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8일 화요일

‘독서의 해’에 해야 할 다섯가지

백원근 한국출판연구소 책임연구원이 2012년 2월 25일자 한겨레에 쓴 칼럼, ‘독서의 해’에 해야 할 다섯가지

정부는 올해가 ‘독서의 해’라고 발표했다. 3월 선포식을 시작으로 다양한 행사와 프로그램이 연중 실시될 예정이다. 관건은 독서율, 독서량, 독서시간의 지속적인 감소 추세와 영상물 위주의 다매체화 속에서 수세에 몰린 독서 생태계를 얼마나 개선하고 재구조화할 수 있을까에 있다. 특히 ‘독서의 해’ 시행 취지인 독서인구 확대를 위해서는, 평소 책 읽기를 멀리 하던 사람들이 독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 일에 정책 자원이 집중되어야 한다. 일회성 행사나 프로그램들로는 이를 달성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첫째, 무엇보다 범사회적으로 실천할 일은 하루 10~30분 정도의 ‘독서시간’을 일과 중 필수시간으로 도입하는 것이다.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은 입을 모아 ‘바빠서 책 읽을 시간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독서동기나 독서습관의 부재가 근본 원인이다. 가정, 학교, 직장 등 모든 곳에서 지정된 시간에 읽고 싶은 책을 더불어 읽는 체험을 통해 독서 생활화의 계기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둘째, 공공의 독서 인프라인 도서관 서비스를 확장해야 한다. 지난 몇년 사이 공공도서관이 많이 증가했다고는 하지만 도서관에 대한 국민의 물리적·심리적 거리감은 여전히 멀다. 주민 생활권 안에서 도서의 대출·반납이 손쉽게 가능하도록 공공도서관마다 민간 시설과 연계된 관외 서비스센터를 다수 운영할 필요가 있다. 또한 새 학기부터 본격화되는 초중고 주5일제 수업에 따른 가족 단위의 주말 도서관 이용 프로그램 시행도 시급하다.
 
셋째, 지방자치단체가 독서정책 추진에 뛰어들도록 독려하는 ‘지자체 독서진흥지수’를 도입하는 원년으로 삼아야 한다. 5년 전부터 시행중인 ‘독서문화진흥법’과 ‘독서문화진흥 기본계획’에 의해 각 지자체는 주민을 위한 독서환경 조성 책무가 있는데도, 조례 제정이나 독서진흥 예산 편성에 실제로 신경을 쓰는 곳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시청에 독서진흥 전담팀을 운영하는 군포시 등의 사례가 확산되어야 한다.
 
넷째, 일상에서 책 읽기를 자극하고 권장하는 사회 분위기 조성이 요청된다. 상업주의에 밀려 시들해진 신문·방송의 책·독서 정보 제공을 복원시키고, 인터넷 방송인 ‘온북티브이’의 정규 케이블 채널화 지원, 각 분야 인기 스타들이 참여하는 릴레이 독서 캠페인 전개, 전국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독서 낭송대회 개최, 학급문고 설치와 학교도서관 활성화, 경제단체가 협력해 벌이는 직장도서실 설치 운동, 동네서점을 살리는 향토서점 상품권 발행, ‘독서 마케팅’의 최신 성과를 공유하는 독서 콘퍼런스의 연례 개최 등 독자층을 두텁게 하는 정보·경험·공간의 기반을 최대한 확충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독서의 해’이자 ‘선거의 해’의 대미를 장식하는 일은 12월에 “책 읽는 나라를 만들겠다”고 공약하는 대통령 입후보자에게 투표하는 일이다.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 책 읽기만큼 확실한 미래 투자는 없고, 이를 제대로 인식하고 독서 친화적인 사회를 만들겠다는 리더가 누구인지 검증해야 한다.
 
‘독서의 해’는 다름 아닌 ‘독자의 해’이기도 하다. 지반 침하가 이어지는 읽기문화의 토양을 단단히 다지고 비옥하게 일굼으로써 삶의 질이 높은 문화 선진국으로 한 걸음 나아가야 한다. 이를 통해 책 읽을 권리인 독서권이 지식정보사회의 기본권이며, 독서야말로 삶을 풍요롭게 하는 마르지 않는 원천임을 인식하는 이들이 많아지는 소중한 해가 되기를 바란다.

2012년 2월 15일 수요일

인간, 사건사와 사회사 속의 존재

2012년 2월 12일 경향신문, 김호기 교수의 칼럼, 문재인의 운명, 안철수의 선택 (1). 이 칼럼이 시리즈로 계속될 모양이다.

민주통합당 공천심사위원을 맡게 됐다. 그래서 이 시평에서 당분간 공천을 평가하긴 어렵다는 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고 싶다. 오늘 이야기하려는 것도 물론 쉬운 주제는 아니다. 선거의 해를 맞이해 두 인물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데, 문재인과 안철수가 그들이다. 그 동안 두 사람을 사석에서 몇 번 만난 적이 있다. 특히 안철수와의 만남은 일부 언론에 보도되기도 했다. 미리 밝히고 싶은 건 두 사람과의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말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언론의 입장에선 선거 향방을 결정짓는 사안을 보도할 의무가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공개하지 않기로 한 약속은 지켜져야 하며, 기실 한국사회 분석과 전망을 공부하기 위해 만난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내가 주목하려는 것은 문재인과 안철수가 선 자리와 갈 길이다.

사회학적으로 인간은, 특히 최종 의사결정을 담당하는 정치가는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인 동시에 구조로부터 강제받는 존재다. 프랑스의 역사학자 페르낭 브로델의 시각에서 보면 사건사와 사회사 속에 놓인 존재이기도 하다. 사건사 아래서 개인의 자유의지는 극대화되지만, 사회사 아래선 그에게 부여된 시대적 구속이 부각된다.

올 두 선거에서 먼저 주목할 것은 사회사다. 한 번 더 브로델로 돌아가면, 그는 사회사를 콩종크튀르(국면)의 역사라 이름짓고, 국면의 변화가 사건에 미치는 영향을 강조한다. 국면사적 시각에서 1987년 6월 항쟁 이후 우리 사회를 이끌어 온 두 원동력은 민주화와 세계화다. 민주화에 대한 열망이 ‘87년체제’를 등장시켰다면, 세계화로부터의 강제가 ‘97년체제’를 낳았다. 민주화가 민주적 사회개혁을 위한 구심력으로 작용한 반면, 신자유주의 세계화는 그 개혁에 한계를 부여하는 원심력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명박 정부다.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는 그래도 국민기초생활보장법 등을 통해 세계화의 그늘을 제어하려 했지만, 이명박 정부는 부자 감세, 4대강 사업 등 신자유주의 토건정책에 전력투구해 왔다. 세계화의 원심력이 민주화의 구심력을 압도해 양극화를 포함한 신자유주의의 적폐가 가감 없이 드러난 것은 이명박 정부 아래서다. 중산층이 붕괴해 ‘1 대 99 사회’가 만들어지는 ‘현실적 폭력’은 물론 비정한 ‘해고’가 그럴싸한 ‘구조조정’이란 말로 둔갑하는 ‘상징적 폭력’의 이중적 폭력이 거침없이 행사돼 온 곳이 바로 우리 사회다.

신자유주의 국면의 암울한 현실 속에 놓인 개인은 자연 과거에의 그리움과 미래에의 기대를 동시에 갖게 된다. 한때 미워했으나 그래도 좋았던 시절로 추억되는 건 노무현 정부이며, 이중적 폭력으로 훼손된 인간다움이 다시 제 자리를 찾아가는 것은 소망스러운 미래상이다. 문재인과 안철수는 이런 그리움과 기대에 짝하는, 고유명사이자 보통명사다. 문재인이 더없이 인간적이고 서민적인, 가장 노무현다운 정치가라면, 안철수는 불통과 안주에 맞서서 소통과 혁신의 변화를 예감하게 하는 다수 시민의 멘토다.

올 두 선거에서 문재인과 안철수가 주목받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치가에겐 무엇보다 권력의지가 중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국면사가 요구하는 새로운 비전이다. 문재인은 경제민주화·검찰개혁·통일정책 등을 비전으로 내비춰 온 반면, 안철수는 청춘콘서트와 안철수연구소로 상징되는 사회적 소통과 경제적 혁신의 아이콘으로 인식되고 있다. 6월항쟁 25년이란 국면을 고려할 때 두 사람의 비전은 설득력을 가진다고 나는 생각한다.

다시 한 번 더 브로델로 돌아가면, 어느 사회이건 국면이 강제하는 힘이 약화되고 개인의 자유의지가 강화되는 순간이 도래한다. 선거는 바로 그 ‘결정적 순간’이다. 정치의 역동성을 생각할 때 문재인과 안철수의 미래를 예단하긴 어렵다. 그러나 대선을 10개월 앞둔 현재, 문재인의 ‘운명’과 안철수의 ‘선택’에 좁게는 진보세력의 미래가, 넓게는 우리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음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2012년 2월 13일 월요일

0.1% 재벌에 포위당한 서민의 삶

2012년 2월 13일 한겨레 신문 김진철 기자의 보도, 0.1% 재벌, 서민의 삶 포위하다

삼성전자 갤럭시에스(S)2 알람 소리에 잠에서 깼다. 회사원 김서민씨는 씨제이(CJ)의 햇반과 김으로 아침을 때웠다. 제일모직의 로가디스 정장을 입고 엘지(LG)패션의 해지스 코트를 팔에 걸친 김씨는 롯데 레쓰비 캔커피를 들고 주차장으로 나섰다. 밤새 내린 눈 때문에 김씨는 현대로템이 운영하는 지하철 9호선을 타고 출근하기로 마음먹었다. 지하철은 스마트폰에 빠진 승객들로 초만원이다. ‘에스케이(SK)텔레콤의 3세대(G) 통신망이 부쩍 안 터지는데, 4세대 엘티이(LTE) 엘지유플러스로 바꿔볼까?’ 잠깐 고민하는 사이 회사에 도착했다. 삼성전자 컴퓨터를 켜고 일과를 시작했다.

아내 박선이씨는 엘지전자 진공청소기를 들고 집안 청소를 마쳤더니 벌써 오전이 끝나간다. 친구들과 점심때 만나기로 한 박씨는 남편이 두고 간 현대자동차 쏘나타의 시동을 걸었다. ‘기름이 떨어졌네.’ 집 근처 지에스(GS)칼텍스로 갔다. 점심은 씨제이푸드빌의 ‘비비고’에서 먹고, 신세계 스타벅스에서 수다를 떨었다. 이마트에 들러 현대카드로 결제하고 저녁거리를 장만했다. 삼성물산 래미안아파트에는 한진택배에서 두고 간 물건이 있었다. 일반 개인의 일상에서 재벌그룹은 공기와 같은 존재다. 어디를 가도 이들의 제품과 서비스를 피할 수 없다.
(후략)

위평량 경제개혁연구소 연구위원이 분석한 자료를 보면, 지난해 30대 재벌그룹의 전체 자산은 1460조5000억원에 이른다. 국내총생산(GDP) 1172조원보다 300조원 가까이 많다. 연간 매출은 1134조원으로, 국내총생산의 96.7%에 이른다. 1980년부터 2011년까지 30대 재벌의 자산은 70배, 매출은 48배로 불어났다. 1990년대 들어 급상승한 30대 재벌의 매출액은 2000년 들어 상승 속도가 주춤하다가 이명박 정부 들어 다시 급증했다. 재벌(총수)의 부가 곧 국부가 됐고, 재벌 중심 사회체제는 더욱 굳건해지고 있다. (후략)


2012년 2월 9일 목요일

국립장애인도서관에 바란다

2012년 2월 7일 오후4시, 국립중앙도서관 6층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립장애도서관과 관련한 감담회 소식, 에이블뉴스 칼럼니스트 서인환의 글. 국립장애인도서관에 바란다.

 


지난해 연말에 도서관법이 개정되면서 현재 국립중앙도서관 내에 설치되어 있는 장애인도서관지원센터가 국립장애인도서관으로 승격하게 됐다.

이에 국립중앙도서관은 각 장애 유형별 당사자와 전문가를 초청하여 국립장애인도서관 설치 및 운영방안에 대한 의견 수렴을 시작했다.

그 첫 번째로 2월 7일 오후 4시 국립중앙도서관 6층 대회의실에서 시각장애인 도서관 운영자와 대통령 산하 조직인 도서관정보화기획단, 도서관 이용자 대학생 대표, 문헌정보학과 학계 대표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간담회가 열렸다.

법의 개정을 보면 국립중앙도서관 내에 설치한 지원센터를 삭제하고 국립장애인도서관을 설립한다라고만 개정되었지, 도서관법 제45조에 나와 있는 그 기능과 역할, 즉 업무는 추가되거나 수정된 것이 없다.

그 업무를 열거해 보면, 도서관의 장애인 서비스를 위한 국가 시책 수립 및 총괄, 장애인 서비스를 위한 도서관 기준 및 지침의 제정,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 자료의 수집·제작·제작지원 및 제공,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 자료의 표준 제정·평가·검정 및 보급 등에 관한 사항,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 자료의 공유시스템 구축 및 공동 활용, 장애인을 위한 도서관 서비스 및 특수설비의 연구·개발 및 보급, 장애인의 지식 정보 이용을 위한 교육 및 문화 프로그램에 관한 사항, 장애인의 도서관 서비스를 담당하는 전문직원 교육, 장애인 도서관 서비스를 위한 국내외 도서관 및 관련 단체와의 협력, 그 밖에 장애인에게 필요한 도서관 서비스에 관한 업무 등 10가지이다.

발표에 나선 조성재 대구대 교수는 국립장애인도서관은 현재 흩어져 있는 점자도서관의 서비스를 통합하여 이용자가 각 도서관 자료를 개별적으로 일일이 찾아 헤매지 않도록 하는 방안을 제안했다.

배경제 동덕여대 문헌정보학과 교수는 도서 제작의 요구자가 있을 경우 신속하고 정확한 자료의 개발이 필요하며 중복 제작을 미연에 방지하여 예산낭비를 없애야 하며, 모든 자료를 장애인이 이용 가능하도록 제작하는 것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개별 서비스 신청받아 개별제작하는 서비스를 활성화하여 필요 적기에 제공하는 시스템의 개선을 제안했다.

신인식 종달새도서관장은 국립장애인도서관의 거대한 사업의 집중화로 민간 점자도서관이 불이익을 받는 사례가 없어야 하며 서로 협력하고 국가의 민간지원을 늘리는 것이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육근해 한국점자도서관장은 직원의 전문화와 사전의 철저한 교육, 각 도서관의 역할 분담을 강조하였다. 김필우 한국시각장애인대학생회장은 시각장애인 대학생들의 의견을 모아 발표를 하였는데, 중추적 역할로서 국립장애인도서관의 역할과 접근성의 해소, 도서자료제작의 전문성 확보, 이용자 교육을 제안했다.

텍스트 위주의 전자도서의 개발과 데이지 시각장애인 전자도서 등 새로운 도서매체의 개발로 인하여 점자사용이 줄고 있는 현실에서 시각장애인의 독서 서비스의 개발과 더불어 요구에 의한 서비스의 개선뿐 아니라 국민 속으로 찾아가 독서를 진흥하기 위한 장려책을 개발하여 독서를 장려하는 적극적 사업이 필요하다.

연구나 조사가 시책 수립의 필요성에 국한하지 않고 연구를 진흥하기 위한 도서관 및 독서실태에 대한 조사와 장애인 서비스 관련 연구사업의 진흥, 전문가뿐만 아니라 자원봉사자의 발굴과 교육·관리가 필요하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은 그 이용 대상이 장애인이 아니라 독서에 어려움이 있는 모든 국민으로 확대할 필요성이 있으며, 장애를 주제로 한 자료의 수집과 장애아동을 위한 레코닥터(장난감도서관)과 특수교육 교재·교구 자료실 운영 등 자료의 특수성을 고려한 수집과 서비스도 필요할 것이다.

국립장애인도서관을 마련하기 위한 민관 합동 기획단을 구성하여 설립안을 마련하면 더욱 개방된 안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고, 장애인의 당사자의 정책참여를 보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인력, 조직, 예산 규모, 장비, 사업 등을 충분히 검토하고, 서비스 형태와 자료 수집 방안과 제작방안, 도서관과 출판사, 장애인 단체와의 정기적 협력 방안, 장기 발전 계획도 수립하기를 바란다.

그 동안 약 50년 간의 점자도서관들에서 개발한 각종 형태의 자료들이 많이 있다. 녹음테이프로 만들어진 자료, 점자타자기로 제작된 자료, 입체복사기로 제작된 자료, 자원봉자가가 만든 텍스트 파일, 디지털 MP3로 만들어진 자료 등 다양한 자료들 중 시대의 변화에 따라 변질되거나 훼손된 자료도 있고 자료 가치가 떨어져 이용이 어려운 자료도 있다.

기존 자료의 복원과 새로운 시각장애인 도서 형태인 데이지로의 전환작업, 그리고 신규 도서자료의 개발의 출판 표준과 도서의 양적 확보 방안, 현재 각종 소식을 전화로 듣는 ARS의 통합화로 이용료 없이 소식을 듣도록 제도화하는 문제, 이용자가 편리하도록 자료를 필요한 자료를 찾아 원스탑 서비스하는 방안, 흩어져 잇는 자료의 통합관리 방안, 40여 개의 민간 점자도서관의 지원 방안, 스마트폰 앱을 이용한 장애인 도서서비스 등 실로 국가적 시책마련이 이제는 어느 정도 격을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

그리고 이용자에게 서비스의 욕구를 충족할 수 있는 충분한 자료가 적기에 제공되기를 기대한다.

분위기가 중요하다--사회경제학(socionomics)

<대중의 직관 Mood Matters>(이현주 역, 반비, 2012. 2. 3)을 읽다.

저자인 존 캐스티는 응용시스템분석 전문가다. 서던캘리포니아 대학에서 수학 박사학위를 받은 수학자다. 2005년 케노스 서클(Kenos Circle)을 공동으로 설립했다. 케노스 서클은 복잡성 과학을 적용해서 기존의 통계적 방식보다 훨씬 정교하게 미래를 예측하고자 하는 연구자들의 모임이라 한다. 저서로  <복잡성 과학이란 무엇인가>(김동광 역, 까치, 1997> <괴델>(박정일 역, 몸과 마음, 2005) <컴퓨터, 장자의 꿈>(강태원 역, 교우사, 2002) <20세기 수학의 다섯 가지 황금율> 1.2 등등 적지 않은 책들이 번역되어 있다.

이번에 번역 소개된 책 <대중의 직관>. 특이한 책이다. 원제는 ‘분위기가 중요하다(Mood Matters)’. ‘사회적 분위기’란 사회 구성원들이 공유하는 미래에 대한 전망으로, 합리적이라기보다는 감각적이고 동물적인 느낌이다. 저자는 전문가 개인의 합리적 예측보다 집단적으로 드러나는 느낌과 신념이 더 정확하다고 주장한다. 미래를 예측하고 역사의 방향을 읽어내고자 하는 이들은 바로 이러한 '사회적 분위기' 즉 대중이 집단적으로 공유하는 신념이나 느낌을 포착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 방법론은? '사회경제학(socionomics)’이다

이를 테면 이런 식이다. 책의 앞 부분에서 마천루 지수(Skycraper Index) 이야기가 나온다. "어떤 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거라며 첫 삽을 뜨면 최대한 빨리 그 나라 주식시장에서 빠져나올 때가 된 것이다. 쿠알라룸푸르의 페트로나스 타워, 대만 타이페이의 타이페이 101, 두바이의 부르즈 두바이 등 건립되고 난 뒤 주가지수는 거의 동일한 그래프를 보여준다.(29쪽).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 "멀리 내다보고 생각하는 독자들에게 최근 한국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높은 건물을 세우겠다고 선언한 사실을 언급하는 것이 의미 있을 듯싶다. 서울에서 건설될 롯데월드타워 123은 아시아에서 가장 높은 건물이 될 텐데 세계에서는 칼리파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을 것이다. 이 건물은 2009년에 부지 굴착 공사가 끝났고 2015년에 완공 예정이다. 앞을 내다보는 투자자라면 곧 한국 주식시장이 정점을 찍을 것으로 예측할 것이다." 등등.

이런 예측에 근거할 때 올해 우리나라에서 치러질 선거(총선과 대선)의 결과는 어떠할까? 존 캐스티는 정치적 위기의 문제와 관련하여 이렇게 말하고 있다. "사회경제학의 중심 가설은 사회적 분위가 점점 회의적으로 변하면 유권자들은 기존 정치인의 약점을 극대화하고 강점을 최소화하면서 이전의 정치 스타일이 실패했다고 생각하게 되어 결국 다음 선거에서나 혹은 선거가 치러지기 전에 현직 정치인을 내쫓는다는 것이다."(210쪽)

2012년 2월 8일 수요일

학술출판 살리기, 저자들 자율적 연구체계가 해답

2012년 2월 8일 한겨레 최원형 기자의 보도,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와 이승우 도서출판 길 기획실장이 나눈 이야기를 전하고 있다. 학술출판 살리기, 저자들 자율적 연구체계가 해답

인문·학술 출판인들의 진단

출판계가 어렵다는 건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지만, 그 가운데에서도 학술 출판은 눈에 띄게 쭈그러들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서 교양서는 스타 저자를 기반으로 삼아 꾸준히 팔려나가지만, 본격적인 학술서 출판은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사라지고 있다는 위기의식이 점차 강해지고 있는 것이다.

지난 6일 양질의 사회과학 서적을 펴내온 후마니타스 박상훈 대표와 묵직한 인문·학술서를 주로 펴내온 도서출판 길의 이승우 기획실장을 서울 합정동 후마니타스 사무실에서 함께 만나 국내 인문·학술 출판의 현황과 전망에 대해 들어봤다.
 
두 사람은 “출판사마다 사정이 다르기 때문에 우리의 이야기가 출판계 전체를 대변할 수는 없다”면서도 현재 상황과 전망에 대해 비교적 일치된 견해를 내놨다.
 
본격적인 학술서, 1000부도 못 찍어낸다 두 사람은 교양서와 구분되는, “국내 학자가 장기적인 관점으로 내실있게 연구해서 내놓는 학술서”의 출간이 지식생산 체계의 선순환을 위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러나 당장 두 출판사만 하더라도 학술서를 낼 때 초판에 1000부 정도 찍던 암묵적인 기준이 600~700부 정도로 급격히 내려갔을 정도로 위태롭다고 입을 모았다. 학술서가 점점 더 ‘출혈 출판’이 되고 있다는 것.
 
지난해 길이 낸 김유동 경상대 교수의 문명사 연구인 <충적세 문명>은 초판을 600부 찍었다고 한다. 재판 부수도 고민을 거듭하다 300부를 찍었는데, 그나마 거의 안 나가는 상황이다. 공들여 만든 학술서가 겪는 현실이 대부분 이렇다고 한다. 후마니타스도 지난 한 해 1000부 판매를 넘긴 책이 절반도 안 된다. 이 출판사 신간의 30%가량이 학술서인 점을 고려하면, 학술서 출판은 본전도 찾기 힘든 현실을 보여주는 이야기다.
 
초판 1천부도 안팔려 한숨
스타급 저자는 교양서 매진

여기에 시중에 나오는 책들의 학술적 가치에 대한 우려가 겹친다. 이 실장은 “90년대 후반부터 한국사, 철학 등에서 대중적 글쓰기를 하는 젊은 필자들이 나타났지만, 긴 호흡과 긴 관점으로 학술적 연구를 담은 책은 보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곧 알고 있는 지식을 대중들과 나누는 글쓰기에 성공한 유명 필자들은 연구를 통해 새로운 지식을 생산하는 학술적 활동에는 소홀하다는 것이다. 몇 년 동안 연말에 각종 매체들이 발표하는 ‘올해의 책’ 목록만 봐도 진중한 학술적 성과를 담은 책은 찾아보기 어렵다고 한다. 이 실장은 “학술서와 교양서가 함께 가야 하는데, 출판계가 스타급 저자를 ‘소진’시키다시피 하면서 학술서 출판은 외면한 채 교양서 출간에만 목을 매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가 앞에 줄선 지식생산 체계가 문제 두 사람은 “학술서를 써낼 만한 조건을 갖춘 필자도 찾아보기 힘들다”고 안타까워했다. 학계에서도 스스로의 호흡으로 장기적인 연구를 진행하고, 이를 책으로 써낼 수 있는 여력을 갖춘 학자가 없다는 것이다. 박 대표는 “논문을 보고 참신한 문제의식이나 새로운 접근법에 끌려 ‘책을 써보라’고 권유·제안했던 학자도 많았는데, 다들 책 쓸 여력이 안 된다며 거절하더라”고 말했다.


이승우 ‘도서출판 길’ 실장
“대학내 교수경쟁 체제로
저술보다 논문 우선순위”

단행본 저작보다도 우선순위에 놓이는 일들은 무엇일까? 논문과 프로젝트, 학회나 연구소 등에서의 행정업무 등이라고 한다. 이 실장은 “교수 경쟁체제의 도입 등 대학 사회의 급격한 변화에 따라 계량적 업적 산정이 자리를 잡은 뒤로 저술이 사라져가고 있다”고 말했다. 한마디로 저술보다는 논문 점수가 더 중요해졌다는 것. 단행본 저술이나 번역서가 잘 나오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한다. 박 대표는 “한 해 16편의 논문을 써내는 역사학자를 본 적도 있다”고 덧붙인다. 이렇게 만들어지는 논문과 프로젝트는 기본적으로 출판으로 이어지기 힘들다. 공동연구의 결과물 등이 간혹 ‘편저’로 나오기도 하지만, 여러 사람의 문제의식을 섞어 담았다는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고 한다.
 
출판인 두 사람의 이런 지적은 사실 낯설지 않은 문제 제기다. 학계 일각에서 이미 ‘학진 시스템’이라는 이름으로, 국가가 주도하는 연구비 지원을 중심으로 지식생산이 이뤄지는 현실을 비판해왔다. 이젠 출판인들까지 이런 현실에 비판을 거드는 모양새다. 박 대표는 “90년대 이후로 국가가 예산이나 정책을 통해 지식 생산에 미친 영향이 크다”며 “학자 스스로의 연구가 어려워지면서 출판계에도 의미있는 ‘인풋’이 줄어들고 있다”고 풀이했다.
 
출판 문화가 지식생산 주도해야 두 사람은 “70~80년대 출판문화가 지식생산과 사회운동 모두를 주도했던 경험을 되새겨봐야 한다”며 ‘장기적 관점’과 ‘자율성’을 강조했다. 지식생산 체계에 자율성을 강화해, 장기적 관점의 연구를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야 출판계도 여기에 호응해 학술 출판에 적극 나설 수 있다는 얘기다. 또 상업 출판에 치중하는 대형 출판사들이 본격적인 학술 출판에도 나서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영미권에서는 대학 출판사가 그런 구실을 하는데, 우리 현실에서는 그 기능을 대형 출판사들이 떠안을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
“국가 주도 연구비 지원이
학자 자율연구 어렵게 해”

서평과 논쟁 등 학술 토론의 공간이 더욱 확대될 필요성과 중소 규모 출판사들의 자기 혁신도 중요한 과제로 제기됐다. 박 대표는 “5000부에서 1만부가량 팔리는 다양한 학술서들이 교양서들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모습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2012년 2월 7일 화요일

김훤주 기자의 글,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

김훤주 기자가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라는 글을 연재하고 있군요.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1)

--제대로 비판을 하려면 대법원 판결문을 무턱대고 믿을 것이 아니라 대법원 판결문이 과연 제대로 된 판결문인지를 먼저 따져봐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어쩌면 대법원 또는 법관이 그래도 엉터리를 저지르기야 하겠느냐고 생각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습니다. 그래서 대법원도 사실 여부 판단의 근거로 대법원 판결문을 들이밀면서 부러진 화살 영화는 허구라 얘기합니다.
(중략)대법원 판결문을 봅니다. "형사소송법 제282조에 규정된 필요적 변호 사건에 해당하는 사건에서 제1심의 공판 절차가 변호인 없이 이루어진 경우, 그와 같은 위법한 공판 절차에서 이루어진 소송 행위는 무효이므로, 이러한 경우 항소심으로서는 변호인이 있는 상태에서 소송 행위를 새로이 한 후 위법한 제1심 판결을 파기하고, 항소심에서의 진술 및 증거 조사 등 심리 결과에 기하여 다시 판결하여야 한다."

널리 알려진대로, '필요적 변호 사건'이란 징역 3년 이상에 해당되는 형이 선고될 수 있는 경우로 반드시 변호사를 붙여야 합니다. 대법원 판결문에도 있듯이 이렇게 중형이 선고될 수도 있는 필요적 변호 사건은 형사소송법 제282조는 "변호인 없이 개정하지 못한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피고인의 방어권 보장이 취지입니다.
널리 알려진대로, 석궁 사건에서 김명호 교수는 2007년 9월 18일과 10월 1일 공판에 출석하지 않았습니다. 당시 김 교수에게는 변호사가 있지 않았고, 그래서 재판은 변호인과 피고인이 모두 없는 상태에서 일방적으로 진행됐고 10월 15일 징역 4년 선고를 받았습니다.

이렇게 진행된 1심을 두고 대법원 판결문은 이렇게 적고 있습니다. "원심(항소심)은, 이 사건이 필요적 변호 사건임에도 제1심 법원이 제8회 공판 기일과 제9회 공판 기일에 변호사 없이 개정하고 증거 조사를 실시하고 그 증거들을 유죄 인정의 증거로 삼은 위법이 있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 다시 심리하여 판결을 선고하였는 바, 형사소송법의 관련 규정 및 위 법리에 비추어 보면 원심의 이러한 조치는 정당하다."

이렇게 해서 1심이 제대로 진행되지 않았음은 대법원 판결문조차 "위법이 있다고 인정한 다음 이를 이유로 제1심 판결을 취소하고"라 함으로써 제대로 밝혀졌습니다. 이로써, "영화 부러진 화살이 다룬 항소심이 증거·증인 채택을 하지 않았지만 1심에서 충분히 다뤘기 때문에 정당하다"는, 여기저기에서 제기되는 주장은 헛소리 이상이 될 수 없게 됐습니다.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2)

대한민국은 공판중심주의를 채택하고 있습니다. 저는 6년 정도 법원을 드나들며 취재를 해 봤습니다. 공판중심주의(公判中心主義)란, 공판에서 진행되는 소송 절차를 중심으로 재판을 해야 하며, 법관의 심증 형성(心證形成)도 공판에서 나오는 당사자(피고인과 검사)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를테면 수사기관이 작성한 피의자 신문 조서가 있고 참고인(피해자나 증인 포함) 진술 조서가 있고 여러 가지 증거를 검사가 제시했을 때 재판 과정에서 피고인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바로 증거 능력을 가질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서 피고인과 검사 사이에 공격과 방어가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런 공방은 일반 사람들에게 공개된 법정(공개주의)에서 법정에서 직접 심리한 믿을만한 증거에 근거(직접심리주의)해야 되며, 법원(재판부)은 이런 모든 과정을 당사자(피고인과 검사와 증인)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 진행해야 합니다.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1심 재판은 대법원 판결문조차도 잘못(위법)이 있다고 한 만큼 다시 거론할 까닭이 없으며, 다만 항소심을 살펴보면 되는데 이 또한 1심 못지 않게 엉터리임을 알 수 있습니다. "직접 심리한 믿을만한 증거"도 없고 "당사자의 진술을 토대로 삼아 진행"한 적도 없습니다.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3)

저는 영화 속 법정 장면은 100% 사실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사실이라는 말은, 법정에서 실제로 있었던 행동과 발언이라는 뜻을 넘어섭니다. 피고인 김명호가 아무리 죽을 죄를 지었고 성격이 괴팍하다 해도 재판을 제대로 받을 권리는 있는데 그 권리가 철저하게 짓밟혔다는 측면에서 일관되게 취사선택한 사실들이라는 뜻까지 담겨 있습니다.

이런 면에서 저는 진중권씨가 이어지는 트위트에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기에 석궁 재판은 적절한 소재가 아니었"고 "영화에서 얻어진 사법 개혁의 정당성은 허구로 빚은 정당성에 불과"하며 "실제로 사법 폭력이 저질러진 사례들을 사용했어야 그 정당성이 현실성을 띠겠"다고 한 대목이 안타깝습니다.
 
재판을 재판장이 자기 마음대로 진행하고 피고인의 권리를 묵살하고 제대로 된 증거 조사 없이 판결을 내리는데 어떻게 사법 폭력이 아니라 할 수 있습니까? 석궁 사건과 석궁 재판은 구분해서 봐야 합니다. 석궁 사건은 진중권씨 말대로 사법부에 대한 불신을 대변하기에 적절한 소재가 아니지만 석궁 재판은 그런 불신을 대변하고도 남을만큼 적절한 소재입니다.


부러진 화살 대법원 판결문은 엉터리다(4)

김명호 피고인과 박훈 변호사는 법정에서 석궁 위력이 엄청나서 완전 장전된 상태에서 발사되면 사람 몸 정도는 관통해 버린다는 사실과,  불완전 장전 상태에서는 제대로 발사되지 않고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전제로 삼아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화살이 꽂히지 않았을 개연성이 있다고 다퉜습니다.

합리적 의심입니다. 석궁의 엄청난 위력과 박홍우 부장판사의 몸에 났다는 조그만 상처는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 합리적 의심에 대한 반증이 대법원 판결문에는 없습니다. 
피해자 박홍우 부장판사의 피묻은 옷가지에 대해 적어놓은 대목이 유일한데 내용은 이렇습니다.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유전자 분석 감정 결과 위 피해자가 입고 있었던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 흰색 와이셔츠 등에서 혈흔이 발견되었고 유전자형 분석 결과 모두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되었다.(피고인은 조끼와 속옷에 모두 혈흔이 발견되었는데 중간에 입은 와이셔츠에 혈흔이 없기 때문에 수사 기관에서 증거를 조작한 것이라고 주장하나, 압수된 증거물에 의하면 속옷과 내의에는 복부 부위에 다량의 출혈 흔적이 육안으로 확인되지만 조끼에는 육안으로 혈흔인지 여부를 확인하기 어려운 소량의 흔적만 보이는 점, 처음 위 피해자를 목격한 경비원은 위 피해자의 옷을 들추니 다량의 혈흔이 보였다고 진술하고 있는 점 등에 비추어 보면,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
 

이렇게 두루뭉술하게 뭉뚱그려 놓은 판결문을 저는 처음 봅니다. 쟁점을 확실하게 흐려버리는 뛰어난 재주를 부렸습니다. 먼저 검정색 조끼, 흰색 속옷 상의, 연하늘색 내의에는 화살로 뚫렸다는 구멍 근처에 피가 있는 반면 흰색 와이셔츠는 구멍 근처에는 피가 없고 이상하게도 오른쪽 팔 부분에 피가 묻어 있다는 사실을 가렸습니다.

다음으로, 옷가지 핏자국에서 '동일한 남성의 유전자형이 검출'됐다고만 했지 그것이 박홍우 판사의 피와 동일하다는 얘기는 못하고 있습니다. 박홍우 판사가 상처를 입었다는 증명이 없습니다. 또 옷가지의 피가 박홍우의 피와 같다는 증명이 있어야 다음(상처가 났는데 그것이 화살 때문이냐 아니면 자해 때문이냐 등등)으로 넘어갈 수 있는데도 말씀입니다.

뒷부분 "와이셔츠 혈흔이 육안으로 잘 확인되지 않는다는 사실보다는 속옷과 내의에서 다량의 출혈 흔적이 확인된다는 사실의 증명력이 훨씬 우월한 것으로 보인다."는 우스꽝스럽기까지 합니다. 도대체 무엇에 대한 '증명력'인지 알 수 없습니다. 증명된 것은 '여러 옷가지에 동일한 남자의 피가 묻어 있다' 뿐입니다. 그 피가 박홍우 판사의 것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습니다.

(후략)
(이어집니다)

폭력을 부르는 사회, 그리고 인문학

월간참여연대 2012년 2월호, 안건모 씨(작은책 발행인)의 칼럼. 폭력을 부르는 사회, 그리고 인문학

요즘 사회 문제로 아이들의 폭력이 심각하다. 일진이니 하는 조직(?)까지 만들어 친구들의 돈을 빼앗고 왕따를 시켜 자살하는 아이들이 늘고 있다. 그런 소식을 들을 때면 나는 놀림을 받던 내 어린 시절이 생각난다.

내가 어릴 때 학교에는 일진이라는 조직은 없었지만 별반 차이가 없었던 걸로 기억한다. 힘없고 빽 없는 아이들은 늘 맞고 다녔다. 내가 어릴 때 다니던 홍제초등학교는 한 반에 60명 정도였다. 나는 그 많은 아이들 가운데 키가 가장 작았고, 몸이 약했고, 공부를 못했고, 게다가 집안이 가난해 늘 주눅이 들어 있었다. 그 소심한 성격은 아버지의 영향 때문이 아니었나 싶다.

아버지는 무척 성격이 급했고 난폭한 분이었다. 밥을 먹다 수틀리면 밥상을 뒤엎는 건 예사였고, 어머니의 머리채를 잡거나 발길질도 서슴지 않았다. 이웃들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키가 작다고 얕보면서 덤빈 이웃에게 날카로운 삽을 휘두를 정도로 앞뒤를 가리지 않았다. 아버지는 우리들에게도 폭력을 휘둘렀다. 한번은 두 살 위인 형을 가죽 허리띠로 때리기도 했다. 그러니 우리 형제들은 늘 아버지가 무섭고 조심스러웠다.

나와 우리 형제들은 아버지를 무서워하면서도 난폭한 성격을 닮아갔다. 내가 학교에서 맞고 집에 들어오면 아버지는 미간을 찌푸리며 화를 벌컥 냈다. “이 새끼야, 너는 손발이 없어? 왜 맞고 다녀? 힘 없으면 연필로 콱 찍어 버리면 되지!”라며 혼을 냈다. 내가 벌벌 떨면서 울면 아버지는 “울긴 왜 울어?”라고 버럭 소리를 지르면서 나를 내쫓았다. 어쩔 때는 벌거벗긴 채 내쫓기도 했다. 그렇게 혼나면서 나에게도 그 폭력적인 성격이 형성됐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아버지 말대로 나를 놀리고 괴롭히던 한 아이의 가슴을 연필로 찍어 버렸다. 연필심이 그 아이 가슴에 박혔다.

12살 나이에 나는 중학교 진학을 못 하고 공장에 들어갔다. 동네에는 학교를 못 가고 공장에 다니는 아이들이 많아 폭력을 휘두르는 건달들이 많았다. 그런 폭력적인 사회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을 수 없었다.

공장을 다니기도 하고 신문 팔이도 하면서 2년 뒤, 중학교 과정을 가르치는 ‘비인가’ 고등공민학교에 들어갔다. 그 학교는 정규 학교가 아니라서 나보다 더 사회에서 굴러다니다 들어온 아이들이 많았다. 나도 늦게 들어간 학교인데 나보다 나이가 서넛이 많은 아이들도 있었다. 나는 여전히 150cm 정도로 키가 작았다. 다른 아이들은 모두 키도 크고 어른  덩치만큼 컸다. 역시나 거기서도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놈들이 있었다.

검정고시로 들어간 한양공고도 마찬가지였다. 선배는 하느님과 동격이었다. 조금만 눈에 거슬려도 끌려가서 매를 맞았다. 동급생 중에서도 약한 아이들은 늘 시달림을 받았다. 나는 그나마 2년 늦게 학교를 들어갔기 때문에 선배와 나이가 같아 맞지는 않았다. 학교 규율은 엄격해서 조금만 어긋나도 매 타작이었다. 교문을 통과할 때는 걸리는 게 없나 하고 마음을 졸였다. 단추가 떨어졌거나 명찰이 없거나 머리가 조금만 길어도 걸려 몽둥이로 엉덩이를 맞았다. 가뜩이나 공부에 취미를 못 붙였는데 그런 폭력적인 학교 분위기까지 한 몫 해 2학년 초에 학교를 나와 버렸다. 물론 늘 쪼들리는 집안 사정도 내가 빨리 학교를 그만두게 한 원인이었다.

군대에 갔다. 나는 그 때 전두환이 사령관이었던 보안부대에 근무했다. 광주항쟁이 전두환이 일으킨 쿠데타 때문인지도 모르는 멍청하고 순진한(?) 놈이었다. 부대 안에는 알게 모르게 폭력이 많았다. 늘 매 타작을 하는 고참들한테 폭력을 배웠다. 고참이 된 뒤에는, 나 또한 그런 알량한 위세를 떨고 다녔다. 총칼을 앞세워 무력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 때문에 알게 모르게 폭력의 정당성을 주입받았던 것도 있었을 것이다.

제대하고 사회에 나와서 노가다를 하면서 그럭저럭 살았다. 하지만 먹고살 만한 일이 아니었다. 희망이 없어 거의 자포자기하고 살았다. 아무리 열심히 살려고 해도 안되면 자포자기하게 된다. 폭력적인 아버지의 성향을 이어 받고, 될 대로 되라 식으로 살게 되니 자연 폭력적인 성격이 형성될 수밖에 없었다.

그러다 다행히 책을 보면서 광주항쟁과 근대사를 알게 됐다.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의 실체를 깨닫고, 리영희 선생 같은 분들이 쓴 인문학 책을 보면서 이 사회 구조를 어렴풋이 알게 됐다. 나는 그렇게 가난하게 사는 게 내 개인의 문제인 줄만 알았다. 우리 집이 못살았기 때문에 내가 어릴 때부터 공부를 못했고 좋은 학교를 가지 못했다는 원망이 가슴 속에 맺혀 있었다. 하지만 이 사회는 아무리 부모님이 열심히 일해도 잘살 수 없는 구조였다. 가난을 못 벗어나는 건 부모님 개인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런 구조 속에서 열두 살 때부터 공장에서 아무리 열심히 일을 해도 성공할 수가 없었다. 그런 구조를 깨닫고 난 뒤부터 나를 돌아볼 수 있었다. 열등의식에서 벗어나면서 소심한 성격도 많이 나아졌고 폭력적인 성격이 조금씩 완화돼 갔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나마 다행인지, 난폭했던 아버지는 우리 형제들에게 학교 성적을 가지고 이야기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우리가 뭘 하든 간섭하지 않았다. 때문에 우리 형제들이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은 적이 없다. 비록 우리 형제들에게 급한 성격이 아버지의 유산으로 남겨져 있지만 그나마 공부에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돌이킬 수 없는 폭력성에까지 물들지는 않지 않았나싶다.

물론 아버지의 폭력적인 성격을 옹호하는 건 아니다. 결코 자식들에게 폭력을 휘둘러서는 안 된다. 그것은 자식들에게 폭력을 가르치는 것이다. 자신을 때리는 엄마를 죽이고 방 안에 둔 채 몇 달을 살았던 고등학생의 사건은 극단적인 사례이지만 깊이 생각해 봐야 한다.

부모님이 아이들에게 폭력을 쓰지 않고 공부를 강요하지 않는 것이 학교에서 폭력을 없애는 길이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이 사회를 배울 수 있게 해 주는 것. 그것은 인문학이다. 자식만 성공(?)시키려고 애쓰지 말고 사회를 배울 수 있는 인문학이 담긴 책과 가까이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것이 아이들이 폭력에 물들지 않게 하는 길이다. 이 어려운 사회에서도 삶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갈 수 있는 힘은 거기서 나오는 게 아닌가 싶다.

2012년 2월 4일 토요일

재능교육과 독서바우처 사업

2012년 2월 3일 참세상 윤지연 기자의 보도, “학습지회사 지원하는 ‘독서바우처’ 중단해야”

재능교육OUT국민운동본부(운동본부)’가 보건복지부의 독서바우처 사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고 나섰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07년부터 저소득층 미취학 아동의 독서교육을 정부 예산으로 지원하는 ‘아동인지능력향상서비스 바우처(독서 바우처)’ 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이 사업은 아동의 가정을 방문해 독서교육 서비스를 제공할 사업자로 9개 학습지 회사를 선정하고 있으며, 해당 선정회사에 재능교육 역시 포함돼 있다.

하지만 운동본부측은 해당 사업이 세금으로 운영되는 보건복지부의 공적 사업을 사교육 기업에 지원하는 것으로, 특히 제공업체 선정 과정에서의 기초적인 준법 의무조차 이행하지 않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때문에 운동본부는 3일 오전, 보건복지부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바우처 사업에 대한 전면 재검토와, 반교육 기업인 재능교육에 대한 지원 중단을 요구했다.

이 자리에서 오수영 학습지노조 재능교육지부 사무국장은 “독서 바우처 선정 대상 기준에 의하면, 사업자는 최저임금과 4대보험 가입 등을 지켜야 한다고 나와 있지만, 모든 학습지회사에서는 교사들을 특수고용직으로 고용해 이를 전혀 시행하지 않고 있다”며 “미약한 기준조차 지키지 않고 회사의 이익만 불려주는 보건복지부의 행태를 이해할 수 없다”고 비판했다.

이어서 오수영 사무국장은 “특히 보건복지부는 바우처 사업에 있어서 교육과정에 대한 평가, 작업 기준을 두지 않고 있는 등 교육내용에 전혀 개입하지 않고 있어 세금을 사기업에 쏟아 붓기만 하고 있는 형국”이라고 강조했다.

김태균 평등교육실현을위한전국학부모회 대표 역시 “바우처사업은 국가와 사회가 책임져야 하는 교육이지만, 보건복지부는 자본에게 교육사업을 넘겨 자본의 이해와 요구를 돕고 있다”며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은 1500일 이상 학습지 노동자들을 탄압하고 있는 악덕 기업인 재능교육에 이 사업을 맡겼다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편 참가자들은 기자회견문을 통해 “교사들에 대한 폭력을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고 준법의무를 헌신짝처럼 내버린 재능교육에 대한 지원을 즉각 중단할 것을 보건복지부에 요구한다”며 “또한 반교육, 친사교육적인 독서바우처 사업에 대해 전면적으로 재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2012년 2월 3일 금요일

공유경제

연합뉴스 2012년 2월 2일 황윤정 기자의 보도, 영국 정치사회학자 로나 골드의 저서 <공유경제>에 대한 기사. 자본주의 대안은 사랑과 나눔의 경제. 포클라레 운동에 대한 짤막한 소개까지.

지난달 29일 폐막한 다보스 포럼(세계경제포럼. WEF)의 최대 화두는 세계 자본주의의 위기였다. 미국식 신자유주의와 세계화를 지지해온 다보스 포럼의 클라우스 슈밥 회장은 "나는 자유시장의 신봉자이지만 자유시장은 사회를 위해 봉사해야 한다"면서 "우리는 죄를 지었다"고 통렬한 자기반성을 하기도 했다. 이처럼 서구의 자본주의 발전 모델이 한계에 부딪히자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 움직임이 전 세계로 확산하고 있다.

출판계에도 2008년 전 세계를 강타한 미국발 금융위기 이후 자본주의의 위기 원인을 분석하고 대안을 제시한 책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신간 '공유경제'는 위기에 처한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인간 중심의 경제 패러다임을 제시한다.

저자인 영국의 정치사회학자 로나 골드는 경제 분야에서 종교의 역할에 주목한다. 저자는 사랑과 나눔을 강조하는 종교적 가치관이 기업 활동에 인간미를 불어넣으면서 여전히 경쟁력을 갖춘 경제 질서를 만들 수 있다는 것을 다양한 연구 사례를 통해 보여준다. 대표적인 사례가 포콜라레(Focolare) 운동.

'벽난로'라는 뜻을 지닌 포콜라레 운동은 이탈리아 북부 도시 트렌토에 살던 여대생 키아라 루빅이 1943년 시작한 공동체 나눔 운동이다. 제2차 세계대전의 참상을 목격한 그녀는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사랑과 나눔을 실천하며 빈곤과 불평등을 극복하자고 제안했다.

포콜라레 운동이 제안하는 나눔은 단순한 자선 활동과는 다르다. 포콜라레 운동은 공동체에서 도움을 청하는 행위가 부끄러운 행위가 아니며 오히려 공동체에서 '나눔의 장'을 만드는 긍정적인 행위라고 의미를 부여한다. 또 아무것도 갖지 못한 사람도 무언가를 줄 수 있다고 강조한다. 남에게 얼마나 많은 것을 주었는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남을 위해 얼마나 헌신했는가가 더 중요한 가치라는 것이다. 포콜라레 운동은 많은 사람이 자발적으로 참여해 필리핀, 브라질 등 전 세계로 확산됐으며 공유경제의 실현 가능성을 증명해 보였다.

책을 공동 번역한 안명옥 차의과대 보건복지대학원 교수는 "비극적 악순환의 경제가 되풀이되고 있으며 이 악순환의 고리를 끊는 묘약은 결국 사람"이라면서 "새사람, 거듭난 새사람들이 깨달음을 통해 이 사회를 정화시킬 것이고 공유경제도 실천하며 또 이룰 것"이라고 강조했다.

빨간 불이 켜졌다, 이미

조선일보 2012년 2월 3일 김정훈 기자의 보도, 위기의 가정경제… 모든 지표에 경고음. 이 기사와 김정훈 기자의 다른 기사 가운데서 몇 대목.

①주택대출 20兆 부도위험…
②돌려막기 채무자 380만명
③제2금융권 高利대출 급증…

④작년 실질임금 3.5% 줄고
⑤1월 식품물가는 4.8% 올라…

⑥고통지수 2008년이후 최고

--지난해 근로자 월평균 실질임금(명목임금을 물가로 나눈 것)은 271만8000원으로, 2010년보다 3.5% 줄었다.

--글로벌 금융위기 전인 2007년 말 743조원이었던 우리나라 총 가계 빚은 지난해 9월 995조원으로 34% 늘었다. 같은 기간 동안 가계가 은행권에 진 빚은 24%(364조원→450조원) 늘어난 반면, 저축은행·신협·새마을금고 등 2금융권에서 빌린 돈은 63%(110조원→179조원) 늘었다. 2금융권 대출자는 신용등급 낮은 서민층이 대다수다. 문제는 2금융권 평균 대출이자가 연 24.4%로 은행권(9.8%)의 2.5배에 이른다는 점이다. 빚 갚기가 버거울 수밖에 없다. 적신호는 이미 켜졌다. 서민층이 많이 이용하는 카드대출 연체율은 2011년 말 2.72%로 1년 전 (2.34%)보다 상당폭 올랐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은 "1000조원에 육박하는 현재의 가계 부채는 우리 경제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의 막바지에 이른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가 상승은 부도 위기에 놓인 가계를 더 어렵게 만들 수 있다. 정부가 발표한 지난달 물가상승률은 3.4%지만, 저소득층의 가계부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식품 물가는 4.8% 올랐다.

--지난해 1~9월 우리나라 근로자들의 월평균 명목임금 상승률(0.1%)은 전년의 6.8%를 크게 밑돌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국내 10대 트렌드 중 셋을 가정경제 문제에서 뽑았는데, 모두 어두운 내용이다. ▲가벼운 장바구니, 빡빡한 살림살이 ▲중산층 붕괴 속 신빈곤층의 확산 ▲초라한 일자리가 그것이다.

2012년 2월 2일 목요일

경제 성장 넘어 새로운 삶으로!

조금 지난 글이다. 아니 아주 최근의 글이다. 김종철 선생이 프레시안에 2012년 1월 20일에 쓴 글. 경제 성장 넘어 새로운 삶으로! 편집자는 "철밥통에 목매는 20대, 노예 사회 벗어날 길은..."이라고 제목을 뽑았다. 그 글, 여기에 옮겨놓고 읽어본다.

고전적인 교양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수업 시대>에서 괴테는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 매일 반드시 실천해야 할 것으로 몇 가지를 꼽았다. 날마다 좋은 음악을 듣고, 좋은 시 한편을 읽고, 훌륭한 그림을 하나 보고 그리고 가능하다면,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젊었을 적에 이 구절을 처음 대했을 때, "이치에 맞는 말 몇 마디"라는 표현에 한참 시선이 머물러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18세기 독일 사회의 '후진성'이라는 현실 앞에서 괴테가 느꼈을 좌절, 고통, 외로움을 짐작해 보았다. 적어도 내게는 괴테의 그 표현은 위선적이고, 기만적이며, 기회주의적인 거짓 언어가 넘치는 사회 속에서 오래 고통을 느껴온 사람만이 쓸 수 있는 것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괴테는 나의 동시대인이었다.

되돌아보면, 우리 세대가 영위해 온 삶은 거짓 언어의 숲 속에서 끝없이 헤매는 방황의 연속이었다. 전쟁 직후 먼지가 풀풀 나는 황량한 길바닥이었지만, 거기서 아무것도 모르고 뛰어다니며 놀던 철없는 어린 시절은 매우 행복했다. 그러나 중학교 1학년이 끝나가던 어느 날, 이 행복의 시간은 결정적으로 무너지기 시작했다.

그날 종례 시간에 담임선생님은 우리에게 신신당부 간곡히 말씀하셨다. "어느 정부든 자기 국민에게 나쁜 짓을 하는 정부가 있을 리 없다. 내일 투표는 ○○○에게 찍도록 부모님들께 잘 말씀드려라." 그리고 이튿날 오후부터 사람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고, 저녁 무렵 성난 사람들이 파출소를 불태우고, 엄청난 시위대가 거리를 뒤덮었다. 밤이 되자 어둠 속에서 총탄 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대한민국 역사에서 정부가 자신의 국민을 향하여 최초로 총격을 가한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1960년 3월 15일, 자유당 정부에 의한 대규모 부정 선거에 항의하여 궐기한 내 고향 마산 사람들이 겪은 일이다.

이상하게도, 3·15에 대한 내 기억 속에 언제나 가장 뚜렷하게 남아있는 것은 그때 담임선생님이 하셨던 거짓말이다. 물론 선생님은 자신이 원해서 거짓말을 한 것이 아니었다. 평범한 교사가 상부의 지시를 고분고분 따르지 않을 도리는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어린 제자들 앞에서 교활한 논리로 거짓말을 실제로 함으로써 선생님은 결국 신용을 잃었고, 우리들은 벌써 어린 나이에 스승을 존경할 수 없는 불쌍한 존재가 되어버렸다. 가장 끔찍한 것은 그러한 거짓말의 궁극적인 결과였다. 즉, 우리들 중에서 그 이후 자신의 인생행로에서 거짓 언어의 일상화를 당연지사로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는 점이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는 더 끔찍한 장면에 마주쳤다. 초여름 어느 날 가뭄 때문에 고생하는 농촌을 돕기 위해서 우리들은 각자 양동이 따위를 들고 교외로 대열을 지어서 가고 있었다. 그때 어디선가 난데없이 출현한 군용 지프차에서 내린 뚱뚱한 육군 장교가 우리들 곁에서 걷고 계시던 선생님을 불러 세워 놓고는 느닷없이 지휘봉으로 마구 구타를 하는 것이었다. 학생들의 어지러운 대열이 그의 비위에 거슬렸던 것이다. 5·16 쿠데타 직후 국가재건최고회의 시절, 지역 계엄사령부 최고 책임자였다. 쿠데타를 일으킨 군인들의 명분은 국가를 새로이 세운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제자들이 보는 면전에서 스승을 구타하는 방법으로, "나라에 청신한 기풍을 진작시키고자" 하였다.

이 일로 해서 나는 그 이후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군사 정권이 하는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 군인들에 의한 통치는 기본적으로 몰상식, 무교양, 극단적인 무례에 토대를 둔 것임을 그들 자신이 명확히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군사 통치 하에서 내게 가장 견디기 어려웠던 것은 그 강압적 통치 방식 이외에 끊임없이 되풀이되는 몰상식한 짓들을 보고 살아야 하는 데서 오는 고통이었다. 예를 들어, 군대 시절에 나는 오로지 대통령의 눈을 즐겁게 하려는 목적으로 봄도 되기 전에 길가의 개나리꽃들을 활짝 피우기 위해서 꽃나무와 병사들을 괴롭히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아야 했다. 지방 도시에서 전국체육대회가 열리면, 그날 대통령이 지나가기로 되어있는 길가에는 새벽부터 뿌리 없는 생나무들이 급히 심어졌다가 며칠 후에는 대개 말라 죽어버렸다.

무엇보다도 참을 수 없는 것은 이른바 장발 단속이었다. 멀쩡한 젊은이들의 머리칼이 국가 기관의 자의적인 판단에 따라 길거리에서 함부로 잘리는, 터무니없는 만행이 오래 계속되었다. 장발 단속은 어떠한 법률에 의거한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최고 권력자의 개인적인 취향을 거슬린다는 게 이유의 전부였다.

내가 1970년대 중반 어느 지방 대학에 일자리를 얻어 근무하던 때, 학생들의 부탁으로 저명한 작가 한 분을 초청하여 문학 강연회를 연 적이 있었다. 그 분은 내가 대학 시절부터 깊이 흠모해왔던 이 나라 최고의 작가 중 한 사람이었다. 두어 시간 동안 문학과 역사와 정치에 관한 강연을 들으면서 학생들과 나는 모처럼 진지한 사색의 즐거움을 누렸다.

그런 강연회 끝에 저녁 식사를 위해 시내로 나와 같이 걷고 있었는데 갑자기 그 분이 보이지 않았다. 살펴보니 길 건너편에서 경찰의 장발 단속에 걸려들어 그 분이 '닭장'에 막 실리고 있는 게 아닌가. 그 분은 몇 해 동안 미국에 머물다가 막 귀국한 때였다. 그래서 그런지 당시 세계적인 유행대로 장발이었다.

나는 이 돌발적인 사태에 당황하여 다급히 경찰관들에게 쫓아가 간곡히 부탁하고, 설명하였다. 그리하여 그 분을 '닭장'으로부터 가까스로 구출할 수 있었다. 그날 저녁 그 분과 나는 근처의 음식점으로 들어가기는 했으나 밥을 먹지 못했다. 작가는 창백한 얼굴로 침묵하고 있었으나 말할 수 없는 모욕과 수치로 온몸을 떨고 있었다.

박정희 시대는 누추하고 야만적인 시대였다. 작가는 불온한 글로 인해 탄압을 받거나 감옥에 갈 수도 있다. 그것은 작가로서 명예일 수 있다. 그리고 어쩌면 전제 권력은 그렇게 탄압함으로써 자신도 모르게 그 작가에게 경의를 표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 나라의 최고 작가가 장발 단속에 걸려 '닭장차'에 실린다는 것은 실로 누추하기 짝이 없는 모욕적인, 가장 야만적인 형벌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날 내가 경험한 일은 일선 경찰에 의해 별 생각 없이 자행된 사소한 사건일지 모르지만, 나는 그 일은 박정희 시대의 본질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극히 상징적인 사건이라고 생각한다.

박정희 시대란, 적어도 내가 이해하는 한, 비극적인 시대는 결코 아니었다. 비극이란 원래 위대한 정신의 위대한 몰락에 관계하여 일어나는 인간적 드라마이다. 박정희 시대는 '위대성'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치졸하고 천박한 정신이 지배하는 시대였을 뿐이다. 그것은 '잘 살아보세'라는 유치한 노래를 밤낮으로 틀어놓고, '새마을운동'으로 농촌을 살린다면서 토착적 민중 문화를 가차 없이 파괴하고, 민중의 지속 가능한 삶의 근본 토대인 농민 공동체를 급속히 해체시켰다.

그리고 이 농민 문화의 파괴와 공동체의 해체는 경제 성장이라는 이름으로 정당화되었다. '경제 성장'이라고 하면 모든 것이 허용되는 사회, '경제 성장'이라는 명분 앞에서는 역사도 문화도 전통도 헌신짝처럼 내던질 준비가 되어있는 사회, 그리하여 깊이도 영혼도 없는 사회, 다시 말해서 오늘날 우리에게 너무도 친숙한 한국 사회의 기본 성격이 박정희 시대를 통해서 굳건히 정립된 것이다.

1979년 10월 어느 새벽, 잠에서 덜 깬 상태에서 대통령이 죽었다는 소식을 이웃집 사람에게서 들었다. 순간적이지만 나도 모르게 눈물을 흘렸다. 결국 죽음이 모든 것을 해결하는구나 하는 허망한 느낌에 돌연히 휩싸였기 때문이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선생님이 군인으로부터 구타당하던 것을 본 이후, 학생, 군인, 교원으로 쭉 살아오면서 나는 한순간도 마음 편할 날이 없었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군대 생활을 하는 동안은 말할 것도 없지만, 대학의 교사가 되어 학생들을 가르치는 동안에도 끊임없이 감시받고 있다는 느낌에서 헤어날 수 없었고, 글을 쓸 때도, 글이 발표되고 나서도 늘 막연한 불안과 자기혐오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이제는 해방이다", 독재자 박정희가 죽었다는 소식을 들은 날, 나는 종일 들뜬 기분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깐이었다. 1980년 5월 이후, 절망의 날들이 계속되었다. 그 상황에서 기꺼이 감옥으로, 공장으로, 야학 교사의 길로 가는 학생들을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지켜보면서, 나는 무엇이 어디서부터 근본적으로 뒤틀리기 시작했는가를 천천히 생각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해서 한동안 어렵게 구한 외국의 서적과 잡지들을 들여다보다가 아무래도 책들을 좀 자유롭게 볼 수 있는 환경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하여 미국 뉴욕주립대학 대학원의 입학 허가를 얻었다. 그런데 미국에 도착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지 몇 달도 안 되었을 때, 나는 어떤 충격적인 경험을 했다.

그것은 따지고 보면 단순한 경험이었다. 내가 입학하여 공부하기 시작한 그 대학에는 교수와 대학원생을 위한 여러 개의 훌륭한 도서관이 있었는데 대개 내가 이용한 도서관은 인문·사회 분야 책들이 많은 중앙도서관이었다. 그 도서관의 규칙에 의하면 대학원생에 대한 도서 대여 기한은 6개월이었다.

나는 도서관에 따라 다른 규칙이 있으리라고 생각하지 못하고, 한 번은 법과 대학 도서관에서 빌린 책을 별로 읽지도 않고 가지고 있다가 어느 날 문득 살펴보니 대여 기한이 한 달밖에 안 되고, 그 규정에 따르면 이미 내가 열흘 이상 기한을 넘겼다는 것을 발견했다. 더욱 놀란 것은 기한이 넘으면 하루 10달러씩 벌금을 부과하기로 돼 있다는 규정이었다.

부랴부랴 법과 대학 도서관에 반납을 하러 가서 설명을 했다. 처음 이 대학에 와서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인지라 이 도서관의 규칙이 중앙도서관과 다른 것을 몰랐다, 주의를 기울이지 않은 것은 내 잘못이지만, 이런 실수로 학생 신분으로 100달러가 넘는 벌금을 물어야 하는 것은 좀 과하다고 생각한다고 얘기를 했다.

얘기를 듣고 있던 젊은 여자 직원이 잠시 기다리라 하고는 뒤에 앉아 있는 할머니 사서(司書)에게로 가서 내 얘기를 하는 모양이었다. 이윽고 할머니가 내게로 와서는 방금 젊은 직원에게 한 얘기를 다시 자기에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그리고 얘기를 들은 그 할머니 사서는, 설명을 들으니 일리가 있지만, 그렇다고 규칙을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니 자기 재량으로 벌금을 하루 10달러가 아니라 하루 1달러로 계산하여 모두 10달러로 하여 받겠으니 괜찮겠느냐고 묻는 것이었다. 물론 나는 그러겠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벌금을 그 자리에서 물고 나왔다.

도서관에서 나와서 곰곰 생각해보았다. 만일 한국의 대학에서라면 이런 경우 어떤 장면이 벌어졌을까. 나는 그동안 내가 재직했던 대학들과 그 도서관 풍경들을 머리에 그려보았다. 그리고 내가 얻은 결론은 한국에서는 이런 모습이 절대로 재현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무엇보다도 한국에서는 대학이든 어디든 실무자에게 주어진 재량권이라는 게 존재하지 않는다. 그렇기 때문에 규정을 곧이곧대로 지키든가 아니면 서류 조작 따위를 통해서 처음부터 문제가 발생하지 않은 것처럼 조작할 도리밖에 없는 것이다. 이것은 오늘날에도 아마 변함없는 현실일 것이다.
공공 기관이든 사기업이든 한국의 조직에서는 현장에 가장 가까이 있는 실무자에게 현장 사정에 따라 유연하게 합리적인 결정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주어져 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모든 결정은 고위층, 상층부에서 이루어지고 실무자급은 이 결정을 합리화하기 위한 기술적 보완 책무가 있을 뿐이다. 그러기에 말도 안 되는 온갖 일들이 국책 사업이니 뭐니 하면서 횡행하는데도 불구하고, 중하위직 공무원, 관련 분야 연구자, 학자들은 이의 제기를 하지 못하고, 다만 그 말도 안 되는 정책을 정당화하기 위한 억지논리를 개발하는 데 고통스럽게 매달리고 있는 것이다.

결국 이것은 철저한 상명하복의 위계 구조에 의해 움직이는 군대 조직의 논리가 군사 정권 시절을 통해서 이 사회의 온갖 영역에 침투해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고도 경제 성장기의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시된 덕목은 효율성, 생산성이었고, 그러한 것에 대한 집착이 강해지는 것만큼 공공 조직이나 기업 어느 쪽을 막론하고 제일의 원리로 확고하게 굳어진 것은 군대식 논리였다고 할 수 있다. 요컨대 노예의 논리가 이 사회의 지배 원리가 되어온 것이다.

노예의 논리가 지배하는 사회에서도 사람들은 살아가지 않을 수 없다. 그때 필요한 기술은 끊임없는 거짓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진실을 찾으려는 힘은 퇴화하고, 진실을 말하는 사람은 고립되고 조소를 당하며, 때로는 냉소 혹은 저주의 대상이 될 뿐이다.
나는 지금도 그날 미국 대학의 도서관에서 할머니 사서가 보여준 당당한 모습, 자유로운 모습 앞에서 내가 한 사람의 한국인으로 내심 기가 죽었던 것을 가끔 회상한다. 되돌아보면 한국에서의 우리들의 생은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진실 속에서의 삶'이라는 느낌이 희박한 것이었다.

아이들이 즐겁게 놀지 못하고, 건강한 성장기를 박탈당하고, 청년들이 활기를 잃고, 기껏해야 7급 공무원이나 '정규직'을 몽상할 뿐인 사회는 미래가 없는 사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회는 여전히 왜 그동안의 엄청난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미래가 없는 사회가 돼버렸는지 그 뿌리를 찾아보려는 근본적인 탐구가 없이 늘 드러난 피상적인 증상들을 어떻게 하면 완화시킬 수 있을지 임시 처방을 궁리하는 데만 급급하고 있다.
그리하여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들이 이 나라의 언술 공간을 늘 횡행하고 있을 뿐이다. '경제 성장'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된 게 아니라, '경제 성장' 바로 그것이 문제라는 사실을 정직하게 대면하는 게 그토록 어려운 것일까. 화석 연료 시대가 조만간 종식될 것이 분명한 이 시대에 이제 우리는 경제 성장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논리로는 한걸음도 더 나아갈 수가 없다는 진실을 더 이상 외면해서는 안 된다.

우리에게 미래로 갈 수 있는 출구는 거기에서만 열릴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내가 요즘 한국에서도 이제는 녹색당이 필요하다는 젊은이들에 공감하여 그들을 돕는 일에 가담하고 있는 것은 '경제 성장'을 넘은 세상에 대한 상상력만이 우리들을 구원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개겨라! 저질러라! 느껴라! 그리고 뒤집어라!

2012년 2월 2일 목요일 한겨레, 강수돌 교수의 칼럼, 저질러라, 그리고 뒤집어라

<즐거운 인생>이란 영화가 있다. 주인공들은 1980년대판 ‘슈퍼스타 K’인 ‘대학 가요제’에서 3년 연속 낙방한 록밴드 ‘활화산’의 구성원들이다. 즐거운 인생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쓰라린 인생을 맛보아야 할까? 그 사이 한 친구는 명퇴 뒤 눈칫밥으로 살고, 한 친구는 낮에는 택배로 밤엔 대리운전으로, 비정규직 두 탕을 뛰며 산다. 또 한 친구는 캐나다로 조기유학 보낸 아이와 아내를 위해 뼈빠지게 일하며 외로이 사는 기러기 아빠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우리 현실과 겹친다. 설상가상으로 한 친구가 죽는다. 같은 밴드의 리더가 죽는 바람에 역설적이게도 장례식장이 만남의 장이 된다. 이제 그들은 ‘인생 경로’를 바꾼다. ‘죽음을 의식한 삶은 한층 고양된다’는 말이 진리가 되는 순간이다. ‘활화산’이 부활한다. 그 밑거름은 삶의 열정이다. 열정이나 꿈이 없는 인생은 늘 우울하니까.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그렇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며 꿈에 부풀어야 할 청소년들이 때로는 왕따나 폭력에, 때로는 성적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버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죽하면 이 저항이 계속될까? 이 악몽이 반복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태의 진상과 뿌리를 외면한 채 맨날 응급처치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한 아이가 왕따나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치자. 우리는 그 아이의 고통이나 그 배경을 찾아 근원적으로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당장 ‘주범’만 찾아 처벌하려 한다. 동시에 행여 학교 명예가 실추될까봐 아니면 혹시 집값이 떨어질까봐 쉬쉬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는 동안 아이들 현실은 곪아가고 갈수록 자살률은 높아진다. 우리 교육 체계는 물론 우리 자신의 감각 체계도 온통 병들어 있다. 이 병든 것들을 반성하고 고치지 않으니 비극이 반복된다. 당장 내 자식은 괜찮다고 외면할 일이 아니다. 온 사회가 병들어가는데 내 자식, 내 자식의 자식이 온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겠는가?
이제 직장 세계를 둘러 보자. 청년들에게는 취업 자체도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가고, 갈수록 일회용 노동력으로 살아가기를 강요받는다. 설사 어렵게 취업해도 그 회사 사람들은 즐겁게 일하고 보람을 느끼며 사는가?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매우 적은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편으론 노동강도나 온갖 차별에, 다른 편으론 고용불안과 미래 걱정에 시달린다. 경기가 좋아도 스트레스요, 좋지 않아도 스트레스다. ‘현실주의’로 사는 게 전혀 행복한 현실이 아닌 셈이다. 안타깝게도 일류기업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데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한 체계적 연구에 따르면 ‘고용이 늘수록 자살도 는다’는 부끄러운 통계도 있다. ‘가정-직장 간 균형’에 관한 연구는 많되, 현실에서 정작 균형을 잡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부모 자녀 간 따듯한 대화가 있는 가정은 없고, 오로지 끝없는 노동만 있다.

가정과 학교, 직장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 ‘꿀꿀한’ 현실을 뒤집어엎고 ‘신바람 나는’ 현실로 만들 방법은 무엇인가? ‘슈퍼스타 K’나 영화 <즐거운 인생>의 성공담은 사실상 개별적 해법이라는 한계가 크다. 따라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돌파구가 필요하다.

잘 보면,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나온 것 중 가장 역설적인 도구,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들의 보수성은 정작 필요한 변혁은 유보한 채 허구적 소통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의 혁명성은 ‘내 목소리’를 내는 것, 또 ‘우리는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사회 자본의 기술을 사회 연대의 지혜로 활용할 수 있다. ‘온라인 스크럼 짜기’도 가능하다. 이제 누구도 우리의 눈, 귀, 입을 막을 순 없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자는데 누가 막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남은 건 우리 자신뿐이다. 세상이 더럽다며 풀이 죽은 채 모든 걸 포기하거나, 아무 소용 없다며 냉소주의나 무기력에 빠진 나 자신만 잘 추스르면 그 때부터 현실은 달라진다. ‘활화산’의 열정적 외침처럼, 개겨라! 저질러라! 느껴라! 그리고 뒤집어라!

눈 덮힌 한반도



2012년 2월 1일 수요일

정지영 감독의 입장 표명, "영화가 사회적 성찰의 계기가 된다면"

2012년 1월 31일, 정지영 감독이 <부러진 화살>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입장을 밝힌 글 가운데 한 대목.

논란이 지금은 지엽적인 문제에 머물고 있지만 더 큰 담론에까지 다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이 영화는 사법부를 겨냥한 것이 아니라 사법부와 일반 국민의 관계를 들여다 본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비단 사법부만 해당하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영화가 사회적 성찰의 계기가 된다면 감독으로서는 큰 보람 아니겠습니까? 결국에는 제 영화를 떠나서 더욱 더 크고 중요한 문제에 대한 더욱 더 뜨거운 토론들이 생겨났으면 좋겠습니다. 저는 사회란 그런 논쟁을 통해 조금씩이나마 서로 사명감을 나누며 한발자국씩 건강을 '회복'하는 거라고 믿고 있는 사람입니다.

'교육폭력'

2012년 2월 1일 한국일보, 도정일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대학장의 칼럼. '교육폭력'이 더 문제다

폭력, 갈취, 왕따에 시달리다 못해 자살해버리는 아이들을 보면서 지금 우리 사회는 해결책을 찾느라 부산하다. 사실은 학교폭력이 어제 오늘의 일도 아닌데 그동안 우리는 무얼 하다가 이제야 요란을 떠는 것인가. 이 '뒷북치기'는 우리 사회가 얼마나 고통에 무감각한 마비의 사회인가를 잘 보여준다. 아픔이 있어도 그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사회, 문제가 있어도 그것을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는 사회가 '마비사회'다. 마비사회는 잔인한 사회다. 학교폭력의 해법을 찾는 일은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아이들이 울면서 골목을 돌고 돌다가 망울째 시들어 떨어지기 전에, 학교폭력의 밑바닥에 깔린 사회적 잔인성의 뿌리가 무엇인지 깊게 성찰하는 일을 동시에 수반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 성찰의 첫 번째 수순은 우리가 지금 학교폭력이라는 현상만을 놓고 이런저런 진단과 처방을 내리는 데 분주한 나머지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놓치고 있다는 사실에 눈 돌리는 일이다. 더 본질적이고 근원적인 문제는 무엇인가. 학교폭력은 실은 그보다 더 큰 어떤 폭력으로부터 빚어지는 현상적 측면의 하나다. 그 더 큰 폭력은 '교육폭력'이다. 학교폭력이 일부 학생들의 폭력, 갈취, 위협 같은 일탈적 행동을 의미한다면 교육폭력은 우리 사회 전체가, 학교와 학부모와 정책당국이 똘똘 뭉치다시피 해서 감히 교육의 이름으로 교육을 파괴하는 행위, 곧 '교육 그 자체의 폭력성'을 지칭한다. 사람을 사람다운 사람으로 키우고 북돋우자는 것이 교육의 본질적 목적이고 교육의 가치이며 교육이 교육인 이유다. 그런데 우리는 교육의 그 본질 목적, 가치, 그것의 양보할 수 없는 내적 선(善)을 시궁창에 내던진 교육, 아이들을 키우고 살리기는커녕 죽이는 교육을 교육의 이름으로 자행하고 강제해오지 않았는가. 이 차원에서의 교육폭력은 학생들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어른들의 문제이며 교육 그 자체의 문제, 사회 전체의 '공모'가 개입된 문제다.
아이들을 잡고 망치기로 작정한 사회가 아니라면, 우리는 지금쯤 마땅히 우리네 교육의 이 폭력성을 어떻게 줄이고 제거할 것인가에 온 신경을 쏟아야 한다. 이것이 학교폭력의 문제를 풀기 위한 근본적 노력의 하나로서 우리가 교육폭력에 눈 돌릴 때의 두 번째 수순이다. 성찰이 진정한 성찰이 되자면 실행과 실천이 따라 붙어야 한다. 지금 같은 경쟁 일변도의 교육, 성적만으로 아이들을 줄세우고 '인간 등급'을 매기는 파괴적 교육, 오로지 점수 올리기에만 목표를 둔 시험위주 교육, 시장주의에 지배되는 교육, 사교육 팽배와 공교육 붕괴, 선행학습의 비교육적 파괴적 영향, 인성함양교육의 도외시 같은 교육 현안들에는 정말로 해법이 없는 것인가. 우리가 언제까지 이런 '상식적' 지적만을 되풀이 하면서 손 놓고 있을 것인가.

해법을 '찾지 않기로' 공모한 사회에서는 해법이 있어도 없어 보일 뿐이다.

공교육 파행을 지적하는 일도 사실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문제는 그런 지적이 수없이 되풀이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교육과 교실 현장은 변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초중등 교사들이 절망하는 이유도 거기 있다. 이것도 마비사회의 한 단면이다. 이 마비를 뚫을 방법이 정말로 없는 것일까. 아니다.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그러나 바꿀 의지가 없는 곳에서는 어떤 변화도 일어나지 않는다.

총선과 대선을 앞둔 정치권에서는 요즘 각종의 '정책'들을 제시하느라 분주하다. 교육 그 자체는 정치적 문제가 아닐지 모른다. 그러나 아이들을 죽이는 교육을 어찌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교육정책의 문제이다. 교육폭력은 교육의 현안임과 동시에 사회적 문제이고 정치적 문제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우는가에 한 사회의 미래가 달려 있다. 어떤 인간을 길러내는가에 한 나라의 명운이 걸려 있다. 아이들이 어떤 사회에서 어떤 인간으로 자라는가에 따라 개인의 운명이 달라지고 사회공동체의 삶의 품질과 행복이 좌우된다.

제대로 된 사회라면 반인간적, 반사회적, 반문명적 교육을 방치할 수 없고 조장할 수 없다. 어떤 교육정책을 세워야 하는가, 어떤 변화가 어떻게 강구되어야 하는가. 정치권은 이런 문제를 숙고하고 정책의 차원에서 그 해법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