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acebook / 권경애 / 2011-10-30)
법은 헌법-법률-조례-규칙 등의 순위가 있습니다. 헌법에 위반되는 법률은 무효이고 법률에 저촉되는 조례는 무효입니다. 국가가 외국과 체결한 조약은 법률과 동일한 효과를 갖습니다. 그래서 국가가 외국과 협상하여 체결하는 것은 조약(treaties)도 있고 그 아래 단계인 협정(agreement)도 있습니다. 조약이라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발생하여 ‘신법(新法) 우선의 법칙’에 의해 신법과 충돌하는 구법(舊法)은 무효가 됩니다.
한미 FTA는 협정(agreement)이므로 법률과 같은 효력이 아니라 규칙 정도의 효력을 갖습니다. 조례보다도 하위이지요. 그래서 미국은 1500쪽의 협상 내용 그 자체를 의회가 통과시키지 않고 ‘협정이행법’을 만들어서 비준하는 절차를 취합니다. 그런데 그 이행법에는 “주법의 규정이나 적용이 협정에 불합치하다는 점을 이유로 하여 여하한 자에 대해 주법 또는 동법을 적용하는 것이 효력이 없다는 선언을 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미국 정부를 제외하고는 어떠한 자도 (1) 한미 FTA 협정을 근거로 청구권이나 항변권을 갖지 못하며 (2) 미합중국 또는 주 정부 기관의 어떠한 조치 또는 부작위에 대하여 그것이 한미 FTA 위반이라는 이유로 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규정합니다.
참고로 우리나라도 WTO 협정을 국내법으로 받아들일 때 이렇게 이행법을 만들어서 통과시키는 방법을 취했습니다. 그러나 현재 한국에서는 1500쪽에 달하는 한미 FTA 협상 내용 그 자체를 법으로 통과시키려 합니다. 그 속에는 양국이 주고받은 서한문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한미 FTA는 미국에서는 주법의 하위에 있지만 한국은 법률과 동급이 됩니다. 신법 우선의 법칙에 따라 협정에 위반하는 모든 하위 법률과 조례가 무효가 되는 것입니다. 또한 우리의 미국 투자자들은 미국 법원에서 한미 FTA를 위반한 주법이 무효라는 소송을 제기할 수 없지만 미국 투자자들은 우리나라 법원에 얼마든지 한미 FTA에 저촉하는 법률과 조례에 대하여 무효를 주장하는 소송을 제기할 수 있습니다.
이런 차이가 갖는 불평등은 전북도의 ‘친환경무상급식조례’가 WTO 규범을 위반하여 무효라는 대법원 판례 사례에서 잘 나타납니다. 판례는 WTO 협정이 조례의 상위법이므로 무효라고 판단했는데, 이는 ‘WTO 이행법’에서 WTO 규정이 우리나라 경제주권을 침해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음에도 그런 판결을 내렸습니다.
즉 어떤 법령이 무효라고 판정하기 위해서는 재판규범이 있어야 하는데, 미국에서는 조례의 무효를 판정하기 위해서 WTO 규정이나 한미 FTA 규정을 재판규범으로 원용할 수 없지만 한국에서는 모든 WTO 규범과 한미 FTA 규정이 국내법을 무효로 만드는 재판규범으로 사용된다는 것입니다.
친환경무상급식 판례처럼 WTO 협정을 재판규범으로 원용한 사례는 미국, 유럽, 일본 어디에도 없습니다.
김성훈 외교통상부 FTA이행과 1등서기관(2011년 11월 9일)
한·미 FTA관련 논쟁과 관련하여 일각에서는 미국의 한·미 FTA 이행법 일부 조항(102조)을 잘못 해석해 괴담을 퍼뜨리고 있다. “미 이행법은 FTA를 연방법이나 주법보다 하위로 본다. 우리는 FTA가 국내법과 동등하다. 따라서 한·미 FTA는 불평등하다”라는 주장이 바로 그것이며, 일부 언론에서는 법학교수의 기고문을 통해 이런 논지를 전개하고 있다. 이에 대해 간단한 비유를 들어 설명코자 한다.
애플컴퓨터 사용자가 스타크래프트2 CD를 샀는데, 윈도우용 버전으로만 나와 애플용 에뮬레이션 프로그램도 같이 받았다. 설명서에는 “애플 사용자는 애플용 에뮬레이션 프로그램을 설치하세요. ‘윈도우 CD는 넣어도 안 돌아갑니다.’ 문제 발생시 애플사에서 해결해 드립니다.”라고 쓰여 있다. 실제로 다른 애플 사용자는 이미 아무 문제없이 게임을 즐기고 있다. 그런데,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동생이 설명서를 읽다가 투덜댄다. “형, 이 CD 안 돌아간대.”
바로 이런 평면적 해석이 미 이행법을 둘러싼 소위 불평등 주장의 요체이다. 미국은 근래에 통상협정의 경우 이행법을 통해 국내 시스템에 도입한다. WTO관련 협정이나 NAFTA를 비롯한 기체결 FTA 등도 마찬가지이다.
왜 그럴까? 미 헌법이 옛날에 제정되었고, 통상권한이 의회에 있기 때문이다. 미국헌법은 모짜르트가 살아 있고 정조대왕이 조선을 다스리던 1787년에 제정되었다. 상상을 해보자. 당시 무역체계는 단순했고, 의회는 오히려 세입원천인 관세에 관심이 컸다. 그래서 미 헌법은 통상협상권은 의회의 권리로 규정했다(제1조8항). 당시만 해도 국제법은 “국가들의 법(law of nations)”이기에 조약은 외교관계수립, 전쟁종료와 같은 국가 고유의 주권 영역에만 집중되었다. 즉, 국제법상 권리·의무 주체는 국가뿐이었으며, 개인은 국제법상 주체가 아니어서 국제법을 통한 소송은 불가능했다. 즉, 국제법과 국내법은 별개 차원으로 봤다. 조지 워싱턴이나 벤자민 프랭클린이 WTO나 FTA, ISD를 어디 상상이나 했을까?
그 이후 세상은 많이 변했고 통상협정이 너무 복잡해지면서 행정부가 의회로부터 권한을 위임받게 되었다. 그것이 “무역촉진권한(Trade Promotion Authority)”이다. 행정부는 통상협정을 체결하되, 의회의 입법권을 존중하는 취지에서 통상협정의 내용은 의회가 제정한 이행법을 통해 국내법 시스템에 도입된다. 행여 문제가 될세라 행정부는 의회에 이행법안을 제출하면서 설명서인 “행정조치계획(Statement of Administrative Action)”을 통해 “대통령은 계속해서 미국법과 협정을 이행할 의무가 있고, 필요시 법개정을 하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명시했다. 반대측이 주장하는 해당 조항을 보면 어디에도 FTA가 미 국내법보다 하위라고 쓰여있지 않다. 다만, 국내법을 통해 국내에 적용·발효시킨다는 의미이며, 이러한 의무를 지키지 않으면 국제법상 책임을 지게 된다.
주법과의 관계도 간단하다. FTA의 효력은 그 내용을 반영한 연방법인 미 이행법으로 발효되므로, 하위법인 주법은 연방헌법 제6조2단에 의거하여 합치되어야 한다. 더 나아가 “국제협정과 주법 혹은, 주정부의 조치가 상충되는 경우 국제협정이 우선해야 한다”는 대법원 판례가 여러 번 있었다. 판례법 국가에서 이보다 더 명확한 확인이 있을까?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여전히 미국법 체계에서는 개인은 국제법을 원용하여 제소하기 어렵다. 한·미 FTA상 ISD는 그 예외인데, 이행법 106조와 미국내 관련법을 통해 보장해주고 있다.
여전히 미심쩍다면 구글에서 “19 USC 3512”나 “19 USC 3312”를 검색해 보기 바란다. 전자는 우루과이라운드협정, 후자는 NAFTA의 이행법중 해당 조항이다. 다른 기체결 FTA가 궁금하면 “19 USC 3805 notes”로 검색해서 “SEC. 102”를 찾아보자. 바로 이게 그 조항인데 내용은 다 똑같다. 허나, 그 누구도 “미국은 통상협정을 자국법 밑에 두기 때문에 안 지킬 것이다”라고 문제제기를 안 했다. 그들은 “게임설치 매뉴얼”을 제대로 읽었기 때문이다.
만일 FTA상 의무를 위반하면 국제법 차원에서 양국간 협의를 하거나 분쟁해결절차를 거치면 된다. 이는 WTO 패널분쟁과 유사한 방식으로 진행되는데 우리는 이미 WTO차원에서 미국과 10차례의 분쟁이 있었고, 그중 7번을 승소했다.
우리나라의 법질서는 다르다. 우리 헌법체계는 1948년 이후의 산물이며 현행 헌법은 1987년에 개정되었다. 즉, 우리 헌법은 이미 국제법이 국가의 법(law of nations)이 아닌 국가간 법(international law)이 된 시대에 태어났다. 국제사회는 복잡해졌고, 전범처벌, 난민법, ISD 등 개인의 국제법적 권리·의무가 일부나마 인정이 되고 있다. 우리 헌법은 국제법이 국내법과 동일한 효과가 있다고 간주한다(제6조1항). 이를 도외시하고 불평등하다는 주장은 잘못된 해석일 뿐 아니라, 다름과 틀림을 구분 못하는 사실관계 호도이다.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