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립대 도서관에서 1박2일
"1박2일 독서여행을 참관하면서 또 되뇌었다. 책 읽는 사람이 전환의 주역이라고. 국립대 중앙도서관에서 새벽을 맞이하면서 또 되새겼다. 함께 책 읽는 장소가 곧 전환의 출발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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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교육을 전공한다는 학생이 <박물관은 살아있다>라는 영화 이야기를 꺼냈다. 밤 9시 박물관이 문을 닫으면 그때부터 전시된 유물들이 살아나 움직인다는 판타지 영화. 학생은 “우리 대학 도서관도 이렇게 살아있다”며 웃었다. 지난 수요일 밤 충남 공주시 국립공주대학교 중앙도서관 3층. 평소와 달리 불이 환하게 밝혀져 있었다. 대학과 지역사회가 함께하는 ‘1박2일 독서여행’이 밤 11시를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1박2일이란 말은 설렘을 부추긴다. 듣기만 해도 일상 탈출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제와 다름없는 지금 여기를 벗어나면 시간의 속도가 달라지고 낯선 환경도 어느새 발견의 대상으로 다가온다. 더욱이 책과 더불어, 책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함께 대학 도서관에서 하룻밤을 지새는 프로그램이라면 설렘의 크기는 사뭇 커질 수밖에 없다. 심야라는 말이 주는 울림은 또 어떤가. 심야극장, 심야식당, 심야주점, 심야책방… 깊은 밤 시간대가 돌연 장소의 성격을 바꾼다.
공주대 중앙도서관과 기적의협동조합이 공동주최하고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이 후원한 이날 심야 독서여행은 대학생, 교직원, 시민 등 50여명이 참여했다. 밤 9시에 시작해 이튿날 새벽 2시30분까지 진행된 행사는 1부 ‘내 인생의 책’에 이어 2부 독서토론 워크숍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이 도서관에서 자기 인생의 책을 찾아 오면서 독서여행은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나를 움직인 책’에 대해 말하는 동안 발표자는 또 다른 주인공이자 저자였다. ‘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는 경구를 새삼 실감한 시간이었다.
김숨의 단편소설집 <국수>를 인생의 책이라고 밝힌 국어교육학과 학생은 소설을 자신의 가족사와 연결시키면서 문학이 갖고 있는 치유의 힘을 환기시켰다. 여군 복무를 마치고 다시 대학에 들어왔다는 여학생은 서점에서 우연히 마주친 <스물아홉 생일, 1년 후 죽기로 결심했다>를 읽고 실의에서 벗어났다고 했다. 교사생활을 하다가 얼마 전 은퇴했다는 참가자는 “10대 때 만난 <데미안>을 이번에 다섯 번째 읽고 있다. 독서를 통해 매번 다시 일어선다”고 밝혔다.
진정한 독서는 삶에 적극 개입한다. ‘훅’하고 내 안으로 들어오는 책은 예고 없이 날아든 초대장과 같다. ‘내 인생의 책’이 증명하듯이 무심코 들어간 서점에서 집어든 한 권의 책, 선생님이나 친구가 건네준 한 권의 책이 예기치 못한 미래를 열어준다. 영화의 한 장면, 노래 한 소절도 내 앞에 ‘없던 문’을 만들지만 책처럼 결정적이지는 않다. 만약 서른 살이 넘었는데도 인생의 책이 없다면 멈춰 서서 돌아봐야 한다. 자신을 뒤흔든 책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다음 두 경우 중 하나일 것이다. 대단히 행복한 사람이거나 아니면 자기 삶이 얼마나 불행한지조차 깨닫지 못하는 사람.
독서여행 2부에서는 <최후의 전환>(원제 The Ecology of Law)에 대한 토론이 이어졌다. 물리학자이자 시스템 이론가 프리초프 카프라와 법학자이자 커먼즈(공유재) 전문가 우고 마테이가 함께 쓴 <최후의 전환>은 인간과 지구 생태계를 위기에 빠뜨린 근대 기계론적 세계관을 정면 비판한다. 특히 이성과 과학 중심주의의 세례를 받은 근대 법학이 개인 소유권과 국가 주권을 강화해 착취적이고 파괴적 행동 양식을 확대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해왔다고 지적한다. 두 저자는 시민의 힘으로 생태적 법질서를 수립하고 공유재를 되살려내야 더 나은 미래가 도래할 것이라고 말한다.
자정을 넘긴 시각, 열람실 곳곳에서 펼쳐진 모둠 토론은 진지하고도 활기가 넘쳤다. 책을 미리 읽고 온 참가자들은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 새로 품게 된 문제의식, 구체적 실천 과제를 도출했다. 참가자들은 법과 관련된 내용이 쉽게 다가오지 않았다고 말하면서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재설정해야 한다, 환경교육 관련 법을 만들어야 한다고 제안하는가 하면, 이상적이고 급진적 미래보다는 현실적이고 개선 가능한 미래를 만들자는 견해도 내놓았다. 법에 대해 그간 너무 무관심했다는 반성도 나왔고 기업과 정부의 인식 변화를 촉구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어졌다.
독서토론 워크숍의 남다른 특징은 참가자 모두가 생활 속에서 실천 가능한 과제를 발표한다는 데 있다. 참가자들은 종이컵이나 비닐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에서부터 전기자동차를 적극 홍보하겠다, 환경 교사를 최소 3년 이상 계속하겠다, 생태 환경 관련 책을 한 달에 한 권 이상 읽겠다, 환경 정책을 내놓는 후보를 지지하겠다 등등 다양한 ‘전환 목록’을 공표했다.
인생의 책과 독서토론은 상호보완 관계다. 나를 움직인 책에서 머문다면 그 의미는 더 이상 확대되지 않는다. 책은 여럿이 읽어야 한다. 함께 읽어야 한 생각이 다른 생각과 어우러지고 더 큰 생각으로 부풀어 오른다. 이때 독자는 새로운 저자로 태어나고, 이 각성된 저자들이 손을 잡고 새로운 미래를 열어나갈 것이다. <최후의 전환>은 인간과 천지자연의 상호 연관성을 외면해온 근대 법체계의 일대 전환을 통해 공유재를 되찾아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최후의 전환’을 이뤄내지 못한다면 ‘인류의 지속’은 불가능할지도 모른다. 1박2일 독서여행을 참관하면서 또 되뇌었다. 책 읽는 사람이 전환의 주역이라고. 국립대 중앙도서관에서 새벽을 맞이하면서 또 되새겼다. 함께 책 읽는 장소가 곧 전환의 출발점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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