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대로 된 혁명…D H 로렌스 | 아우라
혁명을 하려면 웃고 즐기며 하라
소름 끼치도록 심각하게는 하지 마라
너무 진지하게도 하지 마라
그저 재미로 하라
D H 로렌스(1885~1930)의 시 ‘제대로 된 혁명’의 일부분이다.
‘아들과 연인’ ‘무지개’ ‘채털리 부인의 연인’ 등을 쓴 소설가로 알려진 그는 19살부터 45세에 폐병으로 숨을 거둘 때까지 26년간 1000여편의 시를 창작한 시인이기도 했다. 생전에 ‘사랑의 시’ ‘아모레즈’ 등 7편의 시집이 나왔고, 2권의 유고시집이 있다. ‘제대로 된 혁명’은 이중 152편의 대표작을 뽑아서 번역한 시선집이다. 이렇게 많은 분량의 로렌스 시가 시대별로 추려져 국내에 소개되기는 처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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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소설이 ‘불온서적’으로 취급된 것처럼 그의 시 역시 당대에는 ‘삶을 생경하게 재현했다’ ‘기본 시작법을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부당하게 폄훼됐다. 그러나 작가 스스로 시론에서 밝혔듯이 로렌스의 시는 불변하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만족시켜주는 고정성이 없는 대신 한 순간의 경련, 영향을 준 요소들과의 솔직한 접촉이자 어디에 도달하는 걸 원치 않는 외침으로, 자유롭고 참신한 발상과 얽매이지 않는 생명력을 느끼게 한다.
이 시선집은 작가의 일생에 따라 5부로 구성돼 그의 삶의 여정과 철학을 엿볼 수 있다.
1부 ‘맨발로 뛰노는 아가’의 시들은 부모의 불화와 그로 인한 어머니의 과도한 애정에서 비롯된 어린 시절의 상처를 드러낸다. ‘집 안에선 목소리 두 가닥 섞여 나온다./섬망에 빠진 여인이 분노를 토하는 호리한 회초리 소리, 휘감아 생채기를 내는/가죽 허리띠의 험악한 소리. 드디어 그 소리, 선혈이 낭자한/침묵에 다른 소리 잠재운다. 물푸레나무의 비명 거센데.’(시 ‘어린 시절의 상처’ 일부)
불행한 가정과 첫사랑을 뒤로 한 채 로렌스는 버밍엄 대학에 진학한다. 졸업한 뒤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다가 27살 때 전직을 위해 추천서를 받으러 대학 은사인 위클리 교수를 찾아가는데 거기서 자신보다 6살 연상인 그의 부인 프리다와 운명적인 사랑에 빠져 2년간 유럽으로 도피행각을 벌인 끝에 결혼에 이른다. 2부 ‘디종의 영광’의 시들은 남녀간의 사랑과 증오, 기쁨과 축복의 감정을 섬세하게 묘사하고 있다. ‘롯의 아내!-아내가 아닌 어머니./난 당신의 모성에 악담 퍼붓는 법을 터득하게 되었소/저주받아 소금기둥이 된 당신./난 당신으로 인하여 모성을 저주하게 되었지/욕먹어 마땅한 이기적인 모성이여!’(시 ‘그녀가 뒤돌아본다’ 일부) 이 시는 두고온 세 자식을 그리워하는 프리다를 향한 안타까움의 표현이다.
1·2부가 개인사와 관련이 깊다면, 3부 ‘뱀’과 4부 ‘우리의 날은 저물고’에 실린 시들은 후대학자들이 로렌스를 높이 평가하도록 만든 생태주의 철학, 자본주의 사회에 대한 도저한 비판의식을 담고 있다. 걸작시 ‘뱀’은 아침에 낙수대롱에서 물을 마시러 온 뱀을 발견하고 그것을 쳐죽이라는 고정관념의 발동과 뱀의 아름다움에 매혹당하는 감정 사이의 어긋남을 통해 인간의 자연지배에 대한 기존의 가치관을 한순간에 바꿔놓는다. 이어 그의 생명공존사상은 인간성을 말살하는 자본주의 비판으로 나아간다. ‘사람이라면 일에 생기 없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사람이라면 임금만 받으려 일하는 똥무더기가 되는 것을 거부해야 한다./사람이라면 임금노예로 일하는 것을 모두 거부해야 한다.’(시 ‘우리가 가진 전부는 삶이다’ 일부)고 외친다.
40살에 중증의 폐병을 발견한 그는 5년간 병과 싸우면서 삶과 죽음, 신에 대한 생각을 가다듬는데 이것이 5부 ‘아름다운 노년’의 시들이다. 기독교의 도그마에 비판적이던 그는 아름다움의 현현에서 신의 존재를 발견한다. ‘양귀비꽃과 수면으로 치솟는 물고기와/노래하는 남자들과 햇볕에서 머리 빗어 넘기는 여인들을 제하면 달리 신은 없어.’(시 ‘신의 형체’ 일부) 연세대 강사인 류점석씨가 시를 고르고 옮겼다. 1만4000원
<한윤정기자>
출처: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8221720475&code=9003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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