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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공부를 싫어하는 아들에서부터였다. 공부 때문에 자신감을 잃어버린 아이. 엄마는 고민에 빠졌다. '그래, 아이에게 공부가 이 세상의 전부가 아니라는 걸 알려줘야겠다.' 해답은 책 읽기에 있었다.
엄마는 아들을 데리고 책모임을 꾸리고 나섰다. 매주 아들의 친구들을 불러 함께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을 가졌다. 김유정 문학촌이며, 하동, 남해 등으로 여행도 다녔다. 얼마 뒤 아이가 달라지는 게 눈에 보였다. 책에 푹 빠진 아이는 자신감을 되찾았고, 덩달아 성적도 올랐다.
2003년 아들 둘과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해 지금은 서울 관악구 봉원중학교에서 같은 모임을 이어가고 있는 이 학교 교사 백화현씨의 얘기다.
2012년, 문화체육관광부(장관 최광식)가 지정한 '국민 독서의 해'를 맞아 백씨에게 독서 교육의 의미와 방법에 대해 들어봤다. 그의 말에선 자신감이 묻어났다. 책 읽기에 아이들의 미래가 있으며, 책모임이 이 미래를 밝게 만들 것이라는 믿음이었다.
◆책모임의 시작, '아들'과 '달동네 학교'=백씨가 책모임 운동에 뛰어든 건 두 가지 이유에서였다. 아들과 달동네 학교에서의 기억이 그것이다. 공부에 흥미가 전혀 없는 첫째 아들과 학교에 교과서조차 안 들고 오는 달동네 학교의 아이들.
긴 고민 끝에 백씨가 얻은 결론은 책 읽기였다. 역사와 다른 나라 이야기, 또 상상 속의 세계를 담고 있는 책이야말로 아이들을 바꿀 수 있는 힘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백씨는 2002년 아들 두 명과 함께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했다. 셋이 모여 앉아 책을 읽는 방식이었다. 생각만큼 쉽지는 않았다. 이듬해 1월 백씨는 가정독서모임의 방향을 아예 바꿨다.
아들 또래의 아이들 4명을 더 모아 좀 더 긴장감 있는 모임을 만들었다. 매주 일요일 저녁 7시30분에서 9시30분까지, 시간도 정했다. 처음엔 책을 읽고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누게 했다. 그 다음엔 인권이나 전쟁, 환경 등처럼 토론하기 좋은 주제를 따로 골라 책을 읽었다.
읽고 말하기는 곧 쓰기로 이어졌고, 그림 그리기까지 나아갔다. 학교 시험이 끝나고 방학이 오면 여행도 갔다. 떠나기 전 여행지에 대해 충분히 읽고 공부를 하는 특별한 여행이었다.
각자 좋아하는 작가에 대해 미리 익힌 다음 채만식 문학관에 가면 채만식을 공부한 아이가, 김유정 문학촌에 가면 김유정을 조사한 아이가 다른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는 식이었다. 아이들은 점차 책에 흥미를 붙여갔다.
◆우리 아이가 달라졌어요=백씨가 꿈꾼 책모임은 성적을 올리거나 좋은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표가 아니었다. 아이들이 스스로에 대해 고민할 수 있는 시간을 갖고, 평생 공부하는 습관을 가질 수 있게 하는 게 목적이었다.
가정독서모임을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났을 때쯤, 아이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아이들은 자기 정체성을 찾아갔고, 의젓해졌다. 책을 읽는 게 이렇게 재밌는 줄 몰랐다는 고백도 이어졌다.
책에서 본 내용들이 수업 시간에 등장하자 공부에도 재미를 느끼는 아이들이었다. 자연스레 성적도 올랐다. 1년이 지났을 땐 눈에 띄는 변화들이 생겨났다. 아이들은 예전보다 더 빠르게 책을 읽어냈고, 어떤 분야의 책이든 가리지 않았다. 글을 쓸 때도 거침이 없었다. 한 아이는 '꽃들에게 희망을'과 '공자의 일생' 등을 읽고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쓰기도 했다.
◆'가정'독서모임이 '학교'독서모임으로=책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직접 지켜본 백씨는 독서모임의 무대를 집에서 학교로 넓혔다. 봉원중학교에서의 독서모임은 그렇게 시작됐다.
지난 3월 독서모임을 만들겠다는 가정통신문을 냈을 때 17개 팀이 신청을 했다. 학교 도서관에 이 아이들을 불러놓고 1박2일 동안 연수를 진행했다. 앞으로 어떤 책을 읽을 것인지, 어떤 활동을 할 것인지 아이들 스스로 계획을 세우는 자리였다.
작은 규모로 시작한 봉원중학교 독서모임은 현재 22개로 늘어났다. 여기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만 100 명에 이른다. 이 학교 전교생이 831 명인 점을 감안하면 상당한 숫자다. 학생들의 독서모임을 지원하려 교사들까지 발 벗고 나섰다. 관악구청에선 또 독서모임 예산을 지원해줬다.
봉원중학교는 올해 이 독서모임을 더 크게 키울 계획이다. 독서모임 수를 늘리는 것은 물론 예산 신청 규모도 2배 가까이 늘렸다.
백씨는 2일 "어린 아이들은 혼자 책을 읽다 보면 자기들이 좋아하는 책만 읽게 될 가능성이 높으며, 자신만의 생각에 빠질 위험도 있다"며 "그게 바로 여럿이 함께 하는 독서모임을 시작한 이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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