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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의 존재 이유와 삶의 질
좋든 싫든 우리가 도시에서 살 수밖에 없는 이유들이 있다. 생존을 위해 생계 수단에 묶여 어쩔 수 없이 도시에 사는 측면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도시가 좋아서 머무르는 이유라면? 시골에는 없고 도시에서만 누릴 수 있는 집합적이고 공동적인 편의, 그것을 통한 수준 높은 삶을 꼽을 수 있을 것이다.
이 편의는 흔히 도시 공공 서비스에 달려 있다고 간주된다. 상하수도, 위생, 교통, 통신 같이 일상의 생존에 더 직결된 기본 서비스, 교육, 보육, 보건, 문화, 예술, 체육처럼 좀 더 복리와 관련된 서비스가 그것이다. 이 서비스들은 대개 도시 기반 시설이라는 물리적 시설들과 관련되어 있다. 물론 양질의 서비스는 시설뿐 아니라 자원, 인력, 정책과 제도 모두에 달려 있다.
공공 서비스를 통한 편의를 도시의 궁극적 가치로 주장하는 것은 한계가 있을 법도 하다. 그렇지만, 오늘날 우리 도시민들이 그 이상의 도시의 가치를 떠올리고 그것을 명증하게 설명할 수 있는 실정인가? 19세기 후반 유럽에서 태동한 현대 도시 계획 이전에는 도시의 궁극적 목적으로 아름다움이나 즐거움 등의 가치가 추구되었지만, 이런 것들은 이후 희미하게 멀어져 버렸다. 편의 추구의 가치 위에 둘 궁극적 가치가 무엇인지 명료한 언어로 규정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래서 어쨌든, 오늘날 삶의 질, 편의, 공공 서비스는 대부분의 시민이 동의하는 도시의 목적과 수단으로 자리 잡고 있다. 실제로 지난 10년 동안 환경 도시, 문화 도시, 건강 도시 같이 도시민의 삶의 질을 위한 공공 서비스의 가치를 부각하는 도시 어젠다들이 점차 중요한 관심사가 되어 정책적으로 추진되고 있다.
올해도 서울시는 지난 3월에 10개 분야 행정 서비스의 만족도 조사를 발표했다. 지하철(80.7점), 민원 행정(80.3점), 보건소(78.6점), 보육 시설(77.7점), 상수도(75.1점), 시내버스(73.8점), 청소(72.1점), 문화 시설(70.8점), 공원(67.9점), 공공 도서관(66점) 순이었다.
도시 서비스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은, 이번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서 보육 시설 중 공공 어린이집을 확충하는 공약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우고 경쟁했듯이, 도시 행정, 도시 정치의 핵심 사안이다.
행정이 공공 서비스를 제공할 의무는 곧바로 시민이 그것을 얼마나 주장할 수 있는지의 권리에 대한 다음의 물음들과 직결된다. 즉, 시민은 그것을 얼마나 충분하게 제공받고자 요구할 수 있는가? 이 권리는 생존을 보장받을 권리만큼 본질적인가? 시민은 어느 수준까지 그 실현 과정에 참여할 수 있는가? 또 어떻게 해야 공평하고 효율적으로 배분되는 것인가?
물론 이 권리에 대한 기본적인 근거는 인권과 관련된 여러 내용에서 출발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실현 과정에 있어서 새로운 권리들과 그 근거들이 나올 수도 있다.
공공 서비스에 대한 변화하는 요구
앞서 언급한 서울시의 서비스 만족도 조사로 돌아가 보자. 최하위를 차지한 것은 자치구·시교육청 소관 공공 도서관 분야였는데, 역설적이게도, 그 분야는 지난 10년간 시민권의 신장과 정책 발전에 있어서 가장 주목할 만한 노력과 가시적 성과가 나온 분야이기도 하다.
지난 10년 동안 우리 사회는 공공 도서관의 확충과 서비스 개선을 위한 노력에서 일대 변화가 있었다. 이 변화에 있어서 선도적 역할을 한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은 '책 읽을 권리는 시민의 권리'임을 주장하며 도서관 건립과 독서 문화 운동을 추진했고 어린이 도서관 건립 등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냈지만, 본래는 공공 도서관 운동에 목표를 두었다.
즉, 2001년 운동 시작 당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최저 수준이던 한국의 공공 도서관 서비스, 즉 전국에 430개밖에 없는 공공 도서관을 2012년까지 1000개로 늘리고('집 나서면 10분 거리에 도서관이 있도록'), 당시 52억 원의 공공 도서관 도서 콘텐츠 구입 예산을 2002년에는 1000억 원으로 늘리자고 정부에 요구했다.
"공공 도서관 서비스를 받아 본 경험이 희박했으므로 서비스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실도 모르고 살아 왔다가" 서비스를 받을 시민의 권리를 깨우쳐 주장한 일대 혁신이었다. 물론, 이것은 더욱 포괄적이고 온전한 범위의 도시 공공 서비스에 대한 시민의 권리에 대한 인식을 넓히는 길이었다.
노무현 정부부터는 국가 차원의 공공 도서관 정책이 본격화되었다. 2006년에 도서관법이 개정되었고, 정부의 공공 도서관 건립 지원도 최근에는 매년 수십 개의 공공 도서관에 대해 수백억 원대로 늘었고, '도서관 발전 종합 계획 2009~2013'에 따르면 2013년 총 900개관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하지만, 서울시의 만족도 조사에서 나타났듯이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직 한참 멀었다. 양적 차원에 머무르고 있는 것도 문제일 테지만, 양적 확충에서도 서울의 공공 도서관 중 장서수가 5만 권 이상 되는 중규모 도서관은 실제 20여 곳 뿐이다.
서초, 강남, 송파 3개구의 총인구(약 160만 명)와 같은 뉴욕 맨해튼 버로우와 비교해 보자. 서초구에 3곳, 송파구에 3곳의 공공 도서관뿐이다. 강남구는 2곳의 교육청 소속 공공 도서관에다 13곳의 소규모 구립 도서관(시설 면적 100평 남짓)이 상호대차 서비스를 갖추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공공 도서관 서비스의 모범인 뉴욕 공공 도서관은 맨해튼에만 총 44개의 제대로 된 공공 도서관을 견실한 네트워크로 묶고 있다. 스테튼 아일랜드, 브롱스를 포함한 85개 분관을 운용하고 있고, 그 네트워크 전통은 거의 한 세기에 이른다.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의 최근 문화 도시 전략에서는 미술관이나 박물관, 디자인센터 같이 외적 효과가 더욱 눈에 띄는 문화 시설들을 강조했고, 그 대신 시민의 삶 자체를 변화시킬 원동력이 되는 공공 도서관 같은 문화 시설을 소홀히 다루었다는 지적을 피하기 어렵다.
막대한 재원을 집중 투자한 서울의 동대문 디자인 플라자(DDP) 대신 공공 도서관 확충 사업을 벌였더라면 어땠을까? 앞의 것처럼 예측 불확실한 사업에 무리하게 뛰어들기보다, 더 안정되고 견실한 결과가 예측되고 시민의 당면한 요구에 부합하는 공공사업으로, 도시 서비스에 대한 성장하는 시민의 요구에 도시 행정이 빨리 부응해야 할 때다.
▲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은 정보와 지식에 대한 시민의 권리를 새롭게 말해 왔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 |
공공 서비스를 둘러싼 시민 권리의 진화
사실 공공 도서관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가장 도시적이고 시민적인 제도이자 시설에 속하기도 한다. 뉴욕, 시애틀 등의 도서관 네트워크에서 보듯이 그것은 분산과 네트워크 구성의 원리를 가장 잘 실현할 수 있는 현대적 제도일 뿐 아니라, 그 이전에, 공공시설과 공공 서비스를 둘러싼 여러 가지 권리 문제를 가장 잘 담고 있으며 상징한다.
근대적 공공 도서관이 고안되었을 때부터 지금까지 공공 도서관 자체의 발전 과정은 시민의 권리가 줄곧 진화해 온 과정이었다. 공공 도서관과 관련된 권리들은 일차적으로는 교육의 권리나 문화 활동에 참여할 권리 등 인권의 주요 내용에 근거하기도 하지만, 보편 교육의 권리로부터 평생 교육, 창의성 배양, 지역 공동체에 참여하는 권리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복합적인 가치와 시민의 권리가 포괄적으로 '유네스코 공공 도서관 선언'(1994년) 등에 담겨 있다.
공공 도서관이라는 제도는 시민의 권리의 진화와 더불어 계속 진화할 것이다. 한국 사회에서도 공공 도서관이 확충되고 그것의 공공 서비스의 가치가 더 잘 인식될수록 도시 정부에 대한 권리가 진화할 것이며, 이와 더불어 시민과 시민 간의 권리의 인정과 조정 문제도 대두될 것이다. 그 진화하는 권리의 문제들은 다양할 것이며, 공공 도서관을 비롯하여 공공시설 일반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이다. 우선, 공공시설의 기획, 건립, 운영 과정 전반의 거버넌스와 관련된 권리 문제가 있을 수 있다.
이제 공공 도서관이 여러 도시들에서 확충되는 과정에서 지역 간의 공평한 서비스의 배분은 대두되고 있다. 또, 서울시 자치구는 공공 도서관 운영을 시설관리공단에 떠맡김으로써 운영상의 공공성 문제, 가령, 도서관 이용의 유료화라든지 도서관 수익을 재투자하지 않는 등의 문제 등을 드러냈다. 책읽는사회만들기국민운동은 기적의 도서관 사업에서 기획과 운영의 과정에서 민관 협력의 거버넌스와 네트워크의 긍정적 사례를 실현해 보여줬다.
또, 다양한 시민 계층의 권리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공공 도서관의 본연의 목적은 모든 시민들이 자유롭게 이용하게 하는 것이므로, 이 시설은 그 어느 공공시설보다 특수 계층의 권리 문제를 노출한다. 가령, 홈리스 문제가 있다. 미국의 경우 법적으로도 그들의 이용 권리를 인정한 뒤에도 그들을 공공 도서관에서 수용하는 방식들은 계속 변하고 있다.
사회 복지 서비스로 홈리스를 위한 재취업 교육, 독서 클럽, 영화 상영, 시설 개선 등을 통해 해법을 찾기도 하지만, 홈리스 이용자의 출입과 이용을 제한하는 움직임, 가령 주소지가 있어야지만 도서관 카드를 발급하고 도서관 온라인 접속을 허용한다거나 냄새를 이유로 출입을 금지시키고 화장실에서 못 씻게 하는 제한 조치들도 여전히 생기고 있다.
우리에게 서울의 남산도서관, 용산도서관을 즐겨 이용하는 홈리스들은 그 존재 자체가 가려져 있어 아예 그들의 권리 문제는 가시화되지도 않았다. 하지만 그들을 포함하여 다양한 이용자들에게 부합하는 서비스가 무엇인지 발견하고 조정하는 것은 우리의 공공 도서관, 우리의 공공시설들이 해결할 과제다.
어찌 보면 가장 의미심장한 문제로, 지역 행정 참여와 관련된 문제가 있을 수 있다. 공공 도서관의 선진적 어젠다에 따르면, 지역 행정에 대한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고, 시민이 논의에 참여하는 방법을 키워줌으로써 지역 공동체의 다양성과 결속을 강화하도록 하고 있다. 각종 도시 서비스, 공공시설의 이용과 결부되어 시민이 지역 행정에 참여하는 것은 그 무엇보다도 도시에 대한 시민 권리의 핵심으로 떠오를 것이다.
유네스코 공공 도서관 선언(1994년)
"공공 도서관은 사용자들이 모든 종류의 지식과 정보를 손쉽게 얻고 이용할 수 있는 지역 사회의 정보 중심부이다. 공공 도서관의 서비스는 (…) 모든 사람들을 위한 접근의 평등성 원칙에 입각하여 제공되어야 한다. (…) 공공 도서관의 정규적 서비스와 자료를 이용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는 특별한 서비스와 자료가 제공되어야 한다." "모든 연령 집단은 그들의 요구에 맞는 자료들을 얻을 수 있어야 한다. 공공 도서관의 소장 자료와 서비스는 전통적 자료는 물론 모든 형태의 적절한 매체와 현대적 기술을 포함해야 한다. 공공 도서관의 자료들은 지역 사회의 요구와 조건에 맞는 높은 품질 수준과 적절성을 지녀야 한다. 자료들은 인류의 노력과 상상력에 대한 기억을 보존함과 동시에 현대적 경향과 사회 진화도 반영해야 한다. 공공 도서관의 소장 자료와 서비스는 어떤 형태의 이념적, 정치적, 종교적 검열에도 종속되지 아니하며 또한 상업적 압력에도 복속되지 않는다.
"유네스코 공공 도서관의 임무(1994년)
어릴 때부터 어린이의 독서습관을 만들고 북돋아주는 일.
모든 단계의 정규 교육은 물론, 개인적이고 자발적인 교육을 지원하는 일.
개인의 창조적 발전을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일.
어린이와 청소년의 상상력과 창조력을 자극하는 일.
문화유산을 알고 예술을 감상하며 과학적 업적과 혁신을 알게 하는 일.
모든 공연 예술의 문화적 표현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일.
문화 간 대화를 증진하고 문화 다양성을 선호하게 하는 일.
구전 전통을 지원하는 일.
주민이 모든 형태의 지역 사회 공동체 정보에 접근 가능하게 하는 일.
지역의 기업, 민간 단체, 이익 단체에 적절한 정보를 제공하는 일.
정보 기술 발전과 전산 기기의 사용법을 촉진하는 일.
모든 연령의 독서 활동과 프로그램 참여를 지원하고 필요시 그 활동을 개시하는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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