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f: 목수정 씨의 책이 나왔다고 한다. 작년인가,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 활동할 때 도서관 정책과 관련하여 한 번 만난 적이 있었다. 그리고 레디앙의 연재글.
일간지 신문기자와 주간지의 기자 분들의 반응이 뜨겁다. 목 씨의 마음은 어떨까? 목 씨의 내면을 생각한다.
박용호(한겨레21 편집장)이나, 이광호(레디앙미디어 편집국장)의 글, 그리고 한윤정(경향신문), 장병욱(한국일보), 유현산(한겨레21), 이광형(쿠키뉴스), 임은정(쿠키뉴스) 등의 기사를 모아보았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낸 목수정
장병욱 기자
"폭력이란 가부장적인 시선에만 있는 게 아니죠. 비판을 거부하는 그 어떤 시선도 폭력이니까요." 같은 이유로, 목수정(38)씨는 교조화된 마르크스와 프로이트에 대해서도 의구심을 거두지 못한다. 그는 책에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레디앙 발행)이라는 제목을,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부제를 달았다.
대학로에서 3년 동안 공연기획자로서 겪은 일, 좌파적 전통이 강한 파리8대학에서의 배고프지만 행복했던 유학 시절, 진보 정당에서 예술 관련 일을 하던 시간 등이 글에 녹아 있다. 지난해 4월부터 레디앙 홈페이지(www.redian.org)에 연재돼 열띤 반응을 불러일으켰던 글과 새로 쓴 글이 함께 있다.
스스로를 비혼(非婚)자, 예술문화운동권 등으로 규정하는 그의 삶은 왼쪽으로 기울되 얽매이지 않는다. 지난 2월, 분당 사태를 지켜보면서 4년 동안 일해오던 민주노동당에서 나온 일은 그의 지향점을 말해 준다. 그것은 문화와 사회가 민주의 원칙 아래 어깨를 겯고 나아가는 세상이다. 파리8대학에서의 석사학위 논문은 '연극과 공공 서비스'였다.
그는 스스로를 아나키스트라 규정하는 60대 초반의 프랑스 예술가(퍼포먼스, 설치, 철학 등) 희완 트로뫼르와 파리의 예술가 구역에서 살다 책의 출판에 맞춰 잠시 귀국했다. '희완'이란 그가 붙여 준 한국식 이름이다.
"남편은 반년의 한국 생활을 접고 지난 6월 파리로 먼저 돌아가 사진 작업을 계속하고 있죠. 즐비한 네온사인 십자가들을 보고 받은 충격 등 자본주의와 문화의 한국적 결합을 주제로 한 것들이에요. DVD로 만들어 프랑스 등지에 소개할 거래요." 이들이 커플이 되기 무섭게 한 일은 이라크전 반대 데모 참가였다.
오늘 광복절은 목씨가 5명의 필자들과 함께 쓴 <2008 촛불 정치, 대한민국은 민주 공화국이다?>(메이데이 발행)의 출판기념일이기도 하다. "촛불집회 100일째 되는 날이죠." 한국의 현재를 '왼쪽'에서 분석한 이 책에서 그는 문화와 여성 부문 집필을 담당했다. 21일 한국을 뜨기 전, 18일 정동의 한 카페에서 출판기념회 겸 이별 파티를 갖는다.
목씨는 연출가 오태석, 작가 김채원씨의 열렬한 팬으로 오씨의 <천년의 수인>에서는 기획을 맡기도 했다. "대학로에 마련한 선생의 극장 아룽구지가 운영난에 문을 닫은 일은 우리 연극에 대한 살인 행위예요!" 어조가 뜨거워진다. 불어보다 한국말이 더 입에 붙은 딸 칼리(4)가 항상 옆에 있다.
출처: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8/h2008081603295484210.htm
다른 삶은 가능하다
▣ 유현산 기자 bretolt@hani.co.kr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목수정 글, 희완 트호뫼흐 사진, 레디앙 펴냄, 1만3천원)은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부제를 달고 있다.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게다가 ‘프랑스 남자’라니. 겉장을 넘기면 지은이의 이력이 나온다. 관광공사에서 문화축제 기획, 4년 뒤 연극 기획자로 변신, 외환위기 이후 파리8대학에서 문화정책 공부, 프랑스인과 사랑에 빠져 딸 출산, 2003년 한국에 돌아와 국립발레단에 취직, 민주노동당에 들어가 정책연구원으로 활동, 흙 건축 공부. 지은이의 삶은 발칙하거나 도발적이거나 매혹적이다. 그는 누구일까.
때론 부당하다 싶을 정도로 한국 남성을 비판하는데, 이유가 뭔가.
=그들은 가부장적이고 창의적이지 않다. 희완(프랑스인 연인)이 낮 12시에 여의역에 갔다가 너무 놀랐다. 공포영화처럼 건물 밖으로 같은 양복과 와이셔츠를 입은 부대가 쏟아져나왔다고 한다. 그들은 성매매에 많은 돈을 소비하면서 자식들은 미국식 기독교로 키우려 하는 이중성을 보인다. 이런 남성성은 시장만능주의로 이어진다.
연인 희완이 본 한국을 좀더 이야기해달라.
=그는 한국 사회가 미스터리하다고 말한다. 삶의 조건은 비명을 지를 만큼 힘들다. 재래시장은 대형마트에 밀려 빈민들의 집합소가 됐고,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많을 정도로,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없다. 다들 자살하기 일보 직전 같은데, 왜 그렇게 밝고 친절한지 모르겠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시민연대계약’(결혼제도를 거부하는 커플들에게 법적 부부는 아니지만 결혼에 따른 각종 혜택·권리를 인정해주는 제도)을 했다. 왜인가.
=한국에선 ‘동거’라는 말의 울림이 암울하다. 왜 결혼해야 하나. 머릿속 몇 가지 버튼만 바꿔주면 된다. 프랑스에서 투표권을 행사하고 싶어서 시민연대계약을 했다.
이 책의 가장 빛나는 지점은 한국 문화의 다양성 부족에 대한 비판인 것 같다.
=아이 팬티 하나 사러 가도 미키마우스 등 미국 만화 캐릭터가 그려지지 않은 게 없다. 문화적 다양성을 죽이는 건 자본주의다. 오죽하면 국제사회가 문화다양성협약 같은 걸 만들었겠나. 한국 정부의 투자는 게임산업처럼 열매를 따고 마케팅하는 방식이다.
사회주의는 생명의 문제라고 썼는데, 무슨 의미인가.
=한국 운동권은 획일주의에 갇혀 있다. 자유와 평등은 치열하게 경합하면서 같이 가야 한다. 생명은 두 가치를 다 아우른다. 촛불집회가 격렬하게 아가씨와 아줌마들의 마음을 움직였던 건 우리가 지켜내지 않으면 안 되는 생명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이다. 여성은 절대 투쟁이라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수평적 연대를 통해 성과를 낸다. 촛불이 성공했다면 수평적 연대를 통해 상상력을 보여줬기 때문이다.
한국 사회의 희망은 무엇이고 절망은 무엇인가.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절망이다. 곁눈질하면 금세 낙오자가 돼버린다. 국가라는 게 있다면 적어도 밥 먹고 자는 정도는 받쳐줘야 한다는 것을 점점 잊어버린다. 또 자유가 엄청나게 모욕을 당하는 사회다. 자유총연맹 등 극우단체들이 자유라는 말을 자기 것으로 만들어버렸다. 좌파들은 자유라는 말을 쓰며 운동하지 못한다. 흙집 건축을 배우면서 발견한 희망이 있다. 공동체적 삶에 대한 열정이 번져가고 있다. 누가 선동해서 만든 것이 아니다. 한때 운동에 몸담았던 사람들이 단 한 가지라도 실천하고 싶어서, 흙으로 학교를 짓고 집을 짓는다.
출처: http://h21.hani.co.kr/section-021015000/2008/08/021015000200808210724029.html
문화속에서 출렁거리고 싶다
이광형 선임기자
대학에서 러시아문학을 공부한 그의 첫 직장은 한국관광공사. 문화축제를 기획·지원하는 일을 주로 했다. 4년 뒤 서울 대학로 동숭아트센터에서 연극기획자로 변신했다. 1998년 외환위기 때 줄줄이 문 닫는 극장들을 보면서 예술의 가치를 세상 사람들에게 설득하고 싶다며 프랑스 파리로 유학을 떠났다. 서른이 다 된 나이에 국경을 넘는 딸에게 어머니는 공항에서 "이제 너는 자유다"라며 배웅했다.
그로부터 5년 후 모녀가 다시 공항에 함께 섰다. 어머니는 딸에게 말했다. "가라. 그리고 다시는 이 집에 들어오지 마라."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자유와 정치가 넘나드는 프랑스에서의 생활을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마 속까지 정치적인'(래디앙)이라는 제목의 책에 담아낸 목수정(39)씨는 "파리의 빈민가에서 스무 살 연상의 예술가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아이를 낳았다"고 밝힌다.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라는 부제가 붙은 이 책을 통해 저자는 타국에서 비혼모로 살아가는 일이 만만치 않지만 한국을 떠날 수밖에 없었던 월경(越境)에 대한 심경을 토로한다. "공연장에 큰 손해를 끼치면서 내 마지막 기획공연은 막을 내렸고, 경제위기 속에서 아무렇게나 팽개쳐지는 문화와 예술의 위상을 피눈물을 뚝뚝 흘리며 목격했다. 이즈음 내 사랑도 폭력으로 파멸됐다."
저자는 프랑스와 한국, 결혼과 비혼, 운동권과 제도권, 예술과 문화, 운동과 정치 사이에 놓인 수많은 경계에 대해 이야기한다. 프랑스 좌파 눈에 비친 서울 강남 부자들의 웃기는 행태와 세금으로 해외여행을 다니는 한국 공직자들의 몰상식도 꼬집는다. 2003년 귀국해 국립발레단에 몸담았던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민주노동당 정책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겨 사회변화를 모색하는 데 힘을 쏟았다.
"삶을 즐길 줄 모르면 좌파가 아니고, 하면서 신나지 않으면 운동이 아니다"라는 신념을 지닌 그는 올해 초 당을 나와 다시 파리행을 준비하고 있다. "주변에선 프랑스에 가면 뭐 할 거냐고 물어요. 흙집을 지어 살고 싶고, 영화배우도 되고 싶고, 생태의학도 배우고 싶고 욕심이 끝이 없어요." 하지만 그는 "오로지 내 관심사는 문화라는 대지 속에서 이리저리 출렁거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출처: http://www.kukinews.com/life/article/view.asp?page=1&gCode=cul&arcid=0921001605&code=13150000
현실과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 |
입력: 2008년 08월 15일 17:10:15 |
ㆍ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 목수정 | 레디앙
이 책을 읽으면 어제를 바탕으로 오늘을 살아가는, 아니면 내일에 저당잡혀 오늘을 살아가는 삶의 방식에 회의를 갖게 된다.
출처: http://news.khan.co.kr/section/khan_art_view.html?mode=view&artid=200808151710155&code=900308 |
불안한 미래 … 서른 후 내 삶은?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목수정 글/희완 트호뫼흐 사진/레디앙/1만3000원
'어릴 적엔 그것이 궁금했다. 남은 일은 얼굴에 주름을 속절없이 그려가고, 지나다니는 멋진 인간들은 모두 그림의 떡이며, 그 이전까지 죽을 힘을 다해 쌓아놓은 인생의 밑천-학력·직업·배우자 따위-들을 틀로 삼아 그 속에 꾸역꾸역 벽돌을 쌓아올리는 일, 그 정도가 서른 후의 인생이 아닐까 생각하곤 했다.' 어쩜 이렇게 똑같은 생각을 했을까. 저자 목수정이 서문에서 밝힌 서른 직전에 찾아온 미래에 대한 의문 불안 절망 등은 그 당시 열병처럼 앓았던 기자의 속내를 보는 듯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제 자리에서 그 시간이 지나기를 기다렸던 것과 달리 저자는 서른이 되던 그 해, 13시간 동안 비행기에 몸을 싣고 파리로 향했다. 그 결과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전혀 다른 시대에 다다르기라도 한 것처럼 새로운 질서, 새로운 환경, 그리고 새로운 자신을 발견하며 다시 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1000만 원이 든 통장, 국경 너머에 있는 자유, 현재를 불꽃처럼 만드는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열정을 품에 안고 국경을 넘는, 서른 다 된 딸에게 어머니는 공항에서 말했다. "이제 너는 자유다." 이후 파리의 빈민가에서 68세대이며 예술가인 프랑스 남자를 만났다. 문화를 화두로 다소 늦깎이 공부를 하고 있던 30대 목수정은 자신보다 20세 이상 많은 괜찮은 '인간'을 만나 사랑하고, 아이를 낳았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은 한 여성이 녹록지 않은 자신의 삶을 감성적 필치와 좌파적 시각으로 그려낸 자전적 에세이다. 2007년 한 인터넷 매체를 뜨겁게 달궜던 저자의 연재 글 '프랑스남자와 결혼하지 않고 살아가기'가 책의 모태다. 제목 그대로, 프랑스에 유학을 갔던 저자는 거기서 프랑스 예술가와 사랑을 나누고,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는다. 한국에서는 여전히 법적으로 비혼이며, 프랑스에서는 시민연대계약을 한 동거인으로 살아오고 있다. 함께 아이가 탄생되는 과정을 지켜보면서, 여성 속에 내재한 신성에 깊이 공감하는 남편은 저자를 여신으로 부르고, 자신이 신도가 되는 '수정교'를 하나의 예술작업으로 완성시키기도 한다. 부부이기보다, 동지의 관계를 맺고 있는 두 사람에게, '가부장제'가 세상의 모순과 갈등을 제공해 왔다면, '여성성'은 피폐한 길을 걸어온 인류를 구원하는 해법이라고 저자는 말한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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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 수 없는 미소
이배영이란 선수 참 멋있다. 개인적으로는, 이번 베이징올림픽 최고의 감동이었다. 넘어져서도 바벨을 놓지 않던 투혼 때문이 아니다. 미소 때문이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때 그의 경기 장면을 지켜보지 못한 덕분에 이배영의 ‘살인 미소’는 더 신선하고 환하게 다가왔던 것 같다. 다리에 쥐가 나는 불운으로, 눈앞에까지 왔던 금메달을 놓친 것은 물론 실격까지 당한 선수가 주먹으로 바닥을 한 번 치고 머리카락을 붙들며 소리 한 번 지르고는 끝이었다. 경기장을 떠나며 살짝 미소까지 보였다. 쥐가 난 다리를 바늘로 찌르고 다시 경기장에 나설 때도 스스로 손을 들어 박수를 치며 웃어 보였던 그다. 은메달을 따고도 우는 선수들이 많았는데, 생애 마지막 올림픽에서 실격당한 선수의 저 무념무상한 표정이라니!
이제는 금메달 강박을 벗어나야 한다는 것쯤 상식이 됐다. 은메달, 동메달 또한 장하다고들 말한다. 실격하고도 웃음짓는 훈남 선수에게 금메달리스트 못지않은 박수를 보내고 있다. 최선을 다했다면 결과는 중요한 게 아니라고 한다. 선진화한 대한민국이다.
하지만 스포츠를 떠나 일상으로 돌아와보면, 2등은 여전히 비참하다. 실격은 죽음이다.
기륭전자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을 보자. 노동자 파견업체를 통해 일자리를 얻어야 했던 비정규직은 2등 시민이다. 최저임금보다 10원 많은 월급을 받고 일했다. 두 달여 만에 해고됐다. 그것도 문자 메시지로 온 해고 통보. 이후 법도, 정부도 그들을 돌보지 않았다. 단지 일자리를 되찾기 위해 시작한 투쟁은 1천 일을 벌써 넘겼고 단식은 70일이 가까워지고 있다. 소금과 효소마저 먹지 않고 죽음이 보이는 단식을 벌이고 있다. 그렇다고 그들의 투혼을 기리는 이들도 없다. 그들에게 멋있는 웃음을 지어보라고 할 텐가. 비정규직이라는 2등 시민의 굴레, 혹은 실격자의 멍에를 쓰고 살아가는 이들이 800만 명이 넘는다.
친구들을 제치고 이른바 ‘좋은 대학’에 들어간 아이들은 우리 사회의 금메달리스트들이다. 그리고 수많은 은메달리스트와 실격자들이 남는다. 아이들은 특목고니 자사고니 하는 ‘좋은 고등학교’에도 들어가야 한다. 급기야 국제중 같은 ‘좋은 중학교’도 생기니, 초등학생들도 경쟁의 트랙에서 본격적으로 출발 자세를 취해야 한다. 1등과 2등이 갈리고, 실격의 아픔을 겪어야 한다. 아이들에게 “정정당당하게 최선을 다했으면 돼. 졌더라도 자신 있게 웃어보렴”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결코 그럴 수 없다. 다음 계단에서 아이들은 저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아이들은 정정당당한 경쟁을 한 것도 아니다. 정직한 땀만으로 겨루는 경쟁이 아니기 때문이다. 부모의 경제력에 따라,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조건에서 경쟁을 시키면서 결과는 똑같은 자로 재고 있으니, 출발선이 다른 육상이요 체급을 무시한 레슬링이다.
비록 1등을 하지 못해도, 노력했으나 뒤처지더라도 얼마든지 인간적으로 살아갈 수 있다는 보장만 있다면, 우리는 은메달을 목에 걸고도 감격할 수 있고 실격을 당하더라도 웃을 수 있다. 1등에게 기꺼이 찬사를 보낼 수 있다. 프랑스와 한국 사회에서 살아본 경험을 바탕으로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을 쓴 목수정씨는 그럴 수 없는 이유를 말한다. “생존을 위해 몸부림치게 만드는 한국 사회의 구조가 절망이다. 곁눈질하면 금세 낙오자가 돼버린다. 국가라는 게 있다면 적어도 밥 먹고 자는 정도는 받쳐줘야 한다는 것을 점점 잊어버린다.” 그의 프랑스인 연인은 또 이렇게 말한다고 한다. “한국 사회는 미스터리하다. 삶의 조건은 비명을 지를 만큼 힘들다. 폐지를 주우며 살아가는 할머니들이 많을 정도로, 어떤 사회적 안전망도 없다. 다들 자살하기 일보 직전 같은데, 왜 그렇게 밝고 친절한지 모르겠다.”
정말 모를 일이다. 대한민국을 무대로 매일같이 펼쳐지는 이 정글 올림픽에서 선수들은 왜 그렇게 밝고 친절한지, 왜 애써 자신의 훈련 부족만 탓하고 있는지. 이 올림픽은 애초부터 정정당당하고 인간적인 스포츠가 아닌데도 말이다.
출처: http://h21.hani.co.kr/section-021029000/2008/08/021029000200808180724027.html
뼛속까지 자유롭고, 치맛속까지 정치적인/목수정 지음/레디앙 미디어/1만3000원
20세 이상의 연령 차이가 나는 프랑스 남자와 결혼하지 않은 채, 아이를 낳고 함께 살아가는 한국 여성이 있다. 그의 선택을 궁금해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이 둘의 관계가 통계적으로는 드문 케이스라고 할 수 있으나, 사랑을 매개로 해서 두 사람이 같이 살고, 아이를 낳는 것은 보편적인 일일 뿐, 하등 이상스러울 것이 없다.
뼛속까지 자유롭고 싶고, 삶은 치마 속까지 정치적이라고 생각하는 저자에게는 특히 그렇다. 그는 나이 스물아홉에 ‘문화’가 세상을 구할 수 있을지, 그 정답을 찾기 위해 IMF 폭탄을 맞아 초토화된 대학로 ‘공연기획자’ 생활을 접고 프랑스로 떠났다.
그곳에서 그는 사랑을 만났다. 문화가 세상을 구원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던 그가 좌파 무정부주의자 예술가를 만나면서 사랑보다 자유를 더 뜨겁게 욕망하는 ‘삶의 자유주의자’가 된다.
인생의 목표를 정해놓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자신을 다그치면서 흔들림 없이, 초지일관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그동안의 생각이 바뀌었다. 영혼을 자유롭게 풀어놓고, 그 영혼의 열망을 존중하고, 열망의 진화 자체가 중심이 되는 삶의 방식에 확신을 얻었다고 책의 저자는 말하고 있다.
이 책은 그의 사랑에 관한 기록이며 동시에 저자가 ‘월경(越境)의 연대기’라 부르는 흔치 않은 경계 넘기의 삶과 그 속에서 얻은 삶에 대한 통찰에 대한 기록이기도 하다. 러시아 문학을 전공한 후 들어간 관광공사라는 안정된 직장을 그만 두고, 내면의 목마름을 채우기 위해 대학로 ‘공연기획자’로 변신, 월경한다.
이후 프랑스 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국립발레단 기획팀장으로 잠깐 일을 하다가 자신의 생각과 가장 가까운 문화정책을 갖고 있는 진보정당의 정책연구원으로 옷을 갈아입는다. 문화는 일종의 공공재로서 사람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정부가 재정 및 제도로 이를 지원해야 한다는 저자의 주장은 경청할 만하다.
‘서른의 끝자락에 있는’ 그는 “프랑스와 한국, 결혼과 비혼, 운동권과 제도권, 예술과 문화, 운동과 정치 사이에 놓인 수많은 경계 위”에 서 있다. 이 책은 경계를 넘나들며 삐뚤빼뚤한 길을 삐딱하게 걸어온 그의 세월에 켜켜이 내려앉은 쌓인 아픔과 쾌감, 환희와 좌절에 대한 솔직한 기록이다.
부정형의 미래는 그에게 엄습하는 불안이 아니라, 일탈의 즐거운 기회일 뿐이다. 그는 8월에 다시 짐을 싼다. 진화된 욕망의 새로운 지시에 따르기 위해…. 우리에게도 가끔 짐을 싸고 싶을 때가 있다.
이광호 레디앙미디어 편집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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