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가 경제력? 실생활에선 웹 로그인할 때나 쓰거든요!
한국인의 언어생활 실태조사, 한글문화연대·한겨레말글연구소 조사
"1년에 2~3회 미만 사용" 40% "업무능력과 거리 멀어" 55%
학력·소득과 사용빈도는 비례 "영어구사력이 일자리 양극화
한국인의 언어생활 실태조사, 한글문화연대·한겨레말글연구소 조사
"1년에 2~3회 미만 사용" 40% "업무능력과 거리 멀어" 55%
학력·소득과 사용빈도는 비례 "영어구사력이 일자리 양극화
1990년대부터 ‘세계화’가 강조되면서 우리 사회는 영어 열풍에 휩싸였다. 국가 사이의 거리가 없는 세계화 시대엔 국제 공용어로 통용되는 영어를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인식이 배경에 깔려 있었다. 이렇듯 영어가 개인과 국가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영어 유치원이나 대학교 영어강의 등 우리 사회 구석구석이 영어로 뒤덮였다. 그런데 우리는 그 필요성을 강조하는 만큼 영어를 실제 생활 속에서 많이 쓰고 있을까?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대표 고경희)와 한겨레말글연구소는 최근 한국인의 실질적인 언어생활 모습이 어떠한지 알아보기 위해 ‘한국인의 언어생활 실태조사’를 벌였다. 전국 7개 권역과 성별, 연령별 비례할당에 의해 무작위로 추출한, 만 25살부터 54살 사이의 성인남녀 1000명을 표본으로 삼았다. 국민들의 전반적인 말글살이 실태를 파악하는 조사가 이뤄진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 가장 눈에 띄는 부분은, 영어구사 능력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실제 영어를 쓰는 실태 사이에 거리가 크다는 점이다. 최근 1년 동안 초보적인 인사말을 제외하고 문장 단위로 영어를 말하거나 글로 쓰거나 영어 문서를 읽은 경우는 얼마나 되는지 물어본 결과, 조사 대상자의 20.3%가 ‘없다’고 대답했고 ‘1년에 2~3회가량’이 20.1%로 그 뒤를 이었다. 조사 대상자의 40%가량이 영어 사용 빈도가 가장 낮은 항목들을 고른 것이다. 최근 1년 동안 일을 하면서 외국인과 영어로 말하며 의사소통을 한 시간이 얼마나 되는지 묻는 질문에도 ‘없다’(37.8%)가 가장 많았으며, ‘1년에 10분 정도’(16.7%)가 그 뒤를 이었다.
영어를 사용해야 할 경우가 주로 어떤 영역이냐는 질문에는 ‘인터넷 로그인할 때, 이메일 주소 적을 때 말고는 그럴 일이 없다’는 응답이 40.1%로 가장 높게 나타났다. ‘인터넷에서 영문 자료를 검색하거나 번역하는 일’이라는 응답이 25.2%로 뒤를 이었다. ‘말로 상담하거나 발표, 강의, 제안하는 일’은 11.9%에 그쳤다.
이 결과는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강조되는 정도에 견줘, 실제 실생활에서 영어를 쓰는 일은 그다지 많지 않음을 보여준다. 다만 직업 등에 따라 편차가 드러나기도 했다. 소득수준과 영어학습 시간, 외국인과의 의사소통 시간 등이 높거나 많을수록 자신의 영어 능력을 높게 평가하는 경향이 뚜렷했으며, 영어를 쓰는 빈도 역시 학력과 소득수준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를 주도한 한글문화연대 이건범 정책위원은 “영어구사 능력이 일자리 양극화의 기제가 되며, 거꾸로 일자리 양극화가 영어능력 양극화를 고착시킨다는 점을 확인할 수 있다”고 풀이했다.
재미있는 결과 가운데 하나는, 취업이나 진급에 영어 능력을 평가항목으로 넣는 제도에 대해 ‘일반적인 업무 능력과는 거리가 있으므로 중시할 필요가 없다’(26.4%), ‘일부 업무 외에는 전혀 필요 없다’(17%), ‘사교육비와 시험응시 비용만 낭비하게 만드는 나쁜 제도다’(11.1%) 등 부정적인 답변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점이다. ‘꾸준함의 척도이므로 의미있는 항목이다’(22.8%) 또는 ‘대세이므로 넣어도 된다’(11.3%) 등 소극적으로 받아들이는 응답은 34.1%에 그쳤다.
이는 현재 취업이나 승진 기준으로 광범위하게 쓰이는 영어 능력 평가가 적절하느냐는 문제 제기로 이어질 수 있는 결과다. 특히 실제 업무에서 영어를 쓰는 비율이 높은 전문직층은 과반수가 넘는 57.7%가 부정적인 응답을 내놨으며, 오히려 조직 체계 안에 들어 있지 않은 학생층(31.3%)과 자영업층(33%)이 주로 ‘의미있는 항목’이라는 응답을 내놨다. 대학교 영어강의에도 전체의 62.3%가 부정적인 의견을 내놨으며, 여기서도 전문직의 부정적 대답은 평균보다 높았다./최원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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