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11월 14일 월요일

“종이책 싫어”의 현상

경향신문 2011년 11월 9일자 기사, 박은하 기자의 보도. 스마트 기기로 한글을 깨친 아이들이 '종이책'을 싫어하게 되었다는 소식.

ㆍ멀티미디어 콘텐츠만 선호… 사고 단편화 우려

“엄마, 그림이 안 움직여. 재미없어.”

네살배기 아들을 둔 주부 정모씨(32)는 요즘 고민에 빠졌다. 정씨는 올해 초부터 아이패드의 유아용 교육 애플리케이션(앱)을 이용해 아들에게 한글을 가르쳤다. 토끼, 개구리 등 동물이나 사물의 그림을 만지면 그림이 커지면서 한글과 영어 이름이 뜨는 방식이다. 아이는 화면을 누르면 음악 소리와 함께 그림과 글자가 튀어나오는 것에 흥미를 느껴 혼자서도 아이패드를 가지고 놀았다.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아이패드로 한글을 익힌 아이는 그림책에는 통 손을 대지 않았다. ‘터치’에 즉각 반응하는 화면에 익숙해진 아이는 아무리 그림이 많아도 반응이 없는 책을 읽는 것은 지루해했다. 정씨는 “처음에는 아이가 놀이라고 여기며 자연스럽게 글자를 익혀 좋았는데, 요즘은 책을 읽지 않을까 봐 걱정된다”고 말했다.


[사진]8일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에서 어린이가 아이패드를 이용해 한글공부를 하고 있다. | 강윤중 기자

이는 단지 정씨만의 고민이 아니다. 스마트폰 사용자가 1000만명을 돌파하는 등 스마트 기기 사용이 확산되면서, 이를 아이들 교육에 활용하는 사람도 늘고 있다. 무료 앱인 ‘뽀로로 첫낱말놀이’나 ‘한글익히기’는 안드로이드 마켓에서 10만 건 넘게 다운로드됐다.

‘맘스홀릭’ 등 인터넷의 유명 육아 커뮤니티에서도 유아용 교육 앱에 대한 정보를 주고받는 게시물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인터넷커뮤니티 이용자 ㄱ씨는 “스마트 기기는 스스로 터치하며 익힐 수 있어 아이들의 몰입도가 뛰어나다”며 “어차피 나중에 아이들이 (스마트 기기를) 가지고 놀 것인 만큼, 교육용 앱을 깔아 두면 아이들 떼 쓰는 것도 해결하고 공부도 시킬 수 있어 일석이조”라는 글을 올렸다. 하지만 예비엄마 ㄴ씨는 “어른도 스마트폰을 쓰면 기억력이 퇴화된다고 하는데, 어린아이들이 써도 되는지 걱정된다. (아이를 낳으면) 난 이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했다.

미국의 공공과학도서관 온라인 학술지 ‘PLoS One’은 지난 6월 성인 대상 실험에서 “스마트 기기에 지나치게 중독되면 느리게 변화하는 현실에 무감각해지는 ‘팝콘브레인’으로 뇌 구조가 바뀐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은 바 있다.

뇌의학 전문가인 서유헌 서울대 의대 교수는 “유아들의 뇌는 성장 과정에 있는 만큼, 어른보다 자극에 더 강하게 반응하고 영향을 받는다. 느리더라도 책을 통해 종합적 사고를 익히게 하는 편이 낫다”고 밝혔다.

이수열 청송초등학교 교사도 “깊이있는 사고는 단편적으로 단어를 아는 것이 아니라 긴 글을 보는 과정에서 형성되는데, 너무 일찍 자극적 미디어에 익숙해진 아이들은 글을 멀리하게 된다”며 “빌 게이츠가 ‘내 아이에게 컴퓨터를 사 줄 것이지만 그보다 먼저 책을 사줄 것’이라고 한 이유를 생각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사는 “같은 맥락에서 2015년부터 초등학교 교과서를 태블릿PC로 전면 교체한다는 정부 방침도 걱정된다”고 덧붙였다.

▲ 팝콘브레인

팝콘처럼 튀어오르는 것에는 반응하지만 느리게 변화하는 실제 현실에는 무감각해진 뇌. 스마트폰과 태블릿PC 등을 활용한 멀티태스킹에 익숙해지면, 뇌의 생각 중추인 회백질의 크기가 줄어들어 이 같은 뇌로 변한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
박은하 기자 eunha999@kyunghyang.com

참고1: CNN 2011년 6월 23일자 기사, Does life online give you 'popcorn brain'?
Over time, and with enough Internet usage, the structure of our brains can actually physically change, according to a new study. Researchers in China did MRIs on the brains of 18 college students who spent about 10 hours a day online. Compared with a control group who spent less than two hours a day online, these students had less gray matter, the thinking part of the brain. The study was published in the June issue of PLoS ONE, an online journal.

참고2: 인터넷 중독 장애 청소년의 미세 이상Microstructure Abnormalities in Adolescents with Internet Addiction Disorder
위의 기사에서 언급되어 있는 PloS ONE의 논문. 이 문건에는 인터넷중독에 대한 각종 조사 결과가 주석으로 붙어 있다. 이후에도 참고할 만한 문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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