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에 대한 독자의 권리
어린이청소년 성평등 책이 유해도서?
ㅡ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금서 요구, 무엇이 문제인가.
2023. 8. 1.(화) 14:00 ~ 16:00, 내포혁신플랫폼(홍성)
안찬수(바람직한독서문화를위한시민연대, 책읽는사회문화재단)
1. 차별금지법제정연대, 충남차별금지법제정연대가 주최하는 오늘 토론회의 개최를 환영합니다. 오늘 토론회의 제목이 “어린이청소년 성평등 책이 유해도서?ㅡ 공공도서관을 향한 성평등 책× 금서요구, 무엇이 문제인가”로 되어 있는데, 저는 주로 책, 독자, 도서관에 집중하여 발제하도록 하겠습니다.
2-1. 첫 번째 질문, “어떤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지향을 지닌 개인 및 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며 공공도서관을 비롯한 각종 도서관에서 그 문제와 관련된 도서를 열람 제한, 제적 또는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것이 과연 ‘검열’(censorship)인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린다면, “검열이다”입니다.
(왜 그런가에 대해서는 이 발제문의 참고자료1에 첨부하는 <새로운 검열 시대와 독서·도서관의 자유>에서 자세하게 밝혀 놓았습니다. 그 글을 참고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사전제재’(prior restraint)에서 ‘자기검열’(self-censorship)로 이어지는 프로세스는 다음과 같습니다. ①민간단체의 자체 심의 ②배제 목록 작성과 배포 ③언론을 통한 이슈 증폭 ④관계 당국의 행위 ⑤사실상의 금서조치 및 변형된 형태의 검열 ⑥자기검열의 확산.)
우리나라는 검열을 금지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헌법(시행 1988. 2. 25. 헌법 제10호, 1987. 10. 29. 전부개정) 제21조 제2항은 “언론ㆍ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과 집회ㆍ결사에 대한 허가는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하였습니다.
이 검열 금지의 목표는 다음과 같습니다. “헌법 제21조 제2항은 언론·출판에 대한 허가나 검열은 인정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는바, 이러한 검열이 허용될 경우 국민의 정신생활 및 의사형성에 미치는 위험이 클 뿐만 아니라 행정기관이 집권자에게 불리한 내용의 표현을 사전에 억제함으로써 이른바 관제의견이나 지배자에게 무해한 여론만이 허용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기 때문에 헌법이 직접 그 금지를 규정하고 있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헌법재판소, 2001. 8. 30. 2000헌바36, 헌법재판소 누리집 http://www.ccourt.go.kr/ 참조.)
2-2. 두 번째 질문. “도서관은 어떤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지향을 지닌 개인 및 단체가 문제를 제기하는 도서에 대하여 어떻게 조치해야 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더 나아가 문제가 제기되었기 때문에 그 도서의 열람을 제한하거나, 또는 제적 및 폐기함으로써 독자들이 읽을 수 없도록 하는 것이 옳은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린다면 “그것은 바람직한 행위가 아니며 옳지 않다”입니다.
도서관은 ‘광장’입니다. 도서관은 ‘정보와 사상을 위한 광장’(forums for information and ideas)입니다. 미국도서관협회가 1939년 「도서관 권리선언」(The Library's Bill of Rights)을 채택하게 된 계기는 존 스타인벡(John Steinbeck)의 분노의 포도(The Grapes of Wrath) 때문이었습니다. 『분노의 포도』가 출판되었을 때, 이 작품은 큰 논란을 야기했습니다. 여론은 들끓어서 당시 지역신문은 엄청난 공격을 가했고, 의회에서는 의원이 이 소설을 탄핵하는 연설도 했습니다. 당연히 도서관도 공격을 받았습니다. 보수적인 정서를 지닌 지역의 도서관에서는 이 책이 부도덕하다고(또는 ‘불쾌하다’고) 열람을 금지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일어났습니다. 이런 ‘검열’ 행위에 대해 미국도서관협회는 적극적으로 저항의 목소리를 내었고, 그 결과물이 「도서관 권리선언」(The Library's Bill of Rights)이었습니다.
이 선언의 3항을 보면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institution to educate for democratic living)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당시 도서관을 민주주의가 요구하는 사상의 상호 교환을 위하여 표현의 자유를 수호하는 기관으로 본 것입니다. 그런데 1980년 개정된 「도서관 권리선언」(Library Bill of Rights)에서는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이 아니라 “정보와 사상을 위한 광장”(forums for information and ideas)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개정에 대해 당시 미국도서관협회 지적자유위원회 위원장인 프란시스 딘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어떠한 의견과 견해에 대해서도 개방되어야 한다는 것을 설명하기 위하여 ‘광장’(forums)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도서관을 ‘민주적인 삶을 교육하는 기관’이라고 규정하는 것은 도서관이 반민주주의적인 자료를 검열해야 한다는 사고방식을 심어주는 결과가 됩니다. 지적자유의 관점에서 본 우리들의 사회에서 도서관의 역할은 다수결의 원리가 아니고 미국 수정헌법 제1조에 구체적으로 나타난 원리에 입각하고 있습니다. 즉 다수가 싫어하는 것이라 하더라도 소수의 견해는 경청될 수 있는 권리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지적자유를 수호하는 기관으로서 도서관의 근본적인 가치를 우리가 지킬 수 없다면 아마도 우리는 ‘아무것’도 지킬 수 없을 것입니다. 민주주의는 우리의 민주적 과정에 대한 비판정신을 새롭게 불어넣는 사상의 자유로운 전파에 의존합니다. 시민들은 독자로서 온갖 지식과 정보에 자유롭게 접근하여 자신의 생각과 판단과 견해를 형성할 자유를 갖고 있습니다.
민주공화국은 언론과 출판의 자유, 도서관과 독서의 자유가 필수적입니다. 민주주의적 여론 형성의 원칙에 의거하여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는 지식과 정보의 유통을 자유롭게 해야 합니다. 만약 공권력에 의해 지식과 정보의 원천적인 접근 금지, 특정 지식과 정보의 금지, 도서 검열, 금서목록의 작성 등의 적극적인 통제나, 자유로운 지식과 정보의 유통을 막고자 예산 수립과 보조금 지급 등에 영향을 미치거나, 인사상의 불이익과 차별 취급 등의 간접적인 통제가 이루어진다면 우리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치명적인 결과를 초래하게 될 것입니다.
2-3. 세 번째 질문. “좋은 책, 나쁜 책은 있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 드린다면 “좋은 책, 나쁜 책은 없다”입니다.
먼저 언급하고자 하는 책은 『성경』입니다. 『성경』도 금서였던 적이 있다고요? 그렇습니다. 종교개혁의 길을 열었다고 일컬어지는, 존 위클리프(John Wycliffe, 1320년경~1384)의 가장 위대한 업적은 라틴어 성서를 영어로 번역한 것입니다. 그의 사후 31년이 지난 1415년, 당시 교황과 교회는 콘스탄츠공의회를 통해 위클리프를 이단으로 판결하고 그의 저작을 불태웠으며 무덤을 파헤쳐 이른바 부관참시를 했습니다. 그의 죄목은 라틴어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것이었습니다.(『성경』과 『아레오파기티카』 부분은, 장동석, 『금서의 재탄생』, 북바이북, 2012.을 참조했습니다.)
오직 라틴어 성경만이 아무런 오류가 없는 『성경』이며, 오직 사제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했던 시대에 누구나 읽을 수 있는 『성경』은 ‘나쁜 책’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영어로 번역된 『성경』, 우리말로 번역된 『성경』을 ‘나쁜 책’이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다음으로 언급할 책은 『실락원』의 시인, 존 밀턴(John Milton, 1608~1674)의 『아레오파기티카』(Areopagitica, 1644)입니다. 이 책은 우리나라에 ‘언론 자유의 경전’이라고 소개되어 있습니다.(박상익 옮김, 소나무, 1999년/ 전면개정판, 인간사랑, 2016년) 청교도혁명(요즘엔 잉글랜드 내전English Civil War이라고 일컫고 있습니다)의 기치를 높이 들고 찰스 1세를 제압한 의회공화파가 반혁명에 맞서 혁명을 수호한다면서 검열 제도를 다시 부활시켰을 때 집필하고 출간한 것이라는 점이 이 책을 주목해야 할 이유입니다. 청교도혁명처럼 극심한 양극화의 시기에 의회공화파가 언론 출판의 자유를 축소하려 하자 밀턴은 실정법을 어기면서까지 스스로 ‘금서’를 출판했던 것입니다. 이를 우리나라의 현재 상황에 거칠게 비유하여 말한다면, 이런 일일지 모릅니다. 즉 A정파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집권하여 반대파인 B정파 정치 지도자의 도서를 도서관의 장서에서 제적하거나 폐기하라고 주장하자, 그런 행위는 말이 안 된다, 오히려 도서관에는 B정파 정치 지도자의 책도 있어야 한다고 밀턴은 주장했다고 말입니다.
밀턴의 말입니다. “나쁜 풍속은 비단 책이 아니더라도, 제지할 수 없는 수천 가지의 다른 경로를 통해 완벽하게 습득되며, 사악한 교리는 책이나 교사의 안내 없이도 썩 잘 전파되므로, 교사는 굳이 글을 쓰지 않더라도 그것을 퍼뜨릴 수 있으며, 따라서 이를 막을 길도 없습니다. 나는 검열이라는 교묘한 계획이 어떻게 해서 수많은 헛되고 불가능한 시도들 중의 하나로 여겨지지 않는지 설명할 길이 없습니다. 검열을 시행하고자 하는 사람은 공원 문을 닫음으로써 까마귀를 들어오지 못하게 하려는 무모한 사람과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59~60쪽)
“우리가 검열제와 금지조치를 취한다면 그것은 부당하게도 진리의 힘을 의심하는 것입니다. 진리와 거짓으로 하여금 서로 맞붙어 싸우게 하십시오. 자유롭고 공개적인 경쟁에서 진리가 패배하는 일은 결단코 없습니다.(108쪽)
세 번째로 언급할 책은 나치(Nazis)의 대표적인 인물인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 1889~1945)의 저서 『나의 투쟁』(Mein Kampf)입니다. 이 발제문을 정리하면서 국립중앙도서관을 검색해보니 1961년 이윤환(李潤煥)이라는 분이 번역한 책(新太陽社)부터 거의 100권에 달하는 책이 검색되어 나옵니다. 또한 충청남도의 여러 공공도서관에도 현재 다수 소장되어 있다고 검색됩니다. 잘 아시다시피 히틀러가 이끌었던 나치스는 독일인을 폐쇄적 민족주의에 사로잡히게 만들어 결국에는 제2차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의 지옥도를 만들어내었습니다. 나치스는 ‘우리 독일’과 ‘우리 독일이 아닌 적’으로 세상을 양분화했습니다. 『나의 투쟁』은 이런 지옥도를 만들어낸 히틀러의 책입니다. ‘나쁜 책’이라고 말할 수도 있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렇게 끔찍한 지옥도를 만들어낸 히틀러의 책을, 2023년 현재 대한민국의 독자들은 읽고 토론합니다. 물론 아무도 이 책을 도서관에서 열람 제한, 제적, 폐기해야 한다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의 투쟁』을 읽는다고, 읽고 토론한다고 그 독자가 나치스가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미국의 <독서의 자유 선언>(1953)의 한 대목을 고쳐 써 보았습니다. “독서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시도는 평범한 개인이 비판적 판단으로 선을 택하고 악을 거부하리라는 민주주의 기본전제를 부인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과장된 정치적 선전이나 오보를 판별하여, 무엇을 읽고 무엇을 믿을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해로우리라 짐작되는 무언가로부터 ‘보호받기’ 위해 언론과 출판과 독서의 자유라는 유산을 희생하지 않으리라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시민들이 여전히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지지한다고 믿습니다.”
‘평범한 개인이 비판적 판단으로 선을 택하고 악을 거부하리라는 민주주의 기본전제’는 ‘수동적 독자’가 아니라 ‘능동적 독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수동적 독자’ 즉 ‘나쁜 책’을 읽으면 ‘나쁜 사람’이 될 거라고 생각되는 독자가 아니라, ‘능동적 독자’ 즉 스스로 ‘(다른 사람이) 나쁘다고 말하는 책’을 읽더라도 그 책의 ‘나쁜 면’을 비판적으로 판단하면서 선을 택하고 악을 거부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독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민주주의는 다른 사람이 ‘좋은 책이야’라고 말한다고, 또는 다른 사람이 ‘나쁜 책이야’라고 말한다고 해서 그것을 다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능동적 독자’로서 “내가 그 책을 읽고 내가 판단할 거야.”라고 말하는 독자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어떤 독자(讀者)A가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믿음과 신념이 옳다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에 따라 어떤 책을 ‘나쁜 책이야’라고 말할 권리도 당연히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른 독자(讀者)B에게 어떤 강제적 수단과 압력을 동원하여 자신의 믿음과 신념을 받아들이도록 해서는 안 됩니다. 독자A가 ‘책에 대한 권리’를 갖고 있는 것처럼 독자B도 ‘책에 대한 권리’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독자A가 읽고 자신이 ‘나쁜 책’이라고 판단했다면 독자B도 그 책을 읽고 좋은 책인지 나쁜 책인지, 왜 독자A가 이 책을 ‘나쁜 책’이라고 판단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야 합니다. 독자A에게는 독자B의 ‘책 읽을 권리’를 뺏을 권리가 없습니다. 이것이 ‘책에 대한 독자의 권리’입니다.
3. 책에 대한 독자의 권리, 독서 및 도서관의 자유에 대한 이러한 ‘일반론’이 2023년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 상황에 어떤 도움이 될까요? 그리고 우리들 독자(讀者)는 무엇을 해야 할까?
3-1. 첫째. 우리 국민은, 우리 시민은, 우리 독자는 책을 자유롭게 읽을 권리를 포기해서는 안 되겠습니다. 최근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성교육과 관련하여 유해성이 우려된다고 지적된 도서목록이 여기저기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들 독자는 과연 그 책이 왜 누군가가 그렇게 유해성이 우려된다고 말하는지 스스로 찾아 읽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백 권, 이백 권(제가 찾아본 자료에는, 268권이라는 것도 있고, 또 어떤 자료에는 112권인 것도 있으며, 또 어떤 자료에는 117권이라는 것도 있습니다)을 모두 구입해서 읽을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렇기에 전국의 각종 도서관이 이렇게 ‘문제가 제기된 책’(challenged books)을 잘 갖추어 놓도록 하고, 우리 국민이, 우리 시민이, 우리 독자가 스스로 찾아 읽고 판단할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독자A가 그렇게나 ‘나쁜 책’이라고 말하는데, 독서B도 그 책을 읽고 왜 독자A가 ‘나쁜 책’이라고 말하고 있는지 알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만약 이용하고 계시는 공공도서관 등에 ‘문제가 제기된 책’이 소장되어 있지 않다면 ‘책바다 서비스’를 이용하시기를 권해드립니다. ‘책바다 서비스’는 “이용자가 원하는 자료가 해당 도서관에 없을 경우, 협약을 맺은 다른 도서관에 신청하여 소장 자료를 서로 이용할 수 있도록 해주는 전국 도서관 자료 공동 활용 서비스”입니다. 협약에 참여하는 도서관의 종류로는 국립중앙도서관, 지역대표도서관, 공공도서관, 장애인도서관, 작은도서관, 대학도서관, 전문도서관(각 부처의 행정자료실 포함), 학교도서관이 있습니다.(문화체육관광부 국립중앙도서관의 공공도서관지원서비스 참조.
https://books.nl.go.kr/PU/main/index.do)
3-2. 둘째. 우리 국민은, 우리 시민은, 우리 독자는 도서관이 정보와 사상의 광장이 될 수 있도록 도서관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지적자유를 함께 지키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도서관의 권리와 자유, 그리고 지적자유를 지키는 일은 우리 국민의 자유와 인권을 지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우리나라 독서문화와 도서관문화의 역사에는 오랫동안 자기검열을 내재화할 수밖에 없었던 규제와 압력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흑역사입니다. 그런데 이런 흑역사가 다시금 반복되고 있습니다. 최근의 사태에서도 ‘골치 아파서’ ‘문책 당하기 싫어서’ 혹은 ‘괜히 귀찮은 일에 휘말리기 싫어서’ 논란이 일어난 책이나 일어날 만한 책을 제적하거나 서가에서 빼내는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우리 국민의 기본적인 권리인 ‘알 권리’를 국민에게 보장하기 위해 각종 자료와 시설을 제공하는 것을 가장 중요한 임무로 삼고 있습니다. 도서관은 이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①자료수집의 자유 ②자료제공의 자유 ③검열을 거부하고 반대할 자유 ④도서관 자유가 침해될 때에는 이를 배제할 권리도 갖고 있습니다.
어떤 특정한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지향을 지닌 개인 및 단체가 이런 책이 ‘나쁜 책’이고 또 이런 책은 ‘좋은 책’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하지만 어떤 독자가 어떤 책을 어린이와 청소년에 유해할지 모른다고 우려한다고 해서 그 책을 도서관에서 제적하거나 폐기할 것을 요구하는 일은, 지금까지 말씀 드린 바와 같이 다른 독자의 알 권리, 독서의 자유, 표현의 자유를 빼앗는 일로써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우리의 도서관에는 도서관 운영의 전문가들인 사서(司書)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또한 도서관운영위원회 및 도서선정위원회를 두고 지역주민과 학생 청소년 등 이용자인 시민을 위해 한정된 예산으로 최적의 장서를 구축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자신의 정치적, 사회적, 문화적, 종교적, 도덕적 지향이 올바르다는 주장을 관철하기 위해 민원(民願)의 형태로 지속적으로 압력을 가한다면 이 또한 매우 부당한 일입니다. 오늘부터라도 제발 이런 형태의 민원(民願)은 멈추어 주십시오.
우리나라에서 자라고 있는 다음 세대를 더 훌륭한 사람으로 키우고 길러내자는 마음은 우리 기성세대라면 누구나 다 똑같은 심정일 것입니다. 그런데 2022년 12월에 발표된 「2022 개정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교육부 고시 제2022-33호) 가운데 중등교육 과정의 보건 과목에서 말하고 있는, 다음과 같은 교육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과연 우리 청소년들에게 어떤 책을 권하면 좋을지, 토론은 충분했던 것일까요?
[9보03-01] 성의 개념과 성역할 및 영향요인에 대해 성인지적 관점에서 탐색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성문화와 성의식의 필요성을 이해한다. [9보03-02] 청소년기 성적 발달과 관계, 신체상에 대해 알아보고 사회적 조건을 이해하며 건강하게 관리한다. [9보03-03] 성적자기결정권을 균형 있게 탐색하여 안전하고 행복한 대처전략을 세우고 이성 교제 시 경계를 존중하고 배려하는 자세를 갖는다. [9보03-04] 성폭력⋅성매개감염병 등 성 건강 위험요소를 미디어 문해력 및 성문화와 관련지어 탐색하고 건강하게 관리⋅옹호한다. [9보03-05] 임신, 피임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십대의 임신과 미혼 부모 문제가 개인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건강에 유익한 선택과 자원을 지지한다. [9보03-06] 청소년의 성 건강과 관련하여 사회적 쟁점이 있는 이슈들에 대해 다양한 입장의 근거와 맥락, 고정 관념, 차별, 불평등한 상황을 파악하여 균형 있고 평등한 성문화를 조성하려는 자세를 갖는다. |
*2022년 12월 22일(목), 대한민국 교육부(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이주호)가 확정·발표한 「2022 개정 교육과정」 가운데 ‘중학교 교육과정【별책 3】의 보건-선택’에서
3-3. 끝으로 ‘문제가 제기된 책’이라고 해서 각종 도서관에서 열람을 제한하거나, 제적 및 폐기하려고 하는 조치가 있습니까? 만약 그러한 조치가 있다면 그것은 즉각 취소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하며, 거듭 말씀 드리지만, 우리 국민, 우리 시민, 우리 독자는 ‘책을 읽을 권리’를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 발제문을 정리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소식을 전해 들었습니다. 몇몇 보도에 따르면, 충남도의회 지민규 의원이 2023년 7월 25일 충남도의회 본회의장에서 진행된 긴급 현안질문을 통해, 충남 지역의 여러 도서관에 비치된 책의 내용을 거론하며, “아이들이 건강하고 건전하게 성을 배울 수 있도록 부정적 영향을 줄 수 있는 도서의 향후 조치 방안에 대해 충남도와 충남교육청이 더 깊이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합니다.(2023년 7월 25일 굿모닝충청, 이종현 기자의 보도, ‘충남 학교·공공도서관에 비치된 성교육 도서 논란’에서 인용.)
이에 대해 김태흠 충청남도지사는 다음과 같이 답변했습니다.(회의록이 현재까지 충청남도의회 누리집에 올라와 있지 않았습니다. 아래 인용문은 필자의 녹취 초고입니다.)
“한편 여성가족부에서 회수 조치한 도서를 살펴보았는데, 낯 뜨거운 표현이 대부분으로 아이들의 교육 목적으로 보기 어려웠습니다. 연령대, 수용성 등을 감안해야 하는데, 교육 목적에 부적절한 내용이라 생각하여 도내 36개 도서관 전체의 열람을 제한했습니다. 젠더 문제와 소수자 권익 문제에 대한 개인적인 의견을 말씀드리면, 성 소수자에 대한 차별은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나라는 차별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미국의 경우 주에 따라 성 소수자의 공공장소 입장을 제한한다든가 트랜스젠더 화장실 이용 제한 등 차별을 두고 있는 경우도 있지만 한국에선 그렇지 않습니다. 심지어 수간 등 여러 가지 낯 뜨거운 용어가 담긴, 아이들 성교육 자료를 만드는 것은 저는 동의할 수 없습니다, 성 소수자 옹호를 내세우는 의도를 보면 일반인보다 특별한 대우를 요구하는 측면도 있다고 생각되어 이 부분에 대해선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http://council.chungnam.go.kr/viewer/video/minutes/3330.do?pos=5700#app)
김태흠 충청남도지사의 발언만으로 ‘구체적으로’ 어떤 조치가 취해졌는지 분명하지 않습니다. 진짜 어떤 책을 대상으로 열람 제한 조치가 취해졌습니까? 거듭 강조해서 말씀 드리고자 하는 것은 만약 그런 조치가 취해졌다면 그 조치는 취소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우리 국민, 우리 시민, 우리 독자는 그 책들을 읽을 권리를 회복하여야 할 것입니다.
이상으로 발제를 마치고자 합니다.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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