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3월 13일 목요일

호주 시골 마을, ‘독서 클럽’에서 느낀 것들.

동네 여인 몇몇과 독서클럽을 시작했고 지난달 첫모임을 가졌었다그곳의 분위기했었던 생각들을 나눠보자.

호주엔 마을마다 독서클럽이 수도 없이 많다이 작은 시골 마을에도 이미 수십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독서모임이 있고 그냥 할머니나 여인들이 삼삼오오 모이는 독서클럽도 꽤 있다몇 번쯤은 초대도 받았는데주저했던 이유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었기 때문이었다그들은 그냥 머리나 식히며 읽는 가벼운 책들이라 하지만 나에겐 모든 영어서적이 가볍지는 않다독해야 마음을 먹으면 얼마든지 하겠지만읽는 시간도 더 오래 걸리고이해를 위해 집중해야 하는 에너지 소모량도 훨씬 더 많은 데다가그렇게 열심히 읽고 나서도 모국어로 읽은 것보다 빠른 속도로 잊어버리기 때문이다게다가 그 이해라는 것도 제한이 많아서가령 한국어로 강원도 산골에서 감자를 캐먹고 살은 춘자’ 라고 한 줄을 읽으면 그 캐릭터에 대한 지역적 환경적 이해가 자연스럽게 따라오는데영어로 읽으면 그런 배경 지식도 없고 느낌도 살지 않아 모든 캐릭터가 평면적으로 다가오는 한계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유창함이나 익숙함을 떠나서 모국어와 제 2외국어의 차이란 늘 이렇게 있다내가 한국에서 산 시간보다 더 긴 시간을 이곳에서 산다 할지라도 그 간격이 좁아질지 언정 사라지지 않을 것이란 것을 나는 이미 알고 있기도 하다.

어쨌거나 지난 해부터 여인 몇몇이 새로운 독서 모임을 결성하려 물밑 작업을 시작했고나는 거의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는 심정으로 내 이름을 리스트에 올렸다.

몇 개월의 준비 끝에 첫모임이 금요일 저녁 이웃집 여인의 거실에서 이루어졌다. 12명의 여인 중 10명이 모였다.우리는 이미 책 한 권을 배당 받았었고 그걸 다 읽고 모인 것이었다.

책 제목은 ‘Nightingale Floor’라는 호주 작가가 쓴 일본 무협소설이었다나는 300페이지가 넘는 두툼한 책 한 권과 이를 8개의 CD로 녹음한 오디오 북까지 함께 받았었다. (이전에도 말했지만호주엔 오디오 북이 매우 많다.시각 장애자도 이용하고 바쁜 사람들이 운전을 하면서 들을 수도 있다.)

일단 놀랐던 건독서클럽이 동네 도서관으로부터 다양한 지원을 받을 수 있다는 점이었다클럽은 이미 일년 치 읽을 책들을 회원끼리 상의해서 목록으로 작성했고 동네 도서관에 제출했는데도서관의 사서가 이를 토대로12권의 도서를 한 박스로 매달 포장해 놓으면 클럽 회장이 도서관에 가서 들고 와 회원에게 전달하는 식이었다게다가 도서관에서는 클럽 회원들을 위해 이 도서나 저자에 대한 정보도 요약해 놓고 회원들이 토론할 만한 문제도 몇 개씩 뽑아 놓는다동네마다 편리하고 유용한 도서관이 몇 개씩 있고스킵튼 같은 소규모의 시골 동네엔 2주에 한번씩 봉고차에 책을 싣고 오는 이동 도서관이 있어 늘 감사한 마음으로 애용을 했는데이런 서비스까지 있는 줄은 몰랐다수입의 30% 이상을 세금으로 뚝뚝 떼다 바친 보람을 느꼈다고나 할까^^

둘째로 놀랐던 건일본 무협소설을 쓴 작가가 호주 사람이었다는 거다그녀는 몇 번씩 일본을 여행하며 그 문화에 심취해 있다가일본 문인협회의 물심양면 후원을 받아 일본에서 자료를 수집하고 책을 출간하기까지 했다는 거다지금은 한풀 꺾인 감이 있지만일본의 문화적 영향력은 아시아는 물론 유럽이나 호주에서도 대단했는데일본 문화가 일본인들에 의해 생산파급되는 단계를 지나 많은 현지인들이 일본식 문화를 생산한다는 점이 내겐 충격이었었다불과 몇 년 전 까지 세상 사람들이 한국이 어디에 있는 나라인지도 모를 때 말이다지금은 한류다 한식이다 삼성이다… 한국의 인지도가 높아지고 있는 이때에 한국이 세계 안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확대할 만한 장기적 플랜을 세워볼 때도 되지 않았나 생각해 봤다.

셋째로는왜 평범한 호주의 부인들이 일본의 무협소설을 골랐을까 라는 의문점이었다.ㅎㅎ 사실대부분의 여인들은 이 책을 별로 즐기지는 않았단다이 책이 2부도 있는데마저 읽어볼 사람하고 물었더니 3-4명이 손을 들은 정도일부 회원이 환타지 소설을 좋아한다는 취향을 고려해 사서와 의논해 고르다 얼떨결에 선택된 책이라는 점그런데호주사람들은 의외로 책을 참 많이 읽는다베스트셀러나 명작을 읽는 경우도 있지만별 얼토당토한 시시껄렁한 잡글도 자기만 좋다면 끝까지 붙들고 열심히 읽는다나이를 먹어도 자기 전엔 꼭 몇 페이지씩 읽고 눕는 사람들을 보면 (그렇다고 이들이 딱히 지적이지도 않다.) 어릴 때부터 독서훈련이 되어 있어서 그런 건가 싶기도 하고필독도서다 명서다 강요가 없으니오히려 책에 대한 자발적 사랑에 푹 빠지는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고어쨌거나 인문학의 세계가 확장되려면 무슨 책이든 많이 읽어야 하고다양한 독서클럽이 형성 되야 하고그들이 뿌리를 잘 잡고 유지되도록 다양한 지원이 사회 안에서 이루어져야 하지 않나란 생각을 했다.

그래도독서클럽이니 책에 대해서도 몇 마디 해볼까나는 판타지 소설 별로 좋아하지 않고 무협소설은 한국어로도 즐겨 읽지 않는 장르다.;; 책 제목인 나이팅게일 마루란 이런 것이다일본의 춘추전국 시대에 부족들은 누가 적이고 동지인지 모른 채 늘 싸우고 죽인다무사는 자기집을 지을 때 일부러 마루에서 미세한 바람소리가 나도록 만든단다. (오래된 툇마루가 삐걱되는 걸 생각하면 될 듯들릴 듯 말 듯마루 판자가 움직일 때 나는 소음을 나이팅게일 새소리에 비유한 건데조용해도 모자랄 판에 일부러 소음을 만드는 것은그 방안에 있는 무사의 생존과 연관되어 있기 때문이다야밤에 누군가가 숙소를 침입할 때그 사소한 바람의 움직임을 감지해 마루는 새소리를 내고 무사는 잠을 깨 칼을 차고 문 뒤에서 촉각을 곤두세우는.
낮밤으로 제 목에 칼을 꽂으려 하는그래서 한 가닥의 호흡조차 허락하지 않고 끊어놓으려 하는 적들이 사방에서 진을 치고 있을 때그 구중궁궐 골방의 무사는 그 구차한 목숨을 유지하려고 그래서 가족과 부족의 원수에게 복수하려고 그래서 더 큰 나라로 통합하려고그 마룻바닥이 내는 새소리에 긴장하며 밤잠을 설친다는 것그냥 그런 영웅들의 삶이 측은하게 느껴졌다는 ….

고만고만한 여인들이 모여 한 시간여 토론을 나눈 동안 누구는 바빠서 책을 다 못 읽었다 하고누구는 너무 일찍 읽은 나머지 내용을 기억 못하겠다 하고그래도 나름 재미있었고 토론이 끊기지 않던 시간이었다. 책을 덮고 밤이 늦도록 와인과 수제치즈, 단것들을 먹어가며 긴 수다를 떠는 것이야말로 모임의 진짜 재미라 할 수도 있겠고


이런 독서클럽의 분위기를 잘 담은 영화로 제인 오스틴 북 클럽이란게 있다뭐 대단한 영화는 아니고 그냥 마을 사람들이 클럽을 결성해 제인 오스틴의 단편소설을 한 달에 한편씩 읽는데그녀의 소설과 연관되어 매달 회원들에게 일어나는 일들그 사이에 피어나는 사랑과 우정을 이야기하는 드라마 같은 영화다그냥 모임을 마치고 나서 그 영화를 잠시 떠올려 봤었다.


출처 http://blog.chosun.com/article.log.view.screen?blogId=75233&logId=7337095&articleId=10&blo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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