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글이다. 통렬하다. 보수진영의 분열이 가속화할 거라고 보아도 될 만하다. 또한 <중앙일보>라는 보수언론 권력이 이명박 정부와 거리두기를 본격적으로 할 채비를 갖추기 시작했다고 보아도 될 만하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 필요한 것은 '협객'도 아니고 '리빠똥'도 아니다. 진지하게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내기 위해 초석을 다지는 사람들이 필요하다. 그 사람들은 필부필부의 시민들이다.
일치일란(一治一亂)이라 했다. 치세(治世) 뒤엔 난세(亂世)가 온다. 난세엔 군웅이 할거하고 이들을 제압해 우뚝 선 자가 새 왕조의 문을 연다. 중국 왕조사를 이런 순환 사관(史觀)으로 풀이할 때, 한나라의 고조 유방(劉邦)이 가장 특징적인 인물이다. 유방은 동네의 한갓 건달에 지나지 않았다. 라이벌 항우보다 집안 내력도 미천했고 학력 또한 보잘것없었다. 힘이나 싸움으로 천하장사 항우를 어찌 당할까. 그런데도 집권은 항우가 아닌 유방이 했다. 어째서일까. 유방의 통합적 리더십 때문이라고 중국의 인문학자 이중톈(易中天)이 갈파한 바 있다. 일본의 한 학자가 유방 집단에 관한 연구를 했다. 유방 집단은 임협 협객정신으로 무장된 강인한 조직이다. 중국사를 관통하는 이 협객정신이 권력 창출의 에너지라는 분석을 했다. 명나라를 세운 주원장, 소설 『수호지』의 영웅들, 이를 탐독했던 마오쩌둥의 신중국 건설 등이 이 협객정신과 일맥상통하고 있다.
우리의 이른바 민주정권도 일치일란을 거듭하며 5년마다 새 정권이 들어선다. YS, DJ, 노무현 정권 모두 개국공신, 가신그룹이 있었다. 상도동계, 동교동계, 386세력들이 그들의 주군을 선생님처럼, 형님처럼 모시며 거리투쟁을 했다. 가난한 살림에 잔돈푼 쪼개 쓰며 선생님을 위해, 또는 형님을 위해 감옥도 마다하지 않았다. 민주화를 위한 의리와 협객의 조직체였다고 볼 수 있다. 이들이 정권을 잡은 뒤 권력을 나누고 농단했지만 한때 민주화 투사였다는 점에서 그래도 얼마쯤 접어주고 이해할 만한 구석도 있었다.
그러면 이명박(MB) 정권은 어떤가. 독재와 맞서 거리투쟁을 한 적도, 고통분담의 쓰라린 추억도 없다. 시대적 사명을 위해 조직된 협객단체라기보다 ‘고소영’처럼, ‘S라인’처럼 이해집단끼리 뭉친 컨소시엄 형태라 할 만하다. YS, DJ정권이 그나마 민주화를 위한 가치의 정치를 추구한 집단이라면 MB정권의 추종자들은 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이익추구 세력이었다고 볼 수 있지 않은가.
지금 세상을 떠들썩하게 하는 영포횐지 선진 무슨 연대인지 하는 조직을 보라. 이들이 잘나갈 때 회원이 4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이게 무슨 조직인가. 결국 임기 5년 내내 자리를 탐내며 끝없이 탐욕을 부리는 권력 대기조 아닌가. 촛불시위로 이명박 정권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몰렸을 때 이들 조직이 대통령을 위하여 또는 보수정권을 위하여 짹 소리라도 한번 낸 적이 있는가. 허공의 숫자를 남발하며 그들이 마치 권력을 창출해낸 투사고, 용사인 양 거드름 피우며 국민을 깔보고 사찰하지 않았는가.
적어도 이명박 후보에게 한 표를 던진 사람이라면 다 안다. 몰락하는 중산층이 더 이상 좌파에게 나라살림을 맡길 수 없다고 판단했기에 한 표를 던졌다. 기업을 크게 해본 후보에게 정권을 맡기면 경제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기에 한 표를 던졌다. 청년실업 구제해줄 사람 그밖에 없다 해서 젊은이들이 너도나도 몰렸다. 종부세 폭탄 때문에 못 살겠다고 강남 아줌마들도 나섰다. 이래서 500만 표가 넘는 차이로 승리한 것이다. 그런데 지금 보니 엉뚱한 자들이 권좌 뒷전에서 재미 보고 위세 부리며 권력을 농단하고 있지 않은가.
작가 김용성의 작품 중에 『리빠똥 장군』이 있다. 1970년대 한국일보에 연재됐던 사회풍자 소설이다. ‘리빠똥’은 똥파리를 거꾸로 쓴 말이다. 한 대령이 장군이 되기 위해 물불 가리지 않고 권력에 아부하고 부하를 닦달하자 부관이 나폴레옹 시대 유명 장군이라면서 리빠똥 장군이란 희화적(戱畵的) 별명을 붙여준다. 권력을 향해 날아드는 똥파리들의 행군은 군사정권이든 민주정권이든, 좌파정권이든 우파정권이든 고금동서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해줄 뿐이다.
쉽고 간단하게 요약하자. 재산을 쌓고 힘을 축적하는 게 보수정권이라면 이를 나누어 고르게 잘 쓰자는 게 진보정권이다. 지금은 부를 쌓고 물을 가득 채우며 군사를 기르고 힘을 축적해 부국강병의 터전을 다질 때다. 그런데 지방선거 끝나자마자 닥치는 이 레임덕 강풍을 어쩔 것인가. 한 정권의 성패가 아니라 한 나라의 미래가 달린 문제다. 긴 안목의, 폭넓은 정치적 조망이 필요하다. 진보 10년이면 보수 20년은 집권해야 부를 쌓고 물을 채워 균형을 이룰 수 있다. 똥파리 보수는 물러가고 건전한 진짜 보수들이 대연합을 해야 정권을 재창출할까 말까다.
‘리빠똥’ 무리들이 권력을 농단하고 권력 싸움에 정신을 가누지 못한다면, 이 정권은 역사 앞에, 그를 지지했던 국민 앞에 고개를 들 수 없게 된다. ‘리빠똥’의 척결, 이것이 세종시·4대 강보다 더 크고 화급한 과제다.
권영빈 경기문화재단 대표·전 중앙일보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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