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차종에 대한 비메탄유기가스의 배출량은 캘리포니아 규정집 제13편제1961(b)(1)(A)조에 규정된 것보다 더 엄격하지 아니할 것이다.”(한미FTA 부속서 9-나 자동차 작업반 부속서한). 시민이 물었다. 환경기준조차 우리 마음대로 정할 수 없는 것 아니냐. 정부가 답했다. “우리는 세계적으로 가장 엄격한 기준을 채택하고 있는 미국 캘리포니아 기준을 도입하고 있으며, 우리 배출가스 기준을 캘리포니아 주가 정하는 것은 아니다”(11.2. 외통부 대변인) 미국 캘리포니아 주정부가 규정을 바꾸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걸까? 한미FTA의 맨얼굴이다.
<대한민국과 미합중국간의 자유무역협정>은 조약이다. 헌법상 조약은 국내법과 같은 효력을 갖는다(헌법 제6조) 미국은 다른 나라와 조약이 아닌 행정협정(executive agreement)을 체결하기도 한다. 한미FTA가 그것이다. 물론행정협정이지만 미 의회가 승인한다. 그런데 미 의회는 행정협정 중에서 통상협정(trade agreement)에 대해서는 별도의 이행법을 만들어 내용을 규정함과 동시에 효력을 제한한다.
과연 한미FTA는 미국의 법과 제도, 행정조치와 실무관행을 어느 정도로 변화시키는 협정일까? 또박또박 읽어야 한다. 미국의 한미FTA 이행법의 핵심은 이렇다. “한미FTA 제1장(최초 규정 및 정의), 제11장(투자), 제21장(투명성), 제23장(예외) 및 제24장(최종규정)을 이행하는 데에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5장(의약품 및 의료기기)을 이행하는 데에 법, 행정부 규정 및 실무 변경은 필요없다”, “제7장(관세행정 및 무역 원활화), 제9장(무역에 대한 기술장벽), 제19장(노동), 제20장(환경)을 이행하는 데에 법의 변경은 필요없다”, “제10장(무역구제)을 이행하는 데에 미국의 반덤핑 또는 상계 관세 법률과 규정을 바꿀 필요가 없다.”, “제3장(농업), 제8장(위생 및 식물검역 조치), 제12장(국경간 서비스 무역), 제13장(금융서비스), 제14장(통신), 제15장(전자상거래), 제16장(경쟁), 제18장(지적재산권)을 이행하는 데에 법이나 행정조치의 변경은 필요없다.”
미국은 바뀔 거라곤 없다. 바꿀 필요도 없고 바꿀 생각조차 아예 없었다. 가장 고전적 의미의 순수한 ‘자유무역협정’ 그대로다. 그래서 바뀌는 거라곤 ‘무역관세’와 ‘수수료’다. 관세와 수수료를 인하하면 그만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역 관세와 수수료를 인하해야 한다. 실무관행을 바꿔야 한다. 행정조치를 바꿔야 한다. 경제질서를 우회전해야 한다. 이미 10여 개 이상의 법을 바꿨고 대기 중인 법만도 20여 개다. 세제도 개편해야 한다. 종국적으론 국민투표에 의하지 않고 헌법을 바꿔야 한다. 해석 개헌이 아니라, 헌법 아래 있는 조약이 헌법을 치받아, 헌법을 바꿔버리는 꼴이다.
2. 목표가 달랐다. 미 의회와 행정부는 한미FTA의 목표를 ‘관세협상이 아니라 규제완화, 민영화를 되돌릴 수 없도록 하는 것’과 ‘비관세장벽의 제거’에 두었다. 당연하게도 미 이행법 제102조는 “미국의 어떠한 법령에 불합치하는 협정의 규정 또는 어떠한 자나 상황에 대한 동 규정의 적용은 효력을 가지지 아니한다”고 정했다. 한국은 ‘글로벌 스탠다드’라는 이름으로 미국의 통상목표에 호응했다. 참여정부 시절 협상 책임자였고 지금은 삼성전자 사장으로 가 있는 김현종 통상교섭본부장의 말 “한미FTA는 낡은 일본식 법과 제도를 버리고 미국의 글로벌 스탠다드를 받아들이는 것이다.”(한미FTA 청와대 브리핑 제1호, 2006)
감세, 규제완화, 작은 정부를 내용으로 삼는 신자유주의 정부, 주주자본주의, 금융자본주의, 시장만능주의에 기반한 미국식 국가모델을 우리 국가모델로 채택하자는 것이었다. 어떠한 시민주권의 동의조차 없이 통상관료와 행정부 책임자의 정치적 결단으로 국가모델을 직수입하는 역사상 초유의 일이 발생하고 말았던 것이다. 시민주권에 대한 심각한 모반이었다. 그로부터 2년뒤 미국에 금융위기가 발생했다. 물론 우리도 1997년 외환위기를 겪었다. 당시 미국이 주도하던 IMF 처방전은 철저히 신자유주의에 기반한 것이었다. 초고금리정책이었다. 재정적으론 긴축을 요구했다.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해야 했다. 금융기관은 통폐합되고 정리해고는 너무나 당연했다. 그럼에도 국가의 존재이유를 묻는 이는 드물었다.
그러나, 2008년 당시 미국은 정반대의 처방전을 내놓았다. 초고금리가 아니라 초저금리였다. 재정적자의 나라 미국에서 강력한 재정 투입이 있었다. 대규모 인위적 경기부양에 나섰다. ‘대마불사(too big to die)’는 정치적 현실이 되었다. 금융기관을 살렸고 자동차 회사를 국가가 먹여 살렸다. 미국식 금융자본주의, 경제에 대한 최소개입 원칙은 온데간데 없었다. 돌이켜보면 한미FTA협상을 시작했던 2006년이나 협상을 강압적으로 비준하려 하는 2011년이나 역사와 현실에 대한 이해는 거의 무지에 가깝다. 더해 같은 점이라면 미국식 경제모델과 국가모델을 역사의 완성태로 이해하려 하는 점 또한 유사하다.
3. 한국과 미국, 두 나라간 헌법의 차이가 국가모델의 차이다. 미국은 계약의 자유를 근본적 권리로서 보호하며 사적 소유권에 대한 보호가 철저하다. 지적재산권에 대한 보호가 강력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협정에서 지적재산권은 미국의 주된 관심사다. 지적재산권을 규정한 <협정> 제18.10조 27항의 일부다. “(지적재산권)침해자의 금전적인 동기를 제거하려는 정책에 합치되게, 장래의 침해를 억지하기에 충분한 벌금형뿐만 아니라 징역형 선고를 포함하는 처벌. 각 당사국은 나아가 사법당국이 형사적 침해가 상업적 이익, 사적인 금전적 이득을 목적으로 발생하는 때에, 실제 형기의 부과를 포함하여 장래의 침해를 억지하기에 충분한 수준에서 처벌하도록 권장한다.”
지적재산권은 보호해야 마땅하지만 우리 사회는 전통적으로(물론 현실과 합치된다고 강변하고 싶지는 않지만) ‘책도둑은 도둑이 아니다.’라는 생각도 존재하는 사회다. 미국은 이런 사회 문화조차 바꾸고 싶어한다. 수단 하나로 형사절차에 깊숙이 개입하고 싶어했다. 형의 종류를 형법도 아닌 조약에 규정했다. 입법재량에 대한 중대한 침해다. 사법당국에는 강력한 처벌을 주문했다. 우리 대법원은 조약에 이런 내용까지 담긴다는 사실을 과연 알고 동의했을까 통상교섭본부가 이런 부분까지 약속하도록 시민주권은 미리 위임했던 걸까 사법부의 양형재량까지 한미FTA가 정해주었다. 미국식 법과 제도와 관행을 받아들이기 위해서 어쩔 수 없는 방편이었다.
4. 물론 우리도 계약과 시장에 기반한 사회다. 소유권중심 사회라는 것 또한 인정한다. 다만 우리 사회는 재산권은 보장하되 “재산권의 행사는 공공복리에 적합하도록 하여야 한다”(제23조 2항)고 정해 두었다. 시민의 기본권은 인정하되 “국민의 모든 자유와 권리는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법률로써 제한할 수 있”(제37조 2항 전단)다고 유보해두었다. 한국과 미국 헌법모델의 결정적 차이는 바로 이 시대의 우상 ‘경제’에 있다. 미국헌법에는 경제조항이 없다. ‘정부편’과 ‘기본권편’만으로 구성된 것이 미국헌법이다. 우리와 같은 ‘경제질서’편이 없다. 계약 조항과 적정절차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헌법의식이다.
우리는 다르다. 경제질서편을 두었고 그 곳에 9개의 조문을 두었다. 그 중에서도 결정적 의미는 헌법 제119조 2항에 있다. “국가는 균형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 우리 헌법재판소는 우리 경제질서를 이렇게 정의한다. “사유재산제를 바탕으로 하고 자유경쟁을 존중하는 자유시장경제질서를 기본으로 하면서도 이에 수반되는 갖가지 규제와 조정을 용인하는 사회적 시장경제질서로서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헌재 1996.4.25 92헌바47) 그래서 우리 헌법이 정한 경제질서는, 이런 헌법의 지배를 받는 국가모델은 ‘자유시장경제질서’와 ‘사회적 시장경제질서’의 조화에 있다. ‘공익’과 ‘사익’의 조화에 있다. ‘개인’과 ‘나라’의 균형에 있다. 특히나 경제 영역에 있어서만큼은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조화, 제조업과 농·어업의 조화 등 공익적 가치를 추구한다.
어쩌면 한미FTA 최고의 수혜자는 전국경제인연합회가 대변하는 재벌들이 될 것이다. 시장만능주의를 추구해 온 전경련에게 헌법 제 119조에서 127조에 이르는 경제편은 최악의 ’전봇대‘였기 때문이다. 한미FTA에 더 이상 농·어민 보호는 없다. 중소기업 보호도 없다. 시민주권에 대한 책임성과 반응성의 원리도 없다. 오로지 투자자의, 투자자에 의한, 투자자를 위한 국가만이 존재할 수 있다. 그 중심에 투자자-국가소송제도(ISD)가 있다.
월스트리트 초국적자본이 한국에 투자하는 경우를 예상해보자(미국의 자본을 미국인들만의 자본으로 이해하는 것은 지극히 협소한 이해다) 이들은 첫째, 우리 중앙정부나 시·도정부가 투자인가나 투자계약을 위반한 경우에 둘째, 직접 혹은 간접 수용으로 인해 자신들의 투자에 손해가 발생했을 경우 국제중재청구를 제기할 수 있다. 투자계약은 미국이 맺은 FTA 중 어디에도 없다. 그래서 설명이 필요하다. 투자계약은 한마디로 공공서비스 민영화계약이다. 사회적 인프라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계약이다. 이를 투자계약이라는 아름다운 이름으로 화장했다. “발전 또는 배전, 용수처리 또는 분배 또는 통신과 같이 당사국을 대신하여 공중에 서비스를 공급하는 권리 또는 정부의 배타적 또는 현저한 이용과 혜택을 위한 것이 아닌 도로, 교량, 운하, 댐 또는 배관의 건설과 같은 기반 시설 사업을 수행할 권리”(제11.28조)
상하수도 민영화, 전력 민영화 계약이고 대중이 이용하는 도로나 댐 등에 대한 건설계약이다. 미국 투자자의 광범위한 참여를 보장했고 지방정부나 중앙정부가 계약을 위반할 경우 곧바로 소송을 제기하도록 규정했다. 한나라당 정부가 인천공항 민영화를 양해각서(MOU)를 체결했는데 바뀐 새 정부가 이를 취소했다고 하자. 곧바로 소송감이다. 얻은 건 투자자의 민영화 참여권이요, 잃은 건 공공정책의 재량성이다. 후진할 수 없다. 시민을 위해, 공공복리를 위해 규제를 강화하는 것은 전진이 아니라 후진으로 인정된다. 개방과 자유화를 향해, 투자자들을 위한 기업국가만을 목표로 앞으로 내달려야 한다. 브레이크 없는 미국산 자동차에 동승한 형국이다.
5. 간접수용에 대한 우리 사회의 논란이 거세다. 미국 판례법에서 비롯됐기 때문에 전혀 경험해 보지 못한 새로운 법리이다. 세상 어느 나라도 헌법에 간접수용을 명문화한 나라는 없다. 오로지 재산권의 절대적 보장과 계약에 기초한 미국사회라서 가능한 법리이다. 문제는 공공정책의 재량성이다. 공공정책의 무기력화다. 물론 정부는 재량을 충분히 확보해 두었다고 방어한다. 일부는 맞고 거의는 틀렸다. “극히 심하거나 불균형적인 때와 같은 드문 상황을 제외하고는 공중보건, 안전, 환경 및 부동산 가격 안정화(예컨대 저소득층 가계의 주거여건을 개선하기 위한 조치를 통한)와 같은 정당한 공공복지 목적을 보호하기 위하여 고안되고 적용되는 당사국의 비차별적인 규제행위는 간접수용을 구성하지 아니한다.”(부속서 11-나 수용)담배에 대해 가격규제정책이 강화될 수 있다. 한국정부에게는 공중보건이지만 미국투자자에게는 간접수용이다.
조약에 대한 해석은 각자 유리하게 하는 법이다. 모든 공공정책은 복합적일 수밖에 없다. 정부정책이 공중보건 등 4가지 정책에 한정될 수도 없다. 달리 해석될 여지가 충분한 만큼 정부정책이 소송의 대상이 될 여지 또한 충분하다. 정책의 시민영향성을 고려하기보단 외국투자자에 대한 영향을 고려해야 할 판이다. 왜 정부는 시장에 대한 조정권한과 공공정책에 대한 결정역량을 스스로 축소하길 바라는 것일까. 왜 “경제가 사회적 관계에 포함되는 대신 사회적 관계가 경제 체계 안에 포함되어 버리는(폴라니)“ 상황을 희망하는 것일까. 왜 시민주권보다 투자자 재산권을 더 지켜야 된다고 생각하는 걸까. 인간의 존엄보단 계약의 자유를 최고 가치로 여기는 초시장사회, 초시장국가 모델을 왜 구태여 탐하는 걸까. 이해할 수 없는 일이다.
“흐릿한 먼 곳을 무턱대고 쳐다보지 말고 우리가 서 있는 주변의 복잡한 상황을 잠시 동안 조용히 응시하자” (토머스 칼라일)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