의 본격 학술판이다. 인민을 정치적 주체로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에서 포퓰리즘의 역할을 본격 조명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포퓰리즘의 이성>(후마니타스)도 올해 주목할 철학서이다.
그러나 인문학 서적 출간이 독자 확대로 이어질지에는 전망이 갈린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비소설에 가까운 연성의 인문도서 판매가 약화되고 핵심독자가 찾아읽는 인문도서가 활발하게 출간될 것”이라고 인문학 시장 확대를 밝게 내다봤다. 그러나 이현우 도서평론가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인문 독자층이 넓어질 거라 예상했는데 이례적인 현상으로 그쳤고 인문이론서는 기본적인 독서수준이 필요해 독자층이 넓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 전자책 시장 성장의 가속화
지난해 매출액이 5배 증가한 전자책 분야는 표준화 작업과 함께 단행본 출판사의 전자책 출판 확대, 대기업 진출 등으로 성장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남성호 교보문고 홍보팀장은 “올해 전자책 표준화 작업이 진행되면 디지털 콘텐츠 불법 복제를 막고 콘텐츠가 얼마나 판매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참여 출판사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수미 웅진씽크빅 본부장은 “지난해 말부터 주요 단행본 출판사들의 전자책이 대거 출시된 데다 주요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에 전자책이 합산될 예정이어서 감소된 종이책 시장을 대체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도 의미있는 정도의 전자책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국내 저작권법의 개정도 불가피해졌다. 법이 개정되면 저작권 보호기간이 기존 저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나고, 그동안 출판과 컴퓨터프로그램에만 허용해 왔던 배타적 권리가 전자출판물에도 적용된다.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전자출판물에 대한 배타적 발행권 허용으로 전자출판물 콘텐츠에 대한 출판사, 유통사 간의 독점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저작권자는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전자책을 출간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정치 관련서 유행
굵직한 정치 행사들이 예정된 올해는 정치와 경제 면에서 다양한 이슈가 제기되고 관련 책들도 붐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주로 진보적 인사들의 책이 상종가를 올렸는데, 올해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면서 “특히 대권 예비 주자들의 자서전이나 관련서가 사회 분야의 빅 타이틀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유재건 그린비 대표는 “정치적 이슈가 뚜렷한 해인 만큼 ‘나꼼수’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고 정치적 격변기와 한·미 FTA 발효가 맞물려 ‘복지문제’, ‘반값 등록금을 포함한 교육문제’ 등 사회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올해의 주목할 출판계 사건으로 ‘독서의 해’ 행사, 베이징도서전 등을 꼽았다. ‘독서의 해’ 행사에서는 책 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독서인구 확대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2012년 베이징 국제도서전은 한국 도서의 해외시장 진출과 관련하여 의미가 작지 않다. 전문가들은 또 올해 출판계의 특징으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치유·명상서들이 붐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또 책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영상미디어 콘텐츠의 결합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가나다 순)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 남성호 교보문고 홍보팀장,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유성식 예스24 총괄이사, 유재건 그린비 대표, 이수미 웅진싱크빅 단행본본부장, 이현우 도서평론가,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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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출판계 결산
“내년에는 더 큰 위기 온다” 긴장하는 모습 역력‘팔리는 책’ 만 팔려 양극화 현상 갈수록 심화
올해 출판계는 우울한 한 해였다. 연초부터 경제 전반에 암운이 드리워지면서 독자들은 책 사보는 데 주저했고, 이 때문에 출판사들은 살얼음판의 1년을 보냈다. 내년에는 더 큰 위기가 올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면서 긴장하는 모습이 역력하다.
SNS소셜미디어의 확산으로 종이책의 인기가 예전만 못했다. 종이책에서 전자책으로 넘어가는 ‘과도기’라는 지적이 나온 가운데, 책 사는 데 인색한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 된 것 같다. 그나마 자금력을 앞세운 중·대형출판사가 베스트셀러 몇 종을 냈으나, 80% 이상의 대다수 출판사들은 적자 경영에 근접해 있거나 팍팍한 실정이다.
중견 편집자들이 자주 모여 담론을 벌이는 서울 홍대 부근 카페들이 한산한 것도 이런 척박한 현실을 반영한다. 출판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정부나 대형 기업들이 매년 독서캠페인을 벌여왔으나 올해는 이런 연례 행사도 없다.
지난 2월 아동서적 전문 총판인 평화당이 부도를 냈고, 6월 중순엔 홈플러스에 책을 납품하는 대형총판 KG북플러스가 문을 닫았다. ‘생각의 나무’ ‘이레’ ‘문이당’ 같은 중규모 출판사들도 부도를 냈다. 대형 서적 유통사들이 잇따라 부도를 낸 여파다.
출판계의 양극화는 더 심해지고 있다. 대형 출판사들은 인기있는 책들을 만들어 그나마 먹고살 만하다. 애플 창업주 스티브 잡스의 사망으로 민음사가 낸 ‘스티브 잡스’ 전기의 경우, 첫 판을 10만부나 찍어 팔았고 지금도 열기는 이어지고 있다. ‘정의란 무엇인가’(마이클 센델·김영사), ‘아프니까 청춘’(김난도·쌤앤파커스) 등이 베스트셀러에 올랐다. ‘정의…’ ‘아프니까…’ 이 두 권은 내용이 좀 빈약했으나 마케팅 내지 제목 덕분에 인기를 끌었다는 등 논란이 이어졌다. 소형 출판사는 죽을 맛이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판매량이 지난해보다는 조금 늘었다지만 ‘팔리는 책’만 팔리는 양극화 현상이 그것이다.
교육·정치 관련 사회적 이슈와 함께 쏠쏠하게 팔렸던 책들은 ‘변방의 사색’(이계삼·꾸리에), ‘닥치고 정치’(김어준·푸른숲), ‘시골의사 박경철의 자기혁명’(리더스북) 등이 꼽혔다. 변방의 사색은 대학입시에 목을 매는 일선 교육 현장을 개탄하고, 탁상공론에 매몰된 교육 당국자들을 비판하면서 미래 교육 개혁을 제시한 현직 교사의 에세이다. ‘시골의사…’는 자기 개인의 성공을 바라는 종래의 자기계발서가 아니라 모두를 위한 자기혁명이라는 점에서 주목을 끌었다. 번역물로는 ‘웃음(베르나르 베르베르)’이, 전집물로는 민음사의 ‘사기’ 전 6권이 눈에 띈다. 이밖에 오프라인 서점의 잇단 폐점,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창비)’ 등 국내 문학작품의 해외 수출, 중국 관련 책들의 인기 등이 올해 출판계 이슈로 나왔다.
지상사 최봉규 사장은 “올해는 소셜미디어의 대표격인 스마트폰 보급이 어느 해보다 늘었기에, 출판계에 미치는 영향도 그에 비례했다”면서 “경제적 어려움으로 출판 불황에 빠졌지만, 종이책 독자가 태블릿PC로 상당수 옮아간 과도기인 측면도 있다”고 풀이했다. ‘꾸리에’ 강경미 대표는 “올해엔 소셜미디어가 확산했다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양서 위주의 책 판매보다는 감각적이고 쉽게 읽히는 책들이 팔리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그늘졌던 일반 출판 시장과 달리 아동·청소년 물에는 ‘스크린셀러’(영화와 베스트셀러가 조합된 신조어) 바람이 거셌다. 출간 이후 100만부 넘게 팔린 동화 ‘마당을 나온 암탉’(사계절)은 2011년 최고 화제작이었다. ‘마당을 나온 암탉’은 동명영화 흥행에 따라, 원작동화가 베스트셀러 순위에 재진입하는 것은 물론 애니메이션 그림책까지 출간돼 높은 사랑을 받았다.
엄마들의 입소문을 따라 꾸준히 팔리는 스테디셀러가 주도하는 유아 책 분야에서는 ‘우리 아빠가 최고야’(킨더랜드)의 앤서니 브라운, ‘구름빵’(한솔수북)의 백희나, ‘괜찮아’(웅진주니어)의 최숙희 등 인기작가들의 그림책이 수년간에 걸쳐 변함없는 사랑을 받았다.
청소년 분야는 ‘EBS 공부의 왕도’(예담프렌드) ‘17세의 공부법’(들녘) 등 EBS 방송과 관련한 공부법 도서들이 상반기에 관심을 모았다. ‘불량가족 레시피’(문학동네) 같은 청소년 문학상 수상작도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고 있다.
교육 관련 분야에서는 ‘아이의 자존감’(지식채널) ‘아이의 사생활’(지식채널) ‘내 아이를 위한 감정코칭’(한국경제신문사) 등이 주목을 끌었다. EBS 프로그램 내용을 책으로 엮은 육아서인데 불안한 부모들에게 조언자 역할을 하며 자녀교육서 시장을 주도했다. 또 ‘엄마가 아이를 아프게 한다’(예담) ‘불안한 엄마 무관심한 아빠’(웅진씽크빅)와 같이 엄마와 아이들의 심리를 다룬 책들이 인기를 모았다.
정승욱 선임기자·김은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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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전문가들이 본 2012년 출판계
새해 출판계 전망은 대체적으로 밝았다. 출판전문가들은 인문서적의 강세, 전자책 시장의 확대, 정치관련 서적의 붐을 올해 눈여겨 볼 흐름으로 꼽았다. 지난해 10%대의 성장세를 기록한 인문학 관련 서적은 올해에도 강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됐다. 전자책 표준화 작업 등으로 전자책 시장은 질적인 측면에서도 새로운 도약기를 맞이할 것으로 보인다. 총선과 대선으로 정치·경제 면에서 다양한 이슈들을 다룬 책들도 붐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 인문학 서적 성장세 지속
교보문고의 경우 지난해 인문서의 판매권수는 전년 대비 12.3%, 판매액은 15.2% 증가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올해도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올해 출판계가 주목하는 인문서의 저자는 강신주, 가라타니 고진, 슬라보예 지젝, 에르네스토 라클라우 등이다. 지난해 ‘제자백가의 귀환’ 시리즈 1·2권을 낸 철학자 강신주씨는 올해 후속편을 잇따라 출간한다. 오는 4월 도서출판 b에서 나올 가라타니 고진의 <세계사의 구조>는 세계화한 자본과 국가에 대항하는 새로운 모델을 칸트의 ‘영구평화론’과 마르크스 이론 등에서 찾으려는 책이다. 2007년 출간된 같은 저자의 <세계공화국으로>의 본격 학술판이다. 인민을 정치적 주체로 새롭게 구성하는 과정에서 포퓰리즘의 역할을 본격 조명한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의 <포퓰리즘의 이성>(후마니타스)도 올해 주목할 철학서이다.
그러나 인문학 서적 출간이 독자 확대로 이어질지에는 전망이 갈린다.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는 “비소설에 가까운 연성의 인문도서 판매가 약화되고 핵심독자가 찾아읽는 인문도서가 활발하게 출간될 것”이라고 인문학 시장 확대를 밝게 내다봤다. 그러나 이현우 도서평론가는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이후 인문 독자층이 넓어질 거라 예상했는데 이례적인 현상으로 그쳤고 인문이론서는 기본적인 독서수준이 필요해 독자층이 넓어지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 전자책 시장 성장의 가속화
지난해 매출액이 5배 증가한 전자책 분야는 표준화 작업과 함께 단행본 출판사의 전자책 출판 확대, 대기업 진출 등으로 성장이 가속화할 전망이다. 남성호 교보문고 홍보팀장은 “올해 전자책 표준화 작업이 진행되면 디지털 콘텐츠 불법 복제를 막고 콘텐츠가 얼마나 판매됐는지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에 참여 출판사가 크게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수미 웅진씽크빅 본부장은 “지난해 말부터 주요 단행본 출판사들의 전자책이 대거 출시된 데다 주요서점의 베스트셀러 집계에 전자책이 합산될 예정이어서 감소된 종이책 시장을 대체할 만한 수준은 아니어도 의미있는 정도의 전자책 시장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로 국내 저작권법의 개정도 불가피해졌다. 법이 개정되면 저작권 보호기간이 기존 저자 사후 50년에서 70년으로 늘어나고, 그동안 출판과 컴퓨터프로그램에만 허용해 왔던 배타적 권리가 전자출판물에도 적용된다.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은 “전자출판물에 대한 배타적 발행권 허용으로 전자출판물 콘텐츠에 대한 출판사, 유통사 간의 독점 권리를 획득하기 위한 치열한 경쟁이 불가피하게 되었고, 저작권자는 출판사를 통하지 않고 전자책을 출간하려는 움직임이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 정치 관련서 유행
굵직한 정치 행사들이 예정된 올해는 정치와 경제 면에서 다양한 이슈가 제기되고 관련 책들도 붐을 이룰 것으로 전망된다.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은 “지난해 주로 진보적 인사들의 책이 상종가를 올렸는데, 올해에는 이러한 현상이 더욱 두드러질 것”이라면서 “특히 대권 예비 주자들의 자서전이나 관련서가 사회 분야의 빅 타이틀로 부상할 가능성이 매우 크다”고 말했다. 유재건 그린비 대표는 “정치적 이슈가 뚜렷한 해인 만큼 ‘나꼼수’의 인기가 계속될 것이고 정치적 격변기와 한·미 FTA 발효가 맞물려 ‘복지문제’, ‘반값 등록금을 포함한 교육문제’ 등 사회현실을 직접적으로 다룬 책들이 많이 나올 것”이라고 예측했다.
전문가들은 올해의 주목할 출판계 사건으로 ‘독서의 해’ 행사, 베이징도서전 등을 꼽았다. ‘독서의 해’ 행사에서는 책 읽기와 관련된 다양한 프로그램이 마련돼 독서인구 확대에 중요한 전기를 마련해 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또 한·중 수교 20주년을 맞아 우리나라가 주빈국으로 참여하는 2012년 베이징 국제도서전은 한국 도서의 해외시장 진출과 관련하여 의미가 작지 않다. 전문가들은 또 올해 출판계의 특징으로 사회 양극화와 불평등이 심화하면서 치유·명상서들이 붐을 이룰 것으로 내다봤다. 또 책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영상미디어 콘텐츠의 결합도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설문에 응해주신 분들(가나다 순)
김선식 다산북스 대표, 남성호 교보문고 홍보팀장,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 유성식 예스24 총괄이사, 유재건 그린비 대표, 이수미 웅진싱크빅 단행본본부장, 이현우 도서평론가, 장기영 한국전자출판협회 사무국장, 정은숙 마음산책 대표, 한기호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소장
2012년 1월 8일 일요일
'나꼼수'보다 재밌는 국회 문방위 문자 생중계
노컷뉴스 2012년 1월 5일자 CBS국회팀의 보도, '나꼼수'보다 재밌는 국회 문방위 문자 생중계. 이것 전체 분량은 상당하지만, 읽어볼 만한 가치가 있다. 오자를 수정하고, 행갈이를 전부 없애고 전체 분량을 편집하여 읽어본다.
1보.
지금부터 국회에서 열리는 문방위를 문자 생중계하겠습니다. 장담하건대 나꼼수만큼 재밌습니다. 오늘(5일) 회의 안건은 미디어렙법 제정문제입니다. 회의는 10시에 개회될 예정이었습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 별도 회의실에 모여 오늘 회의 대책 논의했습니다. 법안소위 통과한 안이 조중동 종편과 sbs 특혜라고 비난을 받으니 어떻게 수정안을 내볼까 하는 방안 논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 헛다리 짚었습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렙법 통과는 물론 논의할 생각도 없습니다. 오직 관심있는 것은 KBS 수신료 인상안 뿐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별도의 방에서 오늘 회의 대책 논의했습니다. 한나라당 소속인 전재희 문방위원장에게 수신료 인상안을 직권상정하라고 요구합니다. 집단으로 돌아가면서 전재희 위원장을 압박합니다. 전 위원장은 여야가 합의한 내용만 다루겠다며 직권상정 거부합니다. 한나라당 의원, 이런 위원장 처음본다고 소리칩니다.(이런 의원 처음 봅니다.) 전재희 위원장 한나라당 의원들이 있던 방에서 빠져나와 문방위 전체회의실에 입장 위원장석에 앉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바로 옆방에 모여서 입장하지 않은 채 사보타지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나 살짝 들어보니 오늘 옷차림에 대한 농담을 하고 있습니다. 개회 시간 2시간이 지난 11시 57분 드디어 회의가 열렸습니다. 2시간 동안 전재희 위원장을 압박하다가 말을 듣지 않으니 작전을 바꾼 것 같습니다. 개회를 선언하자마자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 의사진행발언 신청.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측근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니 신상 발언을 들어보자고 합니다. 이어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 의사진행 발언. 심 의원 갑자기 수신료 인상안을 들고 나옵니다. 수신료 인상안을 의제로 올릴 것을 뜬금없이 제안합니다. 순식간에 KBS 수신료 인상안이 국회법에 따라 의제로 채택됐습니다. 문방위 전체회의실 시장통으로 바뀌었습니다. 민주당 의원 강력히 항의하고 심재철 의원은 쉬지않고 발언권 없이 떠들고 있습니다. 민주당 최종원의원 "이게 국회입니까?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일갈합니다. 오늘 방송광고시장의 질서를 위한 미디어렙법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인데 시간을 질질 끌다 회의장에 들어와서는 KBS 수신료를 꺼내들어 법안 통과를 방해하고 있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민주당 간사인 김재윤 의원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강력히 항의합니다. 심재철 의원 또다시 수신료 인상안을 얘기하며 2월 국회로 연기하자고 주장합니다. 안형환 의원, 수신료 날치기 의사 없다고 항변합니다. 미디어렙법 막을 의사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수신료 인상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한나라당 의원들 KBS 대변인 된 것 같습니다.
2보
여야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이 계속됩니다. KBS 수신료 인상안 얘기만 의사진행 발언으로 계속됩니다.
김창수 의원(선진당 탈당하고 민주통합당 입당하기로 한 의원이죠, 아직 민주통합당 소속으로는 안됐습니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고 전후 우선순위 있다. 오늘 수신료 인상 부분은 동료 의원 지적했지만 의사일정 안건에도 상정 안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수신료 인상 얘기를 꺼내고 전재희 위원장이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방망이를 두드리는 것은 부적절한 의사진행이다. 오늘은 지방 일정 만사 제쳐두고 상임위 긴급소집해 미디어렙법 논의하자는 것인데 이 자리에서 불쑥 수신료 내미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렙법을 제가 제출한 지 3년 지났다. 이 법안을 제정법으로 제안한 것이 2009년 2월이다. 아직 지연돼서 방송광고시장 대란 계속된다. 사실 입법 지연 책임은 국회가 떠안아야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오늘은 방송광고 공익성 공영성에 걸맞는 법체계 바로잡기 위한 미디어렙법을 하루 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진성호(한나라): 여야 바뀐 것 같다. 과거에는 야당이 회의 본질과 관계없는 얘기 많이 했다. 저는 미디어렙법 본질은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이다. 그런데 합의안을 보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주고받기한 매체별 불만이 있는 안이다. 여야 합의니까 이의 달지 않겠다. 오늘 통과 반대 않는다. 그런데 수신료 이 문제와 분리할 수 없다.(결국은 또 다시 수신료 문제) 수신료 올려 늘어나는 돈으로 라디오 방송 광고 없애서 종교방송 지원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연계 필요하다.(음~ 지역방송 종교방송을 굉장히 많이 생각해주시는군요. 진 의원도 결국은 수신료 인상. 지금까지 한나라당 의원들은 모두 수신료 인상 주장만 하시는군요. 온갖 논리를 동원해서...)
3보
(음, 마이크 꺼진 상태에서 진성호 의원 계속 발언하고 있습니다.)
전혜숙(민주당) : 두 시간 기다렸는데 국회에서 이런 의안 상정 처음 봤다. 안형환 의원 인터뷰 자료 보니 'KBS 수신료 때문에 미디어렙법 입법 막는다는 주장은 사실 아니다' 이렇게 성명 발표해 놓았던데 갑자기 수신료 내놓은 것은 정말 비신사적 태도다. 미디어렙 법안은 정말 많은 국민과 언론 관심 갖고 있다. 합의안 저도 굉장한 불만 갖고 있다. 소유지분 40%라면 이는 광고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언론이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15% 이하여야 한다. 공영은 MBC까지 묶고 민영은 1사 1렙안 불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방송 종교방송들을 살릴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말과 행동이 틀리다. 어떻게 렙법안을 수신료와 연계시키고 있는가? 미디어렙 법안 통과시키고 수신료 논의해도 늦지 않은데 한나라당이 국회 파행으로 몰고가려 하고 있다.
심재철(한나라당) : 도대체 안건 될 수 있느냐 했는데 국회법을 참조해보라. 국회에서는 어떤 것이든 논의할 수 있다. 동의하고 제청하면 의제가 된다. 다른 사람 동의 받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 수신료와 미디어렙법 무슨 관계 있느냐 하는데 당연히 관계있다. 광고시장 전면 재편되면 각 방송사 수입과 연결되고 KBS도 수신료 광고가 연계되기 때문에 연결될 수밖에 없다. 동료의원 격한 말씀 하셨는데 공연한 트집잡기이다. 날치기 파행 얘기하는데 의사일정 여야 합의해 처리해야 한다는데 합의 안 되면 어떤 안건도 처리 못하느냐? 어려서부터 민주주의 근본 원칙 다수결 원칙 얘기 들었다. 토론과 논의하고 합의 안 되면 표결로 가는 것이 민주주의 근본원칙이다. (음~~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니까 그럴 수 있군. 나중에 소수당이 돼도 이 발언을 할 지 기억해둡시다.) 소위 구성해서 깊이 있게 논의하자는 것이다. KBS 공영성 강화위한 소위원회를 6명으로 구성하자. (역시 결론은 KBS 수신료 인상하자~~마이크 꺼졌는데도 계속 얘기하고 있음.)
(오늘 한나라당 단단히 벼르고 왔군요. KBS에서 감사장 받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4보
(아직까지도 의사진행발언만 하네요...미디어렙법 논의는 생각도 않는군요)
이용경(창조한국당) :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비리의혹 관련 발언이 중요하다는 첫번째 의사진행 발언은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문제만 진행한다. 최 위원장 측근이 몇 백 억씩 비자금 조성한 비리가 드러났다는 의혹이 언론에 제기되는데 이는 완전히 무시하고 진행하고 있다. 상식에 어긋난 진행이다. (이용경 의원은 최시중 위원장 비리 관련 문제 계속 제기하고 계십니다)
최시중 위원장 :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방통위가 선임한 한 EBS 이사 개인 비리로 구속된데 대해 사과하고 책임감 느낀다. 금품 수수 의혹도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사실 여부 떠나 깊은 유감의 말씀 드린다. 모든 것이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EBS 김학인 씨는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표결절차 거쳐 선임됐다.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퇴직한 정책보좌관 관련 사안 등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통해서 시비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각 미디어에서 다양한 의혹 제기되고 있지만 저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수 년 동안 방송통신위원회 주변에서 설로 나돌던 것이 지금 철 만난 듯이 제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특정업자가 어떻게 했다 부동산 투자했다 등등의 문제는 저로서는 가슴아픈 문제이고 제가 알기로는 진실과는 너무 거리 먼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 당국에서 수사해야 될 것이고 거기서 진실 밝혀지면 좋겠다. 진위 여부 떠나 심려끼친 데 대해 죄송하다 말씀드린다.
허원제(한나라당 간사의원임) : 오전에 KBS수신료 문제 미디어렙법 문제에 대해 여야 의원 격론 있었지만 이 두 가지 사안이 결코 따로 떨어진 사안 아니다.(역시 또다시 수신료 연계하시네요~) 6월 22일 여야 수석 부대표 합의한 사안이 있다.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당시에 있었던 합의안을 다시 읽는군요... 역시 수신료 인상입니다.) 이게 6개월 전 일이다. 이 안이 지금도 문방위에 남은 숙제이다. 12월 27일 똑같은 수석부대표 수장으로 하는 6인 회의에서 미디어렙법 합의 채택했다. 그래서 법안이 올라왔다. 수신료 인상안도 6개월 전에 올라왔고 미디어렙 법안도 올라왔다. 방송시장 대 변혁에 따라 이 두가지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허원제 의원 지난달 31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KBS 수신료 문제를 미디어렙법 전혀 연계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기자회견문도 있네요~~ 잠시 당시 성명서를 한번 보시죠.
<성 명 서>
“민주당은 여야 합의를 지켜 미디어렙 관련 법안의 연내 입법화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방송광고판매대행에 관란 법률(미디어렙법)의 제정에 있어서 한나라당의 일관된 입장은 여야 6인 소위가 수많은 협의과정을 거쳐 지난 27일 합의한 내용과 합의정신을 바탕으로 연내 입법화하는 것이다. 방송광고시장의 정상화와 중소방송의 안정적 운영을 도모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 지금 매우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은 의원총회에서 6인 소위의 합의서 내용을 거부한 뒤 터무니없는 새로운 내용을 포함시키자고 요구해왔다. 한나라당은 연내 입법화라는 목표를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28일부터 연일 밤을 새며 법안 축조 심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자당 간사와 지도부와의 의견조율 부재와 외부 단체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합리한 주장을 계속해왔다. 급기야 자신들의 뜻대로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보이자, KBS 수신료 문제 때문에 한나라당이 연내 입법화를 막는다는 식의 괴변마저 내놓으면서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분명히 밝히건대, 한나라당은 양당의 협의과정에서 KBS 수신료 문제를 거론한 적이 결코 없다. 한나라당은 책임있는 여당으로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올해 안에 입법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민주통합당도 상습적인 ‘합의 파기’와 교묘한 말 바꾸기, 꼼수를 버리고, 방송광고시장의 안정화와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 중소방송에 대한 지원이 제도화되도록 지난 27일 6인 소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입법화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2011년 12월 31일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의원 일동
5보
(지금 회의 시작 한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의사진행 발언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의사진행 발언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닐까 불안하네요)
전병헌(민주당) : 제가 낸 법이 있었습니다. MBC는 민영 공영 선택할 수 있었던 법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합의한 사안을 전폭적으로 저는 수용했다. 그것은 중소방송사 비롯한 생존권이 더 중요하고 법이 안 만들어져서 무법천지 되는 것보다 나쁜 법이라도 입법되는 것이 최악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협조해왔다. 합의과정 보면 한나라당이 중소방송 생존권 볼모로 법을 지연시키고 만들지 않으려고 하면서 한나라당 입장을 관철시켰다. 그런 뒤에 수신료를 또다시 꺼낸다. 안형환 의원이 수신료 연계 있을 수 없다고 얘기했었다. 예민한 의안 법안일수록 여야 합의된 의안만 상정해서 처리하는 것이 오랜 국회 전통이고 상임위 절차였다. 그런데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상정했다. 이것도 미디어렙법 볼모로 기습상정한 것과 다름없다. 어떻게 미디어렙법과 수신료가 연계된다고 하나. 그러면 이제까지 수신료 문제와 미디어렙법은 다르다고 주장했던 것은 도대체 뭡니까? (전 의원 발언시간 종료로 마이크 꺼졌지만 발언은 계속됩니다. 수신료 연계시키지 않기로 해놓고 왜 이제와서 연계시키냐는 주장이네요..)
문방위 개회예정시간보다 3시간 지났고 정식 개회한지 1시간 지났습니다.
(한나라당 수신료 연계전략이 계속되면서 미디어렙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답답한 현실이네요... 민주통합당이나 시민단체는 미디어렙법 합의안이 형편없는 졸속입법이라고 비판했는데 한나라당은 그나마 통과시키지 않으려 온갖 꼼수를 쓰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 어떻게든 수신료를 통과시키겠다는 강한 의지... 역시 KBS가 무섭긴 하나보네요. 선거에서 도움이 될까 싶은걸까요?)
조윤선(한나라당) : 오늘 문방위에서 회의진행하는데 네 가지 질문 같이 생각해보자. 첫째 수신료 문제와 공정성 확보 방안은 만약 우리가 종편 더 생기지 않았으면 논의하지 않을 안건인가? 그렇지 않다. (어차피 수신료는 얘기해야 한다는 얘기. 또다시 수신료로 시작하네요~~) 이 와중에 미디어렙법 심의하면서 수신료 얘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둘째 민주당은 법안소위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법안을 수신료 인상과 연계해서 타결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법안소위에서는 수신료 얘기 없었다. 다만 상임위에서 토론이 있을 것으로 예상을 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와 연계하고 있다고 법안소위에서 계속 민주당이 비난했다. 오늘 안건은 수신료 인상 아니다. 수신료 정치적 문제 됐다. 그러나 정치적 색채 빼고 방송산업 발전 위해 논의해보자. KBS 공공성 강화라고 우리가 소위 제목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언한 한나라당 의원 전원, 수신료 인상하자는 주장이네~~)
안규백(민주당) : 상식을 갖자. 제3자가 수긍할 수 있는 것이 상식. 누가 봐도 위원장과 여당이 짜고친 고스톱이다. 허원제 의원 적법 절차 밟았다고 하는데 정당성과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 수신료 관련해서 기습 제안한 것은 집권 여당으로서 해야할 일이 아니다. 양당간사 협의하고 심재철 의원 중진의원으로서 안건 취소할 것을 동의드린다.
한선교(한나라당, 이전까지 한나라당 간사의원이었고 수신료 인상합의와 이어지는 도청의혹 파문의 당사자였음) : 수신료 왜 연계시키느냐 야당이 얘기하는데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신료 민주당이 여당일 때도 주장했다. 수신료는 이제는 정치적 사안이다. 서로 정치적 이유로 반대 찬성한다. 미디어렙법이 왜 수신료와 같이 가야하느냐 항상 수신료 필요성 인정한다는 것이 야당의원. 하지만 국민정서 때문에 안 된다고 해왔다. 그리고 미디어렙법 처리해주면 수신료 할 수 있다고 야당의원들이 얘기했다. 잘 모르고 말하지 말아라. 민주당 종편 옥죄기 위해 중소방송 나몰라라 했던 것 아니냐. 저희는 미디어렙법 합의 안되니까 중소방송 지원 특별법 만들려 했었다.(사실은 민주당도 이 법 만들었었음.. 수신료 인상 합의가 민주당의 반대로 안됐다고 주장하고 있음. 그런데 도청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는 한마디 없었음.)
6보
더 이상 생중계하는 것이 의미 없다 싶은 정도로 똑같은 주장의 반복임. 안건은 하나도 다루지 못한 채 2시간 째 의사진행발언만 하고 있음. 의사진행발언은 모두 KBS 수신료 발언임. 처음에는 나꼼수만큼 재미있었는데 후렴만 반복되는 낡은 LP판을 들고 있는 기분. 잠시 중계를 쉬겠음. 혹시 본격적으로 미디어렙법 얘기가 나오거나 돌발상황 발생시까지 잠시 문자 중계를 중단하겠습니다. 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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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찬열(민주당) : 미디어랩 처리하기로 해놓고 느닷없이 수신료 애기 꺼내니까 결정이 안 되는 것 아니냐. 고의적으로 회의를 끌어가는 것이다. 위원장도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방망이를 두들기냐. 행동 다 해놓고 언제 우리가 그랬냐. 누구를 위해서 수신료 1000원 올리냐. 수신료 연계해야 되는 것이냐.
장병완(민주당) : 지난 연말에 자정 넘기고 여야가 어렵게 미디어렙법 합의를 했다. 법안소위에서 그것은 종편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나타난 폐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동의를 한 것이다. 보도편성과 광고가 연계되서는 안된다 분리돼야 한다. 방송광고시장이 심각히게 훼손되고 있다. 종교방송 지역방송 죽어가고 있다는 절규가 있엇다. 그런데 심사경과 보고하도록 한 직후에 심재철 의원이 바로 전혀 예상치 못한 동의를 했고 기습적으로 처리를 했다. 누가 동의를 했는지 알기도 전에 처리를 했다. 국회법 규정을 떠나서 의사의 정당성을 상실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수신료 인상과 랩 간의 기밀한 연계 애기하는데 종편 봐준다는 측면에서만 연계가 된다. 각각 별개의 안건으로 얘기 됐지 두 안건이 연계된 것은 아니다. 방송 공정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연계가 된다고 말한다면 동의한다. 그러나 수신료 문제삼는 것은 광고 때문이 아니었다. 공영방송으로 거듭 나기 위한 것이었다.
진수희(한나라당) : 두 시간 지연된 것 국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 문제제기로 그런 적도 있었다. 우리 회의 들어오기 전 한나라당 의원끼리 회의 있었다. 제가 아는 한 한 분도 오늘 미디어렙법 처리 되지 않아야 한다거나 수신료 인상되지 않으면 미디어렙법 처리 않된다고 주장한 사람 없었다. 심재철 의원이 말한 동의안 보면 수신료 연계 단 한마디도 없다. 18대 국회 종료 전에 처리해야 하지만 하지 못한 숙제가 KBS 공영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다. 좀더 논의할 필요 있으니까 소위원회라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그걸 처리해놓고 미디어렙법 처리하자는 것이다.(음, 결국 수신료 관련 안건을 먼저 처리하고 미디어렙법 처리하자는 얘기네요~~)소위 구성안 처리하고 미디어렙법 처리하자. 민주당이 유연성을 발휘해라. (한나라당 논리는 수신료는 광고시장과 관련이 있으니까 미디어렙법과 관련된 것이다는 논리.. 그렇다면 광고시장은 제품의 가격과 관련이 있고, 기업의 홍보비와도 관련이 있고, 물가와도 관련이 있고 물가인상은 서민경제와 연계돼있고, 결국 미디어렙법 수신료 뿐 아니라 모든 경제정책과도 관련된 것인 만큼 각종 법안 모두 같이 논의해야겠군요.)
심재철: 제가 얘기한 것은 수신료 인상하자는 것 아니고 소위 구성하자는 것이다. 미디어렙법과 연계했다는 말을 지어내는데 그런 말 한 적 없다. 소위 구성하자. 방송광고시장과 연결돼 있다는 얘기를 했을 뿐. 미디어렙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수신료 논의 많이 될 것이라는 것 잘 안다. 18대 국회 마지막이다. 수신료 문제 논의할 창구, 소위마저 구성하지 않고 문을 닫으면 안된다. 볼모나 인질 아니다. 자극적으로 말을 지어내지 말라. 이미 양당 간사간에 미디어렙법 논의하고 소위 논의하자 타진했는데 소자도 꺼내지 말라고 타박을 받았다. 그래서 의사진행발언으로 소위 얘기한 것이다. 미디어렙법 통과되고 언제든 얘기할 수있는 것이다. 논의 못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논의할 틀이라도 만들자는 것이고 그것이 국회가 해야할 일이다. 수신료 인상이라고 매도하지 말라.(음~~ 정말 수신료 인상을 위한 것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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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희: 의사진행발언 마무리짓고, 김재윤 의원님 대신에 이찬열 의원님 하시고 마무리짓고 정회해서 오찬한 뒤에 오후에 속개하겠다.
이찬열(민주통합당) : 심재철 의원 수신료 인상안 매도하지 말라고 했는데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 매도한 적이 없다. 수신료라는 것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매도할 일도 아니고 이 자체를 느닷없이 꺼내들어서 미디어렙법 표결 결정을 미루게하는, 이러한 모습이 수신료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왜 미디어렙법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의라면 모르지만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신료를 꺼내드는지 정말 뚜렷하게 보이는 저의. 이런 의도는 안 했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그런게 아니었다고 발뺌하는 것 아니다. 미디어렙법을 우선 처리하고 수신료 인상을 논의한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안건에도 없는 것 가지고 순간적으로 날치기 처리하는 의사진행은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할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수신료 인상 급하지 않다. 여러번 수신료 관련해 여야가 국회의원들끼리 국민의 입장에 서서 많은 검토를 해왔다. 한순간에 날치기로 상정시키고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뜯어가야 하느냐. 한나라당 의원들, 국민의 호주머니가 우습게 보이느냐.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원안대로 미디어렙법을 처리하고 오늘은 수신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이야기할 것이 없다.
김성동(한나라당) : 여러 의원 좋은 말씀 해주셔서 발언을 안 하려 했는데 말씀드리겠다. 국회 논의구조 달라야 한다. 소위에서 논의구조, 상임위 논의구조, 본회의 논의구조 다를 것이다. 미디어렙법은 모든 사람이 만족하기 대단히 어려운 법이었다. 법안심사소위에 속한 의원들간에 정말 치열한 논쟁, 논란을 거쳤다. 상당한 여야 의원간의 공감대도 형성됐다. 교섭단체 간의 정치력의 부재, 교섭단체 내의 정치력 부재도 절감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상임위 의원들간에는 기본적인 논쟁은 생략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중소방송 지원의 문제는 여야 의원들 각기 소홀히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독자적이 법안을 발의하려고 준비할 정도이다. 헌법 불일치 상태 3년이었다, 1일 소위를 통과했기때문에 그나마 불일치 상태 통과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상정돼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 숙제 하나가 해결되는 이 상황에서 국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수신료 문제이다. 논의 필요성 인식하실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부담이 있다. 영국이 76%, 독일이 86%인데 우리는 43%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영성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필요하다면 간사간 협의 절차를 위해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전부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는 미디어렙문제는 오늘 중으로 해결하자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전재희 : 잠시 정회했다가 3시 30분에 회의 속개.
(이런 상황이라면 오늘 늦게나 문방위를 통과할 수있을 텐데 앞으로 본회의 통과가 정말로 걱정되는 상황이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 문방위 전반부는 한나라당은 KBS 수신료 문제를 느닷없이 의제로 올렸습니다. 심재철 의원이 KBS공공성 강화를 위한 소위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기습적으로 하면서 의제로 채택되자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일제히 반발하면서 3시간동안 의사진행발언만 했습니다. 20여명 의원이 발언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수신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민주당 의원들은 미디어렙법 통과를 논의하는데 왜 수신료 문제를 꺼내느냐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문방위 20여 명 갖고도 이렇게 힘드니 290여 명 의원이 모이는 전체회의에서는 얼마나 진통이 있을지 상상이 안 가네요~~ 에구 지켜보는 것도 힘드네... 오후 3시반 회의가 제 때 속개될지도 의문입니다. 아무튼 두 눈 번쩍 귀는 쫑긋 세우고 열심히 지켜봅시다~~)
9보
오후 3시 반에 속개하기로 한 문방위, 약속시간이 1시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전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던 한나라당 이경재 조진형 이철우 의원이 시간에 맞춰 도착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고 민주통합당 일부 의원들도 기다리다 지쳐 잠시 쉬러 가신 모양입니다. 왜 이렇게 회의가 늦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회의가 늦어지는데 대한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을 뿐. 오전 회의에서는 한나라당이 회의 시작하자마자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KBS수신료 인상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KBS 공공성 강화 소위원회 구성을 논의하자는 의제를 냈고 이 때문에 KBS 수신료 인상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오늘의 핵심 안건인 미디어렙법 채택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한나라당은 KBS 관련 소위 구성 문제를 먼저 논의하자는 주장인 반면 민주통합당은 수신료 문제는 미디어렙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예정대로 미디어렙법만 처리하자고 팽팽히 맞서 있습니다. 어차피 다시 회의를 열어도 공전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지리한 대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의원은 상대방 진빼기라고 표현하더군요.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동안 KBS로부터 수신료가 반드시 이번 회기 중에 인상돼야 한다는 압박과 설득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BS 수신료 문제가 해법을 찾으면 좋고 안되더라도 KBS측에 최대한 노력을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 같네요. 사실 미디어렙법의 경우 이미 지난 1일 새벽 문방위 법안소위에서 통과돼 전체회의 처리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신료를 이번에 미디어렙에 엮어서 처리하지 않을 경우 18대 국회에서는 물 건너간다는 KBS측의 절박한 호소와 강한 압박이 미디어렙법 처리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회의장 주변에는 방송통신위원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왜 이리 늦어지는지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하고 일부 직원들은 지친 모습으로 회의장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곧 회의가 속개되더라도 또다시 입씨름을 벌이다 한번 쯤 더 정회를 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전망과 아마 밤 10시쯤이나 결론이 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이 정말 힘드네요...
미디어렙법안, 국회 문방위 통과(1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밤 전체회의를 속개하고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관련 법안을 처리했다. 지난 1일 문방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미디어렙법안은 △종편 미디어렙 편입 승인일로부터 3년 유예 △1공영 다민영 △방송사 1인 최대지분 40% △이종매체(신문과 방송) 간 교차판매 금지 등을 담고 있다. 미디어렙법안의 전체회의 의결 방침은 여야 합의에 따른 것이지만 이날 오전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미디어렙법안과 KBS 수신료 인상안을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야당이 크게 반발하며 파행이 계속됐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이날 밤 10시 30분쯤 국회 문방위를 속개하고 단독 표결을 실시해 '미디어렙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같은 내용의 미디어렙법안이 이날 상임위를 통과함에 따라 본회의 통과 절차만을 남겨두게 됐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KBS 수신료 인상 관련 문방위내 소위 구성 안건도 단독 표결로 가결시켰다.
1보.
지금부터 국회에서 열리는 문방위를 문자 생중계하겠습니다. 장담하건대 나꼼수만큼 재밌습니다. 오늘(5일) 회의 안건은 미디어렙법 제정문제입니다. 회의는 10시에 개회될 예정이었습니다. 민주당 소속 의원들 별도 회의실에 모여 오늘 회의 대책 논의했습니다. 법안소위 통과한 안이 조중동 종편과 sbs 특혜라고 비난을 받으니 어떻게 수정안을 내볼까 하는 방안 논의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민주당 의원들 헛다리 짚었습니다. 한나라당은 미디어렙법 통과는 물론 논의할 생각도 없습니다. 오직 관심있는 것은 KBS 수신료 인상안 뿐입니다. 한나라당 의원들도 별도의 방에서 오늘 회의 대책 논의했습니다. 한나라당 소속인 전재희 문방위원장에게 수신료 인상안을 직권상정하라고 요구합니다. 집단으로 돌아가면서 전재희 위원장을 압박합니다. 전 위원장은 여야가 합의한 내용만 다루겠다며 직권상정 거부합니다. 한나라당 의원, 이런 위원장 처음본다고 소리칩니다.(이런 의원 처음 봅니다.) 전재희 위원장 한나라당 의원들이 있던 방에서 빠져나와 문방위 전체회의실에 입장 위원장석에 앉습니다. 그런데 한나라당 의원들은 바로 옆방에 모여서 입장하지 않은 채 사보타지하고 있습니다. 무슨 얘기를 나누나 살짝 들어보니 오늘 옷차림에 대한 농담을 하고 있습니다. 개회 시간 2시간이 지난 11시 57분 드디어 회의가 열렸습니다. 2시간 동안 전재희 위원장을 압박하다가 말을 듣지 않으니 작전을 바꾼 것 같습니다. 개회를 선언하자마자 창조한국당 이용경 의원 의사진행발언 신청.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측근과 관련한 비리 의혹이 제기되고 있으니 신상 발언을 들어보자고 합니다. 이어 한나라당 심재철 의원 의사진행 발언. 심 의원 갑자기 수신료 인상안을 들고 나옵니다. 수신료 인상안을 의제로 올릴 것을 뜬금없이 제안합니다. 순식간에 KBS 수신료 인상안이 국회법에 따라 의제로 채택됐습니다. 문방위 전체회의실 시장통으로 바뀌었습니다. 민주당 의원 강력히 항의하고 심재철 의원은 쉬지않고 발언권 없이 떠들고 있습니다. 민주당 최종원의원 "이게 국회입니까? 부끄럽지도 않습니까?" 일갈합니다. 오늘 방송광고시장의 질서를 위한 미디어렙법을 논의하기 위한 자리인데 시간을 질질 끌다 회의장에 들어와서는 KBS 수신료를 꺼내들어 법안 통과를 방해하고 있다고 흥분한 목소리로 외칩니다. 민주당 간사인 김재윤 의원 한나라당 의원들에게 강력히 항의합니다. 심재철 의원 또다시 수신료 인상안을 얘기하며 2월 국회로 연기하자고 주장합니다. 안형환 의원, 수신료 날치기 의사 없다고 항변합니다. 미디어렙법 막을 의사도 없다고 말합니다. 그러면서 다시 수신료 인상을 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한나라당 의원들 KBS 대변인 된 것 같습니다.
2보
여야 의원들의 의사진행 발언이 계속됩니다. KBS 수신료 인상안 얘기만 의사진행 발언으로 계속됩니다.
김창수 의원(선진당 탈당하고 민주통합당 입당하기로 한 의원이죠, 아직 민주통합당 소속으로는 안됐습니다): 모든 일에 순서가 있고 전후 우선순위 있다. 오늘 수신료 인상 부분은 동료 의원 지적했지만 의사일정 안건에도 상정 안 된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수신료 인상 얘기를 꺼내고 전재희 위원장이 기다렸다는 듯 서둘러 방망이를 두드리는 것은 부적절한 의사진행이다. 오늘은 지방 일정 만사 제쳐두고 상임위 긴급소집해 미디어렙법 논의하자는 것인데 이 자리에서 불쑥 수신료 내미는 것은 온당치 않다고 생각한다. 미디어렙법을 제가 제출한 지 3년 지났다. 이 법안을 제정법으로 제안한 것이 2009년 2월이다. 아직 지연돼서 방송광고시장 대란 계속된다. 사실 입법 지연 책임은 국회가 떠안아야 한다. 이제라도 늦지 않았으니 오늘은 방송광고 공익성 공영성에 걸맞는 법체계 바로잡기 위한 미디어렙법을 하루 속히 통과시켜야 한다.
진성호(한나라): 여야 바뀐 것 같다. 과거에는 야당이 회의 본질과 관계없는 얘기 많이 했다. 저는 미디어렙법 본질은 지역방송과 종교방송이다. 그런데 합의안을 보면 정치적 이해관계에 따라 주고받기한 매체별 불만이 있는 안이다. 여야 합의니까 이의 달지 않겠다. 오늘 통과 반대 않는다. 그런데 수신료 이 문제와 분리할 수 없다.(결국은 또 다시 수신료 문제) 수신료 올려 늘어나는 돈으로 라디오 방송 광고 없애서 종교방송 지원하자는 것이다. 그래서 연계 필요하다.(음~ 지역방송 종교방송을 굉장히 많이 생각해주시는군요. 진 의원도 결국은 수신료 인상. 지금까지 한나라당 의원들은 모두 수신료 인상 주장만 하시는군요. 온갖 논리를 동원해서...)
3보
(음, 마이크 꺼진 상태에서 진성호 의원 계속 발언하고 있습니다.)
전혜숙(민주당) : 두 시간 기다렸는데 국회에서 이런 의안 상정 처음 봤다. 안형환 의원 인터뷰 자료 보니 'KBS 수신료 때문에 미디어렙법 입법 막는다는 주장은 사실 아니다' 이렇게 성명 발표해 놓았던데 갑자기 수신료 내놓은 것은 정말 비신사적 태도다. 미디어렙 법안은 정말 많은 국민과 언론 관심 갖고 있다. 합의안 저도 굉장한 불만 갖고 있다. 소유지분 40%라면 이는 광고로부터 독립할 수 없다. 언론이 자본으로부터 독립하기 위해서는 15% 이하여야 한다. 공영은 MBC까지 묶고 민영은 1사 1렙안 불만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역방송 종교방송들을 살릴 수 없다는 것 때문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말과 행동이 틀리다. 어떻게 렙법안을 수신료와 연계시키고 있는가? 미디어렙 법안 통과시키고 수신료 논의해도 늦지 않은데 한나라당이 국회 파행으로 몰고가려 하고 있다.
심재철(한나라당) : 도대체 안건 될 수 있느냐 했는데 국회법을 참조해보라. 국회에서는 어떤 것이든 논의할 수 있다. 동의하고 제청하면 의제가 된다. 다른 사람 동의 받느냐 하는 것은 다른 문제. 수신료와 미디어렙법 무슨 관계 있느냐 하는데 당연히 관계있다. 광고시장 전면 재편되면 각 방송사 수입과 연결되고 KBS도 수신료 광고가 연계되기 때문에 연결될 수밖에 없다. 동료의원 격한 말씀 하셨는데 공연한 트집잡기이다. 날치기 파행 얘기하는데 의사일정 여야 합의해 처리해야 한다는데 합의 안 되면 어떤 안건도 처리 못하느냐? 어려서부터 민주주의 근본 원칙 다수결 원칙 얘기 들었다. 토론과 논의하고 합의 안 되면 표결로 가는 것이 민주주의 근본원칙이다. (음~~ 한나라당이 다수당이니까 그럴 수 있군. 나중에 소수당이 돼도 이 발언을 할 지 기억해둡시다.) 소위 구성해서 깊이 있게 논의하자는 것이다. KBS 공영성 강화위한 소위원회를 6명으로 구성하자. (역시 결론은 KBS 수신료 인상하자~~마이크 꺼졌는데도 계속 얘기하고 있음.)
(오늘 한나라당 단단히 벼르고 왔군요. KBS에서 감사장 받게 되지 않을까 싶네요)
4보
(아직까지도 의사진행발언만 하네요...미디어렙법 논의는 생각도 않는군요)
이용경(창조한국당) : 최시중 방통위원장의 비리의혹 관련 발언이 중요하다는 첫번째 의사진행 발언은 완전히 무시하고 다른 문제만 진행한다. 최 위원장 측근이 몇 백 억씩 비자금 조성한 비리가 드러났다는 의혹이 언론에 제기되는데 이는 완전히 무시하고 진행하고 있다. 상식에 어긋난 진행이다. (이용경 의원은 최시중 위원장 비리 관련 문제 계속 제기하고 계십니다)
최시중 위원장 : 존경하는 의원 여러분, 방통위가 선임한 한 EBS 이사 개인 비리로 구속된데 대해 사과하고 책임감 느낀다. 금품 수수 의혹도 언론에 보도되고 있다. 사실 여부 떠나 깊은 유감의 말씀 드린다. 모든 것이 부덕의 소치라고 생각한다. EBS 김학인 씨는 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표결절차 거쳐 선임됐다. 이 과정에서 금품수수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다. 있어서도 안 될 일이다. 퇴직한 정책보좌관 관련 사안 등 여러 의혹에 대해서는 검찰 수사 통해서 시비 가려질 것으로 보인다. 각 미디어에서 다양한 의혹 제기되고 있지만 저로서는 당혹스러운 일이다. 수 년 동안 방송통신위원회 주변에서 설로 나돌던 것이 지금 철 만난 듯이 제기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특정업자가 어떻게 했다 부동산 투자했다 등등의 문제는 저로서는 가슴아픈 문제이고 제가 알기로는 진실과는 너무 거리 먼 것으로 알고 있다. 검찰 당국에서 수사해야 될 것이고 거기서 진실 밝혀지면 좋겠다. 진위 여부 떠나 심려끼친 데 대해 죄송하다 말씀드린다.
허원제(한나라당 간사의원임) : 오전에 KBS수신료 문제 미디어렙법 문제에 대해 여야 의원 격론 있었지만 이 두 가지 사안이 결코 따로 떨어진 사안 아니다.(역시 또다시 수신료 연계하시네요~) 6월 22일 여야 수석 부대표 합의한 사안이 있다. (수신료 인상과 관련해 당시에 있었던 합의안을 다시 읽는군요... 역시 수신료 인상입니다.) 이게 6개월 전 일이다. 이 안이 지금도 문방위에 남은 숙제이다. 12월 27일 똑같은 수석부대표 수장으로 하는 6인 회의에서 미디어렙법 합의 채택했다. 그래서 법안이 올라왔다. 수신료 인상안도 6개월 전에 올라왔고 미디어렙 법안도 올라왔다. 방송시장 대 변혁에 따라 이 두가지 처리해야 할 사안이다. (허원제 의원 지난달 31일에는 기자회견을 통해 KBS 수신료 문제를 미디어렙법 전혀 연계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공식적으로 밝힌 바 있습니다. 기자회견문도 있네요~~ 잠시 당시 성명서를 한번 보시죠.
<성 명 서>
“민주당은 여야 합의를 지켜 미디어렙 관련 법안의 연내 입법화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방송광고판매대행에 관란 법률(미디어렙법)의 제정에 있어서 한나라당의 일관된 입장은 여야 6인 소위가 수많은 협의과정을 거쳐 지난 27일 합의한 내용과 합의정신을 바탕으로 연내 입법화하는 것이다. 방송광고시장의 정상화와 중소방송의 안정적 운영을 도모하는 법과 제도를 만드는 일이 지금 매우 시급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통합당은 의원총회에서 6인 소위의 합의서 내용을 거부한 뒤 터무니없는 새로운 내용을 포함시키자고 요구해왔다. 한나라당은 연내 입법화라는 목표를 위해 인내심을 발휘하면서 28일부터 연일 밤을 새며 법안 축조 심사를 벌였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자당 간사와 지도부와의 의견조율 부재와 외부 단체의 입김에서 벗어나지 못한 채 불합리한 주장을 계속해왔다. 급기야 자신들의 뜻대로 협상이 타결되지 않아 보이자, KBS 수신료 문제 때문에 한나라당이 연내 입법화를 막는다는 식의 괴변마저 내놓으면서 책임회피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분명히 밝히건대, 한나라당은 양당의 협의과정에서 KBS 수신료 문제를 거론한 적이 결코 없다. 한나라당은 책임있는 여당으로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올해 안에 입법화를 위해 최대한 노력할 것이다. 민주통합당도 상습적인 ‘합의 파기’와 교묘한 말 바꾸기, 꼼수를 버리고, 방송광고시장의 안정화와 지역방송, 종교방송 등 중소방송에 대한 지원이 제도화되도록 지난 27일 6인 소위의 합의를 바탕으로 한 입법화에 적극 나서줄 것을 촉구한다.
2011년 12월 31일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 한나라당 의원 일동
5보
(지금 회의 시작 한시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의사진행 발언만 하고 있습니다. 오늘 의사진행 발언만 하다 끝나는 건 아닐까 불안하네요)
전병헌(민주당) : 제가 낸 법이 있었습니다. MBC는 민영 공영 선택할 수 있었던 법안.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합의한 사안을 전폭적으로 저는 수용했다. 그것은 중소방송사 비롯한 생존권이 더 중요하고 법이 안 만들어져서 무법천지 되는 것보다 나쁜 법이라도 입법되는 것이 최악 막을 수 있다고 생각해서 협조해왔다. 합의과정 보면 한나라당이 중소방송 생존권 볼모로 법을 지연시키고 만들지 않으려고 하면서 한나라당 입장을 관철시켰다. 그런 뒤에 수신료를 또다시 꺼낸다. 안형환 의원이 수신료 연계 있을 수 없다고 얘기했었다. 예민한 의안 법안일수록 여야 합의된 의안만 상정해서 처리하는 것이 오랜 국회 전통이고 상임위 절차였다. 그런데 수신료 인상안 날치기 상정했다. 이것도 미디어렙법 볼모로 기습상정한 것과 다름없다. 어떻게 미디어렙법과 수신료가 연계된다고 하나. 그러면 이제까지 수신료 문제와 미디어렙법은 다르다고 주장했던 것은 도대체 뭡니까? (전 의원 발언시간 종료로 마이크 꺼졌지만 발언은 계속됩니다. 수신료 연계시키지 않기로 해놓고 왜 이제와서 연계시키냐는 주장이네요..)
문방위 개회예정시간보다 3시간 지났고 정식 개회한지 1시간 지났습니다.
(한나라당 수신료 연계전략이 계속되면서 미디어렙법은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습니다. 답답한 현실이네요... 민주통합당이나 시민단체는 미디어렙법 합의안이 형편없는 졸속입법이라고 비판했는데 한나라당은 그나마 통과시키지 않으려 온갖 꼼수를 쓰고 있습니다. 한나라당 의원들 어떻게든 수신료를 통과시키겠다는 강한 의지... 역시 KBS가 무섭긴 하나보네요. 선거에서 도움이 될까 싶은걸까요?)
조윤선(한나라당) : 오늘 문방위에서 회의진행하는데 네 가지 질문 같이 생각해보자. 첫째 수신료 문제와 공정성 확보 방안은 만약 우리가 종편 더 생기지 않았으면 논의하지 않을 안건인가? 그렇지 않다. (어차피 수신료는 얘기해야 한다는 얘기. 또다시 수신료로 시작하네요~~) 이 와중에 미디어렙법 심의하면서 수신료 얘기하는 것은 너무 당연하다. 둘째 민주당은 법안소위 과정에서 한나라당이 법안을 수신료 인상과 연계해서 타결하려 한다고 주장했다. 법안소위에서는 수신료 얘기 없었다. 다만 상임위에서 토론이 있을 것으로 예상을 했던 것이다. 한나라당이 KBS 수신료와 연계하고 있다고 법안소위에서 계속 민주당이 비난했다. 오늘 안건은 수신료 인상 아니다. 수신료 정치적 문제 됐다. 그러나 정치적 색채 빼고 방송산업 발전 위해 논의해보자. KBS 공공성 강화라고 우리가 소위 제목을 정한 것도 그 때문이다. (지금까지 발언한 한나라당 의원 전원, 수신료 인상하자는 주장이네~~)
안규백(민주당) : 상식을 갖자. 제3자가 수긍할 수 있는 것이 상식. 누가 봐도 위원장과 여당이 짜고친 고스톱이다. 허원제 의원 적법 절차 밟았다고 하는데 정당성과 절차와 과정이 중요하다. 수신료 관련해서 기습 제안한 것은 집권 여당으로서 해야할 일이 아니다. 양당간사 협의하고 심재철 의원 중진의원으로서 안건 취소할 것을 동의드린다.
한선교(한나라당, 이전까지 한나라당 간사의원이었고 수신료 인상합의와 이어지는 도청의혹 파문의 당사자였음) : 수신료 왜 연계시키느냐 야당이 얘기하는데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수신료 민주당이 여당일 때도 주장했다. 수신료는 이제는 정치적 사안이다. 서로 정치적 이유로 반대 찬성한다. 미디어렙법이 왜 수신료와 같이 가야하느냐 항상 수신료 필요성 인정한다는 것이 야당의원. 하지만 국민정서 때문에 안 된다고 해왔다. 그리고 미디어렙법 처리해주면 수신료 할 수 있다고 야당의원들이 얘기했다. 잘 모르고 말하지 말아라. 민주당 종편 옥죄기 위해 중소방송 나몰라라 했던 것 아니냐. 저희는 미디어렙법 합의 안되니까 중소방송 지원 특별법 만들려 했었다.(사실은 민주당도 이 법 만들었었음.. 수신료 인상 합의가 민주당의 반대로 안됐다고 주장하고 있음. 그런데 도청 의혹 사건과 관련해서는 한마디 없었음.)
6보
더 이상 생중계하는 것이 의미 없다 싶은 정도로 똑같은 주장의 반복임. 안건은 하나도 다루지 못한 채 2시간 째 의사진행발언만 하고 있음. 의사진행발언은 모두 KBS 수신료 발언임. 처음에는 나꼼수만큼 재미있었는데 후렴만 반복되는 낡은 LP판을 들고 있는 기분. 잠시 중계를 쉬겠음. 혹시 본격적으로 미디어렙법 얘기가 나오거나 돌발상황 발생시까지 잠시 문자 중계를 중단하겠습니다. 감사~~
7보
이찬열(민주당) : 미디어랩 처리하기로 해놓고 느닷없이 수신료 애기 꺼내니까 결정이 안 되는 것 아니냐. 고의적으로 회의를 끌어가는 것이다. 위원장도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방망이를 두들기냐. 행동 다 해놓고 언제 우리가 그랬냐. 누구를 위해서 수신료 1000원 올리냐. 수신료 연계해야 되는 것이냐.
장병완(민주당) : 지난 연말에 자정 넘기고 여야가 어렵게 미디어렙법 합의를 했다. 법안소위에서 그것은 종편이 영업을 개시하면서 나타난 폐해가 심각하다는 점에서 동의를 한 것이다. 보도편성과 광고가 연계되서는 안된다 분리돼야 한다. 방송광고시장이 심각히게 훼손되고 있다. 종교방송 지역방송 죽어가고 있다는 절규가 있엇다. 그런데 심사경과 보고하도록 한 직후에 심재철 의원이 바로 전혀 예상치 못한 동의를 했고 기습적으로 처리를 했다. 누가 동의를 했는지 알기도 전에 처리를 했다. 국회법 규정을 떠나서 의사의 정당성을 상실했다. 한나라당 의원들이 수신료 인상과 랩 간의 기밀한 연계 애기하는데 종편 봐준다는 측면에서만 연계가 된다. 각각 별개의 안건으로 얘기 됐지 두 안건이 연계된 것은 아니다. 방송 공정성 확보라는 차원에서 연계가 된다고 말한다면 동의한다. 그러나 수신료 문제삼는 것은 광고 때문이 아니었다. 공영방송으로 거듭 나기 위한 것이었다.
진수희(한나라당) : 두 시간 지연된 것 국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이다. 민주당 문제제기로 그런 적도 있었다. 우리 회의 들어오기 전 한나라당 의원끼리 회의 있었다. 제가 아는 한 한 분도 오늘 미디어렙법 처리 되지 않아야 한다거나 수신료 인상되지 않으면 미디어렙법 처리 않된다고 주장한 사람 없었다. 심재철 의원이 말한 동의안 보면 수신료 연계 단 한마디도 없다. 18대 국회 종료 전에 처리해야 하지만 하지 못한 숙제가 KBS 공영성 강화를 위한 제도개선 방안이다. 좀더 논의할 필요 있으니까 소위원회라도 설치하자는 것이었다. 그걸 처리해놓고 미디어렙법 처리하자는 것이다.(음, 결국 수신료 관련 안건을 먼저 처리하고 미디어렙법 처리하자는 얘기네요~~)소위 구성안 처리하고 미디어렙법 처리하자. 민주당이 유연성을 발휘해라. (한나라당 논리는 수신료는 광고시장과 관련이 있으니까 미디어렙법과 관련된 것이다는 논리.. 그렇다면 광고시장은 제품의 가격과 관련이 있고, 기업의 홍보비와도 관련이 있고, 물가와도 관련이 있고 물가인상은 서민경제와 연계돼있고, 결국 미디어렙법 수신료 뿐 아니라 모든 경제정책과도 관련된 것인 만큼 각종 법안 모두 같이 논의해야겠군요.)
심재철: 제가 얘기한 것은 수신료 인상하자는 것 아니고 소위 구성하자는 것이다. 미디어렙법과 연계했다는 말을 지어내는데 그런 말 한 적 없다. 소위 구성하자. 방송광고시장과 연결돼 있다는 얘기를 했을 뿐. 미디어렙법은 반드시 통과돼야 한다. 수신료 논의 많이 될 것이라는 것 잘 안다. 18대 국회 마지막이다. 수신료 문제 논의할 창구, 소위마저 구성하지 않고 문을 닫으면 안된다. 볼모나 인질 아니다. 자극적으로 말을 지어내지 말라. 이미 양당 간사간에 미디어렙법 논의하고 소위 논의하자 타진했는데 소자도 꺼내지 말라고 타박을 받았다. 그래서 의사진행발언으로 소위 얘기한 것이다. 미디어렙법 통과되고 언제든 얘기할 수있는 것이다. 논의 못하겠다는 것은 말이 안된다. 논의할 틀이라도 만들자는 것이고 그것이 국회가 해야할 일이다. 수신료 인상이라고 매도하지 말라.(음~~ 정말 수신료 인상을 위한 것이 아닐까?)
8보
전재희: 의사진행발언 마무리짓고, 김재윤 의원님 대신에 이찬열 의원님 하시고 마무리짓고 정회해서 오찬한 뒤에 오후에 속개하겠다.
이찬열(민주통합당) : 심재철 의원 수신료 인상안 매도하지 말라고 했는데 수신료 인상에 대해서 매도한 적이 없다. 수신료라는 것은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매도할 일도 아니고 이 자체를 느닷없이 꺼내들어서 미디어렙법 표결 결정을 미루게하는, 이러한 모습이 수신료를 가지고 정치적으로 악용하는 사례라고 생각한다. 왜 미디어렙법 처리하는 과정에서.. 심의라면 모르지만 처리하는 과정에서 수신료를 꺼내드는지 정말 뚜렷하게 보이는 저의. 이런 의도는 안 했어야 한다. 그러면서 이제 와서 그런게 아니었다고 발뺌하는 것 아니다. 미디어렙법을 우선 처리하고 수신료 인상을 논의한다면 모르겠다. 그러나 안건에도 없는 것 가지고 순간적으로 날치기 처리하는 의사진행은 대한민국에서 언제까지 있어야 할지 한심하기 짝이 없다. 수신료 인상 급하지 않다. 여러번 수신료 관련해 여야가 국회의원들끼리 국민의 입장에 서서 많은 검토를 해왔다. 한순간에 날치기로 상정시키고 국민의 호주머니에서 뜯어가야 하느냐. 한나라당 의원들, 국민의 호주머니가 우습게 보이느냐. 정말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원안대로 미디어렙법을 처리하고 오늘은 수신료에 대해서는 일언반구 이야기할 것이 없다.
김성동(한나라당) : 여러 의원 좋은 말씀 해주셔서 발언을 안 하려 했는데 말씀드리겠다. 국회 논의구조 달라야 한다. 소위에서 논의구조, 상임위 논의구조, 본회의 논의구조 다를 것이다. 미디어렙법은 모든 사람이 만족하기 대단히 어려운 법이었다. 법안심사소위에 속한 의원들간에 정말 치열한 논쟁, 논란을 거쳤다. 상당한 여야 의원간의 공감대도 형성됐다. 교섭단체 간의 정치력의 부재, 교섭단체 내의 정치력 부재도 절감하면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상임위 의원들간에는 기본적인 논쟁은 생략해도 좋다고 생각한다. 중소방송 지원의 문제는 여야 의원들 각기 소홀히할 수 없다는 생각에서 독자적이 법안을 발의하려고 준비할 정도이다. 헌법 불일치 상태 3년이었다, 1일 소위를 통과했기때문에 그나마 불일치 상태 통과하기 위한 첫걸음으로 상정돼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우리 숙제 하나가 해결되는 이 상황에서 국회가 해결해야 하는 문제가 수신료 문제이다. 논의 필요성 인식하실 것이다. 그러나 정치적인 부담이 있다. 영국이 76%, 독일이 86%인데 우리는 43%이다. 그런 상황에서 공영성 논의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필요하다면 간사간 협의 절차를 위해 이 문제를 논의하자는 것이다. 전부 절실하게 생각하고 있는 미디어렙문제는 오늘 중으로 해결하자는 것에는 이의가 없다.
전재희 : 잠시 정회했다가 3시 30분에 회의 속개.
(이런 상황이라면 오늘 늦게나 문방위를 통과할 수있을 텐데 앞으로 본회의 통과가 정말로 걱정되는 상황이군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늘 문방위 전반부는 한나라당은 KBS 수신료 문제를 느닷없이 의제로 올렸습니다. 심재철 의원이 KBS공공성 강화를 위한 소위를 구성하자는 제안을 기습적으로 하면서 의제로 채택되자 민주통합당 의원들이 일제히 반발하면서 3시간동안 의사진행발언만 했습니다. 20여명 의원이 발언했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수신료 문제도 해결할 수 있도록 하자는 주장을 민주당 의원들은 미디어렙법 통과를 논의하는데 왜 수신료 문제를 꺼내느냐는 주장을 반복했습니다.
문방위 20여 명 갖고도 이렇게 힘드니 290여 명 의원이 모이는 전체회의에서는 얼마나 진통이 있을지 상상이 안 가네요~~ 에구 지켜보는 것도 힘드네... 오후 3시반 회의가 제 때 속개될지도 의문입니다. 아무튼 두 눈 번쩍 귀는 쫑긋 세우고 열심히 지켜봅시다~~)
9보
오후 3시 반에 속개하기로 한 문방위, 약속시간이 1시간 반이 지났지만 아직도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오전 회의에는 참석하지 못했던 한나라당 이경재 조진형 이철우 의원이 시간에 맞춰 도착해 하염없이 기다리고 있고 민주통합당 일부 의원들도 기다리다 지쳐 잠시 쉬러 가신 모양입니다. 왜 이렇게 회의가 늦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설명이 없습니다. 다만 회의가 늦어지는데 대한 여러가지 추측이 나오고 있을 뿐. 오전 회의에서는 한나라당이 회의 시작하자마자 의사진행발언을 통해 KBS수신료 인상 필요성을 제기하면서 KBS 공공성 강화 소위원회 구성을 논의하자는 의제를 냈고 이 때문에 KBS 수신료 인상 문제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오늘의 핵심 안건인 미디어렙법 채택 문제는 논의조차 하지 못하는 상황입니다. 현재 한나라당은 KBS 관련 소위 구성 문제를 먼저 논의하자는 주장인 반면 민주통합당은 수신료 문제는 미디어렙과 관련이 없는 것으로 예정대로 미디어렙법만 처리하자고 팽팽히 맞서 있습니다. 어차피 다시 회의를 열어도 공전이 뻔히 예상되는 상황이어서 지리한 대치를 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한 의원은 상대방 진빼기라고 표현하더군요. 한나라당 의원들은 그동안 KBS로부터 수신료가 반드시 이번 회기 중에 인상돼야 한다는 압박과 설득을 받아왔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KBS 수신료 문제가 해법을 찾으면 좋고 안되더라도 KBS측에 최대한 노력을 했다는 인상을 심어주려는 것 같네요. 사실 미디어렙법의 경우 이미 지난 1일 새벽 문방위 법안소위에서 통과돼 전체회의 처리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수신료를 이번에 미디어렙에 엮어서 처리하지 않을 경우 18대 국회에서는 물 건너간다는 KBS측의 절박한 호소와 강한 압박이 미디어렙법 처리의 장애물이 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회의장 주변에는 방송통신위원들이 하염없이 기다리면서 왜 이리 늦어지는지 상황을 파악하느라 분주하고 일부 직원들은 지친 모습으로 회의장 주변을 맴돌고 있습니다. 곧 회의가 속개되더라도 또다시 입씨름을 벌이다 한번 쯤 더 정회를 할 가능성이 있지 않느냐는 전망과 아마 밤 10시쯤이나 결론이 날 것이라는 얘기가 나돌고 있는 상황입니다. 법을 만드는 과정이 정말 힘드네요...
미디어렙법안, 국회 문방위 통과(1보)
국회 문화체육관광방송통신위원회는 5일 밤 전체회의를 속개하고 미디어렙(방송광고판매대행사) 관련 법안을 처리했다. 지난 1일 문방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미디어렙법안은 △종편 미디어렙 편입 승인일로부터 3년 유예 △1공영 다민영 △방송사 1인 최대지분 40% △이종매체(신문과 방송) 간 교차판매 금지 등을 담고 있다. 미디어렙법안의 전체회의 의결 방침은 여야 합의에 따른 것이지만 이날 오전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미디어렙법안과 KBS 수신료 인상안을 연계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야당이 크게 반발하며 파행이 계속됐다. 이에 따라 한나라당은 이날 밤 10시 30분쯤 국회 문방위를 속개하고 단독 표결을 실시해 '미디어렙법안'을 통과시켰다. 이 같은 내용의 미디어렙법안이 이날 상임위를 통과함에 따라 본회의 통과 절차만을 남겨두게 됐다.
이에 앞서 한나라당은 KBS 수신료 인상 관련 문방위내 소위 구성 안건도 단독 표결로 가결시켰다.
헬레니즘 시대 ‘지혜의 배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한겨레 2012년 1월 6일자, 안재원(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의 연재물 '고전 오디세이 48' 왕이 도서관을 잠가도 책 속 지혜는 가둘 수 없었지.
고전 오디세이 48
헬레니즘 시대 ‘지혜의 배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헬레니즘 시대 지식의 모태이자 지혜의 배꼽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연구실을 추정해서 그린 작자 미상의 그림.
책이 보물 대접을 받은 것은 기원전 4세기부터였다. 이때 세워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그 증거다. 도서관은 “교양 교육을 통해 자유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럼에도 왕실의 관리와 감시는 엄격했다. 책에 담긴 통찰과 비판의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식과 지혜는 빛의 날개가 있어 가둘 수 없었다.
기원전 5세기는 그리스 학문과 문화가 활짝 꽃피었던 시기다. 운문에 있어서는 비극과 희극이, 산문에 있어서는 역사와 철학이 절정에 도달했다. 이를 고려할 때, 공적이든 사적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책을 모아두었던 도서관이 있을 법한데,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직접적인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일부 연구를 보면, 플라톤(기원전 427~347)이 개인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물론, 이도 추정이다. 이른바 ‘도서관’이라 부를 수 있는 시설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4세기부터다. 도서관 기능에 맞게 책들을 분류하고, 단지 책을 보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을 위해서 도서관을 세운 이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니, 그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1)다. 개인 서재가 아닌, 자신이 건립한 학교 리케이온에 도서관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서관이 겪어야 했던 운명은 그 주인만큼이나 기구했다. 이에 대한 지리학자 스트라본(기원전 60~서기 24)의 보고다.
‘도서관’ 처음 세운 아리스토텔레스
인용은, 황금 따위의 보물이 아닌 책들이 매우 중요한 전리품으로 취급받았다고 전한다. 단적으로, 심지어 로마의 독재자인 술라(기원전 138~78)가 도서관을 주요 전리품으로 취하고 있다. 도서관을 아예 통째로 옮겨왔다는 보고가 흥미롭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핵심은 책이 큰 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소리다. 책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왕과 독재자가 책을 수집하고 도서관을 세우기에 혈안이 될 정도다. 책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땅을 파고 책을 숨기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미뤄보건대, 책이 보물 대접을 받고, 도서관이 주요 공공 기반 시설로 인정받았던 것은 기원전 4세기부터였음이 분명하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이때에 세워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로마의 산문 작가 겔리우스(기원 후 130~180)의 보고다.
인용은 서양 도서관의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점은, 기원전 600년부터 서기 400년까지 천 년의 세월이 몇 문장으로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서관에 대한 많은 오해가 생겨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화재 사건이 그것이다. 기원전 47년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공격했을 때에 도서관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신빙성이 없는, 오해다. 도서관은 항구 근처에 위치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불탄 것들은 수출용으로 항구 근처 창고에 보관중이었던 파피루스였기 때문이다. 물론 카이사르도 도서관에 불을 지를 정도로 야만적이지 않았다. 이 도서관이 실제로 소실된 시기는 서기 270년 정도로 추정된다.
어쨌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에 착수한 이는 소테르(기원전 367~282)왕이었고, 완공한 이는 소테르의 후계자였던 필라델푸스(기원전 308~246)왕이었다. 도서관은 시인으로도 이름을 날린 칼리마코스 시절(기원전 3세기)에 이미 40만 두루마리를 소장했고, 후대 보고를 보면 70만 두루마리를 소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서관은 단순하게 고대 문헌들을 보관만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은, 엄밀한 비판-검증을 거쳐 문헌을 교정하고, 그것의 비판 정본을 만들었으며, 이를 다시 주해하고 번역하는 업무도 수행했으며, 도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까지 포괄하는 일종의 연구소였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검증 과정을 통해 탄생한 책들을 출판하는 일도 관장했던 곳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 도서관이 헬레니즘 시대 지식의 산실이자 지혜의 배꼽(omphalos)이었던 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은 본래 신전이었다. 다시 스트라본의 보고다.
인용은, 책이 원래 보물이고 귀한 물건이었다는 점을 입증해준다. 그래서일까? 도서관은 도서관 관계자와 학자들, 무사이온 학생들과 왕실 관계자에게만 허용되었고, 일반 대중에게는 이용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공공 도서관의 최초 기획자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치다. 원래 도서관은, 적어도 겔리우스에 따르면, “교양 교육을 통해 자유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 세워진 공동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사정이 이러함에도, 공공의 보물인 책에 대한 왕실의 관리와 감시는 엄격했다. 아테네의 아고라 근처의 로마 제정 시대 도서관 유적지에서 나온 대리석 비문이 그 증거다.
대중은 이용할 수 없었던 도서관
도대체, 왜 왕들은 책의 유출을 막으려 했을까? 물론, 보물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꼭 그 때문이었을까? 도서관의 이용까지도 엄격하게 통제했기에. 그러나 왕들의 이런 조치는 실은 무사 여신들에게 히브리스(불경죄)를 범하는 짓이었다. 원래 자유 시민의 교양을 돌보는 신들이 무사 여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왕들은 책의 유출은 물론 일반 시민의 도서관 이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필시 그 까닭이 있을 터. 무엇이었을까? 단적으로, 책에 담긴 통찰과 그 비판의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론 책은 도서관에 있어야 옳다. 공동의 보물이니까. 이런 의미에서, 책에 대한 왕들, 나아가 권력자들의 통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또한 그 덕분에 그 통제도 나름 성공했다 하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왕들이 두려워했던 책에 담긴 혹은 책에서 얻은 통찰과 비판의 힘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정작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은 책을 도서관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리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책에 담긴 지혜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책이 있는 곳은 도서관이지만, 책이 사는 곳은 세상이라는 소리다. 책들의 무덤이기도 한 도서관에서 바로 그 책들이 살아있는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결론적으로 책은 물리적으로 가둘 수는 있지만, 지식과 지혜는 빛의 날개가 있어 도서관에 가둘 수 없는 무엇인 셈이다. 책이 원래 그런 물건이기에.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고전 오디세이 48
헬레니즘 시대 ‘지혜의 배꼽’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헬레니즘 시대 지식의 모태이자 지혜의 배꼽이었던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의 연구실을 추정해서 그린 작자 미상의 그림.
책이 보물 대접을 받은 것은 기원전 4세기부터였다. 이때 세워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 그 증거다. 도서관은 “교양 교육을 통해 자유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세워졌다. 그럼에도 왕실의 관리와 감시는 엄격했다. 책에 담긴 통찰과 비판의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식과 지혜는 빛의 날개가 있어 가둘 수 없었다.
기원전 5세기는 그리스 학문과 문화가 활짝 꽃피었던 시기다. 운문에 있어서는 비극과 희극이, 산문에 있어서는 역사와 철학이 절정에 도달했다. 이를 고려할 때, 공적이든 사적이든, 어떤 형식으로든 책을 모아두었던 도서관이 있을 법한데, 유감스럽게도 이에 대해서는 어떠한 직접적인 자료도 남아 있지 않다. 일부 연구를 보면, 플라톤(기원전 427~347)이 개인 도서관을 가지고 있었다 한다. 물론, 이도 추정이다. 이른바 ‘도서관’이라 부를 수 있는 시설이 등장한 것은 기원전 4세기부터다. 도서관 기능에 맞게 책들을 분류하고, 단지 책을 보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교육을 위해서 도서관을 세운 이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니, 그가 바로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1)다. 개인 서재가 아닌, 자신이 건립한 학교 리케이온에 도서관을 마련한 것이다. 하지만 그의 도서관이 겪어야 했던 운명은 그 주인만큼이나 기구했다. 이에 대한 지리학자 스트라본(기원전 60~서기 24)의 보고다.
‘도서관’ 처음 세운 아리스토텔레스
그들은 아탈로스왕이 페르가몬에 도서관을 세우기 위해 책들을 구하고 모은다는 소식을 접하게 된다. 그들은 땅을 파서 참호를 만들고 여기에 아리스토텔레스의 책들을 숨겼다. 한참 후 책들이 습기와 벌레들에 의해서 손상을 입자, (중략) 아펠리콘은 벌레들에 먹혀 손상된 부분을 복구하였고, 새로운 복사본을 만들었다. 그러나 정확하지 않게 보충되었고, 오류와 오식들로 가득 찬 것들이었다. (중략) 여기에는 로마도 한몫 거들었다. 왜냐하면 당시 아테네를 장악하고 있었던 술라는 아펠리콘이 죽자 곧바로 도서관을 전리품으로 가져왔고, 이곳(아마도 로마)으로 옮겨진 도서관을 아리스토텔레스 추종자였던 티라니온이 관리했기 때문이다. 이 도서관에서도 필경사들이 도서들을 교정하고 고쳤다. (중략) 필사본들을 전혀 대조하지도 원본을 비교하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이는, 로마뿐만이 아니라 알렉산드리아에서도 흔히 있는 일이었다. (<지리> 13권 1장 54절)
인용은, 황금 따위의 보물이 아닌 책들이 매우 중요한 전리품으로 취급받았다고 전한다. 단적으로, 심지어 로마의 독재자인 술라(기원전 138~78)가 도서관을 주요 전리품으로 취하고 있다. 도서관을 아예 통째로 옮겨왔다는 보고가 흥미롭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일까? 핵심은 책이 큰 대접을 받게 되었다는 소리다. 책과는 거리가 먼 것으로 보이는 왕과 독재자가 책을 수집하고 도서관을 세우기에 혈안이 될 정도다. 책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땅을 파고 책을 숨기는 일까지 벌어질 정도다. 미뤄보건대, 책이 보물 대접을 받고, 도서관이 주요 공공 기반 시설로 인정받았던 것은 기원전 4세기부터였음이 분명하다. 그 결정적인 증거가 이때에 세워진 알렉산드리아 도서관이다. 로마의 산문 작가 겔리우스(기원 후 130~180)의 보고다.
누구였던가? 최초로 공공 교육을 위해 책들을 제공했던 자는? (중략) 교양 교육을 통해 자유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 아테네인들에게 책들을 공공 차원에서 처음으로 제공한 이는 참주 페이시스트라토스(기원전 605~527)라 한다. 물론, 아테네인 자신들도 큰 열성을 가지고 도서관을 풍부하게 가꾸고 키웠다. (중략) 많은 책들이 알렉산드리아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에 의해 수집되었다. (중략) 알렉산드리아에서 벌어진 전쟁 중에 이 나라가 약탈당하는 과정에서 군인들이 의도적으로 혹은 계획적으로 그런 것은 아니었다. 보급을 담당하는 병사들에 의해서 이 책들은 모두 불태워졌다. (<아티카의 밤들>, 제7권 17장 1절)
인용은 서양 도서관의 역사에서 자주 언급되는 대목이다. 하지만 유념해야 할 점은, 기원전 600년부터 서기 400년까지 천 년의 세월이 몇 문장으로 압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도서관에 대한 많은 오해가 생겨나기도 했다. 대표적으로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화재 사건이 그것이다. 기원전 47년 카이사르가 알렉산드리아 항구를 공격했을 때에 도서관이 불타버렸다고 한다. 하지만 이는 신빙성이 없는, 오해다. 도서관은 항구 근처에 위치하지도 않았고, 실제로 불탄 것들은 수출용으로 항구 근처 창고에 보관중이었던 파피루스였기 때문이다. 물론 카이사르도 도서관에 불을 지를 정도로 야만적이지 않았다. 이 도서관이 실제로 소실된 시기는 서기 270년 정도로 추정된다.
어쨌든,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건립에 착수한 이는 소테르(기원전 367~282)왕이었고, 완공한 이는 소테르의 후계자였던 필라델푸스(기원전 308~246)왕이었다. 도서관은 시인으로도 이름을 날린 칼리마코스 시절(기원전 3세기)에 이미 40만 두루마리를 소장했고, 후대 보고를 보면 70만 두루마리를 소장했다고 한다. 그러나 도서관은 단순하게 고대 문헌들을 보관만 하는 장소는 아니었다. 오히려 이곳은, 엄밀한 비판-검증을 거쳐 문헌을 교정하고, 그것의 비판 정본을 만들었으며, 이를 다시 주해하고 번역하는 업무도 수행했으며, 도서 목록을 작성하는 일까지 포괄하는 일종의 연구소였다. 뿐만 아니라 이런 검증 과정을 통해 탄생한 책들을 출판하는 일도 관장했던 곳이기도 했다. 결론적으로, 이 도서관이 헬레니즘 시대 지식의 산실이자 지혜의 배꼽(omphalos)이었던 셈이었다. 아닌 게 아니라, 이곳은 본래 신전이었다. 다시 스트라본의 보고다.
궁정 안에 무사이온(무사 여신들을 섬기는 사원)이 있는데, 이곳은 회랑과 열람실용 엑스에드라(돌로 된 좌석)와 큰 집을 포함하고 있다. 이 집은 무사이온에 속하는 학자들이 공동 식사를 하는 곳이었다. (<지리> 제17권 1장 8절)
인용은, 책이 원래 보물이고 귀한 물건이었다는 점을 입증해준다. 그래서일까? 도서관은 도서관 관계자와 학자들, 무사이온 학생들과 왕실 관계자에게만 허용되었고, 일반 대중에게는 이용이 허락되지 않았다. 하지만 이는 공공 도서관의 최초 기획자였던 페이시스트라토스의 정책과는 정면으로 배치되는 조치다. 원래 도서관은, 적어도 겔리우스에 따르면, “교양 교육을 통해 자유 시민을 양성하기 위해”서 세워진 공동의 재산이었기 때문이다. 본래 사정이 이러함에도, 공공의 보물인 책에 대한 왕실의 관리와 감시는 엄격했다. 아테네의 아고라 근처의 로마 제정 시대 도서관 유적지에서 나온 대리석 비문이 그 증거다.
어떤 책도 가지고 나갈 수 없다. 도서관 개관 시간은 첫번째 호라(오전 7시)에서 여섯번째 호라(정오 12시)까지다. (도란디의 논문 중)
대중은 이용할 수 없었던 도서관
도대체, 왜 왕들은 책의 유출을 막으려 했을까? 물론, 보물이기에 그랬을 것이다. 꼭 그 때문이었을까? 도서관의 이용까지도 엄격하게 통제했기에. 그러나 왕들의 이런 조치는 실은 무사 여신들에게 히브리스(불경죄)를 범하는 짓이었다. 원래 자유 시민의 교양을 돌보는 신들이 무사 여신들이었기 때문이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왕들은 책의 유출은 물론 일반 시민의 도서관 이용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필시 그 까닭이 있을 터. 무엇이었을까? 단적으로, 책에 담긴 통찰과 그 비판의 힘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물론 책은 도서관에 있어야 옳다. 공동의 보물이니까. 이런 의미에서, 책에 대한 왕들, 나아가 권력자들의 통제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간다. 또한 그 덕분에 그 통제도 나름 성공했다 하겠다. 하지만 여기까지다. 왕들이 두려워했던 책에 담긴 혹은 책에서 얻은 통찰과 비판의 힘이 세상으로 나가는 것은 정작 통제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사람들은 책을 도서관 밖으로 가지고 나올 수는 없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영리했다. 그 대신에 그들은 책에 담긴 지혜를 가지고 나왔기 때문이다. 결국 책이 있는 곳은 도서관이지만, 책이 사는 곳은 세상이라는 소리다. 책들의 무덤이기도 한 도서관에서 바로 그 책들이 살아있는 빛으로 세상을 비추는 이야기는 여기까지다. 결론적으로 책은 물리적으로 가둘 수는 있지만, 지식과 지혜는 빛의 날개가 있어 도서관에 가둘 수 없는 무엇인 셈이다. 책이 원래 그런 물건이기에.
안재원 서울대 인문학연구원 HK연구교수
2012년 1월 7일 토요일
염무웅 선생의 에세이--남루의 시대, 열망의 시간
프레시안에 2012년 1월 6일 오후 5시 59분 31초에 올라온 글, 남루의 시대, 열망의 시간. 편집자는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 청춘이 살아남는 법'이라고 제목을 뽑은 듯싶다.
남루의 시대, 열망의 시간
<동물농장>과 <1984>의 저자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스무 살 전후 여러 해 동안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런 중에도 그것이 자기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어서 조만간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가리라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같은 제목을 표제로 삼은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마 누구나 그러했을 테지만, 나도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그 나이 때를 돌아보게 되었다. 대여섯 살 때 나는 나의 미래에 관해 대체 무슨 생각이라는 걸 가져보기나 했던가. 또, 스무 살 무렵이면 대학생이 되어 있을 때인데, 그때 나는 자신의 '본성'에 관해 어떤 자각을 가지거나 그 본성에 거스르는 일을 결행할 인생의 위기 같은 것에 부딪혀 있었던가.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재능이 나타나는 시기와 방식도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오웰의 조숙에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해로울 것은 없다. 오웰이 식민지 인도에서 영국인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것과 달리 나의 동년배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자아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싹트기도 전에 분단된 국토의 어느 한쪽에 자동적으로 속하게 되었다.
얘기가 자못 거창해졌는데, 개인 사정을 말하면 우리 집은 해방 직후 38선 이북의 고향 속초를 떠나 남쪽 타관으로 내려왔고, 그에 따라 자연히 나는 떠돌이 피난민 같은 느낌 속에 소년기를 보냈다. 경상북도 봉화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충청남도 공주로 이사한 뒤에는 다시 충청도 사투리를 익히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집에 오면 또 부모가 쓰는 강원도 말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우리 집에만 닥친 예외적인 고초였던 것은 아니다. 분단과 전쟁을 전후해서 수백만 인구가 별의별 기막힌 곡절에 따라 월남 또는 월북을 했고, 그중 상당수는 평생 부모 자식과도 생이별을 하지 않았던가.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 속에서 용케 대여섯 살 무렵의 장면 두엇이 되살아난다. 탄광으로 유명한 강원도 장성(지금의 태백시)에 잠시 살고 있을 때였다. 무더운 여름날, 흰옷 입은 어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뭐라고 구호를 외치며 만세를 부르기도 하는데, 여자들과 아이들은 큰 구경거리가 난 듯 길가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추측건대 그것은 아마 8·15 해방 1주년을 맞아 벌어진 군중들의 시위행진이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집안에서 본 광경이다. 할아버지가 외출하고 나면 아버지는 벽에 걸린 이승만 사진을 떼어내고 대신 김구 사진을 걸곤 했다. 그러나 저녁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도로 이승만 사진으로 바꾸어 걸었다. 다음날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그러다 보면 그것이 부자 간의 격한 시국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대여섯 살은 작가가 될 꿈을 꾸는 것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척박함 속에서 마치 태풍을 만난 조각배처럼 정치의 압도적인 위력에 휘둘려야 했다.
문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입견 중에는 그들이 게으르고 술을 좋아하고 세상물정에 어둡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과거 한때 글 쓰는 사람이라면 장가드는 데도 넘어야 할 고비가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50년 가까운 내 문단 경험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순진하고 고지식한 문사들이 눈에 잘 띄기는 하지만, 영악하고 이재에 밝은 문인도 많다. 선량하고 소심한 문인이 있는가 하면 주먹 휘두르는 걸 마다않는 문인도 있고, 두주불사도 있지만 술 같은 건 아예 입에 못 대는 사람도 없지 않다.
요컨대 문인이란, 알고 보면 스님도 목사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일반인과 똑같이 오욕칠정(五慾七情)에 괴로워하는 존재들이다. 다만 문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어린 시절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나도 문필가가 되려고 그랬는지,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된 뒤부터는 인쇄된 종이만 보이면 책이든 신문지 조각이든 식탐하는 어린애처럼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시절 우리 주위에는 책다운 책이 너무도 빈곤했다.
그럭저럭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었을 무렵, 다행히 나는 서류 전형만으로 원하는 학교에 합격되었으므로 4월 1일 개학 때까지(5·16 쿠데타 뒤인 1962년도부터 3월 개학으로 당겨져 지금까지 관행으로 굳어졌다) 석 달 넘는 동안 학교 공부에서 해방되어 한껏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마침 우리 집에는 멀리 목포에서 공주사대에 시험 치러 온 학생이 하숙을 들었다. 그는 시험도 치기 전에 이미 합격한 사람처럼 이부자리는 물론이고 사과궤짝 서너 개에 책까지 잔뜩 담아가지고 왔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모두 문학책이었다. <문학예술>, <현대문학> 같은 잡지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시집·소설책도 많았다. 나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었다. 그는 보물 상자를 열듯 책을 꺼내서 선선히 나에게 빌려주었고, 책에 대한 만성적 갈증에 시달리던 나는 맹렬한 기세로 책이 주는 쾌락에 빠져들었다.
그때 읽은 책들 가운데서 무엇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손창섭(孫昌涉)의 소설집 <비 오는 날>(일신사 펴냄, 1957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쩌다 손에 들어온 월간지 <학원>을 통해 교과서 바깥에도 흥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이광수, 김내성의 소설과 <삼국지>, <수호지>, <옥루몽> 따위를 탐독했지만, 나에게 그런 것들을 '문학'의 개념에 결부시켜 사고할 능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떻든 <비 오는 날>은 나로서는 모든 지난날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짙은 초록색 바탕 위에 폐결핵 환자의 각혈처럼 검붉게 칠해진 표지의 장정부터가 불온한 느낌을 주었는데, 과연 거기에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삶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한 전율에 떨면서 나는 손창섭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기 묘사된 악몽과도 같은 불길한 인생들을 목격함으로써 나는 드디어 문학이라는 이름의 위험한 세계를 만났다고 믿었다. 그것은 6·25 전쟁의 참극에도 불구하고 무탈하게 지탱되던 소년 시절의 평화와 순수함이 나의 내부로부터 부서져나가는 일대 번신(翻身)의 체험이었다.
누구나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해가는 성장의 시기에는 정신적 상승의 열망을 품게 마련이다. 그런데 손창섭의 소설은 삶의 누추함을 드러내는 그 가차 없는 통렬성으로 해서 여린 감성을 뒤흔드는 충격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문학 세계를 감싸고 있는 전망의 암담함은 청소년 시기의 성장 지향과는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측면이 있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우리나라에서 염상섭이나 채만식의 소설처럼 인생의 신산(辛酸)을 어떤 미화의 유혹에도 동요됨 없이 실상에 가깝도록 묘사한 작품은 비평가로부터는 높게 평가받을지 몰라도 독자들에게는 외면받기 일쑤인 반면에 성장 소설 내지 연애 소설의 범주에 드는 작품들은 대체로 독자의 애호를 받는다. 김정한(金廷漢), 송기숙(宋基淑), 이문구(李文求)처럼 문학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데 서투른 작가들이 잘 팔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마 그 까닭의 하나는 한국에서 문학 독자의 주력 부대가 젊은 세대이기 때문, 다른 말로 성인 독자가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내 정신의 지배자는 손창섭에서 차츰 함석헌으로 옮겨갔다. 1958년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맞은 봄이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우리 학교에는 사대생들이 교생 실습을 나왔다. 교생들이란 대개 서투르고 쩔쩔 매어 교실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드는데, 유독 국어 교생 한 분은 아주 능숙하게 수업을 진행할뿐더러 우리보고 무엇이든 기탄없이 질문하라고 유도했고 자상한 설명으로 우리를 매혹했다.
나는 단 한 시간의 수업으로 홀딱 반해서 그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했고, 교생 실습이 끝난 뒤에도 접촉은 이어졌다. 공주대학교 명예교수인 시인 조재훈(趙載勳)이 바로 그 사람인데, 나는 요즘도 1년에 한두 번쯤 그를 만난다.
무엇보다 조재훈의 하숙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그의 방은 들창과 출입구를 제외한 사방 벽이 온통 책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과궤짝 서너 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당연히 나는 여러 권의 책을 그에게서 빌려보았는데, 그중 단연코 잊지 못하는 것은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성광문화사 펴냄, 1950년)이다.
나는 이미 <사상계>에 연재되던 함석헌의 글을 읽고 그의 독특한 문체와 강렬한 비전에 매혹되고 있었지만, 그에게 이런 역사책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조재훈은 가져다 읽어보라고 책을 꺼내주었고, 나는 연신 감동하면서 책에 몰입했다. 얼마 후 다시 그 책을 빌려다 읽었고, 그 후 세 번째 빌리러 갔을 때에는 조재훈은 아예 나보고 책을 가지라고 했다. 지금도 그 책은 귀중본의 하나로 내 서가에 꽂혀 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는 <비 오는 날>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나를 격동시켰다. 비유컨대 <비 오는 날>이 나를 따뜻한 온실에서 바람 불고 잡초 무성한 들판으로 끌어냈다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는 황량하고 캄캄한 벌판 가운데 서 있는 나에게 환한 관솔불 하나를 건네준 것이었다.
알다시피 함석헌은 20세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의 한분으로, 그의 사상의 깊이와 넓이는 아직 제대로 정리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당시의 어린 나에게는 현실에 타협 않는 그의 불굴의 이상주의와 민족사의 고난을 영광의 모멘트로 해석하는 그의 전복적 사관이 피난민 같은 생활의 각박함에 맞서 나 자신의 소망을 밀고나가도록 고무하는 용기의 한 원천이 되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는 한국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간행된 탓에 대중적으로 널리 읽힐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1973년 YMCA가 함석헌의 이 책을 기념하기 위해 주최한 어느 공개 대담에서 그는 자신에게도 책이 남아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함석헌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대폭 손질하고 보완하여 1965년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제목의 개정판을 내었다.
이 개정판은 단지 제목만 달라지고 한국 전쟁을 서술한 부분만 추가한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1950년의 초판과 1965년의 개정판을 함석헌의 문체 변화 및 그에 따른 사상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비교해보고 싶은 내심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초판의 작은 활자와 불량한 인쇄 상태를 감안하면 현재의 내 시력으로는 그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
'학교 폭력', '교실 붕괴', '청년 실업', '무한 경쟁' 같은 살벌한 낱말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런 글을 쓰는 심정이 스스로도 한심하다. 돌이켜보면 1950년대는 한 마디로 전쟁과 빈곤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도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의 풍화작용 탓인지 나에게 그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따뜻하고 투명했던 날들로 미화되어 있다.
공주 같은 시골에서는 과외고 학원이고 도무지 없었고, 고3 한 해 동안만 입시 공부에 집중하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진학을 체념한 동급생도 많았지만 그들이 교실의 분위기를 망가뜨리지 않았고, 대학 입시에 떨어지는 것을 인생의 실패로 여기는 풍조도 아직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물질적 풍요가 증가할수록 나의 세대가 누린 행복의 총량은 점점 더 감소하여, 오늘날 중학생은 최악의 우범 집단으로 묘사되는 비극적 사태에 이르렀다.
거듭되는 얘기지만,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해가는 시기에는 누구나 정체불명의 열망과 일종의 광증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청소년들의 좌절과 일탈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하고, 더러는 극단적인 범죄의 양상으로 나타나 개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그런 부정적 외피 자체가 아니라 외피 안에 들어 있는 순수한 영혼들의 상승을 향한 갈망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의 경우 왜 갈망의 에너지는 자아실현의 동력으로 되지 못하고 타자를 향한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한 파괴력으로 분출되는가. 그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의 사회적 실체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고민하고 밝혀내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인데, 내 생각에 문제는 언제나 그들이 아니라 기존 사회이다.
가령, 최근 대구의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이 새삼 떠들썩하게 거론되고 있지만, 그렇게 떠들어대는 오늘의 주류 언론이 그럴 만한 도덕적 자격을 갖고 있는지 나에겐 의문이다. 그들 자신 어린 중학생에 불과한 가해 학생 몇몇을 감옥에 집어넣고 그들을 닦달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우월자로서의 기존 체제가 법과 도덕의 이름으로 약자에게 저지르는 또 하나의 가학 행위, 일종의 마녀 사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가령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의 경우, 이것은 단지 실정법의 위반 여부에 관계된 단순한 형사 사건이 아니라 이 나라 상층 계급의 부패와 타락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실증하는 구조적 사건이다. 이 나라에서 판사나 검사 또는 판·검사였다가 지금 변호사인 분들은 반드시 이 사건을 깊이 들여다볼 의무가 있다. 내 생각에 이 사건을 보고서도 자기 직업에 치욕과 절망을 느끼지 않는 법관은 법관으로서 구제불능이다.
그런데 오늘날 '벤츠 여검사 사건'의 당사자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이 사회의 실권자들이고, 그런 실권자의 일원이 되기 위해 또는 그런 실권자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전쟁을 끝내는 데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자기 실력에 맞게 싸워야 한다.
남루의 시대, 열망의 시간
<동물농장>과 <1984>의 저자로 유명한 조지 오웰은 '나는 왜 쓰는가'라는 에세이에서 "아주 어릴 때부터, 아마도 대여섯 살 때부터 나는 내가 커서 작가가 되리란 걸 알고 있었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스무 살 전후 여러 해 동안 작가가 되기를 포기하려고 했던 적도 있었지만, 그런 중에도 그것이 자기의 '본성을 거스르는 일'이어서 조만간 다시 책상 앞으로 돌아가리라는 걸 의식하고 있었다고 털어놓고 있다.
같은 제목을 표제로 삼은 산문집 <나는 왜 쓰는가>(이한중 옮김, 한겨레출판 펴냄)에서 이 대목을 읽으면서, 아마 누구나 그러했을 테지만, 나도 자연스럽게 나 자신의 그 나이 때를 돌아보게 되었다. 대여섯 살 때 나는 나의 미래에 관해 대체 무슨 생각이라는 걸 가져보기나 했던가. 또, 스무 살 무렵이면 대학생이 되어 있을 때인데, 그때 나는 자신의 '본성'에 관해 어떤 자각을 가지거나 그 본성에 거스르는 일을 결행할 인생의 위기 같은 것에 부딪혀 있었던가.
물론 사람마다 타고난 재능이 다 다를 뿐만 아니라 그 재능이 나타나는 시기와 방식도 서로 같지 않기 때문에 오웰의 조숙에 위축될 필요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자기를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 해로울 것은 없다. 오웰이 식민지 인도에서 영국인 관리의 아들로 태어난 것과 달리 나의 동년배들은 식민지 조선에서 태어나 자아의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싹트기도 전에 분단된 국토의 어느 한쪽에 자동적으로 속하게 되었다.
얘기가 자못 거창해졌는데, 개인 사정을 말하면 우리 집은 해방 직후 38선 이북의 고향 속초를 떠나 남쪽 타관으로 내려왔고, 그에 따라 자연히 나는 떠돌이 피난민 같은 느낌 속에 소년기를 보냈다. 경상북도 봉화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쓰면서 초등학교를 다녔고, 충청남도 공주로 이사한 뒤에는 다시 충청도 사투리를 익히면서 중·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집에 오면 또 부모가 쓰는 강원도 말로 대화를 나누었다. 그러나 생각해 보면 이것은 우리 집에만 닥친 예외적인 고초였던 것은 아니다. 분단과 전쟁을 전후해서 수백만 인구가 별의별 기막힌 곡절에 따라 월남 또는 월북을 했고, 그중 상당수는 평생 부모 자식과도 생이별을 하지 않았던가.
사라진 줄 알았던 기억 속에서 용케 대여섯 살 무렵의 장면 두엇이 되살아난다. 탄광으로 유명한 강원도 장성(지금의 태백시)에 잠시 살고 있을 때였다. 무더운 여름날, 흰옷 입은 어른들이 태극기를 흔들며 거리를 행진하고 있다. 뭐라고 구호를 외치며 만세를 부르기도 하는데, 여자들과 아이들은 큰 구경거리가 난 듯 길가에서 그것을 바라보고 있다. 추측건대 그것은 아마 8·15 해방 1주년을 맞아 벌어진 군중들의 시위행진이었을 것이다.
다음에는 집안에서 본 광경이다. 할아버지가 외출하고 나면 아버지는 벽에 걸린 이승만 사진을 떼어내고 대신 김구 사진을 걸곤 했다. 그러나 저녁에 돌아온 할아버지는 화를 내며 도로 이승만 사진으로 바꾸어 걸었다. 다음날도 같은 일이 반복되었고, 그러다 보면 그것이 부자 간의 격한 시국 토론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이렇게 나의 대여섯 살은 작가가 될 꿈을 꾸는 것과는 너무도 거리가 먼 척박함 속에서 마치 태풍을 만난 조각배처럼 정치의 압도적인 위력에 휘둘려야 했다.
문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선입견 중에는 그들이 게으르고 술을 좋아하고 세상물정에 어둡다는 것이 있다. 그래서 과거 한때 글 쓰는 사람이라면 장가드는 데도 넘어야 할 고비가 하나 더 있었다. 하지만 50년 가까운 내 문단 경험에 의하면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 순진하고 고지식한 문사들이 눈에 잘 띄기는 하지만, 영악하고 이재에 밝은 문인도 많다. 선량하고 소심한 문인이 있는가 하면 주먹 휘두르는 걸 마다않는 문인도 있고, 두주불사도 있지만 술 같은 건 아예 입에 못 대는 사람도 없지 않다.
요컨대 문인이란, 알고 보면 스님도 목사도 다를 바 없다고 생각하는데, 일반인과 똑같이 오욕칠정(五慾七情)에 괴로워하는 존재들이다. 다만 문인들에게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면, 그것은 그들이 어린 시절 책읽기를 좋아했다는 것이다. 나도 문필가가 되려고 그랬는지, 문자를 해독할 수 있게 된 뒤부터는 인쇄된 종이만 보이면 책이든 신문지 조각이든 식탐하는 어린애처럼 가리지 않고 달려들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시절 우리 주위에는 책다운 책이 너무도 빈곤했다.
그럭저럭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었을 무렵, 다행히 나는 서류 전형만으로 원하는 학교에 합격되었으므로 4월 1일 개학 때까지(5·16 쿠데타 뒤인 1962년도부터 3월 개학으로 당겨져 지금까지 관행으로 굳어졌다) 석 달 넘는 동안 학교 공부에서 해방되어 한껏 자유를 누릴 수 있었다.
마침 우리 집에는 멀리 목포에서 공주사대에 시험 치러 온 학생이 하숙을 들었다. 그는 시험도 치기 전에 이미 합격한 사람처럼 이부자리는 물론이고 사과궤짝 서너 개에 책까지 잔뜩 담아가지고 왔는데, 놀랍게도 그것은 모두 문학책이었다. <문학예술>, <현대문학> 같은 잡지도 있었지만 처음 보는 시집·소설책도 많았다. 나로서는 눈이 휘둥그레질 일이었다. 그는 보물 상자를 열듯 책을 꺼내서 선선히 나에게 빌려주었고, 책에 대한 만성적 갈증에 시달리던 나는 맹렬한 기세로 책이 주는 쾌락에 빠져들었다.
그때 읽은 책들 가운데서 무엇보다 큰 충격을 받은 것은 손창섭(孫昌涉)의 소설집 <비 오는 날>(일신사 펴냄, 1957년)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어쩌다 손에 들어온 월간지 <학원>을 통해 교과서 바깥에도 흥미로운 세계가 있다는 것을 알았고, 중학생이 되어서는 이광수, 김내성의 소설과 <삼국지>, <수호지>, <옥루몽> 따위를 탐독했지만, 나에게 그런 것들을 '문학'의 개념에 결부시켜 사고할 능력이 있었던 것 같지는 않다.
어떻든 <비 오는 날>은 나로서는 모든 지난날과의 단절을 의미했다. 짙은 초록색 바탕 위에 폐결핵 환자의 각혈처럼 검붉게 칠해진 표지의 장정부터가 불온한 느낌을 주었는데, 과연 거기에는 나의 상상을 뛰어넘는 암울하고 절망적인 삶이 적나라하게 그려져 있었다. 고압전류에 감전된 듯한 전율에 떨면서 나는 손창섭의 세계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거기 묘사된 악몽과도 같은 불길한 인생들을 목격함으로써 나는 드디어 문학이라는 이름의 위험한 세계를 만났다고 믿었다. 그것은 6·25 전쟁의 참극에도 불구하고 무탈하게 지탱되던 소년 시절의 평화와 순수함이 나의 내부로부터 부서져나가는 일대 번신(翻身)의 체험이었다.
누구나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해가는 성장의 시기에는 정신적 상승의 열망을 품게 마련이다. 그런데 손창섭의 소설은 삶의 누추함을 드러내는 그 가차 없는 통렬성으로 해서 여린 감성을 뒤흔드는 충격 효과를 발휘할 수는 있었지만, 그의 문학 세계를 감싸고 있는 전망의 암담함은 청소년 시기의 성장 지향과는 본질적으로 충돌하는 측면이 있었다.
조금 다른 얘기지만, 우리나라에서 염상섭이나 채만식의 소설처럼 인생의 신산(辛酸)을 어떤 미화의 유혹에도 동요됨 없이 실상에 가깝도록 묘사한 작품은 비평가로부터는 높게 평가받을지 몰라도 독자들에게는 외면받기 일쑤인 반면에 성장 소설 내지 연애 소설의 범주에 드는 작품들은 대체로 독자의 애호를 받는다. 김정한(金廷漢), 송기숙(宋基淑), 이문구(李文求)처럼 문학사적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남녀의 사랑을 다루는 데 서투른 작가들이 잘 팔리지 않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아마 그 까닭의 하나는 한국에서 문학 독자의 주력 부대가 젊은 세대이기 때문, 다른 말로 성인 독자가 빈약하기 때문일 것이다.
어떻든 내 정신의 지배자는 손창섭에서 차츰 함석헌으로 옮겨갔다. 1958년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맞은 봄이었다, 예년과 마찬가지로 우리 학교에는 사대생들이 교생 실습을 나왔다. 교생들이란 대개 서투르고 쩔쩔 매어 교실 분위기를 산만하게 만드는데, 유독 국어 교생 한 분은 아주 능숙하게 수업을 진행할뿐더러 우리보고 무엇이든 기탄없이 질문하라고 유도했고 자상한 설명으로 우리를 매혹했다.
나는 단 한 시간의 수업으로 홀딱 반해서 그에게 개인적으로 접근했고, 교생 실습이 끝난 뒤에도 접촉은 이어졌다. 공주대학교 명예교수인 시인 조재훈(趙載勳)이 바로 그 사람인데, 나는 요즘도 1년에 한두 번쯤 그를 만난다.
무엇보다 조재훈의 하숙집을 처음 찾아갔을 때의 감격을 잊을 수 없다. 그의 방은 들창과 출입구를 제외한 사방 벽이 온통 책으로 덮여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사과궤짝 서너 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당연히 나는 여러 권의 책을 그에게서 빌려보았는데, 그중 단연코 잊지 못하는 것은 함석헌의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역사>(성광문화사 펴냄, 1950년)이다.
나는 이미 <사상계>에 연재되던 함석헌의 글을 읽고 그의 독특한 문체와 강렬한 비전에 매혹되고 있었지만, 그에게 이런 역사책이 있다는 것은 모르고 있었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조재훈은 가져다 읽어보라고 책을 꺼내주었고, 나는 연신 감동하면서 책에 몰입했다. 얼마 후 다시 그 책을 빌려다 읽었고, 그 후 세 번째 빌리러 갔을 때에는 조재훈은 아예 나보고 책을 가지라고 했다. 지금도 그 책은 귀중본의 하나로 내 서가에 꽂혀 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는 <비 오는 날>과는 전혀 다른 차원에서 나를 격동시켰다. 비유컨대 <비 오는 날>이 나를 따뜻한 온실에서 바람 불고 잡초 무성한 들판으로 끌어냈다면,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는 황량하고 캄캄한 벌판 가운데 서 있는 나에게 환한 관솔불 하나를 건네준 것이었다.
알다시피 함석헌은 20세기 한국을 대표할 만한 인물의 한분으로, 그의 사상의 깊이와 넓이는 아직 제대로 정리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어쨌든 당시의 어린 나에게는 현실에 타협 않는 그의 불굴의 이상주의와 민족사의 고난을 영광의 모멘트로 해석하는 그의 전복적 사관이 피난민 같은 생활의 각박함에 맞서 나 자신의 소망을 밀고나가도록 고무하는 용기의 한 원천이 되었다.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는 한국 전쟁이 터지기 직전에 간행된 탓에 대중적으로 널리 읽힐 수 있는 기회를 갖지 못했다. 1973년 YMCA가 함석헌의 이 책을 기념하기 위해 주최한 어느 공개 대담에서 그는 자신에게도 책이 남아 있지 않음을 밝히고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함석헌은 <성서적 입장에서 본 조선 역사>를 대폭 손질하고 보완하여 1965년 <뜻으로 본 한국 역사>라는 제목의 개정판을 내었다.
이 개정판은 단지 제목만 달라지고 한국 전쟁을 서술한 부분만 추가한 것이 아니다. 사실 나는 1950년의 초판과 1965년의 개정판을 함석헌의 문체 변화 및 그에 따른 사상의 변화라는 측면에서 비교해보고 싶은 내심의 계획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초판의 작은 활자와 불량한 인쇄 상태를 감안하면 현재의 내 시력으로는 그 계획을 접을 수밖에 없는 것이 유감이다.
'학교 폭력', '교실 붕괴', '청년 실업', '무한 경쟁' 같은 살벌한 낱말들이 난무하는 시대에 이런 글을 쓰는 심정이 스스로도 한심하다. 돌이켜보면 1950년대는 한 마디로 전쟁과 빈곤에 의해 규정되는 시대였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으로도 억압적이고 폭력적이었다. 그러나 시간의 풍화작용 탓인지 나에게 그 시대는 물질적으로는 가난하지만 정신적으로는 따뜻하고 투명했던 날들로 미화되어 있다.
공주 같은 시골에서는 과외고 학원이고 도무지 없었고, 고3 한 해 동안만 입시 공부에 집중하면 대학에 갈 수 있었다. 가정 형편 때문에 진학을 체념한 동급생도 많았지만 그들이 교실의 분위기를 망가뜨리지 않았고, 대학 입시에 떨어지는 것을 인생의 실패로 여기는 풍조도 아직 없었다. 그런데 어찌된 셈인지 물질적 풍요가 증가할수록 나의 세대가 누린 행복의 총량은 점점 더 감소하여, 오늘날 중학생은 최악의 우범 집단으로 묘사되는 비극적 사태에 이르렀다.
거듭되는 얘기지만, 소년에서 청년으로 변해가는 시기에는 누구나 정체불명의 열망과 일종의 광증에 시달리게 마련이다. 그래서 때로는 청소년들의 좌절과 일탈이 안타까움을 자아내기도 하고, 더러는 극단적인 범죄의 양상으로 나타나 개탄의 대상이 될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가 보아야 하는 것은 그런 부정적 외피 자체가 아니라 외피 안에 들어 있는 순수한 영혼들의 상승을 향한 갈망이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청소년들의 경우 왜 갈망의 에너지는 자아실현의 동력으로 되지 못하고 타자를 향한 또는 자기 자신을 향한 파괴력으로 분출되는가. 그들에게 가해지는 압박의 사회적 실체는 어떤 것인가. 우리가 고민하고 밝혀내야 할 것이 바로 그것인데, 내 생각에 문제는 언제나 그들이 아니라 기존 사회이다.
가령, 최근 대구의 중학생 자살 사건을 계기로 학교 폭력이 새삼 떠들썩하게 거론되고 있지만, 그렇게 떠들어대는 오늘의 주류 언론이 그럴 만한 도덕적 자격을 갖고 있는지 나에겐 의문이다. 그들 자신 어린 중학생에 불과한 가해 학생 몇몇을 감옥에 집어넣고 그들을 닦달하는 데 그친다면 그것은 우월자로서의 기존 체제가 법과 도덕의 이름으로 약자에게 저지르는 또 하나의 가학 행위, 일종의 마녀 사냥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또 가령 이른바 '벤츠 여검사 사건'의 경우, 이것은 단지 실정법의 위반 여부에 관계된 단순한 형사 사건이 아니라 이 나라 상층 계급의 부패와 타락이 어느 정도에 이르렀는지 실증하는 구조적 사건이다. 이 나라에서 판사나 검사 또는 판·검사였다가 지금 변호사인 분들은 반드시 이 사건을 깊이 들여다볼 의무가 있다. 내 생각에 이 사건을 보고서도 자기 직업에 치욕과 절망을 느끼지 않는 법관은 법관으로서 구제불능이다.
그런데 오늘날 '벤츠 여검사 사건'의 당사자들과 같은 부류의 사람들이 이 사회의 실권자들이고, 그런 실권자의 일원이 되기 위해 또는 그런 실권자의 일원으로 만들기 위해 만인에 대한 만인의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전쟁을 끝내는 데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자기 실력에 맞게 싸워야 한다.
2012년 1월 6일 금요일
'너도 나도' 출판기념회를 여는 이유
왜 정치인들이 출마를 앞두고 '너도 나도' 출판기념회를 여는 것일까. 매일신문 2012년 1월 6일자 장성현 기자의 보도. 출마예정자 출판기념회 초대장은 고지서? --정치자금 모금 수단 활용 출마예정자 '필수 코스'로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출마예정자들과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4.11 총선 90일 전인 1월 12일까지 열 수 있는데 작년 연말부터 5일 현재 대구지역 출마예정자들만 30여회의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때문에 출마예정자들의 지인들은 책구입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할 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특히 기업인과 공직자들의 고민이 크다. 대구지역 특성상 한다리만 건너면 ‘사돈의 팔촌’까지 연결되고, 웬만한 사람이면 출마예정자들과의 크고 작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를 넣어야 하나요?”
5일 오전 한 기업인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봉투에 얼마를 넣고, 축하 문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초청장은 받았는데 안가볼 수도 없고, 또 얼마를 내야 적정한지를 모르겠다”며 “다른 기업인에게도 물어 봐서 적정 금액을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들도 잇따르는 출판기념회에 마음이 편치않다. 대부분의 출마예정자들과 인연이 있는데다 또 당선후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시 한 국장급 간부는 “공직자들은 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출판기념회장에 직접 가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아 지인을 통해 봉투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J씨는“출마예정자의 경우 보통 1쇄 기준으로 최소 3천부에서 많게는 7천, 8천부를 찍고 국회의원들은 최소 5천부에서 1만부를 찍는데 출판기념회를 한 번 하면 대부분 소진된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기념회에 자주 다니는 한 기업인은 “친소관계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30만 원이나 5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을 책값 명목으로 내는 경우도 있다”고 실토했다.
총선 출마예정자들은 출판기념회가 선관위에 신고를 않아도 되는데다가 자연스럽게 정치자금을 모으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 '너도 나도'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대구시 선관위 관계자는“출판사가 주최하는 출판기념회를 단속할 권한은 없다”면서 “다만 정치인이 무료로 책이나 홍보물을 배포하는 행위는 선거법에 저촉돼 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기획출판, 열흘만에 ‘뚝딱’
“정치인 책이요? 열흘이면 만들어 드립니다.”
4.11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A씨는 최근 자신의 삶과 정치 철학에 대한 책을 출간하고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당시 5천여명이 몰려 행사장 주변 교통이 마비되다시피했다. A씨가 책을 출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일 남짓. A씨가 한 일이라곤 평소 써 둔 소소한 글과 신년사, 기고, 강연자료 등 온갖 원고를 끌어모아 출판사에 가져다준게 전부였다. 또다른 예비 후보자 B씨의 책은 구성과 제목, 편집 방향도 출판사와 몇 번의 회의를 거치고 나니 어렵지 않게 결정됐다. B씨는 “책에 색다른 내용을 담기보다는 출마 의지를 알리고 자신의 삶이 어떠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더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책 발간은 장기간 기획하고 원고준비를 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요즘 예비 후보자들은 1~2주일이면 책 한권을 찍어내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대형 출판사와 정치 컨설팅업체가 책의 기획과 편집, 원고 수정까지 모든 걸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총선 지망생들의 책은 보통 5천만~6천만원의 비용이 들고, 기본 원고가 있을 경우 열흘이면 작업이 끝난다. 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출판기념회까지 연 후보자가 자신의 자서전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올 4월 총선을 앞두고 출마예정자들과 국회의원들의 출판기념회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출판기념회는 4.11 총선 90일 전인 1월 12일까지 열 수 있는데 작년 연말부터 5일 현재 대구지역 출마예정자들만 30여회의 출판기념회를 가졌다. 이때문에 출마예정자들의 지인들은 책구입 봉투에 얼마를 넣어야 할 지 고민이 이만 저만이 아니다. 특히 기업인과 공직자들의 고민이 크다. 대구지역 특성상 한다리만 건너면 ‘사돈의 팔촌’까지 연결되고, 웬만한 사람이면 출마예정자들과의 크고 작은 인연이 있기 때문이다.
◆“얼마를 넣어야 하나요?”
5일 오전 한 기업인이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봉투에 얼마를 넣고, 축하 문구를 어떻게 써야 할지 모르겠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초청장은 받았는데 안가볼 수도 없고, 또 얼마를 내야 적정한지를 모르겠다”며 “다른 기업인에게도 물어 봐서 적정 금액을 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고위 공직자들도 잇따르는 출판기념회에 마음이 편치않다. 대부분의 출마예정자들과 인연이 있는데다 또 당선후의 상황도 염두에 둬야 하기 때문이다.
대구시 한 국장급 간부는 “공직자들은 더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출판기념회장에 직접 가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아 지인을 통해 봉투를 전달하고 있다”고 말했다. 출판업에 종사하는 J씨는“출마예정자의 경우 보통 1쇄 기준으로 최소 3천부에서 많게는 7천, 8천부를 찍고 국회의원들은 최소 5천부에서 1만부를 찍는데 출판기념회를 한 번 하면 대부분 소진된다”고 말했다. 최근 출판기념회에 자주 다니는 한 기업인은 “친소관계에 따라 액수가 달라진다. 30만 원이나 50만 원, 많게는 100만 원을 책값 명목으로 내는 경우도 있다”고 실토했다.
총선 출마예정자들은 출판기념회가 선관위에 신고를 않아도 되는데다가 자연스럽게 정치자금을 모으고 인지도를 높일 수 있어 '너도 나도' 출판기념회를 열고 있다. 대구시 선관위 관계자는“출판사가 주최하는 출판기념회를 단속할 권한은 없다”면서 “다만 정치인이 무료로 책이나 홍보물을 배포하는 행위는 선거법에 저촉돼 처벌 대상이 된다”고 말했다.
◆기획출판, 열흘만에 ‘뚝딱’
“정치인 책이요? 열흘이면 만들어 드립니다.”
4.11 총선에 출마할 예정인 A씨는 최근 자신의 삶과 정치 철학에 대한 책을 출간하고 성대한 출판기념회를 열었다. 당시 5천여명이 몰려 행사장 주변 교통이 마비되다시피했다. A씨가 책을 출간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불과 10일 남짓. A씨가 한 일이라곤 평소 써 둔 소소한 글과 신년사, 기고, 강연자료 등 온갖 원고를 끌어모아 출판사에 가져다준게 전부였다. 또다른 예비 후보자 B씨의 책은 구성과 제목, 편집 방향도 출판사와 몇 번의 회의를 거치고 나니 어렵지 않게 결정됐다. B씨는 “책에 색다른 내용을 담기보다는 출마 의지를 알리고 자신의 삶이 어떠했다는 사실을 보여주는데 더 초점을 뒀다”고 말했다.
책 발간은 장기간 기획하고 원고준비를 해야 가능한 일이지만 요즘 예비 후보자들은 1~2주일이면 책 한권을 찍어내는 놀라운 ‘실력’을 보여준다. 대형 출판사와 정치 컨설팅업체가 책의 기획과 편집, 원고 수정까지 모든 걸 도맡아 해주기 때문이다. 출판업계에 따르면 총선 지망생들의 책은 보통 5천만~6천만원의 비용이 들고, 기본 원고가 있을 경우 열흘이면 작업이 끝난다. 지역 정치권 한 관계자는 “출판기념회까지 연 후보자가 자신의 자서전에 무슨 내용이 있는지도 모르는 경우도 허다하다”고 말했다.
장성현기자 jacksoul@msnet.co.kr
공지희 글, 김지안 그림--<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
공지희 글, 김지안 그림--<직지와 외규장각 의궤의 어머니 박병선>(글로연, 2012년 1월 6일 방행)을 읽었다.
박병선 선생께서 돌아가신 것이 2011년 11월 23일의 일.
공지희 작가가 박병선 선생을 직접 인터뷰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엮고, 또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어린 학생들을 위해 쓴 일대기다. 지난해 3월에 글로연 출판사의 오승현 편집장이 파리에 가서 박병선 박사를 만났고, 2011년 9월 말부터 10월 20일, 박병선 선생이 의식을 잃기 전까지 파리의 병실에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박병선 선생은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멀리 이곳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내 조국 대한민국의 미래인 어린이 여러분에게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중략) 나는 여러분이 언제나 밝고 건강하길 바라며 늘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더불어 나는 여러분이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바르게 익히고,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지키고 가꿔주길 바랍니다."
이 책의 98쪽에 나오는 한 대목.
"도서관의 책은 누구든지 보라고 있는 것이고, 자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공개하고 홍보를 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는 것이 도서관의 임무인데 왜, 그 책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만으로 이렇게 나쁜 사람, 반역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박병선 선생의 주요 논문과 저서:
<한국 금속활자에 대한 연구> 논문(1973년, 29회 동양학자회의)
<조선조의 의궤-파리 소장본과 국내 소장본의 서지학적 비교 검토>(1986)
<한국의 인쇄>(2002-2006,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프랑스 소재 한국독립운동 자료집1>(2006년)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2008년)
박병선 선생께서 돌아가신 것이 2011년 11월 23일의 일.
공지희 작가가 박병선 선생을 직접 인터뷰해서 여러 가지 에피소드를 엮고, 또한 각종 자료를 바탕으로 어린 학생들을 위해 쓴 일대기다. 지난해 3월에 글로연 출판사의 오승현 편집장이 파리에 가서 박병선 박사를 만났고, 2011년 9월 말부터 10월 20일, 박병선 선생이 의식을 잃기 전까지 파리의 병실에서 인터뷰를 했다고 한다.
박병선 선생은 '추천의 글'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멀리 이곳 프랑스에 살고 있지만, 내 조국 대한민국의 미래인 어린이 여러분에게 깊은 사랑과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중략) 나는 여러분이 언제나 밝고 건강하길 바라며 늘 사랑이 가득한 마음을 지닌 사람으로 성장하길 바랍니다. 더불어 나는 여러분이 한국의 문화와 역사를 바르게 익히고, 많은 관심과 사랑으로 지키고 가꿔주길 바랍니다."
이 책의 98쪽에 나오는 한 대목.
"도서관의 책은 누구든지 보라고 있는 것이고, 자료들은 될 수 있는 대로 공개하고 홍보를 해서라도 많은 사람들이 보도록 하는 것이 도서관의 임무인데 왜, 그 책이 있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만으로 이렇게 나쁜 사람, 반역자 취급을 받아야 하는가?"
박병선 선생의 주요 논문과 저서:
<한국 금속활자에 대한 연구> 논문(1973년, 29회 동양학자회의)
<조선조의 의궤-파리 소장본과 국내 소장본의 서지학적 비교 검토>(1986)
<한국의 인쇄>(2002-2006, 한국어, 영어, 스페인어, 프랑스어)
<프랑스 소재 한국독립운동 자료집1>(2006년)
<병인년, 프랑스가 조선을 침노하다>(2008년)
16세기의 사회적 매체--마틴 루터는 어떻게 바이러스처럼 퍼졌는가
더 이코노미스트 2011년 12월 17일자 기사, Social media in the 16th Century--How Luther went viral: Five centuries before Facebook and the Arab spring, social media helped bring about the Reformation
Now the internet offers a new perspective on this long-running debate, namely that the important factor was not the printing press itself (which had been around since the 1450s), but the wider system of media sharing along social networks—what is called “social media” today. Luther, like the Arab revolutionaries, grasped the dynamics of this new media environment very quickly, and saw how it could spread his message.(이제 인터넷이 이 오래 된 논쟁에 새로운 시각을 제공하고 있다. 즉 인쇄기 그 자체--이는 1450년대 무렵에 생겨남--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사회적 네트워크를 통한 매체 공유의 광범위한 시스템--오늘날 이것을 '사회적 매체'라고 부른다--이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
New post from Martin Luther
(마틴 루터의 새로운 게시물)
Mubarak and Leo X, the anciens régimes 무바라크와 레오10세, 구체제
Unlike larger books, which took weeks or months to produce, a pamphlet could be printed in a day or two. Copies of the initial edition, which cost about the same as a chicken, would first spread throughout the town where it was printed. Luther’s sympathisers recommended it to their friends. Booksellers promoted it and itinerant colporteurs hawked it. Travelling merchants, traders and preachers would then carry copies to other towns, and if they sparked sufficient interest, local printers would quickly produce their own editions, in batches of 1,000 or so, in the hope of cashing in on the buzz. A popular pamphlet would thus spread quickly without its author’s involvement.
As with “Likes” and retweets today, the number of reprints serves as an indicator of a given item’s popularity. Luther’s pamphlets were the most sought after; a contemporary remarked that they “were not so much sold as seized”. His first pamphlet written in German, the “Sermon on Indulgences and Grace”, was reprinted 14 times in 1518 alone, in print runs of at least 1,000 copies each time. Of the 6,000 different pamphlets that were published in German-speaking lands between 1520 and 1526, some 1,700 were editions of a few dozen works by Luther. In all, some 6m-7m pamphlets were printed in the first decade of the Reformation, more than a quarter of them Luther’s.
Although Luther was the most prolific and popular author, there were many others on both sides of the debate. Tetzel, the indulgence-seller, was one of the first to respond to him in print, firing back with his own collection of theses. Others embraced the new pamphlet format to weigh in on the merits of Luther’s arguments, both for and against, like argumentative bloggers. Sylvester Mazzolini defended the pope against Luther in his “Dialogue Against the Presumptuous Theses of Martin Luther”. He called Luther “a leper with a brain of brass and a nose of iron” and dismissed his arguments on the basis of papal infallibility. Luther, who refused to let any challenge go unanswered, took a mere two days to produce his own pamphlet in response, giving as good as he got. “I am sorry now that I despised Tetzel,” he wrote. “Ridiculous as he was, he was more acute than you. You cite no scripture. You give no reasons.”
Being able to follow and discuss such back-and-forth exchanges of views, in which each author quoted his opponent’s words in order to dispute them, gave people a thrilling and unprecedented sense of participation in a vast, distributed debate. Arguments in their own social circles about the merits of Luther’s views could be seen as part of a far wider discourse, both spoken and printed. Many pamphlets called upon the reader to discuss their contents with others and read them aloud to the illiterate. People read and discussed pamphlets at home with their families, in groups with their friends, and in inns and taverns. Luther’s pamphlets were read out at spinning bees in Saxony and in bakeries in Tyrol. In some cases entire guilds of weavers or leather-workers in particular towns declared themselves supporters of the Reformation, indicating that Luther’s ideas were being propagated in the workplace. One observer remarked in 1523 that better sermons could be heard in the inns of Ulm than in its churches, and in Basel in 1524 there were complaints about people preaching from books and pamphlets in the town’s taverns. Contributors to the debate ranged from the English king Henry VIII, whose treatise attacking Luther (co-written with Thomas More) earned him the title “Defender of the Faith” from the pope, to Hans Sachs, a shoemaker from Nuremberg who wrote a series of hugely popular songs in support of Luther.
A multimedia campaign
It was not just words that travelled along the social networks of the Reformation era, but music and images too. The news ballad, like the pamphlet, was a relatively new form of media. It set a poetic and often exaggerated description of contemporary events to a familiar tune so that it could be easily learned, sung and taught to others. News ballads were often “contrafacta” that deliberately mashed up a pious melody with secular or even profane lyrics. They were distributed in the form of printed lyric sheets, with a note to indicate which tune they should be sung to. Once learned they could spread even among the illiterate through the practice of communal singing.
Both reformers and Catholics used this new form to spread information and attack their enemies. “We are Starting to Sing a New Song”, Luther’s first venture into the news-ballad genre, told the story of two monks who had been executed in Brussels in 1523 after refusing to recant their Lutheran beliefs. Luther’s enemies denounced him as the Antichrist in song, while his supporters did the same for the pope and insulted Catholic theologians (“Goat, desist with your bleating”, one of them was admonished). Luther himself is thought to have been the author of “Now We Drive Out the Pope”, a parody of a folk song called “Now We Drive Out Winter”, whose tune it borrowed:
Woodcuts were another form of propaganda. The combination of bold graphics with a smattering of text, printed as a broadsheet, could convey messages to the illiterate or semi-literate and serve as a visual aid for preachers. Luther remarked that “without images we can neither think nor understand anything.” Some religious woodcuts were elaborate, with complex allusions and layers of meaning that would only have been apparent to the well-educated. “Passional Christi und Antichristi”, for example, was a series of images contrasting the piety of Christ with the decadence and corruption of the pope. Some were astonishingly crude and graphic, such as “The Origin of the Monks” (see picture), showing three devils excreting a pile of monks. The best of them were produced by Luther’s friend Lucas Cranach. Luther’s opponents responded with woodcuts of their own: “Luther’s Game of Heresy” (see beginning of this article) depicts him boiling up a stew with the help of three devils, producing fumes from the pot labelled falsehood, pride, envy, heresy and so forth.
Amid the barrage of pamphlets, ballads and woodcuts, public opinion was clearly moving in Luther’s favour. “Idle chatter and inappropriate books” were corrupting the people, fretted one bishop. “Daily there is a veritable downpour of Lutheran tracts in German and Latin…nothing is sold here except the tracts of Luther,” lamented Aleander, Leo X’s envoy to Germany, in 1521. Most of the 60 or so clerics who rallied to the pope’s defence did so in academic and impenetrable Latin, the traditional language of theology, rather than in German. Where Luther’s works spread like wildfire, their pamphlets fizzled. Attempts at censorship failed, too. Printers in Leipzig were banned from publishing or selling anything by Luther or his allies, but material printed elsewhere still flowed into the city. The city council complained to the Duke of Saxony that printers faced losing “house, home, and all their livelihood” because “that which one would gladly sell, and for which there is demand, they are not allowed to have or sell.” What they had was lots of Catholic pamphlets, “but what they have in over-abundance is desired by no one and cannot even be given away.”
Luther’s enemies likened the spread of his ideas to a sickness. The papal bull threatening Luther with excommunication in 1520 said its aim was “to cut off the advance of this plague and cancerous disease so it will not spread any further”. The Edict of Worms in 1521 warned that the spread of Luther’s message had to be prevented, otherwise “the whole German nation, and later all other nations, will be infected by this same disorder.” But it was too late—the infection had taken hold in Germany and beyond. To use the modern idiom, Luther’s message had gone viral.
From Wittenberg to Facebook
In the early years of the Reformation expressing support for Luther’s views, through preaching, recommending a pamphlet or singing a news ballad directed at the pope, was dangerous. By stamping out isolated outbreaks of opposition swiftly, autocratic regimes discourage their opponents from speaking out and linking up. A collective-action problem thus arises when people are dissatisfied, but are unsure how widely their dissatisfaction is shared, as Zeynep Tufekci, a sociologist at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has observed in connection with the Arab spring. The dictatorships in Egypt and Tunisia, she argues, survived for as long as they did because although many people deeply disliked those regimes, they could not be sure others felt the same way. Amid the outbreaks of unrest in early 2011, however, social-media websites enabled lots of people to signal their preferences en masse to their peers very quickly, in an “informational cascade” that created momentum for further action.
The same thing happened in the Reformation. The surge in the popularity of pamphlets in 1523-24, the vast majority of them in favour of reform, served as a collective signalling mechanism. As Andrew Pettegree, an expert on the Reformation at St Andrew’s University, puts it in “Reformation and the Culture of Persuasion”, “It was the superabundance, the cascade of titles, that created the impression of an overwhelming tide, an unstoppable movement of opinion…Pamphlets and their purchasers had together created the impression of irresistible force.” Although Luther had been declared a heretic in 1521, and owning or reading his works was banned by the church, the extent of local political and popular support for Luther meant he escaped execution and the Reformation became established in much of Germany.
Modern society tends to regard itself as somehow better than previous ones, and technological advance reinforces that sense of superiority. But history teaches us that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Robert Darnton, an historian at Harvard University, who has studied information-sharing networks in pre-revolutionary France, argues that “the marvels of communication technology in the present have produced a false consciousness about the past—even a sense that communication has no history, or had nothing of importance to consider before the days of television and the internet.” Social media are not unprecedented: rather, they are the continuation of a long tradition. Modern digital networks may be able to do it more quickly, but even 500 years ago the sharing of media could play a supporting role in precipitating a revolution. Today’s social-media systems do not just connect us to each other: they also link us to the past.
IT IS a familiar-sounding tale: after decades of simmering discontent a new form of media gives opponents of an authoritarian regime a way to express their views, register their solidarity and co-ordinate their actions. The protesters’ message spreads virally through social networks, making it impossible to suppress and highlighting the extent of public support for revolution. The combination of improved publishing technology and social networks is a catalyst for social change where previous efforts had failed.(향상된 인쇄기술과 소셜 네트워크의 결합은 사회 변화를 위한 촉매이다)
That’s what happened in the Arab spring. It’s also what happened during the Reformation, nearly 500 years ago, when Martin Luther and his allies took the new media of their day—pamphlets, ballads and woodcuts—and circulated them through social networks to promote their message of religious reform.
Scholars have long debated the relative importance of printed media, oral transmission and images in rallying popular support for the Reformation. Some have championed the central role of printing, a relatively new technology at the time. Opponents of this view emphasise the importance of preaching and other forms of oral transmission. More recently historians have highlighted the role of media as a means of social signalling and co-ordinating public opinion in the Reformation.(학자들의 논란: 종교개혁을 위한 대중적 지지를 이끌어내는 데 인쇄 매체가 상대적으로 더 중요했던가, 아니면 설교나 구전이 더 중요했던가)
New post from Martin Luther
(마틴 루터의 새로운 게시물)
The start of the Reformation is usually dated to Luther’s nailing of his “95 Theses on the Power and Efficacy of Indulgences” to the church door in Wittenberg on October 31st 1517. The “95 Theses” were propositions written in Latin that he wished to discuss, in the academic custom of the day, in an open debate at the university. Luther, then an obscure theologian and minister, was outraged by the behaviour of Johann Tetzel, a Dominican friar who was selling indulgences to raise money to fund the pet project of his boss, Pope Leo X: the reconstruction of St Peter’s Basilica in Rome. Hand over your money, went Tetzel’s sales pitch, and you can ensure that your dead relatives are not stuck in purgatory. This crude commercialisation of the doctrine of indulgences, encapsulated in Tetzel’s slogan—“As soon as the coin in the coffer rings, so the soul from purgatory springs”—was, to Luther, “the pious defrauding of the faithful” and a glaring symptom of the need for broad reform. Pinning a list of propositions to the church door, which doubled as the university notice board, was a standard way to announce a public debate.
(종교개혁의 시작은 1517년 10월 31일, 마틴 루터가 비텐베르크--독일의 작센안할트 주에 있는 도시--의 교회 문에 '면죄부의 힘과 효능에 대한 95 테제'를 내걸었던 때부터.)
Although they were written in Latin, the “95 Theses” caused an immediate stir, first within academic circles in Wittenberg and then farther afield. In December 1517 printed editions of the theses, in the form of pamphlets and broadsheets, appeared simultaneously in Leipzig, Nuremberg and Basel, paid for by Luther’s friends to whom he had sent copies. German translations, which could be read by a wider public than Latin-speaking academics and clergy, soon followed and quickly spread throughout the German-speaking lands. Luther’s friend Friedrich Myconius later wrote that “hardly 14 days had passed when these propositions were known throughout Germany and within four weeks almost all of Christendom was familiar with them.”
(95테제는 라틴어로 씌어진 것. 그러나 1517년 12월에는 팸플릿과 신문 형태로 이 테제의 인쇄판이 퍼져나갔다. 그리고 독일어 번역. 이를 통해 라틴어를 쓰는 학자와 성직자의 세계보다 더 넓은 대중들이 읽게 되었다. 마틴 루터의 친구인 프리드리히 미코니우스는 나중에 이렇게 썼다. 독일 전체에 마틴 루터의 제안이 퍼져 나간 것은 거의 14일이 지나지 않았고, 거의 모든 기독교인들이 이를 알게 된 것은 4주 안의 일이었다.)
The unintentional but rapid spread of the “95 Theses” alerted Luther to the way in which media passed from one person to another could quickly reach a wide audience. “They are printed and circulated far beyond my expectation,” he wrote in March 1518 to a publisher in Nuremberg who had published a German translation of the theses. But writing in scholarly Latin and then translating it into German was not the best way to address the wider public. Luther wrote that he “should have spoken far differently and more distinctly had I known what was going to happen.” For the publication later that month of his “Sermon on Indulgences and Grace”, he switched to German, avoiding regional vocabulary to ensure that his words were intelligible from the Rhineland to Saxony. The pamphlet, an instant hit, is regarded by many as the true starting point of the Reformation.
(1518년 3월 마틴 루터는 뉘렘베르크의 출판사에서 95테제의 독일어 번역본을 펴냈다. 하지만 라틴어로 글을 써서 이를 독일어로 번역한 것이 더 광범위한 대중에 전파된 최선의 방법은 아니었다. 독일어로 번역할 때 지역 언어를 피함. 제목도 '면죄부와 은총에 대한 설교'라고 바뀜. 많은 이들은 종교개혁의 출발점은 팸플릿이라고 간주)
The media environment that Luther had shown himself so adept at managing had much in common with today’s online ecosystem of blogs, social networks and discussion threads. It was a decentralised system whose participants took care of distribution, deciding collectively which messages to amplify through sharing and recommendation. Modern media theorists refer to participants in such systems as a “networked public”, rather than an “audience”, since they do more than just consume information. Luther would pass the text of a new pamphlet to a friendly printer (no money changed hands) and then wait for it to ripple through the network of printing centres across Germany.
(마틴 루터을 둘러싼 매체 환경은 블로그와 소셜 네트워크와 토론 스레드와 같은, 오늘날의 온라인 생태계와 공통점이 많았다. 그것은 분산 시스템. 참여자들이 배포하고 집합적으로 결정하는 것. 그럼으로써 메시지가 공유와 추천을 통해 증폭되는 것. 현대 매체 이론에서는 이러한 시스템에서의 참여자를 '청중'이라 하지 않고 '네트워크 공중'이라고 한다. 그들은 단순한 정보 소비자가 아니다.)
As with “Likes” and retweets today, the number of reprints serves as an indicator of a given item’s popularity. Luther’s pamphlets were the most sought after; a contemporary remarked that they “were not so much sold as seized”. His first pamphlet written in German, the “Sermon on Indulgences and Grace”, was reprinted 14 times in 1518 alone, in print runs of at least 1,000 copies each time. Of the 6,000 different pamphlets that were published in German-speaking lands between 1520 and 1526, some 1,700 were editions of a few dozen works by Luther. In all, some 6m-7m pamphlets were printed in the first decade of the Reformation, more than a quarter of them Luther’s.
Although Luther was the most prolific and popular author, there were many others on both sides of the debate. Tetzel, the indulgence-seller, was one of the first to respond to him in print, firing back with his own collection of theses. Others embraced the new pamphlet format to weigh in on the merits of Luther’s arguments, both for and against, like argumentative bloggers. Sylvester Mazzolini defended the pope against Luther in his “Dialogue Against the Presumptuous Theses of Martin Luther”. He called Luther “a leper with a brain of brass and a nose of iron” and dismissed his arguments on the basis of papal infallibility. Luther, who refused to let any challenge go unanswered, took a mere two days to produce his own pamphlet in response, giving as good as he got. “I am sorry now that I despised Tetzel,” he wrote. “Ridiculous as he was, he was more acute than you. You cite no scripture. You give no reasons.”
Being able to follow and discuss such back-and-forth exchanges of views, in which each author quoted his opponent’s words in order to dispute them, gave people a thrilling and unprecedented sense of participation in a vast, distributed debate. Arguments in their own social circles about the merits of Luther’s views could be seen as part of a far wider discourse, both spoken and printed. Many pamphlets called upon the reader to discuss their contents with others and read them aloud to the illiterate. People read and discussed pamphlets at home with their families, in groups with their friends, and in inns and taverns. Luther’s pamphlets were read out at spinning bees in Saxony and in bakeries in Tyrol. In some cases entire guilds of weavers or leather-workers in particular towns declared themselves supporters of the Reformation, indicating that Luther’s ideas were being propagated in the workplace. One observer remarked in 1523 that better sermons could be heard in the inns of Ulm than in its churches, and in Basel in 1524 there were complaints about people preaching from books and pamphlets in the town’s taverns. Contributors to the debate ranged from the English king Henry VIII, whose treatise attacking Luther (co-written with Thomas More) earned him the title “Defender of the Faith” from the pope, to Hans Sachs, a shoemaker from Nuremberg who wrote a series of hugely popular songs in support of Luther.
A multimedia campaign
It was not just words that travelled along the social networks of the Reformation era, but music and images too. The news ballad, like the pamphlet, was a relatively new form of media. It set a poetic and often exaggerated description of contemporary events to a familiar tune so that it could be easily learned, sung and taught to others. News ballads were often “contrafacta” that deliberately mashed up a pious melody with secular or even profane lyrics. They were distributed in the form of printed lyric sheets, with a note to indicate which tune they should be sung to. Once learned they could spread even among the illiterate through the practice of communal singing.
Both reformers and Catholics used this new form to spread information and attack their enemies. “We are Starting to Sing a New Song”, Luther’s first venture into the news-ballad genre, told the story of two monks who had been executed in Brussels in 1523 after refusing to recant their Lutheran beliefs. Luther’s enemies denounced him as the Antichrist in song, while his supporters did the same for the pope and insulted Catholic theologians (“Goat, desist with your bleating”, one of them was admonished). Luther himself is thought to have been the author of “Now We Drive Out the Pope”, a parody of a folk song called “Now We Drive Out Winter”, whose tune it borrowed:
- Now we drive out the pope
- from Christ’s church and God’s house.
- Therein he has reigned in a deadly fashion
- and has seduced uncountably many souls.
- Now move along, you damned son,
- you Whore of Babylon. You are the abomination and the Antichrist,
- full of lies, death and cunning.
Woodcuts were another form of propaganda. The combination of bold graphics with a smattering of text, printed as a broadsheet, could convey messages to the illiterate or semi-literate and serve as a visual aid for preachers. Luther remarked that “without images we can neither think nor understand anything.” Some religious woodcuts were elaborate, with complex allusions and layers of meaning that would only have been apparent to the well-educated. “Passional Christi und Antichristi”, for example, was a series of images contrasting the piety of Christ with the decadence and corruption of the pope. Some were astonishingly crude and graphic, such as “The Origin of the Monks” (see picture), showing three devils excreting a pile of monks. The best of them were produced by Luther’s friend Lucas Cranach. Luther’s opponents responded with woodcuts of their own: “Luther’s Game of Heresy” (see beginning of this article) depicts him boiling up a stew with the help of three devils, producing fumes from the pot labelled falsehood, pride, envy, heresy and so forth.
Amid the barrage of pamphlets, ballads and woodcuts, public opinion was clearly moving in Luther’s favour. “Idle chatter and inappropriate books” were corrupting the people, fretted one bishop. “Daily there is a veritable downpour of Lutheran tracts in German and Latin…nothing is sold here except the tracts of Luther,” lamented Aleander, Leo X’s envoy to Germany, in 1521. Most of the 60 or so clerics who rallied to the pope’s defence did so in academic and impenetrable Latin, the traditional language of theology, rather than in German. Where Luther’s works spread like wildfire, their pamphlets fizzled. Attempts at censorship failed, too. Printers in Leipzig were banned from publishing or selling anything by Luther or his allies, but material printed elsewhere still flowed into the city. The city council complained to the Duke of Saxony that printers faced losing “house, home, and all their livelihood” because “that which one would gladly sell, and for which there is demand, they are not allowed to have or sell.” What they had was lots of Catholic pamphlets, “but what they have in over-abundance is desired by no one and cannot even be given away.”
Luther’s enemies likened the spread of his ideas to a sickness. The papal bull threatening Luther with excommunication in 1520 said its aim was “to cut off the advance of this plague and cancerous disease so it will not spread any further”. The Edict of Worms in 1521 warned that the spread of Luther’s message had to be prevented, otherwise “the whole German nation, and later all other nations, will be infected by this same disorder.” But it was too late—the infection had taken hold in Germany and beyond. To use the modern idiom, Luther’s message had gone viral.
From Wittenberg to Facebook
In the early years of the Reformation expressing support for Luther’s views, through preaching, recommending a pamphlet or singing a news ballad directed at the pope, was dangerous. By stamping out isolated outbreaks of opposition swiftly, autocratic regimes discourage their opponents from speaking out and linking up. A collective-action problem thus arises when people are dissatisfied, but are unsure how widely their dissatisfaction is shared, as Zeynep Tufekci, a sociologist at the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has observed in connection with the Arab spring. The dictatorships in Egypt and Tunisia, she argues, survived for as long as they did because although many people deeply disliked those regimes, they could not be sure others felt the same way. Amid the outbreaks of unrest in early 2011, however, social-media websites enabled lots of people to signal their preferences en masse to their peers very quickly, in an “informational cascade” that created momentum for further action.
Where monks came from, in the Lutherans’ view
The same thing happened in the Reformation. The surge in the popularity of pamphlets in 1523-24, the vast majority of them in favour of reform, served as a collective signalling mechanism. As Andrew Pettegree, an expert on the Reformation at St Andrew’s University, puts it in “Reformation and the Culture of Persuasion”, “It was the superabundance, the cascade of titles, that created the impression of an overwhelming tide, an unstoppable movement of opinion…Pamphlets and their purchasers had together created the impression of irresistible force.” Although Luther had been declared a heretic in 1521, and owning or reading his works was banned by the church, the extent of local political and popular support for Luther meant he escaped execution and the Reformation became established in much of Germany.
Modern society tends to regard itself as somehow better than previous ones, and technological advance reinforces that sense of superiority. But history teaches us that there is nothing new under the sun. Robert Darnton, an historian at Harvard University, who has studied information-sharing networks in pre-revolutionary France, argues that “the marvels of communication technology in the present have produced a false consciousness about the past—even a sense that communication has no history, or had nothing of importance to consider before the days of television and the internet.” Social media are not unprecedented: rather, they are the continuation of a long tradition. Modern digital networks may be able to do it more quickly, but even 500 years ago the sharing of media could play a supporting role in precipitating a revolution. Today’s social-media systems do not just connect us to each other: they also link us to the past.
2012년 1월 5일 목요일
여의도정치에서 시민정치로
오마이뉴스 2012년 1월 5일자 정태인(새로운사회를여는연구원 원장)이 2012년을 전망하는 10회 연재 글 가운데 첫번째 글, 대통령만 바꾸면 만사형통? 순진하시군요--정권교체 넘어 시대교체의 거대한 전환 준비하자 라는 제목의 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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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우리는 양대 선거를 앞두고 있다. 꼭 이겨야 한다는 당위를 확인하기 전에 우리가 지금 어디에 서 있는지 역사의 좌표를 확인해야 한다. 미국의 경제학자 스위지는 이런 역사의식을 "역사로서의 현재"라는 말에 담았다.
우리의 역사적 현재는 1929년 대공황 이래 자본주의 최대의 위기이다. 1990년대 말 미국정부는 IT 버블이 붕괴하자 재빨리 부동산 버블로 바꿔치기 했다. 그 수단은 금융규제완화와 금리 인하였고, 그 결과가 2008년 리먼브라더스 파산을 계기로 초래된 현재의 세계 금융위기이다. 2009년 전 세계적 금융완화정책과 재정확대정책으로 각국의 성장률이 회복기미를 보이자 G20의 세계적 차원의 개혁도, 또 오바마의 미국 내 금융개혁도 흐지부지 끝났다. 대신 미국은 소비와 재정을 재무성 증권으로 조달하고 있다.
2010년 그리스, 아일랜드, 포르투갈에서 시작된 유럽의 재정위기로 제2차 위기가 촉발되었다. 유럽의 재정위기는 같은 통화를 쓰면서도 경쟁력이 취약한 나라에 대한 보조금을 거부했기 때문에 생긴 사태다. 비유하자면 우리 정부가 강원도에 대한 지역교부금을 주지 않겠다고 선언해서 서울이 강원도로부터 막대한 교역 이익(경상흑자)을 거두고 있는 것이다.
즉, 현재의 유럽 위기는 내부의 위기이다. 유럽 집행위원회는 재정통합을 하는 대신 그리스나 이탈리아가 유로화 표시 국채를 발행해서 독일이나 프랑스 등 역내 강대국의 은행들이 이를 인수하도록 했다. 재정이 해야 할 일을 금융으로 해결한 것이다.
이제 미국과 유럽, 그리고 일본은 대규모 적자로 인해 재정확대정책도 쓸 수 없고 이미 0%에 이른 금리 때문에 금융완화정책도 더 이상 사용할 수 없다. 선진국 전체가 일본형 장기침체에 빠져들고 있다. 바야흐로 '대침체'(Great Recession, 대공황과 비교하기 위해 학자들이 2008년 위기에 붙인 말)는 '장기침체'(Long Recession)로 전환되고 있다.
위기 이후의 패러다임과 헤게모니 불분명
또한 세계경제는 글로벌 불균형과 국제통화체제의 위기도 동시에 맞고 있다. 이 위기는 새로운 국제통화와 국제청산시스템을 도입하기 전에는 해결될 수 없는데, 달러를 포기할 수 없는 미국의 힘은 여전히 강하고, G20는 IMF 기금을 조금 늘리는 정도밖에 합의하지 못했다.
하지만 위기 이후에 어떤 세상을 펼쳐야 할지에 관한 그 어떤 새로운 정책체계도 나오지 않았다. 1945년 이후의 복지국가를 뒷받침한 케인즈이론이 1930년대에 출간됐고, 1980년대를 풍미한 통화주의이론이 1960년대에 정립된 것에 비하면 위기 이후의 사회의 이론은 오리무중이다. 학문의 제국주의를 일삼으며 오만을 떨던 경제학은 이미 붕괴했다.
중장기 비전이 없는 상태에서 당장 무역적자와 재정적자에 허덕이는 미국은 '환율법'(환율을 조작하는 것으로 의심되는 나라에 무역보복을 할 수 있게 한 보호무역법안)과 제3차 양적 완화(금리 인하를 통한 경기부양 효과가 한계에 달하면 중앙은행이 국채를 매입하여 시장에 통화량을 공급하는 정책, 즉 달러 발행을 늘리는 것)로 또 한편의 환율전쟁을 예고하고 있다.
100년이 넘는 주기를 갖는 패권 주기도 최저점을 향해 치닫고 있다. 구사회주의권의 몰락으로 정점에 올랐던 미국의 단일 패권은 쇠퇴 기미가 역력한데 이를 대체할 패권국가는 존재하지 않는다. 금융위기 이후 G2로 급부상한 중국이 새로운 헤게모니 체제를 구축하는 데는 아무리 짧게 잡아도 20년 이상 걸릴 것이다. 이 기간 세계는 중미간의 위태로운 힘겨루기를 목도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한반도는 그 한복판에 있다.
시장경제만으로 해결 불가능한 위기의 중첩
그런데 여기 또 하나의 위기가 도사리고 있다. 석유의 생산이 정점에 이르는 오일피크가 눈앞의 현실이 되고 있으며(전문가들은 2015년경으로 예측한다) 글로벌 기후변화 역시 다음 세대의 재앙을 예고하고 있다. 멀지 않은 장래에 에너지·석유 위기가 겹칠 가능성 또한 점점 높아지고 있다. 시장의 자동조절기능이 해결해주리라고 믿기에는 너무나 큰 위기들이 첩첩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주기가 다른 위기, 즉 시간대(time span)가 다른 위기가 중첩되고 있다는 것은 해결의 주체와 영역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로서의 현재"는 2012년 총선과 대선이라는 구체적인 한국 상황에서 중첩적인 과제의 해결을 요구하고 있다.
즉, 우리는 위기의 각 영역에 고유한 해결 방향을 찾아내고, 2012년 한국이라는 정세 안에서 그 방향을 당장 실현할 하나의 가치와 비전으로 제시해야 하는 지난한 과제를 안고 있는 것이다. 하나 하나의 위기 해결 방향조차 확실하지 않은 가운데 이런 작업은 고도의 추상성과 상상력을 요구한다.
한국경제의 폭탄, 가계부채와 높은 대외의존도
세계경제뿐 아니라 한국 내부에도 시한폭탄이 째깍거리고 있다. 2003년부터 본격적으로 부풀어 오른 부동산 버블과 이에 긴밀히 묶여 있는 가계부채가 바로 그것이다. 2009년 세계적 경기부양정책의 가장 큰 수혜자는 한국의 수출대기업이었고 상대적으로 높은 성장률은 버블 붕괴의 초침을 잠깐 묶어두는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제 시작된 세계경제의 장기침체는 90%를 넘나드는 대외의존도를 보이는 한국경제를 바로 위험에 빠뜨릴 수 있다. 반도체 가격이 하락하고 자동차의 내수는 거의 늘어나지 않고 수출 증가율 역시 반토막 날 지경에 이르렀다. 1100원대에서 방어해 온 환율마저 무너진다면(현재는 유럽위기의 여파로 달러가 강해지고 있지만) 실물침체가 금융경색으로 이어지고, 부동산 버블 붕괴가 다시 금융위기를 불러올 위험마저 있다. 내부에서 파들거리고 있는 부동산 가격이 급락할 경우에도 1980년대 후반 미국의 S&L 위기처럼, 제2금융권으로부터 시작하는 금융위기가 발생할 수 있다.
87년 민주화는 신자유주의의 완성으로 이어져
1990년대 중반 이후로 진행되어 온 양극화는 사회 전체에 절망, 즉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웠다. 금융자유화와 가계신용의 확대,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부동산과 증권 투기는 소득과 자산의 불평등 지표들을 가파른 비율로 상승시켰다. 주거, 교육과 보육, 일자리, 노후, 건강 걱정이라는 이른바 '5대 불안'은 그 직접적 결과이다.
한국 정부의 시장만능주의는, 김영삼 정부의 "세계화"와 외환위기, 뒤이어 IMF의 강요와 내부의 적극적 협력으로 진행된 김대중 정부의 노동유연화, 민영화와 규제완화, 그리고 노무현 정부의 한미FTA 추진과 이명박 정부의 비준으로 그 정점에 이르렀다.
군부독재를 종식시킨 "6월 항쟁"으로 시작된 "87년 체제"는 군부독재를 종식시켰을 뿐, 새로운 사회경제체제 모델이 자리를 잡지 못한 체제였다. 1997년 외환위기를 계기로 정권을 잡은 "민주정부"는 자기 고유의 사회경제모델을 실행하지 못했다. 아니 그런 모델을 상상하지 못했다고 하는 편이 옳을 것이다.
이 시기에 신자유주의의 대안으로 여겨졌던 클린턴-블레어 정부가 그랬듯이 적나라한 신자유주의에 약간의 훈기를 불어 넣었을 뿐 시장만능으로 치닫는 시대를 역전시키지 못했다. 고 노무현 대통령이 한탄했듯이 민주정부는 새로운 시대의 장자가 아니라 구시대의 막내였던 것이다.
정부의 정책, 그리고 재벌들이나 보수언론만 문제였던 것은 아니다. 우리 스스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 "나와 내 가족만은 승리하여 대박을 터뜨릴 것"이라는 주문에 빠져들었다. 2002년 카드회사의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문구와 삼성의 "아무도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는 카피는 이런 세태 변화를 단적으로 표현했다. "묻지 마" 투기 심리는 2007년 이명박 후보에 대한 "묻지 마" 투표로 이어졌고, 곧이어 2008년 총선에서 수도권의 양대 정당이 똑같이 "뉴타운 유치"와 "특목고 유치"를 내거는 희비극으로 치달았다.
그러나 2010년 지방선거에서 상황은 급전했다. 무상급식을 매개로 보편복지가 화두로 떠올랐고 진보 쪽으로 선회한 야당이 대승했다. 이제 국민은 "나와 내 아이도 '루저'가 될 수 있다"는 공포를 상상하게 되었다. 대박의 탐욕에서 최소의 안전에 대한 요구로 돌아선 것이다. 국민들은 이제 마이클 샌델 교수의 '정의론'과, 장하준의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에서 새로운 비전을 찾으려 한다. 정치가 말해야 할 가치와 비전, 그리고 리더십을, 결코 쉽지 않은 책들 속에서 스스로 캐내려는 것이다.
시장국가서 복지국가로, 여의도정치서 시민정치로
세계적 위기가 한국에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는 가운데 우리 내부의 문제, 1990년대 중반 이래의 세계적 흐름에 휩쓸려간 정책기조, 그리고 대중의 적극적인 동조가 만들어낸 양극화, 특히 붕괴직전의 부동산-금융 버블이 폭발 직전에 있다는 것이 한국의 현실이다. 다행인 것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이 어쨌든 과거 시스템에 대해 의구심을 가지게 되었고 이제는 루저가 되어도 살 만한 세상, 즉 복지국가를 요구하게 되었다는 것이고 경제위기는 또 다시 진보개혁세력에게 기회의 창을 열었다는 사실이다.
일반시민들이 금년의 양대선거를 통해 '정권교체'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은 명백하다. 그러나 두 민주정부 때처럼 대통령과 청와대만 일부 바뀐다면 재벌-관료-보수언론의 3각 동맹에 휘말려 새로운 체제의 화두인 최소한의 '보편적 복지국가'도 이룰 수 없게 될 것이다. 우리는 '거대한 전환기'를 맞고 있으며 양대 선거는 이 더 긴 시대를 바꾸는 것이어야 새로운 사회경제체제 모델을 실행할 수 있다. 즉 우리는 '정권교체'를 통해 '시대교체'를 해야 하는 것이다.
지난해 아랍에서 시작해서 "월가를 점령하라"까지 터져나온 민중들의 숨가쁜 목소리는 시대교체, 즉 신자유주의의 대체가 세계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1920년대의 제국주의적 자유주의는 1929년의 대공황으로 끝이 났고 '거대한 전환'은 불행하게도 전쟁을 겪은 후에야 복지국가체제로 귀결되었다.
1930년대 우리는 일본의 식민지였고 세계의 대격변 속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는 수동적 존재였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지금 우리나라가 세계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6% 수준이지만, 시민의식으로 본다면, 감히 세계 최고라고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또한 떠오르는 중국 옆에 있다는 지경학적 위치도 무시할 수 없는 이점이다. 하지만 중국이 전후의 유럽 복지국가처럼 새로운 사회경제모델을 제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1980년대에 각광을 받았던 일본 모델 역시 노쇠할 대로 노쇠했다.
올해의 양대 선거는 아시아 주도의 세계에서 우리가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는 첫걸음이 되어야 한다. 사회경제적으로나 생태적으로 '지속가능한 보편적 복지국가', 나아가서 '지속가능한 보편적 복지의 동아시아공동체'가 가능하다. 이런 체제는 남북의 장점을 아우르고 배가하는 것이 될 터이다.
2012년은 이런 세계사적 '거대한 전환'의 첫 해가 될 수 있다. 시민이 주도하는 새로운 정치를 열어야 한다. 단순히 한나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교체가 아닌 시장국가에서 복지국가로, 여의도의 정치에서 시민의 정치로 넘어가는 시대교체가 되어야 한다.
서구의 사회경제체제, 그들의 정신과 문화를 학습하고 모방하는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시대교체를 위해서는 진보진영이 적극 참여하는 '연합정부'가 필수적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여기서 또 실패한다면 우리는 대전환 속에서 또 다시 방향을 잃고 그예 낭떠러지 아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
이번 새사연의 2012년 전망 시리즈는 양대 선거라는 격전이 벌어지는 전쟁터의 상황을 묘사하고 나아가서 시민들에게 제시할 정책 방향을 제시할 것이다. 단순히 조금 더 나은 정책이 아니라 시대교체로 나아갈 때 반드시 거쳐가야 할 길목을 보여드릴 요량이다.
2012년 1월 4일 수요일
6. 무덤 위로 내리는 눈
거룩하다
영결식이 있던 날
무덤 위로
내리는 눈
거룩하다, 거룩하다
오늘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 모아
노래 부른다, 노래는 슬픈 노래
노랫말 속의 그 사랑
슬픔이 죽음을 넘어
생명과 평화로 이어지도다
누군가 흐느낌 속에서
그리운 이름을 불렀다
썩어질 육신이
얼어붙은 땅에 묻힌 뒤에도
썩지 않는
정신의 강물, 심장의 노래
거룩, 거룩
(거룩이라는 말을 거듭하다 보면
마치 누룩이 익듯, 거룩함이 익어가는 듯했다)
가슴에 새겨져 있는
노래를 부르는 순간들이
돌에 맺혔다
흙, 화강암, 눈발
칠성판, 하관식
술 한 잔
무덤 위로 내리는 눈
영결식이 있던 날
무덤 위로
내리는 눈
거룩하다, 거룩하다
오늘 우리가 죽을 수도 있다는 것
살아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 모아
노래 부른다, 노래는 슬픈 노래
노랫말 속의 그 사랑
슬픔이 죽음을 넘어
생명과 평화로 이어지도다
누군가 흐느낌 속에서
그리운 이름을 불렀다
썩어질 육신이
얼어붙은 땅에 묻힌 뒤에도
썩지 않는
정신의 강물, 심장의 노래
거룩, 거룩
(거룩이라는 말을 거듭하다 보면
마치 누룩이 익듯, 거룩함이 익어가는 듯했다)
가슴에 새겨져 있는
노래를 부르는 순간들이
돌에 맺혔다
흙, 화강암, 눈발
칠성판, 하관식
술 한 잔
무덤 위로 내리는 눈
5. 1월
1월이라서 좋다
새벽이라서 좋다
아직 작심삼일의 결심이
살아 있어서, 아침이라서 좋다
외투 속으로 웅크리며
추위를 피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무들도
추위를 견디는 자세, 좋다
눈이 내려서 좋다
참새 두 마리가 길 건너로
뛰어가다가 날아오른다, 좋다
날리는 눈보라 속의 눈부신 날개짓, 좋다
날아오르자,
겨울하늘이 동그랗게 보인다, 좋다
설렘의 순간
우주의 순간
눈을 좋아하는 건
아이 같은 맘
눈을 맞는
나무의 견고한 자세, 좋다
새벽이라서 좋다
아직 작심삼일의 결심이
살아 있어서, 아침이라서 좋다
외투 속으로 웅크리며
추위를 피하는 사람들 속에서
나무들도
추위를 견디는 자세, 좋다
눈이 내려서 좋다
참새 두 마리가 길 건너로
뛰어가다가 날아오른다, 좋다
날리는 눈보라 속의 눈부신 날개짓, 좋다
날아오르자,
겨울하늘이 동그랗게 보인다, 좋다
설렘의 순간
우주의 순간
눈을 좋아하는 건
아이 같은 맘
눈을 맞는
나무의 견고한 자세, 좋다
2012년 1월 3일 화요일
'가카'는 사라지겠지만
한겨레 신문 인터넷판에 2011년 1월 1일에 올라온, 이동걸 한림대 재무금융학과 객원교수의 칼럼, 엠비는 사라지겠지만. 여기서 '엠비'와 '이명박 대통령'을 '가카'로 바꾼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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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토록 지겹고 힘들었던 4년이 가고 이제 '가카' 정권의 남은 임기는 1년. 개중에는 아쉬워하고 섭섭해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고 심지어 불안해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요즘 세상 돌아가는 것을 보면 국민 대다수는 '가카'가 하루빨리 사라져줬으면 하는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정부는 집권하면서부터 독선과 아집, 무지와 무모, 위선과 이기주의로 일관하며 국민을 무시하고 민생경제를 파탄냈으니 누군들 이 정부가 빨리 끝나기를 학수고대하지 않겠는가.
2008년 '가카'가 예언한 시화연풍(時和年豊·화평한 시대를 열고 해마다 풍년이 듦)은 시화연풍(時禍年風·재앙의 시대가 열려 해마다 바람 잘 날이 없음)이 되어 4년 내내 국민들을 괴롭히지 않았던가.
그런데 '가카'만 사라지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될까? 피폐한 서민경제, 활력 잃은 중소기업, 없어진 일자리와 청년실업, 등록금 고통, 양극화, 성장 잠재력 상실, 이런 모든 문제들이 '가카'만 사라지면 스르르 다 잘 해결될까? 절대 아니다. 환상을 가져서는 안 된다. 지금 우리의 문제는 '가카'만이 아니다.
우리나라는 이미 재벌 공화국, 관료 공화국, 보수언론 공화국이 되었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이들 보수 삼인방이 단단히 연합해서 ‘보수연방공화국’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폴 크루그먼 교수의 표현을 빌려 쓴다면 재벌의 주머니에서 흘러나오는 천문학적인 규모의 돈이 이들 보수 기득권 삼총사를 단단히 유착시키는 아교가 되었다. 사회 곳곳을 적시며 돌아다니는 재벌의 돈은 적지 않은 전문가들로 하여금 학술적·전문적 연구의 탈을 쓰고 ‘지적 부정직’의 경계선상에서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도록 함으로써 그들의 영향력을 강화하였다.
지난 4년간 '가카' 정부가 시행한 주요 경제정책들을 보라. '가카'는 그들의 대리인으로 그들의 이해를 성실하게 대변하면서 그들이 원하는 것을 충직하게 수행한 것에 불과하다. 그 결과 보수 삼총사의 권력은 더욱 강고해졌다.
'가카'는 사라진다. '가카' 정부의 실정과 연이은 선거 패배에 다급해진 집권 여당은 지금 쇄신방안을 만든다고 부산을 떨고 있다. 만약 보수 여당이 '가카'의 자리를 다시 채운다면 무엇이 달라지겠는가. 겉포장은 국가경제와 서민·중산층을 위한다고 또다시 미사여구로 치장하겠지만 보수 여당의 수구 친재벌 정책기조는 절대 바뀌지 않을 것이다. 친재벌 ‘747’의 원조 격인 ‘줄푸세’를 보라.
다행히 '가카' 덕분에 정권교체의 가능성은 그 어느 때보다도 높아졌다. 희망이 있다. 그럼 정권교체가 된다고 문제가 해결될까? 정권교체가 안 되는 것보다는 좀 낫겠지만 지금의 야당이 집권한다 하더라도 재벌의 횡포를 막아 서민·중산층 경제를 활성화시키고 우리 경제의 활력을 되찾는 개혁을 잘해 나가리라는 보장도 없다.
과거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낮에는 야당, 밤에는 여당’ 하는 정치가들이 많이 있었듯이 요새는 ‘앞에서는 친서민, 뒤에서는 친재벌’ 하는 야당 정치가들이 수없이 많다. 생각은 ‘우측’인데 출신 지역이 우리나라 지도의 ‘좌측’에 있어 ‘좌측’ 정당에 적을 두고 있는 정치가도 적지 않다. 이들은 보수정당의 정치가들보다 더 수구적이고 반개혁적이다. 노무현 정부의 일부 최측근 386 참모들이 집권하기가 바쁘게 재벌·보수관료와 유착하여 재벌의 하수인이 되었던 것을 보았다. 이들이 재벌과 손잡고 안에서 개혁을 방해하며 노무현 정부를 망친 장본인들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와 서거에 일조한 이들 노무현 정부의 암세포들은 노 대통령이 서거하자마자 재빠르게 다시 노 대통령의 적자 노릇을 하며 정치권의 전면에 나서지 않았던가.
정권교체보다 더 중요한 것은 이들 야권 정당의 ‘위장취업자’들을 청소하는 일이다. 이들 위장취업자들이 진보 야권 정당에 들어와 사리사욕을 위해 보수 관료집단과 손잡고 재벌의 이익을 대변하며 보수언론의 눈치만 보고 있으면 정권이 교체돼도 이 나라는 바뀌지 않는다. 정권도 다시 실패할 것이다. 진보 야권 정당에 대한 국민의 신뢰만 해칠 것이다.
읽기 성취도 높지만 책에는 흥미 없는 우리 아이들
2012년 1월 3일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의 보도, 읽기 성취도 높지만 책에는 흥미 없는 우리 아이들 앞의 기사에 이어지는, 논평 기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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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성취도는 높지만 독서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 하루에 책을 30분도 채 안 읽는 아이들. 신문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들. 우리나라 만 15세 학생들의 독서 실태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09'에 따르면, 한국의 읽기 성취도는 539점으로 65개국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다. 전체 평균은 493점이며, 핀란드는 536점, 일본은 520점, 미국은 500점, 스웨덴은 497점이다.
문제는 한국 학생들이 읽기 성취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취미로 독서를 대략 몇 시간 정도 합니까'라는 질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38.5%, '하루에 30분 미만'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29.8%였다. 이는 OECD 국가별 평균인 37.4%와 30.3%를 모두 밑도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신문을 읽는 비율도 낮았다. '스스로 원해서 다음 자료를 얼마나 자주 읽습니까'라고 묻는 문항에 '한 달에 몇 번' 또는 '일주일에 몇 번' 소설류를 읽는다고 답한 비율은 46.6%였고, 신문은 45.1%, 만화 40.5%, 비소설류 30%, 잡지가 21.2%였다. 핀란드는 신문을 꼽은 비율이 75.4%로 가장 높았으며, 잡지가 64.9%, 만화 60.1%, 소설류 26.1% 순이었다.
PISA에 참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를 분석해보면, 한국 학생들은 읽기 영역에서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읽기에 대한 즐거움, 읽기 자료의 다양성, 읽기 참여 시간 등의 지표가 이에 비해 낮아 학생들이 앞으로 읽기 활동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동력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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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기 성취도는 높지만 독서에 흥미가 없는 아이들. 하루에 책을 30분도 채 안 읽는 아이들. 신문보다 소설을 좋아하는 아이들. 우리나라 만 15세 학생들의 독서 실태 얘기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최근 발표한 '국제학업성취도평가(PISA) 2009'에 따르면, 한국의 읽기 성취도는 539점으로 65개국 가운데 최상위 수준이다. 전체 평균은 493점이며, 핀란드는 536점, 일본은 520점, 미국은 500점, 스웨덴은 497점이다.
문제는 한국 학생들이 읽기 성취도에서 높은 점수를 받았지만, 책을 읽는 시간이 턱없이 부족하다는 데 있다. '취미로 독서를 대략 몇 시간 정도 합니까'라는 질문에 '책을 읽지 않는다'고 답한 비율이 38.5%, '하루에 30분 미만'이라고 대답한 비율은 29.8%였다. 이는 OECD 국가별 평균인 37.4%와 30.3%를 모두 밑도는 것이다.
한국 학생들은 다른 나라 학생들에 비해 신문을 읽는 비율도 낮았다. '스스로 원해서 다음 자료를 얼마나 자주 읽습니까'라고 묻는 문항에 '한 달에 몇 번' 또는 '일주일에 몇 번' 소설류를 읽는다고 답한 비율은 46.6%였고, 신문은 45.1%, 만화 40.5%, 비소설류 30%, 잡지가 21.2%였다. 핀란드는 신문을 꼽은 비율이 75.4%로 가장 높았으며, 잡지가 64.9%, 만화 60.1%, 소설류 26.1% 순이었다.
PISA에 참여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를 분석해보면, 한국 학생들은 읽기 영역에서 최상위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다만 읽기에 대한 즐거움, 읽기 자료의 다양성, 읽기 참여 시간 등의 지표가 이에 비해 낮아 학생들이 앞으로 읽기 활동을 주도적으로 해나갈 동력이 부족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설명이다.
'책모임'으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2011년 1월 3일자 아시아경제 성정은 기자의 보도, '책모임'으로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 서울 관악구에 있는 봉원중학교 백화현 선생님이 추진하고 있는 '책모임' 이야기다. 가정독서모임이 학교독서모임으로 이어지는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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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공부를 싫어하는 아들에서부터였다. 공부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이. 엄마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 아이에게 공부가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겠다.' 해답은 책 읽기에 있었다.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책모임을 꾸리고 나섰다. 매주 아들의 친구들을 불러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유정 문학촌이며, 하동, 남해 등으로 여행도 다녔다. 얼마 뒤 아이가 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책에 푹 빠진 아이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덩달아 성적도 올랐다.
2003년 아들 둘과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해 지금은 서울 관악구 봉원중학교에서 같은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이 학교 교사 백화현씨의 얘기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가 지정한 '국민 독서의 해'를 맞아 백씨에게 독서 교육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그의 말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책 읽기에 아이들의 미래가 있으며, 책모임이 이 미래를 밝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책모임의 시작, '아들'과 '달동네 학교'=백씨가 책모임 운동에 뛰어든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아들과 달동네 학교에서의 기억이 그것이다. 공부에 흥미가 전혀 없는 첫째 아들과 학교에 교과서조차 안 들고 오는 달동네 학교의 아이들.
긴 고민 끝에 백씨가 얻은 결론은 책 읽기였다. 역사와 다른 나라 이야기, 또 상상 속의 세계를 담고 있는 책이야말로 아이들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씨는 2002년 아들 두 명과 함께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셋이 모여 앉아 책을 읽는 방식이었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이듬해 1월 백씨는 가정독서모임의 방향을 아예 바꿨다.
아들 또래의 아이들 4명을 더 모아 좀 더 긴장감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7시30분에서 9시30분까지, 시간도 정했다. 처음엔 책을 읽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그 다음엔 인권이나 전쟁, 환경 등처럼 토론하기 좋은 주제를 따로 골라 책을 읽었다.
읽고 말하기는 곧 쓰기로 이어졌고, 그림 그리기까지 나아갔다. 학교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오면 여행도 갔다.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해 충분히 읽고 공부를 하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각자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미리 익힌 다음 채만식 문학관에 가면 채만식을 공부한 아이가, 김유정 문학촌에 가면 김유정을 조사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점차 책에 흥미를 붙여갔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백씨가 꿈꾼 책모임은 성적을 올리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평생 공부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을 때쯤,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갔고, 의젓해졌다. 책을 읽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책에서 본 내용들이 수업 시간에 등장하자 공부에도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이었다. 자연스레 성적도 올랐다. 1년이 지났을 땐 눈에 띄는 변화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책을 읽어냈고, 어떤 분야의 책이든 가리지 않았다. 글을 쓸 때도 거침이 없었다. 한 아이는 '꽃들에게 희망을'과 '공자의 일생' 등을 읽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쓰기도 했다.
◆'가정'독서모임이 '학교'독서모임으로=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지켜본 백씨는 독서모임의 무대를 집에서 학교로 넓혔다. 봉원중학교에서의 독서모임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3월 독서모임을 만들겠다는 가정통신문을 냈을 때 17개 팀이 신청을 했다. 학교 도서관에 이 아이들을 불러놓고 1박2일 동안 연수를 진행했다. 앞으로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아이들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자리였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봉원중학교 독서모임은 현재 22개로 늘어났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만 100 명에 이른다. 이 학교 전교생이 831 명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학생들의 독서모임을 지원하려 교사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관악구청에선 또 독서모임 예산을 지원해줬다.
봉원중학교는 올해 이 독서모임을 더 크게 키울 계획이다. 독서모임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예산 신청 규모도 2배 가까이 늘렸다.
백씨는 2일 "어린 아이들은 혼자 책을 읽다 보면 자기들이 좋아하는 책만 읽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만의 생각에 빠질 위험도 있다"며 "그게 바로 여럿이 함께 하는 독서모임을 시작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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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공부를 싫어하는 아들에서부터였다. 공부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이. 엄마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 아이에게 공부가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겠다.' 해답은 책 읽기에 있었다.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책모임을 꾸리고 나섰다. 매주 아들의 친구들을 불러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유정 문학촌이며, 하동, 남해 등으로 여행도 다녔다. 얼마 뒤 아이가 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책에 푹 빠진 아이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덩달아 성적도 올랐다.
2003년 아들 둘과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해 지금은 서울 관악구 봉원중학교에서 같은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이 학교 교사 백화현씨의 얘기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가 지정한 '국민 독서의 해'를 맞아 백씨에게 독서 교육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그의 말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책 읽기에 아이들의 미래가 있으며, 책모임이 이 미래를 밝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책모임의 시작, '아들'과 '달동네 학교'=백씨가 책모임 운동에 뛰어든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아들과 달동네 학교에서의 기억이 그것이다. 공부에 흥미가 전혀 없는 첫째 아들과 학교에 교과서조차 안 들고 오는 달동네 학교의 아이들.
긴 고민 끝에 백씨가 얻은 결론은 책 읽기였다. 역사와 다른 나라 이야기, 또 상상 속의 세계를 담고 있는 책이야말로 아이들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씨는 2002년 아들 두 명과 함께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셋이 모여 앉아 책을 읽는 방식이었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이듬해 1월 백씨는 가정독서모임의 방향을 아예 바꿨다.
아들 또래의 아이들 4명을 더 모아 좀 더 긴장감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7시30분에서 9시30분까지, 시간도 정했다. 처음엔 책을 읽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그 다음엔 인권이나 전쟁, 환경 등처럼 토론하기 좋은 주제를 따로 골라 책을 읽었다.
읽고 말하기는 곧 쓰기로 이어졌고, 그림 그리기까지 나아갔다. 학교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오면 여행도 갔다.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해 충분히 읽고 공부를 하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각자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미리 익힌 다음 채만식 문학관에 가면 채만식을 공부한 아이가, 김유정 문학촌에 가면 김유정을 조사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점차 책에 흥미를 붙여갔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백씨가 꿈꾼 책모임은 성적을 올리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평생 공부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을 때쯤,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갔고, 의젓해졌다. 책을 읽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책에서 본 내용들이 수업 시간에 등장하자 공부에도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이었다. 자연스레 성적도 올랐다. 1년이 지났을 땐 눈에 띄는 변화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책을 읽어냈고, 어떤 분야의 책이든 가리지 않았다. 글을 쓸 때도 거침이 없었다. 한 아이는 '꽃들에게 희망을'과 '공자의 일생' 등을 읽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쓰기도 했다.
◆'가정'독서모임이 '학교'독서모임으로=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지켜본 백씨는 독서모임의 무대를 집에서 학교로 넓혔다. 봉원중학교에서의 독서모임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3월 독서모임을 만들겠다는 가정통신문을 냈을 때 17개 팀이 신청을 했다. 학교 도서관에 이 아이들을 불러놓고 1박2일 동안 연수를 진행했다. 앞으로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아이들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자리였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봉원중학교 독서모임은 현재 22개로 늘어났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만 100 명에 이른다. 이 학교 전교생이 831 명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학생들의 독서모임을 지원하려 교사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관악구청에선 또 독서모임 예산을 지원해줬다.
봉원중학교는 올해 이 독서모임을 더 크게 키울 계획이다. 독서모임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예산 신청 규모도 2배 가까이 늘렸다.
백씨는 2일 "어린 아이들은 혼자 책을 읽다 보면 자기들이 좋아하는 책만 읽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만의 생각에 빠질 위험도 있다"며 "그게 바로 여럿이 함께 하는 독서모임을 시작한 이유"라고 말했다.
4. 봄이 오는가
봄이 오는가
봄이 기어코 오는가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너무나도 세월이 길어서
4월은 혁명의 날들
갈아엎고 또 갈아엎어도
봄은 온다
봄이 오지 않아도
우리는 기다렸다
그런 기다림을 아는가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그 기다림을 나는 고마워했다
고마움!
5월은 또 어떠한가
그래 5월은?
봄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는가
어떻게?
차마
이 겨울 다 견딘다 한들
어떻게
봄을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도 말이 없다니!
말하라, 말하라, 말하라
너희 오늘 살아 있다 말하라
그래, 4월은 갈아엎는 달
봄이 온다
봄이 오는가?
봄이 오리라 보는가?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겨울밤은 괴로워서
너무 괴로워서
술잔을 계속 비워도 괴로워서
숨죽인 흐느낌조차
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흐느낌조차
밤을 샌다
봄이 온다고?
웃기지 마라
봄은, 너무 멀리 있고
봄은, 나 같은 놈이나, 너 같은 놈이나
웃으며 지나간다
바라건대, 잊지 말 것
내 가슴속이나, 너의 가슴속이나
잊혀지지 않는 노래
그 한 구절
봄은
봄은
차마 말 못할 그것!
봄이 기어코 오는가
나는 믿을 수가 없다
너무나도 세월이 길어서
4월은 혁명의 날들
갈아엎고 또 갈아엎어도
봄은 온다
봄이 오지 않아도
우리는 기다렸다
그런 기다림을 아는가
안다고 할 수 있는가
그 기다림을 나는 고마워했다
고마움!
5월은 또 어떠한가
그래 5월은?
봄을 어떻게 기다릴 수 있는가
어떻게?
차마
이 겨울 다 견딘다 한들
어떻게
봄을
기다린다고
말할 수 있는가?
죽은 자는 말이 없고
산 자도 말이 없다니!
말하라, 말하라, 말하라
너희 오늘 살아 있다 말하라
그래, 4월은 갈아엎는 달
봄이 온다
봄이 오는가?
봄이 오리라 보는가?
나는 잠이 오지 않는다
잠이 오지 않는 겨울밤은 괴로워서
너무 괴로워서
술잔을 계속 비워도 괴로워서
숨죽인 흐느낌조차
저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나오는 흐느낌조차
밤을 샌다
봄이 온다고?
웃기지 마라
봄은, 너무 멀리 있고
봄은, 나 같은 놈이나, 너 같은 놈이나
웃으며 지나간다
바라건대, 잊지 말 것
내 가슴속이나, 너의 가슴속이나
잊혀지지 않는 노래
그 한 구절
봄은
봄은
차마 말 못할 그것!
3. 고문하는 세상
사람들이 모른 척한다
세상이 고문하는데
옛날에는 한 사람을 고문했다
죽으라고
그 죽음의 통곡소리에 괴로워했다
나, 괴로워했다
괴롭다
살아 있다는 것이 괴롭다
그렇지 아니한가?
시는, 몹쓸 시는
부끄러워해라, 제발 부끄워러해라
밀실에서 고문하던 세상이
이제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면서
세상 사람 모두를 고문한다
지금은 세상이 물고문이다
세상이 세상을 불고문한다
부끄러워해라, 부끄러운 사람이여
살아있는 사람이여
민주주의는 죽지 않았는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이여
부끄러워서, 차마
부끄러워서
세상이 고문하는데
옛날에는 한 사람을 고문했다
죽으라고
그 죽음의 통곡소리에 괴로워했다
나, 괴로워했다
괴롭다
살아 있다는 것이 괴롭다
그렇지 아니한가?
시는, 몹쓸 시는
부끄러워해라, 제발 부끄워러해라
밀실에서 고문하던 세상이
이제 부끄러워하지도 않으면서
세상 사람 모두를 고문한다
지금은 세상이 물고문이다
세상이 세상을 불고문한다
부끄러워해라, 부끄러운 사람이여
살아있는 사람이여
민주주의는 죽지 않았는가?
민주주의를 갈망하는 사람이여
부끄러워서, 차마
부끄러워서
2. 기억한다
기억한다
기억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기억하는가, 기억은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는 울었다
선배, 우리는 울었다, 그리고
어제였다, 문득 문상을 가서
우리는 술 한 잔을 올리면서
스무해던가 서른해던가
그런 세월의 무시무시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영안실
죽음은 붙잡을 수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런 쓸데없는 질문들
통곡할 때가 있다, 울지 않을 때가 있다
흩어질 때가 있다, 모여서 울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삶에 빚을 졌다
우리는 죽음에 빚을 졌다
내일 우리는 다시 빚을 지리라
산다는 것이 너무 무겁다
독배를 마시자
이 잔은 쓴 잔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좋다
다만 살아 있다면
살아 있으라
아, 정신이여
살아 있으라
젊은 정신이여
기억한다는 것은 괴로운 일이다
기억하는가, 기억은 괴롭다, 괴롭다, 괴롭다
막다른 골목에서 우리는 울었다
선배, 우리는 울었다, 그리고
어제였다, 문득 문상을 가서
우리는 술 한 잔을 올리면서
스무해던가 서른해던가
그런 세월의 무시무시함에 대해
이야기했다, 담배를 피우지 않는 영안실
죽음은 붙잡을 수 없다
그렇지 아니한가, 이런 쓸데없는 질문들
통곡할 때가 있다, 울지 않을 때가 있다
흩어질 때가 있다, 모여서 울어야 할 때가 있다
우리는 삶에 빚을 졌다
우리는 죽음에 빚을 졌다
내일 우리는 다시 빚을 지리라
산다는 것이 너무 무겁다
독배를 마시자
이 잔은 쓴 잔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도 좋다
다만 살아 있다면
살아 있으라
아, 정신이여
살아 있으라
젊은 정신이여
1. 나, 시를 쓰리라
나, 시를 쓰리라
이미 벌써 쓴 시들은 잊고
오늘 밤
밤의 어둠을 뚫고
나, 시를 쓰리라
취했다
삶에 취했고
울음에 취했고
슬픔에 취했다
나, 시를 쓰리라
이미 벌써 죽은 자들과
함께
나 노래 하리라
내일 죽을 사람들과 함께
나, 기억하리니
뿌리의 기억,
줄기의 기억
그리고 씨앗의 기억
노래하리라, 또 노래하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 그것대로 쓸쓸한 것
창 밖에 어스름 해가
돋는다, 쓸쓸하다.
이미 벌써 쓴 시들은 잊고
오늘 밤
밤의 어둠을 뚫고
나, 시를 쓰리라
취했다
삶에 취했고
울음에 취했고
슬픔에 취했다
나, 시를 쓰리라
이미 벌써 죽은 자들과
함께
나 노래 하리라
내일 죽을 사람들과 함께
나, 기억하리니
뿌리의 기억,
줄기의 기억
그리고 씨앗의 기억
노래하리라, 또 노래하리라
내가 할 수 있는 것
그것, 그것대로 쓸쓸한 것
창 밖에 어스름 해가
돋는다, 쓸쓸하다.
2012년 1월 2일 월요일
"권력을 갖는 것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
2012년 1월 2일자 민중의소리 이동권 기자의 신년 인터뷰. 도종환 시인과의 인터뷰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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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름답거나 생명력이 있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아름다운 마음을 밖으로 빼내 서로 배려하고 아끼며 나누는 삶을 뜻한다. 그래서 생긴 모양이나 가진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행복의 씨도, 불행의 씨도 될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은 이 단순한 진리를 아주 쉽게 알려줬다. 진정 아름다운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삶을 채워가야 하는지.
도종환 시인은 지병으로 오랜 시간 마늘밭에 지은 황토집, '구구산방'에 들어가 요양했다. 구구산방에서 구구는 거북이구(龜)자로, 거북이처럼 오래살고 싶다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문득 '구구산방'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어버린다. 건강이 나쁘면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였다. 최근에도 그는 산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거나 글을 쓴다. 한 달 전에는 이런 시간들이 모아져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시집이 나왔다. 그는 2012년에도 물론 왕성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책을 2~3권정도 준비 중이다. 쭈욱 이어서 나온다. 산문집도 낸다. 시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분야별로 소개하는 책이다. 예를 들면 학생, 기업인, 연애하는 사람들이 볼만한 시를 소개하는 책이다. 시 읽는 사람들을 늘리는데 기여하고 싶다. 10년, 20년 금방이다. 20년 전의 일도 다 기억이 난다. 순간순간 충실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0년도 금방 올 것이다. 글을 쓸 것이다. 상상력이 허락될 때까지 글을 써야하지 않겠나."
2012년 그의 모토는 '더 조용하게 살자'다. 그래서인지 그는 올 한 해 살기가 더욱 걱정이다.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어지러워서 여러 군데 불려 다닐 것 같다는 이유다. 2011년도 만만치 않은 한해였는지 한숨부터 내쉰다.
"연초부터 구제역으로 살아있는 짐승을 생매장하고, 쓰나미로 원전이 터져 한 나라의 재앙이 전 지구적 재앙이 되는 위기를 느끼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그런 상황에서 한미FTA가 발표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권력을 가진 상층부,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세상 살기가 점점 어려워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시나 글로 형상화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스스로 부족해보여 개인적으로도 안타깝다. "
예술,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최근 문화계도 인간의 정신이나 실존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많이 다룬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예술가들이 대부분 우리 사회의 현실을 화두로 꺼내들고 있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가 그러했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그러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과도해지고 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 새로 나온 책을 이야기하고, 연극과 오페라가 대화의 소재가 되고, 영화가 바꿔놓고 싶어하는 세상이 화제가 돼야 하는데 정치적인 문제에 문화가 너무 쏠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면 그렇지 않을 것인데,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본다. 문화는 삶의 모습,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가니를 보고 분노했다. 도가니가 단순히 학교, 사립재단, 교사 개인의 노력 때문에 관심을 모은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사학이 부패하고, 부패한 권력이 사학을 감싸고, 그것을 덮어주는 보수언론과 그것을 유리하게 판결해주는 사법부, 이 부패와 비리의 커넥션, 카르텔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망해서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도 그렇다. 문자는 권력의 진입수단이었고, 그들 기득권층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민중이 문자를 갖게 되면 기득권의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 백성들이 문자로 지식을 얻고, 지식의 민주화가 일어나면 엄청나게 큰 충격과 저항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기존 드라마들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만 당대를 분석했지만 이 드라마는 문자를 통한 민중권력과 기득권력의 대립을 그렸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는 예술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했다. 아니 30년, 50년 뒤에라도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러한가. 눈 감고, 귀 막은 채 살 수 없는 노릇. 내 것, 네 것을 다툼 없이 나누는 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인데,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도 욕심이 많아 조용한 날이 찾아올 수 있을지 진정 의문이다.
아마 그도 그런 생각을 깊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올 것인가. 그럴 때는 뭔가 강력한 힘에 의해 세상이 균형이 맞춰지면 조금은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무튼 세상이 너무도 시끄러워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의 얘기처럼 우리가 문화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총선은 문제없다. 그러나 대선은...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모든 이들과 같이 도종환 시인도 진보진영의 집권에 대한 강한 열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권력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자살하는 현실을 바꾸는 것, 아메리칸 드림보다 유로피안 드림을, 승자독식 군사적 패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확대하기 위한 것을 고민하면서 빼앗긴 권력을 가져와야한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소망,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은 한나라당, 수구권력이 다시는 온갖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서 개혁진보세력이 승리하는 것이다. 분명 가능한 지점도 있고 아닌 지점도 있다. 당위적으로 옳아도 자기 입장을 지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통합을 해낸다면 총선에서는 크게 이길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통일, 복지 모든 면에서 한나라당이 역행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야권에 표를 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선의 결과에 대해서는 신중했다. 이를테면 집권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어젠다(agenda)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선은 변수가 많다. 권력을 갖는 것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 의회권력, 행정권력을 가졌을 때도 뭐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에게 실망을 줬다. 학습효과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2013년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자는 결의로 모아져야 한다. 이번에 권력을 잡았으니까 맘껏 휘둘러 봐야지라는 생각보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는 개혁진보가, 다음에는 수구보수가, 이런 식으로 권력을 나눠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혜의 총량을 모아보자. 총선 끝나면 창조적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시기가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저력이 있다. 변화를 향한 힘과 에너지, 추진력이 있다."
동이불화(同而不和)보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사람이 돼 달라
<민중의소리> 독자들을 위해 도종환 시인에게 새해 덕담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민중의소리> 독자들은 정의롭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자랑하면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양보하고 배려하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만나고 생각이 틀리면 상대도 안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상대를 안 하는 것이 '선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면서도 남이 나와 똑같아지길 바라지 않는 진보, 동이불화(同而不和)보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극단적 논리보다는 포용하면서, 함께 변화를 꿈꾸는 분들이 되어 달라. 폭 넓고, 깊이 있는 진보가 됐으면 좋겠다."
삶은 동질적인 생존법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만 보거나 아래를 무시하고 살면 막연한 불안과 동요 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이 사는 방법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며, 사람 사는 모양이 별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착지를 돌아보면 삶의 의미는 매우 달라진다. 어차피 모두 죽어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것이 동질적인 생존법칙의 끝인 것이다. 이미 결과가 같다면 남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따라할 일도 아니고 사회라는 테두리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도종환 시인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그에 대한 여러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도종환 시인은 신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족한 존재이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사람. 그는 이것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의 해답이라는 것을 배우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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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아름답거나 생명력이 있는 것에서 삶의 의미를 발견하곤 한다. 그것은 결코 추상적인 의미가 아니다. 우리 마음속에 간직한 아름다운 마음을 밖으로 빼내 서로 배려하고 아끼며 나누는 삶을 뜻한다. 그래서 생긴 모양이나 가진 것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행복의 씨도, 불행의 씨도 될 수 있다. 도종환 시인은 이 단순한 진리를 아주 쉽게 알려줬다. 진정 아름다운 삶이 무엇이며, 어떻게 삶을 채워가야 하는지.
도종환 시인은 지병으로 오랜 시간 마늘밭에 지은 황토집, '구구산방'에 들어가 요양했다. 구구산방에서 구구는 거북이구(龜)자로, 거북이처럼 오래살고 싶다는 마음에 지은 이름이다. 문득 '구구산방'이라는 단어가 생각나 건강은 어떠시냐고 물으니 빙그레 웃어버린다. 건강이 나쁘면 이렇게 인터뷰를 할 수 있겠느냐는 의미였다. 최근에도 그는 산방에 들어가 휴식을 취하거나 글을 쓴다. 한 달 전에는 이런 시간들이 모아져 '꽃은 젖어도 향기는 젖지 않는다'라는 시집이 나왔다. 그는 2012년에도 물론 왕성한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
"책을 2~3권정도 준비 중이다. 쭈욱 이어서 나온다. 산문집도 낸다. 시를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분야별로 소개하는 책이다. 예를 들면 학생, 기업인, 연애하는 사람들이 볼만한 시를 소개하는 책이다. 시 읽는 사람들을 늘리는데 기여하고 싶다. 10년, 20년 금방이다. 20년 전의 일도 다 기억이 난다. 순간순간 충실하게 살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10년도 금방 올 것이다. 글을 쓸 것이다. 상상력이 허락될 때까지 글을 써야하지 않겠나."
2012년 그의 모토는 '더 조용하게 살자'다. 그래서인지 그는 올 한 해 살기가 더욱 걱정이다. 조용하게 살고 싶은데 세상이 어지러워서 여러 군데 불려 다닐 것 같다는 이유다. 2011년도 만만치 않은 한해였는지 한숨부터 내쉰다.
"연초부터 구제역으로 살아있는 짐승을 생매장하고, 쓰나미로 원전이 터져 한 나라의 재앙이 전 지구적 재앙이 되는 위기를 느끼고, 정치 경제 군사적으로 미국 의존도가 심화되고, 그런 상황에서 한미FTA가 발표되고,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을 지켜보았다. 권력을 가진 상층부, 기득권을 지키려는 사람들은 좋을지 모르겠지만 세상 살기가 점점 어려워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다.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상황을 시나 글로 형상화하고 국민의 공감대를 이끌어내는 것이 스스로 부족해보여 개인적으로도 안타깝다. "
예술,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질 수 있다면
세상이 시끄러워서일까. 최근 문화계도 인간의 정신이나 실존의 문제를 다루기보다는 정치사회적인 문제를 많이 다룬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이유도 있지만 예술가들이 대부분 우리 사회의 현실을 화두로 꺼내들고 있다. 공지영 작가의 '도가니'가 그러했고, 드라마 '뿌리깊은 나무'가 그러했다.
"정치에 대한 관심이 과도해지고 있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야 살기 좋은 사회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대화 속에 새로 나온 책을 이야기하고, 연극과 오페라가 대화의 소재가 되고, 영화가 바꿔놓고 싶어하는 세상이 화제가 돼야 하는데 정치적인 문제에 문화가 너무 쏠리고 있다. 우리 사회가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라면 그렇지 않을 것인데, 그런 사회가 아니라는 것을 반증한다고 본다. 문화는 삶의 모습, 현실 그대로를 반영하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도가니를 보고 분노했다. 도가니가 단순히 학교, 사립재단, 교사 개인의 노력 때문에 관심을 모은 것이 아니다. 그 이면에는 사학이 부패하고, 부패한 권력이 사학을 감싸고, 그것을 덮어주는 보수언론과 그것을 유리하게 판결해주는 사법부, 이 부패와 비리의 커넥션, 카르텔이 워낙 견고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절망해서다.
드라마 뿌리 깊은 나무도 그렇다. 문자는 권력의 진입수단이었고, 그들 기득권층의 특권이었다. 그런데 민중이 문자를 갖게 되면 기득권의 뿌리가 흔들리게 된다. 백성들이 문자로 지식을 얻고, 지식의 민주화가 일어나면 엄청나게 큰 충격과 저항을 받게 되지 않겠는가. 기존 드라마들은 왕권과 신권의 대립으로만 당대를 분석했지만 이 드라마는 문자를 통한 민중권력과 기득권력의 대립을 그렸다. 이러한 시도 자체가 갖는 의미가 있다고 본다."
그는 예술 그 자체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는 날이 빨리 오길 기대했다. 아니 30년, 50년 뒤에라도 그날이 오기를 학수고대했다. 하지만 세상일이 그러한가. 눈 감고, 귀 막은 채 살 수 없는 노릇. 내 것, 네 것을 다툼 없이 나누는 게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이치인데, 사람이라는 존재가 너무도 욕심이 많아 조용한 날이 찾아올 수 있을지 진정 의문이다.
아마 그도 그런 생각을 깊게 하고 있는 것 같았다. 과연 인간을 믿을 수 있는가. 유토피아 같은 세상은 올 것인가. 그럴 때는 뭔가 강력한 힘에 의해 세상이 균형이 맞춰지면 조금은 가능해지지 않을까. 아무튼 세상이 너무도 시끄러워 눈살이 찌푸려진다. 그의 얘기처럼 우리가 문화에 대해 순수한 열정을 가지고 얘기할 수 있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총선은 문제없다. 그러나 대선은...
2012년에는 총선과 대선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개혁과 진보를 바라는 모든 이들과 같이 도종환 시인도 진보진영의 집권에 대한 강한 열망을 피력했다. 하지만 권력 자체가 목표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이 자살하는 현실을 바꾸는 것, 아메리칸 드림보다 유로피안 드림을, 승자독식 군사적 패권이 아니라 삶의 질을 높이고 행복을 확대하기 위한 것을 고민하면서 빼앗긴 권력을 가져와야한다는 것이다.
"가장 바람직한 소망, 많은 사람이 바라는 것은 한나라당, 수구권력이 다시는 온갖 악행을 하지 못하도록 일대일 구도를 만들어서 개혁진보세력이 승리하는 것이다. 분명 가능한 지점도 있고 아닌 지점도 있다. 당위적으로 옳아도 자기 입장을 지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더라도 가능한 범위 안에서 통합을 해낸다면 총선에서는 크게 이길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방, 통일, 복지 모든 면에서 한나라당이 역행하는 것에 많은 사람들이 실망했다. 야권에 표를 줄 것이다."
그러나 그는 대선의 결과에 대해서는 신중했다. 이를테면 집권에 대한 열정이 아니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한 어젠다(agenda)가 있어야 가능하다고 생각했다.
"대선은 변수가 많다. 권력을 갖는 것이 목표여서는 안 된다. 의회권력, 행정권력을 가졌을 때도 뭐하나 제대로 하지 못해 국민에게 실망을 줬다. 학습효과라고 해야 할까. 그래서 2013년에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내자는 결의로 모아져야 한다. 이번에 권력을 잡았으니까 맘껏 휘둘러 봐야지라는 생각보다 우리 사회를 한 단계 업그레이드해서 새로운 체제를 만들려고 노력해야 한다. 이번에는 개혁진보가, 다음에는 수구보수가, 이런 식으로 권력을 나눠 가지는 것은 의미가 없다. 지혜의 총량을 모아보자. 총선 끝나면 창조적 가능성을 만들어내는 시기가 될 것이다. 우리 민족은 저력이 있다. 변화를 향한 힘과 에너지, 추진력이 있다."
동이불화(同而不和)보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사람이 돼 달라
<민중의소리> 독자들을 위해 도종환 시인에게 새해 덕담을 들려달라고 부탁했다. <민중의소리> 독자들은 정의롭고 진보적인 사람들이 많다고 자랑하면서.
"진보적인 사람들은 다 똑똑한 사람들이다. 똑똑한 사람들은 양보하고 배려하고 소통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은 생각이 같은 사람하고만 만나고 생각이 틀리면 상대도 안 한다. 생각이 다른 사람과 상대를 안 하는 것이 '선명'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아니다. 타인과 조화롭게 지내면서도 남이 나와 똑같아지길 바라지 않는 진보, 동이불화(同而不和)보다는 화이부동(和而不同)하는 사람이 돼야 한다. 극단적 논리보다는 포용하면서, 함께 변화를 꿈꾸는 분들이 되어 달라. 폭 넓고, 깊이 있는 진보가 됐으면 좋겠다."
삶은 동질적인 생존법칙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위만 보거나 아래를 무시하고 살면 막연한 불안과 동요 같은 것이 생겨나기 시작하고 남들보다 뒤쳐진다는 생각에 괴로움이 생긴다. 그래서 사람들은 남들이 사는 방법을 쫓아 살아가는 것이 현명하며, 사람 사는 모양이 별 게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종착지를 돌아보면 삶의 의미는 매우 달라진다. 어차피 모두 죽어 이 세상과 이별해야 하는 것이 동질적인 생존법칙의 끝인 것이다. 이미 결과가 같다면 남들이 그렇게 산다고 해서 따라할 일도 아니고 사회라는 테두리에 갇혀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현명하지 못하다.
도종환 시인과 만나 얘기를 나누고, 그에 대한 여러 선생님들의 얘기를 들으면서 '도종환 시인은 신념이 강하고 성실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은 기본적으로 부족한 존재이지만 이를 두려워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묵묵하게 걸어가는 사람. 그는 이것이야말로 정말 아름답고 풍요로운 삶의 해답이라는 것을 배우게 한다.
세대출판
2011년 9월 2일 국립중앙도서관은 국립중앙도서관 국제회의장에서 '도서관과 출판계의 상호 발전과 협력' 세미나를 개최한 바 있다. 이 자리는 김기태 교수의 사회, 표정훈 출판평론가, 곽철완 교수, 최성구 팀장, 오혜영 사무관 등이 발표한 바 있다. 이 가운데 표정훈 출판평론가가 발표한 ‘최근 우리 출판계 동향과 전망’ 발표를 요약 정리한 내용을 <프링팅코리아> 2012년 1월호(통권 115호)에서 임남숙 차장이 정리한 것.
2012년은 정치의 해, 불안정성의 해
2012년은 4월 총선과 12월 대선이 모두 있는 정치의 해다. 내년 초부터 각종 언론매체를 중심으로 현실 정치 담론, 선거담론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진보-보수 이념을 중심으로 다양한 정책 이슈 논쟁과 후보 인물 논쟁이 당연히 포함될 것이다. 이에 따라 넓은 의미의 사회과학 도서에 대한 수요 가능성이 커질 수도 있겠지만 현실정치에 쏠리는 눈길이 느는 만큼 책에 주목하는 눈길은 아무래도 감소할 것으로 전망된다. 최근 2년정도 ‘남성독자들의 귀환’에 대한 기대감이 커졌지만, 남성 독자층이 정치 사회담론으로 쏠릴 가능성도 커진다. 베스트셀러를 중심으로 한 출판시장의 흐름을 여성 독자들이 주도하는 추세는 여전했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변화의 조짐이 보였다. 교보문고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2010년 종합 베스트셀러 100위권내 도서 구매자 가운데 남성과 여성이 각각 39.7%와 60.3%를 기록했다. 2009년도 남성 구매자 비율이 36.8%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비록 3% 정도 증가했지만 이러한 증가가 계속될 것인지 귀추가 주목된다. 대외적으로 볼 때도 2012년은 우리나라는 물론 미국, 일본, 중국, 러시아, 북한 등이 모두 정권교체기를 맞는 해다. 경제 위기감과 맞물리면서 전체적인 전망이 불투명하고 불안전한 상태가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불투명성과 불안정성이 2012년의 특징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점을 출판계와 개별 출판사들은 염두에 둘 필요가 있다. 예컨대 불안한 전환기일수록 오히려 안심입명을 추구하는 경향이 나타날 수도 있는가 하면 불안정하고 불투명한 현실의 구조를 좀 더 분명하게 파악하고 싶다는 욕구가 늘어날 수도 있을 것이다. 아예 현실도피적인 자세로 임하는 경우가 늘 수도 있다. 불안에 대처하는 자세는 사람마다 제각각이겠지만 그것이 어떤 큰 흐름을 형성하게 될 가능성도 없지 않다. 베스트셀러는 그런 큰 흐름과 조응한다.
전자책 시장 가능성의 실질적이고 구체적인 기반 마련 과제
2012년에도 전자책의 시장 가능성을 구체화하기 위한 노력들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정부지원에만 의존하려다가는 ‘먹을 것 없는 소문난 잔치’로 끝날 가능성이 크다. 콘텐츠, 유통시스템, 인터페이스, 관련제도 등 모든 측면에서 소비자(독자) 친화적으로 접근하면서 안정적이고 신뢰할 수 있는 수익모델과 시스템을 정착시켜나가는 과제가 전자책의 시장 가능성을 좌우하게 될 것이다. 2012년은 중요한 고비가 될 것이다. 특히 정부의 정책적 지원노력과 민간 부문의 시장 가능성 현실화 노력이 성공적으로 접목되어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가라는 점이 관건이 될 것이다.
시대적 전환기의 징후들이 가속화되는 현실
저출산고령화 추세 가속화, 베이비붐 세대의 본격적인 은퇴, 1인 가구의 급속 증가, 88만원 세대라는 말로 대표되는 청년 일자리 문제, 소득 양극화 문제, 여기에 미국과 유럽 재정위기에서 촉발된 세계적인 경제불안 상황지속 등의 국내외적 추세와 징후들은 출판계에 위기일 수도 기회일 수도 있다. 출생, 진학, 취업, 결혼, 자녀교육, 노년, 죽음으로 이어지는 생애주기의 고리를 제대로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불안감이 각 세대마다 커진다면, 출판은 일종의 세대출판의 경향으로 흐를 가능성도 있다. 예컨대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김난도 서울대 교수의 <아프니까 청춘이다>도 세대출판의 한 사례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올해부터 본격적으로 은퇴하기 시작한 베이비붐 세대의 집단적 욕구와 필요, 이해관계 등을 바탕으로 한 책도 가능할지 모른다. 생애주기 연결고리의 취약성과 각 세대별 불안요인에 착안하는 출판기획이 필요한 시대가 되었다. 최근 우리 사회가 겪는 여러 징후들을 통틀어서 시대적 전환기의 징후라 한다면 개별 출판사들은 이러한 징후에 예의주시하고 그것이 출판시장에 미칠 수 있는 영향을 면밀하게 읽어내기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다. 정치사적으로 보면 이른바 87년 체제, 즉 87년 민주화운동의 산물로 개정된 헌법과 정치사회 기조가 25년간 이어져 내려오다가 일대 전환의 움직임을 맞이하는 때가 바로 2012년이 될 것이다.
출판시장 수요의 쏠림, 편중현상 심화
출판계 일각에서는 정의 열풍과 함께 인문사회과학도서 전반이 새롭게 각광받는 흐름이 생기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하기도 했으나, 여러 해동안 이어지는 출판 수요의 쏠림현상을 재확인해야 했다. 하나의 베스트셀러가 크게 각광받으면서 같은 장르, 비슷한 성격의 책들이 동반 상승하는 흐름은 나타나지 않은 것이다. 신경숙의 <엄마를 부탁해>가 사회적 신드롬으로까지 이어지면서도 소설 시장 전체로 보면 동반상승흐름을 낳지는 못했던 것도 하나의 예가 될 수 있다. 독자들의 책 소비 측면에서 보면 일종의 ‘안전한 소비’를 선호하는 현상이 심화된다고 볼 수 있다. 베스트셀러가 된 책에 대해서만 지극히 선별적으로 지갑을 열며, 다른 책에는 좀처럼 눈길을 주지 않는 것이다. (그러나 <정의란 무엇인가>를 구매한 100만 명이 넘는 독자들 가운데 과연 그 책의 상당부분을 읽은 독자는 얼마나 될까?) 일부 출판사들의 이른바 사재기 형태도 이러한 현상과 부분적으로는 맞물려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따라하기 출판, 즉 베스트셀러의 인기에 편승하기 위해 비슷한 책을 내놓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쏠림 현상은 책의 다양성을 저해하고 출판 양극화, 승자독식 구조를 심화시킬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하지 못하다. 책값대비 만족도와 효율성의 판단기준을 이미 시장에서 검증된 판매량이나 저자, 출판사, 브랜드 인지도로 잡는 독자들이 늘면서, 책의 탐색재적인 성격이 점점 더 강해지고 있다. 탐색재는 컴퓨터나 가전제품처럼 그 제품관련 정보를 파악하거나 브랜드만 봐도 그 기능과 품질을 파악할 수 있는 재화, 상품을 뜻한다. 반면 경험재는 직접 구입을 해서 체험을 해봐야만 품질을 파악할 수 있는 재화, 상품이다. 본질적으로는 책은 대표적인 경험재에 속한다. 그러나 책의 탐색재적 성격이 강해지면 기성 인기작가나 브랜드 인지도가 높은 출판사들의 책으로 소비가 집중되는 경향이 나타난다. 온전한 의미의 서평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또 서평매체도 극히 제한되어 있는 현실도 책의 탐색재적 성격을 강화시키는 한 요인이다. 개인 독서 블로그나 인터넷 서점 독자서평 등이 활성화되고 있지만 일부이기는 하나 출판사의 마케팅 도구 역할을 한다는 지적을 받기도 한다.
SNS와 출판마케팅의 다양한 접목 가능성 현실화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급격한 확산 및 일반화와 함께 출판마케팅에서도 SNS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한 화두가 되었다. 2012년에는 SNS의 출판마케팅 활용의 다양한 가능성이 실험되고 또 다양한 성과가 나오는 해가 될 것이다. 올해의 특징적인 사례를 들면 다음과 같다. 종이책 10만부 판매, 전자책은 1천부 판매, 영화화 결정. 출간 3개월만에 <7년의 밤>이 이룬 성과다. ... 김류미 은행나무 출판사 콘텐츠기획 담당자는 <7년의 밤>의 전자책 판매성공을 두고 여러 이유를 꼽았다. 종이책 판매 성과가 좋았고, 속도감 있는 문장 호흡과 흡입력 있는 이야기 전개, 북 트레일러(책 소개 영상) 제작, 전자책 초반 200쪽을 미리보기로 공개, SNS로 책 글귀 공유 등 다양한 요인이 전자책 판매증대에 기여했을 것으로 분석했다. 김류미씨는 그중 사회관계망서비스(SNS)의 역할이 가장 의미 있다고 보았다. “평소 트위터를 중심으로 책 제목을 자주 검색합니다. 책이 실제로 어떤 독자에게 어떻게 읽히고 팔리는지 파악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죠. 그렇게 검색하다 어느 순간에선가 트위터에서 <7년의 밤>을 전자책으로 읽었다는 글이 눈에 띄기 시작했습니다.” 트위터에서 책에 대한 이야기는 어떻게 퍼질까. 김류미씨 설명을 들어보자. 포털사이트 첫 화면에 <7년의 밤> 관련 기사가 나왔을 때 독자들이 트위터로 바로 링크를 공유한다. 이미 책을 읽은 독자는 트위터에 리뷰를 남기고, 이러한 트윗은 RT와 리트윗을 통해 사람들에게 퍼진다. 그러다보면 자주 오르내리는 <7년의 밤>이란 책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 마련이다. 김류미씨는 이 궁금증이 입소문 마케팅으로 이어졌고 구매와 독서와 바로 이어지는 전자책에서는 효과적으로 작용한 것으로 파악했다. (블로거닷넷 정보라. 2011.07.24.)
2012년 베이징 국제도서전 주빈국 참가
베이징 국제도서전(2011.8.31.~9.4)은 중국 출판시장의 비약적인 성장과 그 시장 가능성에 대한 긍정적 전망 때문에 해마다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특히 아동도서, 실용도서, 문학도서 등을 중심으로 우리나라 출판의 해외시장 진출과 관련하여 그 의미가 작지 않다. 우리나라 주빈국 참가가 일회성 행사차원이 아니라 향후 중국 출판시장 진출을 위한 유의미한 계기가 될 수 있도록 출판계 안팎의 관심이 제고되어야 할 것이다. 이밖에도 2012년은 이미 언급한 도서정가제 문제와 과도한 할인경쟁 등 여러 제도적, 현실적 문제점들의 해결,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의 보편화가 출판마케팅을 비롯한 출판계 전반에 몰고 올 변화 등 매우 다양한 문제와 과제들을 풀어나가야 하는 한해가 될 것이다. 우리 출판계는 그 어떤 해도 도전과 어려움 속에 놓이지 않은 해가 없었다. 출판계 안팎의 도전과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출판인들의 사회적, 문화적 책임감과 공적 합리성, 그리고 출판계 현안 해결에 공동으로 적극 나서는 자세가 요구된다 하겠다.
정리 | 임남숙 차장 sang@print.or.kr
<월간 프린팅코리아 2012년 1월호 통권 115호>
2012 독서의 해 특집
2012년 1월 1일 무등일보 기획특집, 최민석 기자의 보도. '2012 독서의 해 특집'
책은 지식과 정보의 보고
독서 통해 지식 늘리고 사고력 키워야
2012년은 문화관광체육부가 제정한 '독서의 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독서'는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됐고,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책 읽는 문화 자체가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독서의 해' 제정을 계기로 바람직한 독서문화 정착과 확산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독서문화는 정부 주도로 단기적 시책이 나온다고 해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대다수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독서층이 늘고 자리잡아야 한다. 또 '독서'가 개인의 지적 역량을 키워주는 차원을 벗어나 국가 경쟁력의 기초이자 토대가 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광주·전남지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래 지역을 이끌 인재를 키우고 성장동력 기반 마련을 위해서도 '독서문화'조성이 시급하다. 올해 독서의 해를 맞아 지역사회 전반에 읽기 문화를 확산시키고 독서문화 저변을 넓히기 위한 독서시장 활성화 방안 등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디지털 문화, 실종된 '독서문화'
책은 풍성한 지식과 정보의 창고이자 문화의 소통이 이뤄지는 매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독서에 대한 목마름과 문화적 욕구를 가졌음에도 경제적 어려움과 여건 미비 등으로 인해 독서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독서문화에서 소외된 계층이 많다.
광주·전남지역을 비롯,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난 1년 동안 한 사람이 평균 20.8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1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1인당 연간 평균 독서권수는 20.8권으로 조사됐다. 연령이 높을수록 독서량은 감소했으며 독서인구 비율은 61.8%에 달했다. 무엇보다 독서층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지난 90년대 이후 디지털시대에 진입에 따른 정보통신기기 보급과 정보소비 행태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스마트폰 등장에 따른 증가세가 독서행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 기관의 스마트폰 보유에 따른 한·중·일·대만 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대중교통 이동 시 주요활동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독서를 하는 사람이 줄어든 대신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거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76%(중복응답)로 휴대폰 이용 경향이 가장 많았고 중국(75.9%) 역시 높았다. 대만(54.3%)과 일본(54.1%)도 그 뒤를 이은 결과를 보였다. 그러나 전자책(e-book)으로 인해 독서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의견도 많았다.
◆광주·전남지역 서점업계 위협
이같은 급격한 독서율 감소와 정보문화 확산은 지역 서점업계 존립과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광주지역 문화의 한 축으로 수십년 동안 자리해 온 토종서점이 전국 체인망을 가진 대형 서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지역 출판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또 서구 상무지구 등 신도심으로의 인구이동으로 인한 유동인구 감소와 서점환경 급변으로 동구 계림동 일대 서점들이 잇따른 폐업으로 사라지고 있다.
전국 체인망을 갖춘 영풍문고가 광주 서구 광천동 버스터미널 내에 개점하면서 지역 대표 향토서점의 매출도 급감했고 지역의 대표적 서점이었던 삼복서점이 지난해 폐업했다. 전남대 후문에 자리했던 '청년글방'과 동구 계림동에 분포했던 헌 책방도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다. 또 약 50만권 가량의 장서를 보유한 충장서점 등도 대형서점과 힘든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대형서점의 공세와 함께 할인 마트내에도 200평이 넘는 규모의 전문서점 코너가 속속 생겨나고 인터넷을 통한 출판유통 증가와 책 판매 급증으로 인해 지역 서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함께 최근에는 온라인 시장이 기존 출판 시장을 위협, 인터넷 서점과 관련 쇼핑몰로 고객들이 몰리고 있다.
◆작지만 소중한 희망
이같은 독서문화 양상과 열악한 출판시장 여건 속에서도 작지만 울림이 큰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책과 가까이 하고 싶어도 온전히 책을 접할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해 (재)아름다운 가게 광주·전남본부가 한 기부자로부터 무상 임대받은 북구 용봉동 1390-3번지 2층 공간에 지역 1호로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광주용봉점'(아낌없이 주는 나무)이 '나눔의 기쁨, 책 읽는 즐거움'을 기치로 지난 2009년 6월 개점,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별칭은 자신의 몸을 내어 주어 인간생활에 유용한 책을 만드는 나무의 상징성과 이 공간을 기증해 준 기부자, 책과 씨앗기금 기부를 위해 '책주주'로 참여한 많은 시민들의 나눔과 실천의 정신이 담겨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인터넷 헌책방의 활성화와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서울 및 수도권 4개 매장(헌책방 블로그 http://cafe.naver.com/bsbooks.cafe-보물섬, 광화문책방, 신촌책방, 강남책방)의 성공에 착안, 지난 2003년 12월 아름다운가게 지역1호 광주첨단점 개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이뤄지게 됐다.
여기에 문화기획자로 활동 중인 규랑씨가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공간디렉팅을 맡았고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공정무역커피 판매를 위한 기자체 일체 기부, 이 그룹 임직원들의 1만5천여권 헌책기증캠페인 등을 통해 힘을 보탰다.
이들은 공정무역 '아름다운 커피' 판매를 통해 네팔과 칠레, 우간다 등 제3세계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생산원가를 지불하고 판매수익금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예정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이를 위해 '비워야 채워지는 것, 바로 서재입니다'를 모토로 애서가와 책 수집가, 나눔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뜻있는 시민들의 참여와 기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서점은 그동안 수천여명이 넘는 시민들과 무등일보 등이 도서기증운동에 참여해 4만여 권이 넘는 책을 기증했으며, 6만여 권의 중고도서가 판매되는 성과를 올렸다.(문의 062-514-8975) 광주 서구 상무지구 서점이 '지역문화센터 지역서점 사업' 공모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서적 판매는 물론 다양한 문화행사를 갖는 등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광주 서구 치평동에 자리한 한림서적(대표 박평기)은 최근 한국서점조합이 중소형 서점 육성발전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 국고보조금 지원사업으로 시행 중인 '지역문화센터 지역서점 사업'에 선정됐다. 한림서적은 창업 10년 이상 된 서점을 대상으로 한 이번 사업에 서울 '그날이 오면', 부산 영광도서와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돼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한림서적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센터 지역서점 사업에 선정돼 내년 2월까지 독서클럽과 시낭송회, 작가와 대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갖는다.
인터넷 카페 '독서유랑 한림'(http://cafe.daum.net/inomad)을 통해 독서클럽을꾸려 팀별 토론과 독서 치료를 지원하고 미취학 아동과 장애인, 다문화가족을 초청해 서점 견학을 할 계획이다. 서점 앞 특설무대에서는 독서 토크와 통기타 가수 공연 등 문화행사를 열고 지난 2월 15일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는 시 낭송회를 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상 생활 속에서 책읽는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구체적 실천과 독서 생활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생활필수품이지만 '중독' 수준에 가까운 휴대폰(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책을 읽는 습관과 횟수를 늘리는 등 독서의 생활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허형만 목포대 국문과 교수는 "책은 유용한 지식과 정보가 들어있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사고와 정신을 풍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살려야 한다"며 "크게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책부터, 집에 있는 책부터 차분히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글=최민석·사진=임정옥기자
글=최민석·사진=임정옥기자
책은 지식과 정보의 보고
독서 통해 지식 늘리고 사고력 키워야
2012년은 문화관광체육부가 제정한 '독서의 해'다. 그러나 언제부터인지 '독서'는 일부 사람들의 전유물이 됐고, 디지털 시대로 접어들면서 책 읽는 문화 자체가 존립을 위협받고 있다. 정부는 이에 따라 '독서의 해' 제정을 계기로 바람직한 독서문화 정착과 확산을 위한 다양한 정책과 사업에 나설 예정이다. 그러나 독서문화는 정부 주도로 단기적 시책이 나온다고 해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아니다. 무엇보다 대다수 국민들의 생활 속에서 독서층이 늘고 자리잡아야 한다. 또 '독서'가 개인의 지적 역량을 키워주는 차원을 벗어나 국가 경쟁력의 기초이자 토대가 된다는 점도 고려돼야 한다는 것이 중론이다. 광주·전남지역도 예외가 될 수 없다. 미래 지역을 이끌 인재를 키우고 성장동력 기반 마련을 위해서도 '독서문화'조성이 시급하다. 올해 독서의 해를 맞아 지역사회 전반에 읽기 문화를 확산시키고 독서문화 저변을 넓히기 위한 독서시장 활성화 방안 등을 짚어본다.<편집자주>
◆디지털 문화, 실종된 '독서문화'
책은 풍성한 지식과 정보의 창고이자 문화의 소통이 이뤄지는 매개다. 그러나 우리 주위에는 독서에 대한 목마름과 문화적 욕구를 가졌음에도 경제적 어려움과 여건 미비 등으로 인해 독서수요를 충족시키지 못하거나 독서문화에서 소외된 계층이 많다.
광주·전남지역을 비롯, 우리나라 사람들은 지난 1년 동안 한 사람이 평균 20.8권의 책을 읽은 것으로 나타났다. 통계청이 최근 발표한 '2011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13세 이상 인구 중 1인당 연간 평균 독서권수는 20.8권으로 조사됐다. 연령이 높을수록 독서량은 감소했으며 독서인구 비율은 61.8%에 달했다. 무엇보다 독서층이 급격하게 줄어든 것은 지난 90년대 이후 디지털시대에 진입에 따른 정보통신기기 보급과 정보소비 행태 변화가 큰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됐다.
특히 스마트폰 등장에 따른 증가세가 독서행태 변화를 주도하고 있다. 한 기관의 스마트폰 보유에 따른 한·중·일·대만 독서실태조사를 보면 스마트폰의 등장 이후, 대중교통 이동 시 주요활동에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며 독서를 하는 사람이 줄어든 대신 휴대폰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대거 늘어나고 있다고 밝혔다. 이 조사에 따르면 한국은 76%(중복응답)로 휴대폰 이용 경향이 가장 많았고 중국(75.9%) 역시 높았다. 대만(54.3%)과 일본(54.1%)도 그 뒤를 이은 결과를 보였다. 그러나 전자책(e-book)으로 인해 독서량이 늘어날 것으로 보는 의견도 많았다.
◆광주·전남지역 서점업계 위협
이같은 급격한 독서율 감소와 정보문화 확산은 지역 서점업계 존립과 기반 자체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고 있다. 광주지역 문화의 한 축으로 수십년 동안 자리해 온 토종서점이 전국 체인망을 가진 대형 서점이 속속 들어서면서 지역 출판시장을 잠식하고 있다. 또 서구 상무지구 등 신도심으로의 인구이동으로 인한 유동인구 감소와 서점환경 급변으로 동구 계림동 일대 서점들이 잇따른 폐업으로 사라지고 있다.
전국 체인망을 갖춘 영풍문고가 광주 서구 광천동 버스터미널 내에 개점하면서 지역 대표 향토서점의 매출도 급감했고 지역의 대표적 서점이었던 삼복서점이 지난해 폐업했다. 전남대 후문에 자리했던 '청년글방'과 동구 계림동에 분포했던 헌 책방도 하나하나 사라지고 있다. 또 약 50만권 가량의 장서를 보유한 충장서점 등도 대형서점과 힘든 경쟁을 이어가고 있다. 대형서점의 공세와 함께 할인 마트내에도 200평이 넘는 규모의 전문서점 코너가 속속 생겨나고 인터넷을 통한 출판유통 증가와 책 판매 급증으로 인해 지역 서점들은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이와함께 최근에는 온라인 시장이 기존 출판 시장을 위협, 인터넷 서점과 관련 쇼핑몰로 고객들이 몰리고 있다.
◆작지만 소중한 희망
이같은 독서문화 양상과 열악한 출판시장 여건 속에서도 작지만 울림이 큰 변화의 조짐들이 나타나고 있다. 이처럼 책과 가까이 하고 싶어도 온전히 책을 접할 수 없었던 이들을 위해 (재)아름다운 가게 광주·전남본부가 한 기부자로부터 무상 임대받은 북구 용봉동 1390-3번지 2층 공간에 지역 1호로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광주용봉점'(아낌없이 주는 나무)이 '나눔의 기쁨, 책 읽는 즐거움'을 기치로 지난 2009년 6월 개점, 본격 운영에 들어갔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라는 별칭은 자신의 몸을 내어 주어 인간생활에 유용한 책을 만드는 나무의 상징성과 이 공간을 기증해 준 기부자, 책과 씨앗기금 기부를 위해 '책주주'로 참여한 많은 시민들의 나눔과 실천의 정신이 담겨 있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인터넷 헌책방의 활성화와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서울 및 수도권 4개 매장(헌책방 블로그 http://cafe.naver.com/bsbooks.cafe-보물섬, 광화문책방, 신촌책방, 강남책방)의 성공에 착안, 지난 2003년 12월 아름다운가게 지역1호 광주첨단점 개설에 참여했던 사람들이 모여 이뤄지게 됐다.
여기에 문화기획자로 활동 중인 규랑씨가 아름다운가게 헌책방 공간디렉팅을 맡았고 미래에셋금융그룹의 공정무역커피 판매를 위한 기자체 일체 기부, 이 그룹 임직원들의 1만5천여권 헌책기증캠페인 등을 통해 힘을 보탰다.
이들은 공정무역 '아름다운 커피' 판매를 통해 네팔과 칠레, 우간다 등 제3세계 생산자들에게 공정한 생산원가를 지불하고 판매수익금으로 이들에게 도움을 줄 예정이다. '아낌없이 주는 나무'는 이를 위해 '비워야 채워지는 것, 바로 서재입니다'를 모토로 애서가와 책 수집가, 나눔을 통해 희망을 만들어 나가고자 하는 뜻있는 시민들의 참여와 기부를 기다리고 있다.
이 서점은 그동안 수천여명이 넘는 시민들과 무등일보 등이 도서기증운동에 참여해 4만여 권이 넘는 책을 기증했으며, 6만여 권의 중고도서가 판매되는 성과를 올렸다.(문의 062-514-8975) 광주 서구 상무지구 서점이 '지역문화센터 지역서점 사업' 공모에 선정된 것을 계기로 서적 판매는 물론 다양한 문화행사를 갖는 등 독자들에게 다가서고 있다.
광주 서구 치평동에 자리한 한림서적(대표 박평기)은 최근 한국서점조합이 중소형 서점 육성발전을 위한 문화체육관광부 국고보조금 지원사업으로 시행 중인 '지역문화센터 지역서점 사업'에 선정됐다. 한림서적은 창업 10년 이상 된 서점을 대상으로 한 이번 사업에 서울 '그날이 오면', 부산 영광도서와 함께 참여할 수 있게 돼 활동영역을 넓힐 수 있게 됐다. 한림서적은 문화체육관광부의 지역문화센터 지역서점 사업에 선정돼 내년 2월까지 독서클럽과 시낭송회, 작가와 대화 등 다양한 문화행사를 갖는다.
인터넷 카페 '독서유랑 한림'(http://cafe.daum.net/inomad)을 통해 독서클럽을꾸려 팀별 토론과 독서 치료를 지원하고 미취학 아동과 장애인, 다문화가족을 초청해 서점 견학을 할 계획이다. 서점 앞 특설무대에서는 독서 토크와 통기타 가수 공연 등 문화행사를 열고 지난 2월 15일 광주시청자미디어센터에서는 시 낭송회를 열기도 했다. 무엇보다 일상 생활 속에서 책읽는 문화가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구체적 실천과 독서 생활화가 뒤따라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생활필수품이지만 '중독' 수준에 가까운 휴대폰(스마트폰) 사용을 줄이고 책을 읽는 습관과 횟수를 늘리는 등 독서의 생활화에 나서야 한다는 것이다.
허형만 목포대 국문과 교수는 "책은 유용한 지식과 정보가 들어있기도 하지만 개개인의 사고와 정신을 풍성하게 한다는 점에서 살려야 한다"며 "크게 생각하지 말고 좋아하는 책부터, 집에 있는 책부터 차분히 읽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글=최민석·사진=임정옥기자
글=최민석·사진=임정옥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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