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31일에 부산에 다녀왔다. 방학을 이용하여 공부를 하고자 하는 교사들에게 ‘책읽기와 글쓰기’에 관한 4주짜리 강의를 하는데, 그 첫번째 시간이었다. ‘책읽기와 글쓰기’, 얼핏 보기에는 너무나 기초적인 것이니 이걸 배우는 교사들이 한심해 보이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은 이렇게 기초적인 것일수록 항상 되새겨서 공부하는 것이 교육에서는 아주 중요하다.
책을 어떻게 읽어야 제대로 읽는 것인가, 어떤 글이 좋은 글인가에 대한 생각은 대체로 중등교육을 마칠 즈음이면 굳어진다.
별다른 충격이 없는 한 이 생각은 평생간다. 이를테면 책을 통해서 얻는 지식은 쓸모없는 것이고 직접 몸을 통해서 해봐야 안다는 생각을 그 무렵 가지게 되면 그 사람은 평생 동안 글을 통해서 뭔가를 배우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초적인 것에 해당하는 것으로는 역사에 관한 의식이 있다. 근대 세계의 거의 모든 국민 국가는 자기 나라의 역사를 가르친다.
이것을 통해서 국민의식이 형성되고, 그에 따라 통합을 이루어낼 수가 있기 때문이다. 자기가 살아가는 공동체의 역사를 가르치는 것 역시 초중등 교육에서 필수적인 것으로 간주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부산에서 강의를 하는 도중 올해 8월15일 광복절을 건국절로 기념한다는 소식을 들었는지 물었는데, 모르는 이들이 많았다.
학교 교사들이 모를 정도면 이 일이 얼마나 황당한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왜 경제를 살리겠다는 구호로 집권한 정부에서 이렇게 역사문제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오랫동안 지내온 기념일을 바꾸려 하는 걸까. 경제문제와는 아무런 관련도 없어 보이는 일인데 말이다.
이런 궁금증 해소에 도움이 되는 책은 하비 케이의 ‘과거의 힘: 역사의식, 기억과 상상력’이다. 사실 우리가 살아가는 사회의 지배계급은 그 숫자가 얼마 되지 않는다. 다만 그들은 결속력이 아주 강하다.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고 다른 이들이 끼어들지 못하게 하는 일에는 신경을 곤두세우고 나선다. 이는 7월 말의 ‘공정택 사건’에서 나타난 몰표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이들은 수가 적기 때문에 다수를 성공적으로 지배하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기울인다. 그 중에서 가장 중요한 노력은 교육 기관과 같은 제도적 장치를 동원하여 지배계급의 이념을 사회의 지배적인 이념으로 만드는 데 힘을 쏟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사실은 자기네들에게만 좋은 것을 모든 이에게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끊임없이 사회 구성원 전체에게 주입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금 건국절을 추진하는 사이비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머리 속에서 요상하게 만들어진 역사를 대한민국의 공식 역사로 승인하여 가르치려는 기초적인 노력에 힘을 쏟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들은 이번에 박정희를 찬양하는 이가 권력을 잡은 김에 확실하게 이런 생각을 모든 국민에게 깊게 심어줌으로써 온 국민의 의식 속에 존경의 마음을 심고 싶을 것이다. 그런데 좀 안타까운 것은 일을 추진하는 세력이 치밀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도 오랫동안 지켜온 기념일인데 이것저것 좀 ‘잔머리’를 굴렸으면 바꾸기가 수월했으련만 역시나 무식하게 일을 한다. 그런 몽매한 자들을 상대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어쨌든 나는 다음 주에도 참된 가치를 추구하는 지식인에 관하여 교사들에게 이야기할 참이다.
강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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