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자 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의 글을 읽었습니다. 제목은 철학과 정의. 박 교수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입니다.
박노자는 오늘날의 한국의 실상을 '재분배적 정의가 사라진 착취공장형 국가'라고 지적하고 있습니다. 이런 현실 속에서 김상봉 교수와 같은 분을 '복지주의적 진보 세력의 후보를 위해 지원유세하는 진정한 철학자''라고 추켜세우고 있습니다. 보편의 상공에서 특수성이라는 이름의 땅으로 뛰어내리기는 쉽지 않은데 김상봉 교수는 구체성이라는 이름의 땅에 발을 딛고 서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정의의 문제. 정의의 개념은 철학의 출발점이라고 박 교수는 말하고 있습니다. 박 교수가 말하듯, 육아, 교육, 의료, 환경, 취업기회와 같은 부문들을 균등하게 나누는 사회로 나아가는 사회가 정의로워지려는 사회이겠죠.
또한 "복지주의자들의 국회 입성은 착취공장형 국가가 약간이라도 다수의 권익이 지켜지고 사회적 정의가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변모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봐야 합니다."라고 박 교수는 말합니다. 하지만 '미래의 씨앗'이 이렇게 뿌려진다는 사실을 확인한다고 하더라도, 야당의 원칙 없는 단일화만 주목하는 언론 속에서는 서민 수탈경제 심판과 대안 중심의 진보재구성, 그리고 아직 우리 시민들에게 속속들이 소개되지 못한 '기본소득' 정책 등에 대한 보도는 눈을 부비고 살펴보아도 찾아보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저는 현재 우리의 '공론의 장'에서 가장 큰 문제는 무슨 정당과 정파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의제 설정의 기능의 파괴라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그래서인지 박노자 교수가 확인한 '미래의 씨앗'이 지닌 긍정적 밝음이 아니라 우리 사회의 부정적 어둠을 거듭 확인하였다고 말씀 드리고 싶습니다. 아직은 어둡고, 갈 길이 멉니다.
철학과 정의
박노자(노르웨이 오슬로국립대 교수/한국학)
그저께 전남대 철학과의 김상봉 교수님이 은평(을)에서 출마하는 진보세력 후보 금민 (사회당)을 지지하는 의미에서 지원유세를 벌이셨다는 소식을 듣고, 다시 한 번 제가 김 교수님을 존경하는 이유 중의 하나를 깨달은 것입니다. 알 사람들은 알겠지만, 공부하는 사람에게는 정치 참여란 결코 쉽게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인문학의 여러 갈래 중에서도 철학이라는 학문은 너무나 보편화, 추상화되는 원칙들을 탐구하는 영역이다 보니 그 추상, 보편의 상공에서 특수성이라는 이름의 땅으로 뛰어내리다가는 다리 다칠 수도 있는 것이죠. 쉽게 이야기하면, 독일 관념 철학에서의 숭고의 개념 연구에 집중하는 사람에게는, 거리에 나서서 "내가 누구 누구를 지지한다"고 호소하는 것은 고역일 수 있다는 것이죠 (마찬가지로, 직업적 정치인에게 숭고의 개념 탐구를 하라면 좀 힘들어 할 걸요?). 그런데 비록 힘들더라도 김상봉 선생님이 그리 하시는 게 참 존경스러운 일인 것 같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철학자에게 금은보석보다 더 귀중한 게 正義이기 때문입니다. 정의의 개념이란, 철학의 출발점 중의 하나죠. 그런데 이 정의라는 것은, 특수적 (구체적) 정치 영역에서의 실천과 직결돼 있어 가끔가다 철학도에게까지도 (비록 힘들고 마음이 내키지 않을 수도 있지만) 정치 참여를 강하게 유도할 수 있다는 것이죠. 1968년, 파리에서의 바리케이드에서의 사르트르를 생각해보시면 아실 것입니다.
정의라는 게 무엇인가요? 여러 차원에서는 여러 가지 정의 (定義)들이 가능하지만, 사회적 정의란 결국 만인들에게 사회적 자원들을 균등하게 분배하는 것일 겝니다. 사회적 자원이란, 사회 생활에 필수불가결한 육아, 교육, 의료, 환경, 취업기회와 같은 부문들인데, 이를 균등하게 나누는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인 셈이죠. 우연의 일치인 출신배경이 무엇이든간에 본인에게 필요한 의료 혜택을 받을 수 있고, 본인이 원하는 교육을 받을 수 있는, 실업자들이 없는 완전교용이 이루어지도록 국가가 적어도 노력이라도 하는, 그런 사회는 정의로운 사회에 가깝죠. 그리고 사회의 상당수 구성원들이 가난하거나 중상층 하부 부분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는, "사회 정의"는 결국 육아, 교육, 의료 등의 부문의 점차적 무상화를 의미할 수밖에 없죠. 그렇지 않고서는 "만인에게의 균등한 분배"란 도저히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혹자가 제게 "그러면, 백성의 대다수는 한문은커녕 언문도 못배우고 의료혜택이고 뭐고 없었던 전통시절에는 사회적 정의가 없었느냐"고 물을 터인데, 제 답은 아주 간단합니다. 전통시대에는 "재분배적 정의"는 없었지만 ("규휼"이라는 최소한의 형태로는 있긴 있었죠), 국가는 민중의 생활에 개입하지도 않았던 것이죠. 심지어 세곡을 거둘 때도 동네에 들어가서 가가호호 거두지 않고 그냥 동네 전체의 몫을 동임을 통해 전달 받곤 했죠. 세금을 내고 부역을 다하고, 흉악범죄만 저지르지 않는 이상 다수의 백성은 대체로 국가를 그냥 몰라도 됐던 거죠. 그러나 지금 우리 모두들은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늘 "동원"된 상태에 있습니다. 의무적으로 국가에 유리한 "국민윤리"부터 자본의 이윤추구에 필요할 수 있는 수학, 지배자들의 언어인 영어 등을 배우고, 지배자들을 지키기 위해 군에 가서 살인의 術도 익히고 (그리고 살인교육을 살인교육이라고 부르는 순간에 바로 마녀재판도 당하고....), 지배자들이 우리에게 전달하고 싶은 시사적 내용을 "텔레비전 뉴스"라는 이름으로 맨날 듣고 (바보상자를 아주 처리한 일부의 쾌활한 군자, 숙녀를 제외하고서는), 그리고 우리의 노동력을 시장에 내놓아 팔고 이를 사줄 자본가가 없으면 결국 실의 상태에 빠지기도 하죠. 우리는 국가와 자본에 의해서 촘촘히 조직된 사회에서 사는 것이고, 매일씩 자본가들의 잉여가치를 생산해내면서 국가의 통제를 받죠. 늘 동원되고 상품으로 거래되고 잉여수취에 이용되는 "조직 사회" 구성원들에게 최소한의 재분배적 정의라도 없다면, 이게 정상적 사회의 그림자도 안보이는 곳이죠. 이는 그냥 하나의 커다란 착취공장일 뿐이죠.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오늘날 대한민국의 모습입니다.
이 지옥에다가 최소한의 사회적 정의의 요소를 도입하는 현실적인 길이란 실제 두 가지입니다. 1987년과 같은 대투쟁이 있을 경우에는, 비록 착취자들의 정부라 하더라도 결국 양보를 해서 일부의 복지주의적 요소를 도입하죠. 1988-89년에 비록 초보적 형태긴 하지만, 의료보험이 일단 전국적으로 적용되기 시작한 건 과연 우연입니까? 그런데 대투쟁이 불가능한 상황에서는, 복지주의적 요소의 도입은 의회 안팎에서의 아주 오래되고 질긴 지구전의 결과물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긴 싸움이 가능해지려면, 복지주의적 지향의 민중 정치인들이 일단 의회에 들어가서 복지확충의 구체적인 안이라도 잡아야 되는 것입니다. 복지주의자들의 국회 입성은 착취공장형 국가가 약간이라도 다수의 권익이 지켜지고 사회적 정의가 가능해지는 방향으로 변모되기 위한 첫 걸음이라고 봐야 합니다. 그래서 - 비록 정치 그 자체는 인문학자의 체질과 맞지 않을 수도 있지만 - 복지주의적 진보 세력의 후보를 위해 지원유세하는 철학자는 진정한 철학자일 것입니다. "구체적 정의"라는 이름의 땅이 없다면 "보편", "추상"이라는 이름의 하늘도 결국 없기 때문이죠.
철학자가 지지한다고 해서 진보 세력의 후보가 이길 보장이 있느냐, 결국 그에게 표를 던져봐야 사표가 아닐 것이냐 물어볼 사람이 있을 수 있는데, 거기에 대한 답 역시 간단합니다. 100명의 아이들에게 어릴 때에 음악을 가르친다고 해서 과연 다 음악가가 될 것인가요? 물론 아니지만, 그 중에서는 한 명의 모차르트가 나타나도 이미 만족스러운 결과고, 열 명이라도 차후에 음악을 좋아하고 자주 듣고 즐기면 이미 태만족입니다. 일단 그 100 명에게 음악의 기초를 배워주는 것은 미래의 씨앗을 뿌리는 것이고, 거기에서 어떤 싹이 언제 틀 것인가는 하늘의 섭리입니다. 사회주의자에게 던지는 한 표도 마찬가지라고 봐야 합니다. 지금의 "승리"가 문제가 아니고 복지 국가 쟁취를 위한 한 걸음으로서 사회주의자가 민초들의 지지를 받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합니다. 그게 미래 "승리"의 씨앗이죠. 내일이 아니고 모레가 아니더라도 우리가 언젠가 이 착취공장의 노동시간을 단축시키고 십장들의 폭력과 폭언을 없애고 작업의 강도를 낮추고 노동자끼리의 충성경쟁을 그만두고 자유시간에 음악이라도 즐길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가는 기나긴 과정의 일부분이라고 봐야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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