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은 읽지 말라는 정부, 독서는 진흥하지 않겠다는 정부
2024년 문체부 예산안,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 전액 삭감
1. 굳이 이런 글을 써야 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도 사실의 기록이라도 남겨야 한다는 생각에 이렇게 몇 자 적습니다. 이 글은 성명서도 아니요 입장문도 아닙니다. 한탄(恨歎)입니다.
2. 지난 2023년 8월 29일, 윤석열 정부의 2024년 예산안 발표가 있었습니다. 작년의 639조원에서 2.8% 증가한 656.9조원. 이 예산안과 관련해서는, 미래 성장동력을 위한 핵심예산인 R&D 예산이 5.2조원이나 삭감된 반면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은 작년보다 4.6%나 증가한 26.1조원에 달하여 내년 국회의원 선거를 의식한 선심성 예산을 편성하였다는 비판이 제기된 바 있습니다.(경실련 등) 또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대응 예산 7319억원 편성된 것과 관련해서 경제부총리는 스스로 “불안감 없으면 안 써도 될 돈”이라고 실토하기도 했습니다.(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 심사)
3. 문화체육관광부의 2024년 예산은 6조 9,796억 원, 이는 2023년 대비 2,388억 원, 3.5% 증가한 규모입니다. 문체부의 보도자료에 따르면 문체부 장관은 “2024년 예산안은 전 세계인들이 열광하는 K-컬처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뿜어내고 더 강력한 경쟁력을 갖추게 하는 데 중점을 두고 편성했다.”고 합니다.
4. 9월은 독서문화진흥법이 정한 ‘독서의 달’입니다. 국민의 독서 의욕을 고취하는 등 독서문화 진흥에 국민의 적극적인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 지정되었습니다. 마침 9월 1일(금요일)부터 3일(일요일)까지 경기도 고양특례시에서 ‘대한민국 독서대전’이 열리고 있어, 저는 아침부터 행사장으로 발걸음을 옮겼습니다. 행사장에서 저는 사단법인 한국서점조합연합회가 8월 31일자 보도자료를 통해 지역서점 활성화 예산이 전액 삭감됨으로써 “지역서점에서 진행하는 약 750여 개 문화 프로그램을 내년도부터는 볼 수 없다. 이로 인한 피해는 지역서점을 통해 문화 프로그램을 향유하던 국민들이 고스란히 안게 되었다.”는 보도자료를 배포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5. 문제는 지역서점 활성화 관련 예산만이 아닙니다.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예산코드 1433-308) 예산이 전액 삭감된 것입니다. 윤석열 정부가 시작된 2022년에도 ‘국민독서문화증진 지원’ 예산은 약 62억원, 2023년에는 약 59억원이었습니다. 윤석열 정부는 이 예산을 아예 삭감했을 뿐만 아니라 예산코드 자체를 ‘폐지’했습니다. ‘국민독서문화증진’을 위한 지원은 아예 하지 않겠다는 것을 예산안을 통해 표명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한마디로 ‘윤석열 정부는 책은 읽지 말라는 정부, 독서는 진흥하지 않겠다는 정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6. ‘윤석열 정부는 책은 읽지 말라는 정부, 독서는 진흥하지 않겠다는 정부’라고 말하면, 정부 관계자는 “무슨 말이냐, ‘독서’와 관련된 예산이 그래도 10억여원이 살아남았다”고 말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10억여원이란 건 독서대전, 지역독서대전, 책읽는도시협의회 지원, 독서경영우수직장인증제, 독서인(홈페이지) 운영, 독서진흥유공자 포상 관련 예산입니다. 여기에 체육기금을 활용하는 책읽어주는문화봉사단 예산을 덧붙여도 약 12억원뿐이 안 됩니다.
7. 2023년 1월 27일에 열렸던,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온라인 사업설명회에 따르면, 2023년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의 독서문화팀이 운용하는 예산이 약 113억7천9백만원이었습니다. 여기에는 북스타트, 책체험버스 운영, 독서문화캠프, 청소년북토큰, 전국청소년독서토론한마당, 교정시설 독서활동 지원, 독서동아리 활동 지원, 독서아카데미, 병영독서 활성화 지원, 책의해 사업 지원, 심야책방, 책읽어주는문화봉사단, 독서대전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즉 13가지 사업 가운데 2가지 사업만 남게 된 것이고, 약 114억원의 예산이 1/10로 쪼그라들어 잔해처럼 약 12억원이 남은 것입니다.
8. 2021년 문화체육관광부가 실시한 국민독서실태조사에 따르면 한국의 만 19세 이상 성인의 ‘연간 종합 독서율’(종이책, 전자책, 오디오북 중 한 가지 이상 읽거나 들은 비율)은 47.5%였습니다. 성인 두 명 중 한 명은 1년 동안 책을 한 권도 읽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연간 종합 독서량도 4.5권에 그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하위권입니다.
9. 책 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합시다, 그러면 출판문화와 출판산업을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책 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합시다, 그러면 서점을 살리고 싶어도 살릴 수 없을 것입니다. 책 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합시다, 그러면 도서관을 아무리 활성화하려고 해도 활성화하지 못할 것입니다. 책 읽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다고 합시다, 그러면 우리가 민주주의를 하려고 해도 하지 못할 것입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이 책 읽는 사람으로 성장하도록 노력하고, 분단국가의 현실 속에서 병영에서 군 복무 중인 병사들이 한 사람의 시민으로서 책과 만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장애인과 다문화가족과 어르신 등 독서소외인이 책을 마음껏 읽을 수 있는 환경을 만들고 프로그램을 지원해온 것은, 그런 활동이 이른바 K-컬쳐의 근본 중에 근본이기 때문입니다.
10. 2023년 올해는 기적의도서관 건립 20주년, 북스타트 20주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독서동아리지원센터를 열고 독서동아리 활동을 지원해온 지도 10년이 되었습니다. 또한 책읽는도시 사업과 대한민국독서대전이 10주년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그동안 ‘책 읽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참으로 많은 분들이 땀을 쏟아 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책맹사회(冊盲社會)가 되지 않도록, 우리 사회가 우중사회(愚衆社會)가 되지 않도록 힘써온 그 노력은 멈출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아무리 ‘책은 읽지 말라는 정부, 독서는 진흥하지 않겠다는 정부’라 하더라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11. 앞으로도 ‘책읽는사회’는 정보-지식의 기반 시설과 내용을 확충하여 모든 시민이 평등한 지식 접근의 권리와 기회를 누리는 사회, 돈 없는 시민도 원하면 누구나 책을 읽을 수 있는 사회, 정보 격차와 불평등을 해소하여 시민 각자가 자기 삶의 가치를 스스로 창출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책읽기의 문화를 널리 그리고 깊게 발전시켜 생각하는 사회, 깨어있는 사회, 성찰하는 사회, 시민이 기만 당하지 않는 사회, 아무도 시민을 바보로 만들 수 없는 사회, 시민의 판단력이 살아 숨 쉬는 사회, 평등하고 정의로운 민주시민사회를 키우기 위해 노력하려 합니다. 함께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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