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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옥(李鈺,1760~1815)이라는 2백여 년 전의 뛰어난 문인이 쓴 담배에 관한 단행본이 최근 발굴되었다. 담배의 경작과 맛, 제작법과 흡연법, 흡연도구, 담배의 문화를 조목조목 기록한 책이다. 전통시대 담배의 생산과 흡연 문화를 이해하는데 이보다 더 자세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가진 저술은 없다. 더구나 이 책은 지식을 건조하게 전달하는 책이 아니라 문학서이다. 아름다운 문장으로 담배에 관한 모든 것을 기록한, 현재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책이다. 필자는 앞으로 이 책의 내용 전체를 차례로 번역하고, 설명을 붙여 연재할 계획이다. 책의 첫 머리에는 이 책을 저술한 이옥의 의도와 동기를 밝힌 서문이 실려 있다. 이번호에서는 그 서문을 간략히 소개해 보겠다.
옛사람은 일상생활의 하나인 음식에 관련된 사실을 글로 써서 기록하기 일쑤였고, 그 외에도 품위 있게 즐기는데 보탬이 되거나 옛 사실을 아는데 도움이 되는 많은 저술이 지어졌다. 이러한 책 들을 통해 옛사람은 기록할 만한 가치가 있는 좋은 점을 한 가지라도 가진 사물이라면, 그 사물이 보잘것없다고 해서 버려두는 일이 없었음을 잘 알 수 있다. 그래서 감춰진 사실을 뒤져 모으고 쌓여 있는 진실을 훤하게 드러내어, 그것을 정리하고 책으로 만들어 후세에 알렸던 것이다. 수많은 사물을 대신하여 곳곳에 버려진 사소한 사물을 드러내어 천하와 후세에 공개적으로 사용하게 하였다. 그들의 마음 씀씀이가 어찌 한때의 붓장난에서 나온것이랴?
천하가 담배를 피운 역사가 오래다.[인암쇄어]에서는 “송정(명나라 신종의 연호)초엽에 담배잎이 여송(呂宋,필리핀)으로부터 전래되었다”고했고, 송여상의 [수구기략]에도 앞의 책을 인용하고서 명말에 나타난 재앙의 하나라고 말했다. 그러니 담배가 남쪽 오랑캐 당으로부터 전래된 이후 거의 네 번째 병자년을 맞은 것이다. 조선에서는 이식(李植)의[택당집(擇堂集)]에[남령초가(南靈艸歌)]가 실려있고, [임충민가전(林忠愍家傳)]에 “금주(錦州)의 전투에서 담배를 싣고 가서 곡식과 바꿨다”라는 기록이 있으므로, 우리 조선에 담배가 들어온 지도 200년이 되었다.
담배를 재배하는 농부들은 기장이나 삼을 심듯이 경작하기 때문에 파종하고 재배하는 온갖 방법이 갖추어져 있다. 담배를 피우는 사람은 술을 가까이 하듯이 피우기 때문에 다듬고 만드는 공정이 갖가지로 완비되어 있다. 심지어는 품종이 점차 많아져서 명칭과 품질이 달라지고, 지식과 솜씨가 점차 발달하여 담배를 위한 물품이 골고루 갖춰지고 있다.
꽃이 필 때 연기를 내뿜고 달일 뜰 때 연기를 들이마시면 술이 지닌 오묘한 맛까지 겸비하고, 파란 연기를 태우고 붉은 연기를 피워낼 때면 향기의 멋까지 갖추는 셈이다. 은으로 만든 담뱃대와 은을 아로새긴 담배통은 차(茶)의 풍치를 더하고, 담배의 꽃을 가꾸고 향을 말리는 일은 진귀한 열매와 이름 있는 꽃에 비교해도 부끄러울 것이 없다. 그렇다면 200여 년 동안에 문자를 이용하여 기록한 책이 있을 법도 하건만, 담배에 대해 기록한 저술가가 있다는 소문을 들은 바가 없다. 담배가 보잘것없는 물건이고, 흡연이 중요치 않은 일이라서 굳이 붓을 휘둘러 저술할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서 그런걸까? 그렇지 않다면, 저술이 있는데도 내가 미처 보지 못했기 때문에 고루하고 비좁은 나의 지식을 부끄러워해야 할까? 그것도 아니라면, 담배가 출현한지 아무래도 오래되지 않아 기록할 시간적 여유가 아직 없었고, 그리하여 후세 사람들에게 저술할 수 있는 기회를 남겨준 것일까?
나는 담배에 대한 고질병이 심하다. 담배를 사랑하고 즐기기 때문에 남들의 비웃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망령을 부려 저술을 한다. 소루하고 거칠어서 숨은 사실을 드러내고 비밀을 밝혀내기 에는 참으로 부족하다. 하지만 이것을 기록하려는 의도는 위에 든 음식과 꽃과 과일에 관한 저술의 부류에 가깝다고 자부하는 바이다.
경오년(庚午年, 1810) 매미가 우는 5월 하순에 화석산인(花石山人)은 쓴다.
출처: http://www.kt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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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경 (烟經)! 어떤 책인가?
담배와 흡연을 다룬 저작 가운데 최고의 작품이 바로 《연경(烟經)》이다. 책 제목을 직역하면 ‘담배의 경전’이다. 18세기 조선 사대부 이옥(李鈺)이 쓴 단독 저술이다. 오랜 동안 사람들은 이런 종류의 책이 존재한 줄조차 몰랐다. 《연경》은 영남대학교 중앙도서관 소장 필사본으로, 경북대 남권희(南權熙) 교수가 기증한 장서인 남재문고(南齋文庫)에 들어가 있다. 전체 분량은 25장이고, 판의 크기는 11.9㎠×21.7㎠이다. 판심(版心)에 ‘화석장본(花石庄本)’이란 원고명이 쓰인 사란공권(絲欄空卷)에 정사하였다. 이 원고지는 이옥이 사용하던 것이 분명함이 밝혀져 저자 수고본(手稿本)임을 알 수 있고, 글씨 역시 이옥 친필이다. 사침(四針)으로 제본하였고, 겉표지는 황지(黃紙)이다. 중국책 스타일로 아담하고 세련되게 만든 책자이다. 책은 서문과 4권으로 구성되었다.
연경서(烟經序) - 경오년(1810) 5월에 쓴 저자의 자서 연경 1권: 담배씨를 거두는 내용인 ‘수자(收子)’에서부터 담배 뿌리를 보관하는 ‘엄근(罨根)’에 이르기까지 담배를 경작하는 방법과 과정을 17조에 걸쳐 상세하게 기록하였다. 연경 2권: 담배의 원산지와 전래, 담배의 성질과 맛, 담배를 쌓고 자르는 방법, 태우는 방법 등을 19조에 걸쳐 소개하였다. 연경 3권: 담배를 피우는 데 사용되는 각종 용구를 12조에 걸쳐 상세하게 설명하였다. 연경 4권: 흡연의 멋과 효용, 품위와 문화를 10조에 걸쳐 다각도로 묘사하였다. ― 본문 15~16쪽, 〈서설〉에서
18세기 조선의 흡연 문화사 한국에 담배가 전해진 시기는 지금으로부터 4백 년 전후한 조선시대 중엽 선조와 광해군 무렵이다. 포르투갈 상인이 담배를 일본에 전했고, 일본을 거쳐 조선에 전해졌으며, 조선은 이를 다시 여진과 중국 북방지역에 전해주었다. 한국은 동아시아 담배 유통의 중간적 역할을 했고, 담배 명산지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에 전래된 이후 짧은 기간 안에 담배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피워대는 기호품으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다.
담배를 피우기 시작한 뒤로부터, 담배는 한국인의 일상생활에 많은 변화를 주었고, 산업과 생활풍속, 문화와 예술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흡연의 보편화로 골초가 등장하여 담배에 대한 사랑을 시와 산문으로 표현한 문인들이 등장했고, 반면에 흡연의 폐해를 밝히고 금연을 주장한 자들도 적지 않았다. 담배가 가져오는 건강과 산업, 풍속과 인륜의 폐해가 일찍부터 논란의 대상이 되어 흡연 찬반론이 지속적으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전4권으로 구성된 《연경》은 1권, 2권, 3권은 담배의 재배와 성질, 도구를 설명한 내용으로 짜여 있다. 조선 후기 담배 생산과 향유의 구체적 실상을 기록한 것이라서 보통의 문학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현재 남아 있는 흡연 관련 자료가 대부분 문학작품이므로 이러한 내용은 주목하지 않았다. 따라서 결코 소홀히 취급할 수 없는, 아주 중요하게 다루어야 할 내용이다. 그렇기는 하지만 4권이 이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부분임을 부정하기는 어렵다. 흡연의 문화적 측면을 골고루 다뤄서 매우 문학적일 뿐만 아니라, 수사가 아름답다. 이옥이 작심하고 쓴 문예적인 글이다. 조선 후기 사람들의 담배를 피우는 갖가지 장면의 묘사를 통해 인정물태(人情物態)가 눈앞에 선연하게 나타난다. 빼어난 소품문(小品文)으로 높이 평가할 만한 매력을 발산한다. 《연경》이 문학적으로 성공한 작품이라는 평가는 바로 이 4권이 있기 때문에 가능하다. 《연경》은 이렇게 담배와 연관된 중요한 사실을 네 개의 분야로 나누어 빠짐없이 서술하려고 노력하였다. 조선시대의 담배 생산과 흡연 문화를 이해하는 데 이보다 더 충실하고 핵심적인 정보를 기록한 자료는 없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담배를 둘러싼 다양한 문제와 감회를 시와 문장으로 표현했기에 관련 자료가 적지 않게 남아 있다. 조선 후기에 지어진 담배 관련 문헌은 적지 않을 것으로 짐작한다. 박학하기로 유명한 19세기의 학자 이규경(李圭景)이 “우리 동방의 선현들이 남초(南草)를 두고 논한 글들이 몹시 많으나 일일이 참고할 겨를이 없다”라고 말한 것을 보면, 기록이 몹시 풍성할 것으로 예상할 수 있다. 그렇게 예상함에도 불구하고 문헌과 문서, 회화자료와 실물자료를 초보적 수준에서나마 조사하지도 않았다. 수백 년 동안 기호품의 제왕 자리를 차지한 사물을 학계는 너무도 소홀히 취급하는 것이 아닐까? 그렇다보니 한국의 흡연 문화사를 다룬 본격적인 저술도 번듯한 것이 아직 없다고 할 수 있다. 늦었지만 이제는 담배와 관련한 자료를 수집 정리하고, 흡연의 문화사를 저술할 단계에 와 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 본문 14쪽, 〈서설〉에서
조선 사대부 이옥은 왜 담배에 관한 책을 썼을까
이옥이 《연경》을 저술한 의도는 무엇일까? 저술의 앞부분에 실린 전체 서문과 각 권의 앞에 실린 소서(小序)에 편찬 의도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다. 옛사람은 음식과 같이 미미하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되는 일상생활의 사물일지라도, 가치를 지닌 것이라면 기록으로 남겼다는 사실에 주목했다. 담배는 조선에 들어온 지 2백 년이나 되었고, 수많은 사람들이 날마다 즐기는 기호품이므로 기록할 만한 가치를 충분히 지닌 사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볼 만한 기록물이 없었다. 이옥은 생활 주변의 사소한 사물을 다룬 저술이 많이 등장한 사실을 열거하여, 그러한 사물들도 저술의 대상이 되는 상황에서 담배에 관한 저술이 없을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더욱이 이옥은 애연가였다. 결국 애연가로서 수많은 사람들의 기호품인 담배에 관한 저술이 없다는 사실에 자극을 받아 이 책을 저술하게 되었다고 그는 밝혔다. 서문에서 그는 기록할 만한 가치가 조금이라도 있는 것이라면 기록하자는 저술의 정신을 주창했다. 《연경》이 결코 한 때의 붓장난의 소산이 아니라고 그는 힘주어 말한다. 종래 그래왔듯이 정치나 철학, 윤리나 문학의 주제만이 저술의 대상이 아니라, 사소하고 무의미하다고 여겨지던 사물도 저술의 대상으로서 의미를 지닌다는 의식을 표명하였다. 전통적으로 가치가 있다고 의미를 부여받던 저술과는 다른 차원에서 그는 담배를 저술의 주제로 과감하게 선택하였다. 이옥이 밝힌 이러한 생각은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초엽의 신예의 학자들에게 확산된 의식이었고, 《연경》은 우리 학술계 내부에서 중대한 변화가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중요한 표지로서도 주목해야 할 저서이다.
서문에서 저자는 담배를 주제로 한 저작을 쓰게 된 동기를 밝히고 있다. 담배와 같이 일상생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물건을 설명하는 저술이 있을 법도 한데 자기 눈에 뜨이지 않는다는 사실에 그는 착안하였다. 담배가 조선에 전래된 지 적어도 200년이 넘는다. 또 농부는 자연스럽게 경작하고, 흡연자는 술과 다름없이 친근하게 피운다. 각종 흡연도구도 지천으로 널려 있고, 그 품종도 헤아릴 수 없이 많다. 요컨대, 담배는 당시 사람들의 일상을 지배하는 일용품이다. 그런데도 담배와 관련된 저술이 전혀 없다. 그러므로 남들이 쓰지 않는다면 이옥 자신이라도 나서서 담배의 모든 것을 밝혀주는 책을 지어야겠다는 주장을 펼치고 있다. 이옥이 살던 당시 조선의 학계는 국가를 다스리고, 심성을 도야하는 학문이 아니면 천박한 학술이라 여기기 일쑤였고, 고상한 문학이 아니면 무시해버리는 것이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퍼진 풍토였다. 이옥은 그러한 지적 풍토에서 담배와 같이 하찮은 물건을 대상으로 삼아 저술하는 것이 일으킬 비난이나 물의를 예상하였기 때문에 이렇게 저작의 동기를 써서 변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그런데 서문을 꼼꼼하게 음미하면, 소극적 변명에 그치기보다는 오히려 적극적 주장을 펼치고 있음을 읽을 수 있다. “곳곳에 버려진 하찮은 사물을 세상에 훤히 드러냄으로써 천하 모든 사람들과 후세의 자손들이 누구나 할 것 없이 자유롭게 사용하도록 만들겠다”는 언급을 보면 그렇게 볼 수 있다. 학문의 주제와 대상을 바라보는 남다르고 참신한 이옥의 시각을 엿보게 만드는 서문이다. ― 본문 34~35쪽, 〈담배의 경전 서문〉에서
담배, 그 애증의 기록
한문학자 안대회 선생은 《연경》과 함께 근대 이전 지식인들이 쓴 다양한 담배 관련 자료를 수집하였다. 담배와 흡연을 본격적으로 다룬 문헌의 대표가 《연경》이지만, 담배를 주제로 한 저작이 이것에만 그치지 않기 때문에 의미 있는 자료들이 속속 눈에 띄었다. 담배를 두고 애호하는 이유와 감흥을 표현한 옹호론자의 자료와 금연의 폐해를 고발하고 금연의 당위성을 입증하려 한 금연론자의 자료들을 모아 책의 한 부분을 구성한 것이다. 이렇게 모아진 자료 가운데 가치가 있는 자료 열한 가지를 골라서 2부를 구성하였다. 이 기록으로 《연경》에 등장하는 내용을 비교하여 이해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애연가들과 금연가들의 사유와 정서를 역사적 관점에서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이 책의 2부 〈담배, 그 애증의 기록〉에 담긴 글의 의미를 정리해보자. 먼저, 이옥이 담배를 제재로 쓴 산문작품 두 편을 실었다. 〈담배 연기(烟經)〉는 《연경》과 제목이 같은 산문으로 우연히 법당 안에서 담배를 피우다가 제지를 당하고서 쓴 글이다. 그리고 〈담배의 일생(南靈傳)〉은 담배를 의인화하여 쓴 가전체(假傳體) 소설이다. 담배를 남령(南靈)이란 이름의 장군으로 각색하여 그의 선조와 성질, 활약 내용을 묘사하였다. 이 역시 흥미로운 산문이다. 담배를 주제로 한 가전체 작품으로 임상덕이 쓴 〈담파고의 일생(淡婆姑傳)〉도 함께 부록으로 실었다. 이옥은 담배를 장군으로 각색한 반면, 임상덕은 비구니 승려로 각색하였다. 애연가의 입장에 따라 심리적으로 담배를 색다르게 받아들이는 점을 엿볼 수 있다. 다음으로 흡연 옹호론의 입장을 대변한 글들이다. 대체로 시대가 앞선 글들이 애연가의 입장을 반영한 옹호론에 치우쳐 있다. 이빈국의 글과 정조(正祖)의 〈남령초(南靈草)를 주제로 질문에 답하라〉, 그리고 임수간의 〈연다부〉, 박사형의 〈남초가〉 등이 여기에 속한다. 그중에서도 임수간의 글이 분량도 그렇고, 문학적 묘사와 내용면에서 압권이다. 이론적인 차원에서나 글이 지닌 강도에서 정조의 책문은 담배 옹호론을 대표하는 글이다. 그 책문이 지닌 의미는 그 글에 붙인 역자의 해설에서 다소 장황하게 설명하였다. 이 글을 통해서 조선시대 애연가의 심리와 논리를 잘 엿볼 수 있다. 정조를 비롯한 애연가들이 담배의 효능과 멋을 주장했지만 그 반면에 금연론 또한 몹시 강하게 제기되었다. 그들의 주장은 담배가 인간에게 해를 끼친다는 점을 논리적으로 설파하려고 노력했다. 가장 먼저 거론할 것이 이덕리(李德履, 1728~?)의 〈기연다(記烟茶)〉다. 이옥의 저작에 비해 20년 정도 앞서는 글이고, 담겨 있는 내용도 적지 않다. 이옥이 담배 옹호론자의 입장에서 담배의 미덕을 예찬했다면, 이덕리는 금연론자의 입장에서 담배의 해독과 금연을 주장했다는 점에서 주목할 자료다. 이덕리는 담배의 해로움을 진기 소모, 시력 저하, 의복 착색, 서책 오염, 화재 요인, 치아 상해, 체면 손상, 행동 불편, 예모(禮貌) 불경, 공경 소홀 등 열 가지 이유를 들어 설명했다. 비슷한 시기에 금연론을 적극적으로 주장한 글에 이현목의 〈담바고 사연〉, 황인기의 〈남초 이야기〉, 윤기의 〈어른과 어린이의 윤리와 높은 자와 낮은 자의 질서가 담배로 인해 파괴된다〉가 있다. 이 글들은 흡연으로 인한 폐해를 조목조목 비판하여 금연이 실시되어야 함을 주장하고 있다. 대체로 보아, 흡연이 인간의 건강에 미치는 좋지 못한 영향, 담배 재배로 인해 경작지 축소와 식량 부족, 담배로 인한 화재 사고, 담배로 인한 주위 환경 불결, 흡연으로 인한 사회 질서와 풍기 문란 등 몇 가지 항목으로 요약할 수 있다.
담배에 대한 ‘18세기 지식인’들의 기록
담배의 요모조모를 기록한 《연경》은 이렇게 당시 학술의 첨단을 보여주는 저술의 하나다. 《연경》이 학술사적으로도 적지 않은 의미가 있다는 것은 18세기 실학을 대표하는 지식인인 유득공도 《연경》을 지었다는 사실을 통해서도 예상할 수 있다. 다산 정약용이 둘째 아들 정학유(丁學游)에게 양계를 권하는 편지 속에서 “네가 벌써 닭을 치고 있다니, 온갖 서적에서 닭을 다룬 기록을 초록하여 육우(陸羽)의 《다경(茶經)》이나 유득공(柳得恭)의 《연경(烟經)》처럼 《계경(鷄經)》을 편찬하는 것도 좋을 것이다. 속된 일을 하면서도 맑은 운치를 지니려면 모름지기 이러한 사례를 기준으로 삼을 일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애연가였던 정약용은 유득공의 《연경》을 읽고 그 가치를 높이 평가하였다. 이 편지글에 따르면, 유득공도 《연경》을 저술하였다는 이야기인데, 현재 그의 이름으로 된 《연경》은 전하지 않는다. 그런데 유득공은 이옥과 이종사촌 사이다. 유득공의 몰년은 1807년이므로 그가 《연경》을 지었다면 이옥보다 앞서서 지은 셈이다. 유득공이 정말 이 책을 지었는지 현재로서는 확인할 수 없다. 그렇다고 이옥이 지은 《연경》을 정약용이 유득공의 저작으로 착각했을 가능성도 그리 커 보이지 않는다. 유득공과 이옥이 동일한 주제의 책을 비슷한 시기에 지었다면 그 사실 자체가 흥미롭다. 그것은 이 시대 학문이 지향하는 바가 무엇인지를 암시한다.
연경의 문학적 자료적 가치
이옥의 《연경》은 현재까지 알려진 바로는, 조선시대에 지어진 거의 유일한 담배 관련 단독 저술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200년 전에 지어졌다. 이옥은 문학사에서 아주 독특한 문학세계를 구축한 문인이다. 기성의 문학세계에 반발하여 당대의 현실을 당대의 시선으로 묘사할 것을 주장한 변화 지향의 문인이었다. 당대의 현실로서 그는 정조 치하의 서울 시정사람을 주목했고, 그중에서 또 여성을, 여성의 사랑을 주목한 바 있는데, 그의 문학적 신념의 표징이다. 담배라는 일상적 기호품도 그런 당대적 현실의 생생한 기호이다. 담배를 저술로 삼은 것도 그런 문학적 신념에서 나온 것이다. 《연경》은 문체가 독특하다. 지나치다 싶을 만큼 간명하게 사실을 기록하고 묘사한 문체의 특징을 독자들이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을 것이다. 메모하듯이 단상(斷想)을 한 조항 한 조항 엮어서 하나의 저술을 이루고 있다. 담배라는 기호품을 전체로서 조망하려는 체계를 이루고 있다. 작은 책자지만 내용이 풍부한 것은 간결한 문체의 힘을 입었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어떻게 보면, 너무도 건조한 문체라는 느낌이 들기까지 한다. 번역문에서도 대체로 발견이 되지만, 원문을 읽게 되면, 그가 매우 기괴한 문체를 사용하고 있음을 더욱 강하게 느낄 수 있다. 당대의 일반적인 문사들이 사용하는 문체와는 판이하게 다르다. 한 저술 안에서도 다양한 문장 구사를 시도하고 있다. 특히, 4권이 그렇다. 이 책이 담배와 얽힌 조선시대의 문화만을 전해주는 책의 구실만 하는데 그치지 않고, 문학서임을 4권을 읽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담배와 흡연은, 현재는 매우 부정적으로 인식되고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 우리 문화의 일부를 구성하고 있는 중요한 사물이다. 더욱이 조선후기에는 그렇다. 이옥의 《연경》이 발견되지 않았을 때 조선시대 특유의 흡연문화는 우리들의 눈에 그다지 뜨이지 않았거나 미지의 것들이 많았다. 그러나《연경》의 발견 이후에는 우리는 그런 것들에 관심이 더 가고, 그에 관한 지식이 풍부해지게 되었다. 이옥은 《연경》이라는 저술을 통해 새로운 지식의 영역을 창출했다고 말할 수 있다. 자의식 강한 옛 문인의 작은 시도가 결코 헛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금 우리들은 잘 알 수 있다.
출처: http://www.humanistbook.co.kr/book/bookDetail.asp?category=00&bookcode=BC000362#to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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