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철기 교수(서울교육대학교 윤리교육과, 대학원 통일·평화시민교육 전공)의 글
서이초 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며
어제는 새벽부터 병가와 연가를 제출하고 단체행동을 하는 교사들을 징계하겠다는 뉴스로 아침을 시작했습니다. 새벽녘 동료교사의 죽음을 애도하는 교사들의 슬픔에도 정부의 허락이 필요한 것인가 하는 물음을 던지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슬픔에도 허락이 필요한가?"
어제는 아침부터 기자가 교권회복을 위한 교육청과 교육부의 정책적 대응에 대해서 의견을 묻는 전화가 왔습니다. 교권과 학생인권을 대립적으로 인식하는 것이나 교권침해를 생기부에 기록하게 하겠다는 대응이나 민원을 담당할 교육행정기구를 신설하겠다는 대응이나 문제의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대책인지 따져볼 필요가 있는 것 같습니다.
서이초 교사 사망 사건을 계기로 교권의 회복되어야 한다는 교사들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49재인 어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첫째, 교권과 학생인권은 대립적인 것인가요? 학생인권 조례가 변화되면 교권은 다시 회복될 수 있을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교권과 학생인권은 제로섬 관계에 있지 않습니다. 학생인권이 강화되었다고 교권이 약화된 것이 아닙니다. 학생인권조례가 수정되거나 폐기되어도 교권이 위협받을 수 있습니다. 학교인권조례가 없는 지역에서도 마찬가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는 현실을 즉시해야 합니다.
둘째, 생활기록부에 교권침해를 적는다고 문제가 해결될까요? 학교에서 학부모들의 민원이 증폭하는 대표적인 사건이 바로 학교폭력입니다. 학교폭력은 최근들어 큰 변화가 있습니다. 그것은 집단적인 폭력의 성격을 띠면서 동시에 부모의 재력이나 사회적 지위가 폭력의 배경이 되는 경우입니다. 학교폭력 가운데 일부이기는 하지만 이러한 유형의 폭력은 절대 용납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런데 그러한 유형이 폭력이 발생했을 때, 상당수는 가해학생의 부모가 자신의 사회적 지위와 재력을 이용해서 변호사를 대동하게 되고 결국 법적 분쟁으로 비화됩니다. 이렇게 되면 법적으로 최종 판결이 이루어질 때까지, 생기부에 기록하는 것은 불가능해질 뿐만 아니라 피해학생을 보호하는 것은 어렵게 됩니다. 생기부에 기록하는 것이 대안일 수가 없다는 것은 지난 10년동안 학교폭력과 관련된 문제에서 잘 드러났는데, 또 다시 생기부 기록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는 상황입니다. 생기부에 기록을 하려하면, 학부모들은 더욱더 필사적으로 민원을 제기하게 될 수 있고, 그 과정에서 민원을 교육행정기구가 담당한다고 해도 교사와 학생, 교사와 학부모의 관계가 없어지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교사, 학생, 학부모 간의 불신과 갈등은 증폭될 가능성 마저 있습니다. 일부 학부모들이 무고성 아동학대 신고를 하거나 이른바 악성민원을 제기하는 것은 결국 자신의 아이를 지키겠다는 몸부림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세째, 민원을 담당하는 교육행정기구가 발족한다고 해서 교사, 학부모, 학생 간의 의사소통 문제가 사라지게 될까요? 저는 사실 이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실 자신의 아이를 지키고자 하는 언행은 충분히 이해할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교사의 권위를 무시하고, 자신의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은 윤리적으로 그리고 법적으로 분명히 큰 문제입니다. 학교 교육을 무너뜨리는 행위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막을 방법이 아직은 없습니다. 법과 제도를 만들겠다고 교육청과 교육부가 제시하는 방법은 민원을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아니라 민원에 대응하는 방식입니다. 학부모들의 민원을 감소시키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와 학교 그리고 학부모들의 서로 신뢰를 형성할 수 있는 의사소통이 이루어질 때 가능할 것입니다. 지금 나오고 있는 대책은 교사들의 책임을 그나마 줄일 수 있는 대안인 것처럼 보이지만 민원담당 교육행정기구가 만들어지면, 결국 민원을 해결하는 과정에서 또 다시 교사와 새롭게 신설되는 교육행정기구 간의 관계에서 문제가 발생할 소지가 적지 않아 보입니다. 행정 기구의 위계상에서 상위에 있는 교육청이나 교육부가 민원을 담당하게 되었을 때, 민원이 발생한 학교와 교사들에게 무엇을 요구하고, 어떻게 해결하게 될지 교육의 최일선에 있는 교사들의 입장에서는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민원을 줄이기 위한 근본적인 대책이 동시에 논의되어야 합니다. 왜 교사와 학교가 그토록 학부모들에게 불신을 받게 되었는지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학교의 지금과도 같은 위기의 정치사회적 배경도 살펴보아야 합니다. 교사들은 사회개혁까지는 이야기할 여력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가 변화되기를 바라는 많은 시민들이 이 문제에 관심을 가져주셔야 합니다.
교실과 학교에서 교사들의 권위가 존중받지 못하게 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선 왜 교사들에게 이렇게 많은 업무가 주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교사들에게 과도한 행정업무가 부여된 것은 어제 오늘 일이 아닙니다. 이렇게 많은 업무를 부여하려면 월급을 더 주던가, 아니면 사람을 더 뽑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못할까요? 교육재정이 충분하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국의 국가재정에서 왜 교육재정이 차지하는 비중은 한국의 발전수전 수준에 비해 턱없이 부족합니다. 돈을 쓰지 않고, 교육일선의 교사들에게 모든 책임을 전가하고 있는 형국을 더 이상 지속되어선 안 될 것입니다.
첫째, 교사들을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교사들을 노동자로 인정하지도 않습니다. 대신에 교육청과 교육부가 지시하는 일을 담당하는 사람들 정도로 취급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과도한 행정업무가 부여 되고 있는데, 그 가운데 정말 필요한 것이 얼마나 될까 교사들은 언제나 의구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문제는 정말 오래된 문제입니다. 교사를 교육의 주체로 인정하고 행정업무를 최소화하도록 관련 업무를 담당하는 직원을 추가적으로 채용해야 합니다. 교사가 학생을 가르치는 일에 주력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재정 확보가 필요합니다.
둘째, 교사들에게 주어진 교과교육 이외의 돌봄과 생활지도 등이 필요하다면, 교사 1인당 담당하는 학생 수를 줄어져주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학교와 교실의 증축 혹은 신축이 필요할 뿐만 아니라 교사들의 증원이 필요합니다. 인구절벽이 현실화되고 있다고 하면서 지난 몇년 동안 교사들의 임용수는 급속도로 감소되어 왔습니다. 현재의 상황 그대로 인구가 더 줄어들어 학생수가 자연적으로 감소할 것을 기대하는 눈치입니다. 저출산을 염려하는 정책과 교육정책은 어찌보면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교사들이 학생들과 조금 더 좋은 환경에서 교육할 수 있도록 학교의 증축과 신축, 교사의 확보를 위한 교육재정 확보를 위해서는 사회적 공감대가 필요합니다.
셋째, 학부모들의 민원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는 학교폭력 문제에 대힌 근본적인 대안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학교폭력대책위원회를 대체할 수 있는 새로운 학교폭력 문제 해결기구를 마련해야 합니다. 피해자를 보호할 수 없고, 학굑폭력을 담당하는 소수의 교사에게 책임을 전가하는 이러한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변화되어야 합니다. 특히 학폭이 법적 분쟁으로 비화되어서 실제로 피해학생을 보호할 수 없고, 교사들이 학교폭력을 해결하는 주체가 되기 힘든 현재의 제도는 이제는 폐기될 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시민사회는 최근의 학교폭력의 양태를 주목해야 합니다. 과거와는 학교푝력의 양상이 달라졌습니다. 집단적 폭력일 뿐만 아니라 부모의 재력과 사회적 지위를 이용해서 이루어지는 계급적이고 세습적인 폭력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괜히 금수저, 흙수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금 학교폭력 가운데는 전근대적인 신분질서를 연상시키는 폭력들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부모를 잘만나면 다른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지배해도 된다는 생각을 가진 학생들을 교사와 학교가 포용할 수는 없는 일입니다. 이러한 학생들은 학교가 아니라 정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합니다. 그래서 시민사회가 이러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직접 나서야 합니다. 지금 학교폭력에 대한 적절한 대안이 제시되지 못하면 한국사회의 불평등은 폭력적인 형태가 변질되고 사회를 병들게 할 것입니다. 국제적으로 인정받은 우리의 영화 기생충, OTT 드라마 오징어게임, 더글로리는 모두 한국사회의 불평등과 폭력성에 대해서 이이기하는 것이었습니다.
넷째, 공교육의 일선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교사들의 권위를 받지 못하게 되는 또 다른 배경이라 할 수 있는 학력주의와 학벌주의를 이제 근본적으로 해결해야 합니다. 학부모들이 생기부에 무엇인가 나쁜 기록이 남는 것을 두려워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실 자신의 아이가 이른바 명문대학에 가지 못하게 될까봐 두려워서입니다. 자신의 아이가 잘못을 했어도, 자신의 아이를 명문대학에 보내기 위해서, 법적 판결이 종결될 때까지 생기부에 등록되지 못하게 막는 일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물론 그 시간까지 피해학생들은 보호받지 못하고 교사들은 죄책감에 시달리고 민원 때문에 많은 시간을 할애 해야 합니다. 경쟁만을 부축이는 지금의 입시위주의 교육을 개혁해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이야말로 한국사회가 개혁되지 않으면 안되는 일입니다. 보수이든 진보이든 어떠한 정치세력과 시민사회세력도 한국의 학벌주의와 학력주의를 개혁하기 위한 논의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교사들이 이 문제까지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그들의 책임이 아닙니다. 한국사회의 아주 오래된 병폐입니다. 장기적으로 우리의 학교와 교육을 살리고, 한국사회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학벌주의와 학력주의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대학간 혹은 학문간 서열을 없애고, 모든 학생들이 대학에 가지 않아도 충분히 안정적으로 사회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시민사회가 나서서 변화를 위한 논의를 시작해야 합니다. 교육의 위기 뒤에서는 한국사회의 오래된 병폐가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학교와 교육의 개혁은 곧 사회의 개혁과 맞닿아 있는 것입니다. 이제 시민들이 나서서 학교를 바꾸어 평화적이고 민주적인 세상을 만들어 나갈 때입니다.그것이야말로 서이초에서 안타깝게 유명을 달리한 새내기 교사와 그 유가족 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길일 것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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