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서' 혹은 '독서지도'라는 말에 대한 불편함
‘양서(良書)’라는 말, 말 그대로 ‘좋은 책’이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 말은 ‘양서협동조합’이라는 용어로, 한국의 독서문화운동의 한 페이지에 기록되고 있습니다.
‘양서협동조합운동’은 1970년 말부터 1980년대 초까지 전국 주요 도시에 설립되었던 협동조합 조직을 말합니다.(참고 김진영, ‘양서협동조합운동의 재조명’ <기억과 전망> 2004.) 부산 양서협동조합은 부산 중부교회 전도사로 대학생부를 지도하던 김형기 씨가 1977년 협동조합연구원에서 신협 지도자 훈련을 받으면서 캐나다의 안티고니쉬 운동에 공감하면서서 이러한 조합운동을 부산에 도입하고자 하면서 탄생했습니다. 1978년 4월 5일 부산 ‘양협’이 탄생했고 이후, 마산, 대구, 서울 등에서 ‘양협’이 탄생했습니다. 그리고 이 ‘양협’ 운동에서 ‘어린이도서연구회’와 같은 뿔뿌리 독서문화 단체가 파생되어 나왔다는 것이 이주영 선생이 주장하듯 일반적인 견해입니다. 서울양서협동조합은 1978년 11월 12일 창립하여 1982년 3월에 해산하지만, 해산 후에도 ‘어린이도서연구회’는 1990년 서울양협 재발기 움직임을 계기로 도약하여 어린이독서운동단체로 발전하였던 것입니다.(오균현, 차성환, ‘서울양서협동조합의 역사와 의의’ 민주주의사회연구소, 2009)
2017년 11월 21일(토요일) 부산의 맨발동무어린이도서관에서 ‘양서협동조합과 노동도서원운동-작은도서관 역사찾기 2’의 행사에 저도 참여해서(*사진), 이 때 김형기, 차성환 등 여러 주요 인사 분들의 ‘발언’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소중한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장에서는 질문을 하지 못했습니다만, 과연 ‘양서(良書)라는 말은 누구의 발상이었던 것인가, 이런 질문을 때늦게 던지게 됩니다. ‘좋은 책’? 과연 어떤 책을 좋은 책이라 말할 수 있는 것인가? 이런 질문과 고민이 어느 정도 밀고 갈 수 있었던 것일까?
일본 쪽의 자료에서 ‘양서’(良書)라는 말은 1931년부터 1945년까지 일본제국이 벌였던 이른바 ‘15년 전쟁’의 첫 부분에 등장합니다. 군국주의 일본이 전쟁상태에 돌입한 이후, 일본 제국주의자들이 독서 및 도서관 부문에 ‘강요’했던 것이 ‘양서보급良書普及’ ‘독서지도読書指導
’였습니다. 일본 정부(문부성) 주최의 ‘양서보급협의회’良書普及協議会나 ‘제1회독서지도자강습회第1回読書指導者講習會’가 열렸던 것이 1934년의 일입니다. 그리고 도서관 부문에서는 ‘중앙도서관제도中央図書館制度’를 적극 수행합니다. 전시 체제가 진행됨에 따라 일본 군국주의 정부는 도서관의 기능도 ‘국책사업’의 하나로 국민교화国民教化를 목표로 두고 ‘밀어붙였습니다’. “국민정신총동원, 읽어라, 국력함양을 위해国民精神総動員 読め! 國力涵養のために.” 질문은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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