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2월 2일 목요일 한겨레, 강수돌 교수의 칼럼, 저질러라, 그리고 뒤집어라
<즐거운 인생>이란 영화가 있다. 주인공들은 1980년대판 ‘슈퍼스타 K’인 ‘대학 가요제’에서 3년 연속 낙방한 록밴드 ‘활화산’의 구성원들이다. 즐거운 인생을 만들기 위해선 먼저 쓰라린 인생을 맛보아야 할까? 그 사이 한 친구는 명퇴 뒤 눈칫밥으로 살고, 한 친구는 낮에는 택배로 밤엔 대리운전으로, 비정규직 두 탕을 뛰며 산다. 또 한 친구는 캐나다로 조기유학 보낸 아이와 아내를 위해 뼈빠지게 일하며 외로이 사는 기러기 아빠다. 이 부분에서 영화는 우리 현실과 겹친다. 설상가상으로 한 친구가 죽는다. 같은 밴드의 리더가 죽는 바람에 역설적이게도 장례식장이 만남의 장이 된다. 이제 그들은 ‘인생 경로’를 바꾼다. ‘죽음을 의식한 삶은 한층 고양된다’는 말이 진리가 되는 순간이다. ‘활화산’이 부활한다. 그 밑거름은 삶의 열정이다. 열정이나 꿈이 없는 인생은 늘 우울하니까.
불행하게도 지금 우리가 경험하는 현실이 그렇다. 한창 친구들과 어울리며 꿈에 부풀어야 할 청소년들이 때로는 왕따나 폭력에, 때로는 성적 때문에 소중한 목숨을 버린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오죽하면 이 저항이 계속될까? 이 악몽이 반복되는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사태의 진상과 뿌리를 외면한 채 맨날 응급처치에 급급하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라. 한 아이가 왕따나 폭력에 시달리다 자살했다 치자. 우리는 그 아이의 고통이나 그 배경을 찾아 근원적으로 고칠 생각은 하지 않고 당장 ‘주범’만 찾아 처벌하려 한다. 동시에 행여 학교 명예가 실추될까봐 아니면 혹시 집값이 떨어질까봐 쉬쉬 한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러는 동안 아이들 현실은 곪아가고 갈수록 자살률은 높아진다. 우리 교육 체계는 물론 우리 자신의 감각 체계도 온통 병들어 있다. 이 병든 것들을 반성하고 고치지 않으니 비극이 반복된다. 당장 내 자식은 괜찮다고 외면할 일이 아니다. 온 사회가 병들어가는데 내 자식, 내 자식의 자식이 온전한 행복을 누리며 살겠는가?
이제 직장 세계를 둘러 보자. 청년들에게는 취업 자체도 하늘의 별 따기가 되어 가고, 갈수록 일회용 노동력으로 살아가기를 강요받는다. 설사 어렵게 취업해도 그 회사 사람들은 즐겁게 일하고 보람을 느끼며 사는가? 그렇다고 답할 사람이 매우 적은 게 현실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한편으론 노동강도나 온갖 차별에, 다른 편으론 고용불안과 미래 걱정에 시달린다. 경기가 좋아도 스트레스요, 좋지 않아도 스트레스다. ‘현실주의’로 사는 게 전혀 행복한 현실이 아닌 셈이다. 안타깝게도 일류기업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 같은 데서 죽음의 행렬이 이어지고, 한 체계적 연구에 따르면 ‘고용이 늘수록 자살도 는다’는 부끄러운 통계도 있다. ‘가정-직장 간 균형’에 관한 연구는 많되, 현실에서 정작 균형을 잡고 사는 사람은 드물다. 부모 자녀 간 따듯한 대화가 있는 가정은 없고, 오로지 끝없는 노동만 있다.
가정과 학교, 직장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이 ‘꿀꿀한’ 현실을 뒤집어엎고 ‘신바람 나는’ 현실로 만들 방법은 무엇인가? ‘슈퍼스타 K’나 영화 <즐거운 인생>의 성공담은 사실상 개별적 해법이라는 한계가 크다. 따라서 사회적이고 구조적인 돌파구가 필요하다.
잘 보면, 자본의 돈벌이를 위해 나온 것 중 가장 역설적인 도구, 인터넷이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가 실마리가 될 수 있다. 이들의 보수성은 정작 필요한 변혁은 유보한 채 허구적 소통만 하는 것이다. 동시에 이들의 혁명성은 ‘내 목소리’를 내는 것, 또 ‘우리는 함께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 이제는 사회 자본의 기술을 사회 연대의 지혜로 활용할 수 있다. ‘온라인 스크럼 짜기’도 가능하다. 이제 누구도 우리의 눈, 귀, 입을 막을 순 없다.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싸우자는데 누가 막을 것인가? 마지막으로 남은 건 우리 자신뿐이다. 세상이 더럽다며 풀이 죽은 채 모든 걸 포기하거나, 아무 소용 없다며 냉소주의나 무기력에 빠진 나 자신만 잘 추스르면 그 때부터 현실은 달라진다. ‘활화산’의 열정적 외침처럼, 개겨라! 저질러라! 느껴라! 그리고 뒤집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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