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형 일자리 사업에 대하여/ 김동춘 한겨레 칼럼, 2018년 11월 13일
2015년부터 추진된 광주형 일자리 사업이 기로에 놓였다. 광주시와 현대자동차가 각각 530억원을 투자하여 연간 10만대의 경차를 생산하자는 프로젝트가 현대차노조와 민주노총의 반발로 위기에 놓였다.
애초 광주의 노사, 시민사회와 지방정부(노사민정)가 합의하여 적정 임금, 적정 노동시간, 노사책임경영, 원-하청 관계 개선을 조건으로 지역의 일자리 창출 사업을 추진해왔고, ‘사회통합형 일자리’라고 불리듯이 지역의 심각한 경제위기를 극복하고 청년들의 외지 유출을 차단하며 지역사회의 모두가 상생할 수 있는 대안으로 추진했다.
지금 한국에서 지역경제 붕괴와 심각한 청년실업이 광주만의 문제는 아니지만, 광주는 민주화의 상징적인 장소로 노사민정이 일자리 확보와 사회적 타협을 동시에 추진할 수 있는 상대적으로 유리한 곳으로 간주되었다. 그런데 새 회사 노동자들의 임금이 기존 완성차 정규직 평균 연봉의 반인 4000만원 안팎으로 책정되면, 기존 노동자들의 임금이 하향 압박을 받게 될 것이고 이 공장이 또 하나의 하청 조립공장이 될 가능성도 크기 때문에 노동 쪽이 반발한다.
노조 쪽의 반발은 결국 임금과 신뢰 문제에 기인한다. 그동안 정부의 노동정책은 거의 노동 쪽의 양보만 요구했기 때문에 노조 쪽은 이 안도 결국은 기존 정규직 노동자들의 노동조건 악화만을 초래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그리고 애초 내걸었던 이상인 연대에 기초한 일자리 창출의 정신은 사라지고 투자 유치 성사 쪽으로 무게가 실린 것도 노동 쪽의 불신을 부른 이유다.
광주형 일자리 모델의 성공 여부는 문재인 정부의 경제·노동정책뿐만 아니라 한국에서 사회적 타협, 지역 일자리 창출의 성패를 가름할 매우 중요한 사안이다. 노동자 연봉은 낮추더라도 법정 노동시간을 지키고 지방정부가 주거·의료·교육 등 사회임금으로 부족분을 보전하고 원-하청 관계를 개선하려 한다. 그래서 지금 광주시 당국은 물론 광주지역의 직업계 고교 학생들이나 대학생들도 이 일을 꼭 성사시켜달라고 호소한다.
애초 광주형 일자리 모델은 독일과 미국 자동차공장의 포용적 노사관계와 숙련 형성, 고용친화적 생산방식으로 기업의 혁신을 도모하고, 극심한 임금격차와 수직계열화된 생산방식의 모순을 개선하는 사회경제모델 구축의 이상을 갖고 시작했다. 즉 지역, 기업, 그리고 노동이 상생할 수 있는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한국의 다른 지역, 다른 산업에도 확산시키려는 구상이 있었다. 그러나 이런 이상은 다소 굴절되었고, 대기업과 정치권이 솔선수범해야 하는 원-하청 관계 개선, 새로운 거버넌스 구축 등은 거의 거론되지도 않은 것 같다.
노동 쪽의 우려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이 ‘나쁜 일자리 창출’, 심지어 ‘정경유착’이라고 단정하는 민주노총의 입장이 타당한 것 같지는 않다. 완성차 정규직의 고임금은 그들의 숙련이나 직무능력에 대한 보상이 아니라 상당부분 그들을 고용한 재벌 대기업의 독점적 지위가 준 것이고, 그 일부는 청년, 비정규직, 중소기업 노동자들의 몫이 이전된 것이다. 사회적 안전망이 매우 취약해서 직접 임금으로 노후·복지·주거·의료 등 거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하는 한국에서 임금 하락은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모는 것이 맞지만, 현재와 같은 노동 내 극심한 격차, 연공 중심의 보상체계, 낮은 사회적 임금 체제를 그대로 둔다면 정규직이 누리는 양질의 일자리도 지속되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회사의 경영 위기, 청년실업, 지역경제 위기를 노조가 책임질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차노조나 민주노총은 ‘직접 임금’에 집착하는 관성에 머물러 있기보다는 사회임금 확대, 숙련 향상을 통한 실질적 교섭력 강화에 나서야 한다. 그리고 지역사회의 요구를 무시하고 직접 임금에 사활을 걸면 더 고립될 가능성이 크다.
물론 한전 부지 사옥 매입에 10조원을 지출한 현대자동차가 그 100분의 1에도 못 미치는 투자를 하려는 것으로 봐서 이 사업에 별로 무게를 싣는 것 같지는 않다. 한국 자동차산업의 심각한 위기, 특히 중국 시장에서의 경쟁력 상실은 매우 심각한 사태이지만, 그동안 자동차업계는 주로 자동화·모듈화·외주화로 비용 절감을 추진해온 관성을 버리고 중소기업에 대한 약탈적 지배를 청산하고, 노사 상생과 숙련 형성에 기초한 기술혁신에 매진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정부는 경제민주화에 더 박차를 가해서 노동 쪽의 신뢰를 얻어야 한다. 모처럼 마련된 사회협약의 기회를 살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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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opinion/column/870107.html#csidxb164df5164dee43b4c791d3b06bd8a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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