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의 정례 라디오 연설문을 읽었다. 세종시는 수정이 가능하지만, 4대강 사업은 그대로 강행하겠다는 의지가 읽힌다. 반대가 있는데, 그 반대라는 것이 예전에 경부고속도로나 인천국제공항, 고속철도 때의 것과 뭐가 다르냐는 해석이 읽힌다. 그런가? 나는 의문이다.
경부고속도로에서 인천국제공항과 고속철도에 이르기까지 국책 사업은 그때마다 많은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어떻습니까. 바로 그 사업들이 대한민국 발전의 견인차가 되었습니다. 4대강 사업도 그렇게 될 것입니다.
안동 권역에 뿌리를 박고 활동하고 있는 안상학 시인. 권정생문화재단의 사무처장으로 일하고 있는 이다. '착한 시인'은 이육사 시인 이야기를 한다.
이육사 시인은 안동시 도산면 원천리 출신이다. 낙동강이 마을 앞을 흐르고 청량산의 기개가 감도는 아름다운 곳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강과 산을 끼고 정서를 함양했다. 그는 수필 「계절의 오행」에서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되라고 배워온 것이 세 살 때부터 버릇”이라고 적고 있다. 어머니의 가르침이었다. 그러나 그 시절은 이런 삶을 살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그럴 때면 그는 “발길이 저절로 내 동리 강가로만 가는 것이었”다고 증언하고 있다. 왕모산을 끼고 흘러가는 그 강은 이육사의 마음이었다. 강이 흘러가 바다에 이르고, 다시 증발해서 하늘로 올라가 비로 내리고, 샘으로 솟아 시내를 거쳐 강으로 순환하는 물의 일생을 그는 사랑했다. 그가 고향이라는 얼레에서 연실처럼 풀려나가는 강을 따라 흘러가 바다를 거쳐 다시 대륙을 떠돌다 문득 힘겨워지면 고향으로 흘러들어가고 싶은 마음이 일었을 것이다. 그는 항상 돌아가 편히 쉬고 싶은 고향의 강가를 그리워했다. 눈물이 날라치면 고향의 강과 어머니 말씀을 떠올리며 “내 길을 사랑하는 마음, 그것은 내 자신에 희생을 요구하는 노력이오, 이래서 나는 내 기백을 키우고 길러서 금강심에서 우러나오는 내 시를 쓸지언정 유언은 쓰지 않겠”다고 다짐하곤 했다. 그런 그도 마흔 즈음에 북경 어느 차디찬 땅에서 연줄이 끊어지고 다시는 고향의 얼레에 감겨 되돌아가지 못하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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