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새로 나온 <녹색평론> (녹색평론사, 2009년 11-12월호, 통권 109호, 2009년 11월 5일 발행)을 읽다가 흥미로운 논의를 보았습니다.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이 쓴 '세계 위기 속의 어소시에이션-협동조합(世界危機の中のアソシエーション・協同組合)'이라는 글 속에 나오는 대목입니다. (원문은 월간지 <社會運動> 2009년 9월호에 게재.)
맑스는 국가 그 자체가 자립적인 주체라는 것은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국가를 그 내부에서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 점에서는 프루동과 같습니다. 프루동은 국가의 폐기라는 문제를 일국적 시각에서만 생각했습니다. 국가가 다른 국가에 대해서 존재하고 있는 측면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맑스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가 프롤레타리아 독재를 인정한 것은 그가 국가주의적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국가를 간단히 소멸시킬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나키스트였기 때문입니다.
아무튼 '국가'의 문제를 깊이 있게 들여다보아야 할 문제임에 분명합니다. 왜냐면, 이미 우리가 지나가고 있는 긴 터널과 같은 위기라는 것이 단순히 일시적인 것이 아니라 문명적인 것이고, 그 문명이란 결국 자본주의 문명이기 때문입니다.
결국, 아담 스미스가 예상한 바와 같이, 세계는 경제성장이 없는 정상(定常) 상태로 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자본주의는 자동적으로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국가가 그것에 저항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패닉상태에 빠져, 광신적인 종교나 내셔널리즘으로 향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의 문제는 그러한 위기에 대해서 어떻게 할 것인가에 있습니다.
이러한 논의에 대해서는 나도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런데 가라타니 고진의 마지막 부분에 대해서는 이의를 붙일 수밖에 없습니다. 가라타니는 "그 경우, 역시 유엔을 매개로 한 국제적인 운동을 강화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과연 유엔이라는 것이 매개되는 것일까? 그런 의문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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