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독후감을 없애자/ 백원근 2018.11.01
올해 2월 학교도서관진흥법이 개정된 데 이어 8월에 개정된 시행령은 초중고 학교도서관에 전문인력을 두도록 규정하고 있다. 하지만 교육부가 과연 준법 의지가 있는지 의심스럽다. 내년도 사서교사 선발 예정 인원은 163명으로 올해의 228명보다 65명 줄었다. 전국 1만1647개 초중고교 가운데 사서교사가 있는 학교는 고작 890개교에 불과하다. 학교도서관 전문인력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비정규직 사서까지 합하고도 전담인력이 배치되지 않은 곳이 전체 학교의 절반에 가깝다. 현재 학교도서관(대부분 교실 두 칸짜리 학교도서실)은 시설, 전문인력, 신간 도서 확보, 프로그램 등 모든 면에서 학생들이 가고 싶은 공간과는 거리가 있다.
대한민국 공교육의 더 큰 문제는 학생들이 책을 멀리하도록 학교가 앞장서는 데 있다. 점수와 입시만 중시하는 교육환경도 그렇지만, 생애 독서습관을 만들어야 할 시기에 오히려 강제 독서 교육으로 책이 싫어지도록 만든다. 대표적인 것이 독후감 쓰기다.
<2017년 국민 독서실태 조사>를 보면, 초중고 독서교육의 대부분은 ‘독후감 쓰기’다. ‘책의 선택과 읽는 방법’을 알려주는 학교는 4곳 중 1곳에 불과하다. 심지어 ‘독서 지도가 전혀 없다’는 학생 응답이 7.5%나 된다. 또한 ‘선생님이 책 읽기를 권장한다’는 응답도 56.4%에 머물렀다. 지난 9월 열린 2018 책의 해 포럼 ‘읽는 사람, 읽지 않는 사람’에서는 사람들이 왜 책을 읽지 않는지 조사한 결과를 발표했는데, 독후감 쓰기 등 학창 시절에 강요된 부정적 독서 경험이 평생 책을 멀리하는 주된 요인이라는 분석이 나왔다.
만약 어린 시절부터 영화 감상평을 써내기 위해 영화를 감상하라고 한다면 영화가 얼마나 싫어질까. 그런데도 독서와 독후감은 오랜 세월 ‘읽기-쓰기’의 한 쌍으로 신봉됐다. 독후감은 교사가 학생의 독서 여부를 확인하기 위한 편리한 수단이자 감독의 기제일 뿐 학생의 읽기 습관을 증진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극소수 학생에게 독서교육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대다수 아이에게는 ‘책은 지겨워!’라는 인식을 뿌리내리게 했다. 기성세대의 낡은 독서교육관을 언제까지 미래 세대에게 강요할 것인가.
이제 학교에서 독후감을 없애야 한다. 그 대신 도서관을 도서관답게 하고, 교실마다 학급문고를 만들어야 한다. 아침 독서 시간, 낭독 무대, 친구들에게 읽어주기 프로그램, 관심사에 따른 1인 1 독서동아리 활동을 권장해야 한다. 아이들이 책과 놀도록 학교를 혁신해야 한다. 책을 무거운 숙제가 아니라 게임보다 더 재미난 놀이로 여기도록 긍정적 경험을 쌓아줘야 한다. 다양한 책을 통해 맘껏 상상하고 꿈꾸고 배우고 공감하고 떠들며 웃을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교사도 앞장서야 한다. 감동적인 책의 한 구절, 밤새 읽었던 재미난 소설을 이야기해주는 선생님이 늘어나길 바란다. 낡은 지식과 금방 부식될 정보만 전수하는 수업이 아니라, 스스로 생각하는 힘을 기르려면 책 읽기가 최고라는 것을 아이들이 깨닫도록 도와야 한다. 미래 세대가 ‘독후감 의무’ 대신 ‘책으로 꿈꿀 권리’를 보장하라.
백원근 책과사회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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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868469.html#csidx9113f5f1236ddb88396e2dffc02551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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