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쓰는 말, 이대로 좋은가?
[<문화방송 노보>에 기고했습니다.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
[<문화방송 노보>에 기고했습니다.고민을 나누고자 합니다. ]
1. ‘혐의사실’, ‘피의사실’인가 ‘혐의내용’ ‘피의내용’인가?
PD수첩은 <장관과 표창장>편에서 ‘혐의내용’, ‘피의내용’이란 어휘를 사용했다. "정 교수를 기소한 직후 검찰은 갑자기 새로운 피의내용을 언론을 통해 알리기 시작합니다.", "확인되지 않은 혐의내용을 언론에 흘리고 언론이 검증 없이 기사를 쏟아내는 관행도 반복됐습니다." 등이 방송에서 사용한 사례다. PD수첩은 왜 ‘혐의사실’, ‘피의사실’ 대신 ‘혐의'내용', ‘피의내용’으로 쓴 것일까?
검찰은 사실 판정 기관이 아니라, 의혹을 주장하는 일방적 편파 집단이기 때문이다. 검찰의 반대편 일방적 편파 상대는 변호인이다. 사실여부는 재판부가 판단한다. 편파집단이라는 검찰의 속성을 잊고, 검찰발 정보는 사실인 것처럼 당연하게 보도하는 경우가 적지 않은데, ‘사실’이 들어간 ‘혐의사실’, ‘피의사실’ 등의 용어도 이런 인식에 한몫하고 있다. 언어학적으로도 '의혹'을 뜻하는 '의(疑)'에 '사실'이란 단어가 결합하는 것은 의미충돌을 일으킨다. ‘혐의사실’, ‘피의사실(공표)’ 등이 들어가는 검찰 발 보도를 반복 시청하게 되면 국민들이 검찰 수사를 확정된 사실로 여길 위험성이 있다.
2. 구형(求刑) 보도가 불러일으키는 오해
구형(求刑)은 형사소송법에도 나오지 않는 조어다. 형사소송법 302조는 ‘피고인신문과 증거조사가 종료한 때에 검사는 사실과 법률 적용에 관해 의견을 진술해야 한다.’고 돼 있다. 언론은 ‘의견 진술’보다는 ‘구형’이란 단어를 즐겨 사용한다. ‘구형(求刑)’은 국가기관이 형을 내린다는 인상을 주면서, 선고(宣告)와 비슷한 권위를 지닌다는 데 문제가 있다. ‘검찰, 5년 구형’이라는 보도에서 5년형을 선고받은 것으로 이해하는 국민들이 적지 않다. 일방적 주장에 불과한 구형이라는 단어가 검찰의 여론전에 악용될 소지가 있는 것이다. ‘구형’에 해당하는 영어는 ‘ask’ ‘request’ 등이다. 일상어인데다, 검찰이 재판부에 형을 요청하는 뜻이란 걸 단박에 알 수 있다. “검찰이 5년형을 요청했다”는 식으로 ‘요청했다‘ 등으로 바꿔보면 어떨까? ‘송치(送致)’도 생각해볼 면이 있다. ‘송치’는 영어로 ‘send’다. "경찰은 수사기록 일체를 검찰에 송치했다"와 "경찰은 수사기록 일체를 검찰에 보냈다"는 표현은 받아들이는 어감이 다르다. ‘요청하다’. ‘보내다’란 용어가 당장은 어색하겠지만, 진짜 권위를 가져야 할 대상은 검찰이 아니라, 국민이라는 점에서 고민할 필요는 있어 보인다.
3. 맺음말
역사학자 전우용은 9월 27일 <방송 말>을 고민하는 자리에서 ‘검찰이 혐의를 잡고 있다’라는 표현도 삼가자고 제안했다. ‘(혐의를) 두고 있다’고 표현하면 중립적인데, ‘잡고 있다’는 표현을 사용하면 중요 증거를 확보한 것처럼 인식될 가능성이 커다. "신병(身柄)을 확보하다"에서 ‘신병(身柄)’ 역시 일본말에서 유래한 단어다. ‘신병’의 일본말은 미가라(みがら)로 柄(がら)는 가병(家柄,いえがら), 장소병(場所柄,ばしょがら) 등의 체계를 갖추고 있다. 모호한 ‘신병을 확보하다’ 대신 ‘체포하다’, ‘긴급 체포하다’ 등으로 명확하게 표현하는 것은 어떨까? ‘사법처리’, ‘법조3륜’ 등의 용어도 행정부인 검찰의 행위에 사법부의 권위를 부여하고 싶기 때문에 나온 용어라고 보여 진다. 의미가 모호한 ‘사법처리’ 대신에 ‘형사처분, 형사처벌’ 등을 쓰거나 ‘수사’, ‘기소’ 등의 용어를 사건의 단계에 맞게 사용하는 것은 어떨까? 법제연구원 조사에 따르면, 국민 87%가 법률용어에 대해 '어렵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전문용어를 사용하기 때문(70.4%)‘과 '한자어를 많이 사용하기 때문'(22.0%)으로 나타났다. 언어는 존재의 집이다.
http://mbcunion.or.kr/bbs/board.ph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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