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9월 1일
대입제도 재검토?
조국 법무장관 후보를 둘러싼 논란에서 유난히 초점이 된 것은 딸의 대학 진학과 관련된 사안이다. 급기야 문대통령이 대입제도 개선을 검토하라는 의견을 제시했다는 보도다. 아니, 대입제도가 한국사회 모순의 축소판이자 핵심이라는 사실을 지금까지 몰랐단 말인가? 이전에도 이 문제에 관해 여러 차례 언급했기 때문에 다시 반복하지는 않겠다.
내 주장의 주된 논지는 이렇다. 1950-1980년대까지 한국 사회는 이전에 볼 수 없었던 역동성과 사회이동을 보여주었다. 그것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한국전쟁 전후 전통적 지배세력의 상당수가 몰락한 상태에서 근대국가 형성에 필요한 인력을 충원하는 절대적 기준이 고등교육과 시험이었다. 달리 말해, 적어도 한 세대 이상 한국 사회에서 사회이동의 가장 중요한 상수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을 통한 경쟁’이었다. 상고 출신 대통령이 두 차례 선출된 것도 이 한 세대에 걸친 사회이동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산업화가 본격적으로 전개되고 자본축적이 급속하게 이루어지기 전까지만 하더라도, 개인의 능력과 노력이 시험 합격에서 가장 중요한 변수가 되었다. 오죽하면, 이병철 씨가 이루지 못했던 것의 하나가 자녀를 서울대 보내지 못했다는 농담이 나왔겠는가. 대입시험에서 물론 부가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래도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사례를 심심치 않게 보고 들으면서 많은 사람들은 한국 사회의 평등성이라는 환상과 능력에 의한 선택이라는 환상을 어느 정도 받아들였던 것이다. 한국 사회의 시험만능주의는 이런 역사적 경험의 산물이다.
아직 가설 수준에 지나지 않지만, 내 경험에 따르면 1950-80년대 이른바 명문대 합격의 중요 변수는 개인의 노력과 공간적 유불리성(서울-지방, 도시-농촌)이었고, 부의 정도는 그 다음 변수가 아니었을까 생각한다. 자본축적이 미미했던 그 시대에는 투자를 통해 학업성취를 가속화할 여러 기술 혁신이 없었고, 투자 대비 산출효과(성적 향상)는 매우 낮은 편이었다.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과외망국론이 등장했지만, 어쨌든 변수의 이같은 순위는 한 세대 이상 변화가 없었다고 본다. 오히려 부가 중요한 영향을 미친 것은 입학 후의 시절이었을 것이다.(나는 1970년대 대학 시절의 대부분을 입주 가정교사로 지냈다.)
그러나 1980년대 이후 한국 경제의 자본축적이 제궤도에 오르면서, 부유층과 중간계급 상층을 위해 새로운 교육제도와 시험제도가 등장하고 곧바로 제도화되었다. 고교평준화정책의 후퇴, 특수교의 등장, 대학입시 수시모집제도와 수시에서 합격기준의 다양화 등이 이에 해당한다. 이들 제도를 도입할 때에는 당연히 관변 교육학자와 전문가들이 내세우는 슬로건들이 있었다. 선진국의 고등교육과 대입제도, 획일적 암기교육 타파, 세계화시대의 다양한 능력 배양 등, 얼핏 들으면 모두 다 좋은 말로 구성된 슬로건, 그것은 주로 강남으로 상징되는 자본축적의 주된 담담자층과 주된 수혜층 자녀의 사회이동을 위한 제도로 도입된 것이다. 외국생활을 경험한 조국 후보 따님의 외고부터 의전원까지 이르는 인생역정에서 특별히 불법적인 사실을 찾아내지 못했음에도 현 정부의 위기까지 불러올만큼 분노를 일으켰던 것은 이미 비공식적으로나 공식적으로 알고 있었던 그 자본에 따른 사회이동의 코스를 새삼스럽게 재확인했기 때문이다. (며칠 이를 둘러싼 의혹기사와 해명기사를 읽고 내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조국 후보 따님의 여정은 경미한 수준이다. 불법은 없었고, 다만 그 시절 제도적 이점을 충분히 활용한 수준이다. 오히려 자한당 인사들의 이면을 들춰내면 아마 그 수준은 驚天動地, 百花齊放일 것이다.)
2000년대 초에 한국서양사학회 학술대회에서 <빅토리아시대의 교육문제>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한 적이 있다. 그 글은 상당히 시론적이면서도 야심찬 것이었는데, 영국사회를 지배하는 수재임용제도(meritocracy)의 기원을 밝히는 데 목적을 둔 것이었다. 그 당시 ‘연줄’이라는 표현에 몇몇 사람은 약간 불쾌감을 표시하기도 했다. 점잖게 말하면 ‘사회적 자본’이라 할 수 있지만 나는 그냥 연줄(지연 인연 학연)이라는 표현을 쓰고 싶었다. (나는 연줄 또는 빽이라는 부정적 의미를 갖는 표현이 언제부터 한국에서 사회학자들에 의해 ‘사회적 자본’이라는 고상한 언어로 탈바꿈되었는지 추적하는 작업도 필요하다고 본다. 최초의 도입자도 함께.)
오늘날 영국사회에서 귀족제도는 화석으로 변했지만, 그 대신에 학벌을 중심으로 하는 공고한 기득권제도가 유지되고 있다. 이튼, 해로우 같은 명문사립학교(public school), 옥스퍼드와 케임브리지대학, 또 이 두 대학의 여러 유서깊은 칼리지들이 학벌 네트워크의 핵심이다. 영국을 움직이는 총리, 장관, 학계 거물, 비즈니스 세계에 이르기까지 이들 학벌의 점유율은 상상을 초월한다. 문제는 이에 대한 비판이 작은 목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이 수재임용제도는 어떻게 뿌리내렸고 그 본질이 무엇인가. 그 당시 내가 가졌던 문제의식이다. 대체로 수재임용제도의 전통은 19세기 중엽 윌리엄 글래드스턴의 개혁과 함께 뿌리를 내렸다. 그 이전에 영국사회에서 중간계급 출신 인사의 정치적, 사회적 지위와 자리는 귀족의 후원과 추천, 즉 연줄을 통해 얻을 수 있었다. 토머스 홉스, 존 로크, 대니얼 데포, 아담 스미스 등 귀족 출신이 아닌 문필가들 대부분이 귀족과 연줄이 없었다면 그 나름의 개인적 성취를 거두기 어려웠을 것이다.
‘올드 커럽션(Old Corruption)’이라고 불렸던 이 관행은 귀족 지배세력이 사회적 지위, 보상, 연금, 수당, 각종 커미션 등 부조금과 후원을 미끼로 자파 세력을 충원하고 임용하며 또 육성하는 사회적 관행이었다. 영국 근대화과정에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으로 필요한 인사들의 충원은 바로 이런 관행에 의거해 이루어졌다. 중간계급 출신 문필가와 지식인과 야심찬 젊은이들은 유력한 귀족의 추천장을 기반으로 특정한 자리를 얻을 수 있었다.
글래드스턴의 개혁은 이런 연줄이 아닌 시험을 통한 임용을 추구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처음에는 재무부 고위관리 및 동인도회사 문관 임용에서 시작해 전 행정부처로 확대되었고 다른 공적 부문에서도 시험제도를 도입하기에 이른다. 연줄에서 실력으로 거대한 전환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수재임용제도인 것이다.
일단 시험에 합격한 사람을 특정 지위에 임용하는 절차 자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지위와 실력이 어느 정도 일치하는가. 이것이 근대사회의 바로미터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그 시험 자체의 분석에 매달렸다. 시험이란 무엇인가. 정말 그것이 공정한 룰에 의해 이루어졌을까. 나는 무엇보다도 시험과목을 들여다보고, 당시 명문사립학교로 분류된, 이른바 클러렌든 스쿨(이튼, 해로우, 윈체스터, 웨스트민스터, 슈르즈베리, 차터하우스, 머천트 테일러즈, 세이트 폴즈, 러그비 등), 그리고 세칭 1류학교군에 드는 평판 좋은 사립학교들의 교과과정을 비교해봤다. 공무원 임용시험이나 옥스-브리지 장학생시험에서 1차로 가장 중요한 것은 고전어 과목이었다. 다음으로 수학시험이 중요했다.
클러렌든 스쿨은 역사가 오래고 부유한 인사들의 기부금액수가 많아 고액의 급료를 주고 여러 명의 고전담당 교사를 채용할 수 있었다. 이들 학교의 희랍어, 라틴어 수업시수는 주당 20시간 이상이었다.(해로우는 28시간) 그 다음으로 평판이 높은 학교들의 주당 수업시간도 상당한 수준이었지만 대부분 라틴어 위주였다. 클러랜든 스쿨은 소수의 장학생을 제외하면 사회 상층 자녀들만이 입학할 수 있었다. 상류층 자녀들을 대상으로 명문사립학교-옥스브리지-시험으로 이어지는 사회상승의 사다리가 새롭게 만들어진 셈이다. 여기에 옥스-브리지의 졸업시험은 1830년대까지 오직 수학과목 뿐이었다.
시험과목과 교육제도와 입학생 출신을 연결하면, 바로 수재임용제도가 전통적 올드 커럽션에 경쟁이라는 외피를 입힌 변형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된다. 상층계급 출신 자녀의 인생행로가 유명 퍼블릭스쿨에서, 옥스-브리지로, 그 다음에 평판좋은 사회적 지위로 이어지는 연결망이 존재하는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오늘날 약화되기는 했지만 어쨌든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물론 예외도 있겠지만, 영국사회에서 옥스-브리지나 유명 펴블릭스쿨 출신자의 비율이 지금도 높은 이유는 바로 이 전통 때문이다. 요즈음 영국 중등학교에서 사립학교(public school) 입학생의 비율은 학령인구의 10% 내외다. 근래에 클러랜든 스쿨의 위력은 예전만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사립학교 문제는 아직도 영국사회의 '문제거리‘로 남아 있다. 2003년 영국에 체류할 때 옥스-브리지 입학생 가운데 퍼블릭스쿨 출신 비율은 60% 이상이었다. 사립학교 학생수가 고교 학령인구의 10% 정도라는 점을 고려하면 대단한 점유율이다. 당시 교육장관이 두 대학에 대해 그 점유율을 50%로 낮추라고 요구했던 것을 기억한다.
대입제도의 재검토?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혁명적인 방법에 의거하지 않고서는 이미 강고하게 굳어진 기득권제도를 타파하기 어렵다. 특수교와 평판 좋은 몇몇 대학으로 연결된 이 기득권제도는 정권에 관계없이 앞으로도 강화될 수밖에 없다. 기왕에 대입제도를 재검토하려면, 기존의 통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지금까지 교육부 관리나 교육전문가라는 자들이 대입제도에 관해 언급할 경우는 꼭 대학 전체를 대상으로 삼았다. 그러지 말고, 솔직히 한국의 학부모들이 자녀의 입학을 학수고대하는 스카이나 또는 그외에 몇 개 대학을 덧붙여, 이들의 대입제도 현황을 파악하고 어떻게 '투자 대비 산출효과가 높은' 기존 대입방식들을 '투자 대비 산출 효과가 낮은' 방식으로 전환할 것인가를 고민하기 바란다.
물론 더 근본적으로는 직종, 직업간의 경제적 격차를 줄이는데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우선 눈에 띄는 것은 사회적 기여에 비해 터무니 없이 많은 수익이 보장된 직종이다. 그 전형이 한국에서는 국회의원. 민주당 스스로 개혁세력임을 자임한다면 다음 총선 공약으로 국회의원 각종 특권을 열거하고 이들 중 어느 것을 없애고 급여를 어느 정도 줄일 것인지를 공약으로 내걸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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