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3월 24일 수요일

어린이 인문학교

스스로 'B급 좌파'라고 하는 김규항 씨.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라는 잡지를 펴내고 있다. 구독은 하지 못하고, 우연찮게 몇 권을 손에 잡고 읽어본 적이 있다. 어떨까. 이 잡지가 지금의 어린이들에게 우리 어린 시절의 <어깨동무>와 같은 그런 잡지인 것일까? 어린이들은 이 잡지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궁금하다.

 

아무튼 김규항 씨가 하는 여러 가지 일 가운데 눈에 띄는 일. '어린이 인문학교'를 연다는  기사를 때늦게 스크랩해놓는다. 김규항 씨가 자신의 블로그에 쓴 것을 보면, 보도자료를 배포하기도 전에 손제민 기자가 먼저 찾아와서 그 열정에 놀랐다고 한다. 그 기사다. 경향신문 2010년 3월 8일자. "얘들아, 공부를 왜 하는지 아니?"

“얘들아, 공부를 왜 하는지 아니?”

 

ㆍ‘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씨 ‘어린이 인문학교’ 개설

“돈 많이 버는 법 배우는 게 경제 공부 아니에요?” “예쁘게 꾸미는 게 디자인 아닌가요?” “생태? 환경오염 막는 거잖아요.” “어렵고 힘든 일 하는 사람이 노동자잖아요. 전 커서 노동자는 되지 않을 거예요” “역사요? 왕 이름이랑 연도 외우기, 지겨워요!” “100점 맞고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서 공부하는 거잖아요.”

 

지금대로라면 경제, 디자인, 생태, 노동, 역사, 공부에 대한 어른들의 생각을 아이들도 그대로 따라갈 가능성이 높다. 그로 인해 어떤 미래가 만들어질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어린이 교양지 ‘고래가 그랬어’에서 마련한 ‘어린이 인문학교’는 이들 주제가 ‘진짜’ 의미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이들과 생각해 보는 자리이다.

‘고래가 그랬어’ 발행인 김규항씨(48)는 “ ‘어떤 게 잘사는 것인가, 공부는 왜 하는 것인가’라는 질문을 때가 덜 묻은 아이들에게 던져보고 싶었다”고 말했다.

첫 강의인 ‘경제 이야기’는 경제가 “적게 투여해서 많이 버는 것만 의미”하는 현실에서 경제의 진짜 의미는 ‘살림’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지금도 어린이 경제교실은 넘쳐납니다. 강남 아이들은 실제로 주식 투자도 해본다지요. 물질적 풍요의 상징인 돈에 대해 어떤 생각을 가져야 할지, 금욕적인 삶과 돈의 노예가 되는 삶의 양 극단 사이 어디쯤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얘기해 볼 겁니다.”

‘디자인 이야기’는 디자인이 단순히 겉을 예쁘게 포장하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를 조직하는 것임을 알려준다. ‘생태 이야기’는 환경 운동이 현 체제하에서 오염을 줄이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생태주의는 환경문제를 일으키는 현대 문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이라는 점을 부각한다.

‘공부 이야기’는 인문학교 전반에 흐르는 교육에 대한 강의인 만큼 김씨가 할 말이 많은 듯했다. “그간 대안교육은 권위주의 교육에 대한 대안을 찾다보니 자유와 자율만 강조했습니다. 그와 동시에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 인내하고, 스스로 책임지는 능력을 배우는 것입니다. ‘하기 싫은 것’과 ‘하기 싫다고 말할 수 있는 권리’를 혼동하면 안 됩니다.” 김씨는 ‘영성’의 의미를 어릴 때 느껴보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모든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게만 교육되고 있는 아이들에게 ‘의미 없는 시간’ ‘느린 시간’은 허용되지 않고, 영성적 충만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것이다. “영성 없이 자라면 성인이 되어서도 문제입니다. 대기업에 취직해 돈을 잘 벌어도 중년 이후 내적인 공허함 때문에 자살까지 하는 사람들이 있어요. 이건희 같은 사람을 부럽다고만 볼 것이 아니라 불쌍하다고 볼 측면이 있는데 지금 교육 목표는 아이들의 영성을 제거하는 데 있어요.”

김씨는 “세계 어디에도 이런 나라가 없다. 이렇게 가면 망한다”고 했다. 지금처럼 창의성과 영성을 죽이는 교육만 하다간 “그 알량한 신자유주의조차” 할 수 없다고 한다.

강의는 강사들이 미리 만든 개요를 아이, 부모들에게 보여주고 어린이 패널을 선정해 토론을 하는 식으로 이뤄질 예정이다. 강의 시간은 2시간으로 잡아두었지만 “아이들이 만족할 때까지” 할 것이라고 한다. 김씨 말대로 “부모들이 조금 민망해 할 수도 있는 자리가 될”지 모른다. 아이들 입에서 그 전엔 전혀 문제 삼지 않았던 질문을 받을 각오도 해야 하기 때문이다.

‘고래가 그랬어’는 이후 정치, 가족, 종교, 소수자 등을 주제로 한 2기 인문학교도 개설할 예정이다. 5월에는 ‘어린이 행진’도 준비 중이다. 서울 광장에 집회 신고도 내고, 아이들의 권리를 외칠 수 있는 장을 만들 계획이다. 중·고생들은 피켓을 들고 거리로 나오기도 하지만 초등학생들은 전적으로 어른들에 의해 대변되는 현실에서 아이들 스스로 만든 문화 퍼포먼스를 하게 하자는 취지다.

“우리 아이들에게 외국 아이들이 어떻게 사는지 알려주면 아마 폭동이 날 것”이라고 믿는 김씨 역시 아이들이 모두 같지는 않음을 안다. “강남에서 ‘고래가 그랬어’ 어린이 토론을 진행하다 실패한 적이 있어요. ‘아이들끼리 서로 경쟁을 해야 하는 것 아니냐’ ‘살아남으려면 힘을 길러야 하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초등학생 입에서 나오는 거예요. 아이들이 자기 생각 이전에 어른 얘기를 하는 겁니다.” 김씨는 그만큼 어린이 인문학교 같은 작업이 시급하다고 본다.

“직업 종류가 1만가지인데, 부모들이 원하는 직업은 20가지밖에 안 됩니다. 대부분 아이들이 커서도 실패자로 살아가게 되는 구조를 부모들이 앞장서 만들고 있습니다. ‘이명박이 우리 아이들 다 죽인다’는 비판도 해야 하지만 그보다는 부모들의 욕구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린이 인문학교는 서울 합정동 복합문화공간 벼레별씨에서 열린다. 수강료 5만원. 신청은 www.goraeya.co.kr 02)333-4201/3075.

손제민 기자 jeje17@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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