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카페 '교육주권운동'에 실린 글이다.
우리 사회는 '일제고사만 준비한 초딩 반년 6학년 담임 선생님'의 생생한 목소리를 들어야 한다.
6월2일 교육감이 새로 선출되었다. 서울, 경기, 전북 등에 진보성향의 교육감이 당선되면서 MB 교육의 야심작인 '일제고사'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하지만 곧 여름방학이다. 1학기가 끝난 것이다. 당선된 교육감들도 7월 13일~14일에 있을 일제고사에 대해서 논란은 많되 큰 영향을 미치지 못 하고 있는 듯 보인다. 새로운 교육감이 되면서 혹시나 기대했던 선생님들은 조금 실망스러운 표정들이다. 일제고사가 10월에서 7월로 당겨진 이유가 교육감 선거를 염두한 일정이 아니었나하는 의심도 해보게된다. 한 학기 동안 6학년 아이들과 살아온 일제고사 담당 담임선생님의 1학기 소회를 보내주신 분이 있어 내용을 정리해 봤다. 보내준 사연의 제목은 '일제고사 만 준비한 초딩 반년 6학년 담임 선생님'이다.
특명? 부진아를 없애라!
드디어 왔다. 지긋지긋한 시험 준비의 마침표를 찍는 날이 왔다. 사흘 후에 국가성취도 평가일이다.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 보는 날이다. 6학년 담임을 맡고 아이들과 시험 준비로 한 학기를 보냈다. 아이들도 너무 지겹고 힘든 나날이었겠지만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을 맡은 나도 너무 지겹고 힘든 날들이었다. 작년까지 10월13일-14일에 보던 일제고사가 갑자기 7월13일-14일로 앞당겨지면서 6학년 1학기는 내내 시험 준비에 시달려야 했다. 작년에 없던 중간고사도 일제고사를 대비해야 한다는 이유로 새로 생겼다. 작년 일제고사 성적이 우리 지역에서 꼴찌에 가까웠다는 이유였고, 학력을 올려야 한다는 지상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사람은 학교에 존재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모든 학교의 행사와 일정은 모두 일제고사에서 높은 성적을 올리는 것으로 맞추어져 버렸다.
우선 부진아를 없애야 했다. 가장 부진아가 많은 과목은 수학이었다. 그래서 수학나머지 공부가 시작되었다. 3월초에 본 진단평가를 근거로 60점 미만의 아이들이 남겨졌다. 아이들은 너무도 싫어했다. 일단 공부를 못 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친구들에게 알려지는 것이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중간고사 시험을 보니 국어, 사회, 과학의 부진아가 많이 생겨났다. 6학년 사회는 역사를 배우는데 단군신화에서 87년 6월항쟁까지 배우는데 너무 어렵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재미있게 배워도 시험으로 나오는 역사문제는 너무도 까다롭다. 국어 지문은 너무 어렵고 길어서 항상 아이들이 어려워하는 과목이었고, 과학은 외울 것이 너무 많다. 생물의 분류, 동물의 분류, 지진, 암석등 외우야먄 하는 어려운 내용들이 많다.
7교시 남기고, 전기세 때문에 에어콘 끈 채 공부하라는 학교
시험을 통해 점점 줄어야 할 부진아가 가면 갈수록 더 많이 생겼다. 학교는 시험을 볼 수록 당황했지만 별다른 뽀족한 방법을 찾지 못 했다. 그래서 7교시가 시작되었다. 그냥 무식하게 학습시간을 늘려 외우고 문제를 풀게만 했다. 학교는 문제지 회사에서 가져다준 국가성취도 평가 문제지를 풀게 하고 채점해 주라고만 했다. 아이들은 격렬히 항의했다. 7교시는 하기 싫다는 것이었다. 문제만 풀고 있는 시간이 너무도 지겹고 공부도 안 된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의 항의에도 불구하고 인권, 아동의 권리 등은 온데 간데 없고 7교시는 강행되었다.
나는 반대했지만, 혼자서 막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기말고사를 보았다. 인천시 교육청에서 만든 문제은행 문제로 출제하라는 지침대로 기말고사를 출제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중간고사보다 평균이 5점 이상 떨어져 버린 것이다. 기말고사 성적에 실망한 아이들은 6월말 기말고사를 본 이후부터 문제를 성의 있게 풀지 않는다. 너무도 지겨워서 답을 베끼거나, 아무거나 찍어놓는다. 나와 다른 교사들도 더워지는 날씨와 늘어나는 아이들의 짜증에 지쳐버렸다. 7교시를 시켰으나 행정실은 전기세가 너무 많이 나온다는 이유로 에어콘 가동을 해 주지 않았다. 덥고 짜증나는 교실에 더 이상 교육은 없다. 그저 돈만 아끼려는 학교, 문제풀이만 하라는 학교라는 거대한 학원만이 남았다.
어떤 학교는 아이들은 저녁 9시 10시까지 자율학습을 시키고 있다는 충남 지역의 이야기가 들려온다. 어떤 학교는 노는 토요일에도 학교에 등교시켜 문제를 풀게 하는 학교가 있다는 소문도 들린다. 그리고 6학년 담임선생님들이 모일 때면 '우리 학교는 너무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는 것은 아냐'라는 걱정을 한다. 아마도 전국에 있는 모든 초등학교 6학년 교사들의 무서운 고민일 게다.
등수 때문에 진실된 참교육은 사라지고
어떤 학교에서는 기말고사 국어문제로 “오케이”가 외래어라는 답지를 맞는 것으로 고르는 문제가 출제되었다. 한 아이가 네어버와 표준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오케이는 외래어가 아니라 외국어라는 문제를 제기했다. 담임은 동 학년에 옳은 답이 없으니 이 문제를 모두 정답처리할 것을 이야기했으나, 지도서에 외래어라고 나와 있는 것을 근거로 다수결로 외래어라고 결정하였다가, 학부모들의 항의로 정답처리하는 해프닝이 있었다. 그런데 이 사건에서 중한 대목은 6학년의 한 교사를 빼고는 모두 오케이를 지도서에 나와 있는 대로 외래어라고 가르친 것이니 우리에게는 잘못이 없고, 외래어로 처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는 것이고, 이를 정답처리하면 피해자가 생기기 때문에 정답처리를 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피해자가 생기는 것은 이 문제를 맞춘 아이들이 상대적으로 모두 정답처리 할 경우 등수에서 피해를 본다는 것이었다. 시험이 아이들이 제대로 배웠는지 아닌지! 진실이 무엇인지를 갈르쳐야 할 초등학교 교육현장에서 진실은 사라지고, 등수만이 최고로 고려해야 할 교육적 관심사가 되었다는 것을 말해주고 이 사실이 너무도 나를 슬프게 한다.
일제고사는 교육이 아니다. 이해하지도 못하는 수많은 지식을 아이들에게 강제로 주입하고 있을 뿐이다. 시험이 끝나면 일주일도 안 되어서 모두 잊어버릴 쓸데없는 지식을 선생님은 가르치고 아이들은 시험을 보고 있다. 그리고 아이들은 배우는 것이 즐거고 재미있는 것이 아니라 지겹고 짜증나는 것으로 바뀌어 있었다. 성적으로 나타는 결과만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게 아이들에게 가르치고 있게 되었다. 일제고사를 시작된지 3년이다. 일제고사 효과는 대단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는 체념과 무기력감이 학부모들에게 횡횡하고 있다. 외국으로 이민 갈 수 없는 처지를 원망할 수밖에 없는 학부모와 상담해야 하는 나는 '대한민국의 6학년 담임교사'다.
내가 반년 동안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6학년을 가르치는 일은 힘들지만 보람 있는 것이었다. 아이들이 졸업하고 초등학교의 담임을 기억하고 찾아오는 기쁨도 있지만, 사춘기의 방황이 시작되는 아이들과 의미 있는 추억들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많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올해 6학년 담임의 반년은 일제고사 준비로 시작해서 일제고사를 보는 것으로 끝나 가고 있다. 난 기말고사가 끝나고 교장의 반대를 무릅쓰고 반 전체 아이들과 함께 에버랜드에 토요일 수업을 마치고 다녀왔다. 아이들은 정말 행복한 얼굴로 신나게 놀았고 밤 10시 가까운 시간에 돌아왔다. 그리고 난 생각했다. 내가 반년 동안 아이들에게 무슨 짓을 한 것일까?
"일제고사는 아이들에게 할 교육이 아니다!"
일제고사를 사흘 앞둔 지금 양심을 가진 대한민국의 교사인 내가 외치고 싶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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