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케오시도서관과 이마리시민도서관
앞서 스가와라 타카시 씨의 북유럽 탐방과 관련된 이야기에 등장하는 이마리시민도서관(伊万里市民図書館). 이 도서관에서 불과 30여 분 떨어진 거리에 다케오시도서관(武雄市図書館)이 있습니다. 다케오시도서관은 아마도 근래 우리나라 언론에서 가장 많이 언급된 일본 도서관일 듯싶습니다. 예를 들어, 2014년 5월 9일 <조선일보> 차학봉 도쿄특파원이 보도한, ‘일 인구 5만 도시에… 100만 인파 몰린 이 도서관’과 같은 기사.(https://goo.gl/HTVdc1)
이 기사는 인구 5만명에 불과한 소도시의 도서관이 어떻게 연간 이용자 100만명에 육박하는 도서관이 되었는가를 다루고 있습니다. 일본 최대 DVD 대여업체인 츠타야(蔦屋)가 2013년 3월부터 위탁 운영을 맡아, 평범했던 도서관을 변신시킨 내용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스타벅스를 도서관 안으로 끌어들인 것, 서고를 없애고 장서 20만권을 자유롭게 열람하도록 한 것, 관장실을 헐어내고 잡지 전문 서점과 DVD 대여점을 설치한 것. ‘공무원 정시 퇴근’이 아니라 밤 9시까지 운영시간을 늘린 것. 연간 70일에 달하던 휴관일도 없앤 것 등. 기사는 “도서관을 상업시설처럼 운영한다는 비판도 있지만, 츠타야가 맡은 이후 이용자는 3.6배 증가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더 나아가 “도서관뿐 아니라 시립병원·학교도 '민간의 힘'을 활용해 변화시킨 다케오시는 '소도시 재생 모델 케이스'로 주목받고 있다. 지방은 물론 도쿄권 자치단체 공무원의 견학 행렬도 이어진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소도시의 변신을 주도한 히와타시 게이스케(樋渡啓祐) 당시 시장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도쿄대 출신 중앙부처 공무원이던 히와타시는 2006년 당시 최연소 민선 시장에 당선된 후 시립병원 민영화를 추진했다는 것. 당시 시민단체가 의료를 상업화한다며 '시장 해임' 운동을 벌이자, 그는 사직 후 재선거로 정면 돌파했다는 것, 등등.
이런 ‘다케오시도서관 이야기’는 한국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우선 별마당도서관. 2017년 5월 31일 신세계가 코엑스몰에 별마당도서관을 열면서 “일본의 다케오시도서관을 모델로 했다”고 밝혔습니다.(한국경제, 2017년 6월 2일, 신세계 별마당 도서관, 일본 다케오시립도서관 참고했다는데… https://goo.gl/Q1EhRk) 국립중앙도서관의 블로그는 2017년 9월 8일 ‘별마당 도서관의 모델이 된 일본 다케오시립도서관’(https://goo.gl/5qHz6i)이라는 글에서 “다케오시도서관의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지역 사회를 바꾸는 도서관이 계속 나오기를 기대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 블로그 기사에서 언급된 삼척시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지자체 관계자들이 일본 도서관의 벤치마킹 대상으로 다케오시도서관을 거듭 방문했습니다. 특히 눈에 띈 ‘사건’이 민선6기 남경필 전 경기도지사가, 경기도대표도서관 건립을 추진하던 관계자들과 함께 2017년 6월 츠타야가 운영을 맡고 있는 에비나시립중앙도서관을 방문한 일을 꼽을 수 있습니다. 남경필 전 지사는 “공공과 민간이 만나 혁신을 이룬 점이 가장 인상적이다. 질서정연한 일본스타일을 한국식으로 바꿔 보다 자유롭고 시끄러운 경기도 대표도서관을 구상하면 좋을 것”이라고 말했다고 합니다.(경기뉴스, 2017년 6월 2일, 남경필 지사, “자유롭고 시끄러운 경기도 대표도서관 구상해야” https://goo.gl/dgTi2t) 또한 경기도 대표도서관의 ‘마스터 아키텍터’로 참여하고 있던 천의영 경기대 교수는 한 칼럼에서 다케오시도서관에 대한 관찰기를 남기면서 ‘새로운 진화유형의 공간 혁신모델’을 말한 바 있습니다. 천의영 교수는 츠타야 운영의 핵심 아이디어를 첫째 라이프스타일 큐레이션형 분류방식, 둘째 공간별로 소음의 정도와 공간의 집중도를 다르게 한 것, 셋째 음식과 이벤트 등으로 요약하고 있습니다.(매일경제 2017년 8월 11일, 거실같은, 카페같은…도서관·서점의 확산 https://goo.gl/eSuz1g)
그런데 우리나라에서 다케오시도서관이 이렇게 화제가 되며 벤치마킹의 대상이 되는 사이에, 일본에서는 단순히 화젯거리가 아니라 문젯거리로 논란이 되고 있었습니다. 다케오시도서관에 대한 논란은 잘 소개가 되지 않았습니다만, 예를 들어 “결국 '츠타야도서관'은 무엇이 문제인가”(結局のところ「ツタヤ図書館」は何が問題なのか, https://goo.gl/H7d1sg)와 같은 글을 보면, 츠타야도서관 문제가 널리 알려지게 된 계기는 2015년 8월에 발각된, 타케오시도서관의 장서 문제입니다. 낡은 책을 고서점에서 구입해서 도서관의 장서로 채웠던 것이 발각되면서 ‘새로운 도서관’의 모델인 것처럼 알려진 이 도서관의 문제점이 드러나기 시작했습니다. 단지 장서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예산 유용에 대해서는 주민 감사가 청구되었을 뿐만 아니라 소송전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다케오시도서관의 문제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뭐니뭐니해도 공공성, 공익성을 바탕으로 운영되어야 할 공립 공공도서관이 츠타야와 같은 기업체의 영업 현장이 되고 말았다는 점일 것입니다. 다케오시는 도서관의 지정관리자가 된 CCC(대표 마스다 무네아키, <지적 자본론>의 저자)의 다이칸야마 츠타야서점의 노하우를 살려 도서관을 활성화시키고 싶다고 하였으나, 정작 CCC는 카페와 서점 영업에 열을 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타케오시도서관은 ‘도서관의 지정관리비 이외에 서점과 카페의 영업을 통해 수익을 얻는 것이 전제된 도서관’이라는 것입니다. 다케오시도서관은 신자유주의의 거센 물결에 휩쓸려 들어가버린, 일본 공공도서관의 극단적인 사례로 언급되어야 하고 반드시 비판적으로 검토되어야 하는 도서관입니다. 그렇게 많은 이들이 방문했다는 것이 집객 효과를 노린 CCC 광고의 결과는 아니었을까, 하는 것입니다.
다케오시도서관에서 불과 30여 분 떨어진 거리에 있는, 이마리시민도서관(伊万里市民図書館) 이야기를 조금 덧붙여야 하겠습니다. 이마리시민도서관은 다케오시도서관과는 전혀 다른 방향, 아니 어쩌면 정반대 방향을 향하고 있는 도서관일 듯싶습니다.
“‘00시도서관'이 아닌 '시민도서관’이라고 감히 명명하고, 시민에 의한 지원이 활발하게 알려져 있으며, 도서관에 의한 시민 지원 사업으로도 잘 알려진 도서관이다. 그리고 지정관리자제도를 채택하지 않을 것도 결정하고 있다. 사가현라고 말하면, 타케오시도서관이 유명하지만, 그 반대 극에 있는 도서관.” 이는 무사시노시의 시의원, 카와 유우지(川名ゆうじ)의 시찰 보고문에 나오는 말입니다.(https://goo.gl/QtQwlv)
부디, 다케오시도서관을 방문하고자 하는 이가 있으시다면, 이 도서관만 보지 마시고, 이마리시민도서관도 함께 둘러보아 주시기를. 그리고 공공도서관은 누구를 위해 존재해야 하는지, 공공도서관의 목적은 무엇이어야 하는지, 함께 논의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예를 들어, 주간함양의 박민국 피디 기자께서 2018년 5월부터 6월까지 '함양의 미래 도서관에서 찾다'라는 연속 시리즈 기사-- 1회 함양군 공공도서관의 현주소/2회 최초의 군립도서관을 세운 옥천군/3회 순창군립도서관을 찾아서/4회 다케오도서관, 지방 작은 마을을 살리다/5회 함양 제2의 공공도서관은 어떻게?--를 보도하면서 왜 굳이 다케오시도서관이었어야 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것입니다.https://goo.gl/F1Yoi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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