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책을 사고 싶다는 생각을 별로 하지 않았는데, 이 책은 정말 '갖고 싶다'. 이것은 내가 아직도 책에 대한 소유욕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뜻일 게다. 하지만 <근묵>, 이 책을 옆에 끼고, 더운 여름날 오후, 천천히 천천히 한 장 한 장 넘겨 보며 '음미'해보고 싶다. 이 책에 대한 소식을 접하며 그런 '공부'에 대한 갈망이 나에게 남아 있음을 잠시 느껴본다.
ㆍ오세창 선생 ‘근묵’ 완역 출간
근대를 대표하는 서예가·전각가이자 서화 감식의 대가 위창 오세창 선생(1864~1953)이 한국 서예의 600년 역사를 집대성한 <근묵(槿墨)>(사진)이 완역, 출간됐다.
성균관대학교 박물관과 출판부는 29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근묵> 원본을 촬영·수록한 인(仁)·의(義)·예(禮)·지(智) 권과 탈초(脫草·인쇄체 정자로 새로 쓰기) 및 번역문을 담은 신(信) 권 등 모두 5권으로 구성된 <근묵>을 공개했다.
1934년 완성된 <근묵>은 1911년에 엮은 <근역서휘(槿域書彙)>(서울대박물관 소장)와 함께 오세창 선생의 필생의 공력이 담긴 대표적인 글씨첩이다. 고려말 정몽주·길재에서부터 조선의 정도전·성삼문·이황·이이·정약용·정조 등은 물론 대한제국 말기의 이준·민형식·이도영까지 1136명의 글씨를 1점씩 모아 34첩의 첩장본(帖裝本)으로 만들었다. 작가들은 연대상으로 600여년에 걸치고 신분상으로는 국왕과 왕후부터 문무 관료와 학자, 승려와 중인까지 망라한다. 김채식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사는 “우리나라에 전해지는 간첩류(簡帖類)는 수 천에 달하지만 그 내용이 풍부하고 역대 인물이 거의 빠짐없이 망라된 것으로 <근묵>과 <근역서휘>에 비견할 것이 없다”면서 “한국 서예사의 기준작”이라고 밝혔다.
‘근묵’은 근역(槿域), 즉 무궁화가 피는 우리나라의 묵적(墨蹟)이란 뜻으로 조선시대 글씨의 흐름과 수준을 이해하는 중요한 자료다. 서체별로는 행서(595점)와 초서(468점)가 대부분. 형식이나 의식상의 제약 없이 자연스럽게 써내려간 것으로 필치가 유려하고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특히 편지가 724편으로 절반 넘게 차지해 선물·인사청탁·질병·의약·의식주·관혼상제 등 당대의 생활을 파악할 수 있는 사회·문화사의 보고로 평가된다.
1792년 9월2일 정조가 친척에게 하사한 선물 목록에선 창덕궁 후원에서 담배를 재배했음을 알 수 있다. “내원(內苑·창덕궁 후원 중 옥류천 일대)의 담배 두 봉. 토양이 적합하고 맛이 좋아 삼등(평안도의 담배 특산지)에 못지 않다”고 썼다. 추사 김정희는 아내를 잃은 지인에게 위로의 편지를 보냈다. “나는 일찍이 이런 상황에 익숙해진 적이 있기 때문에, 그 단맛과 쓴맛을 잘 압니다. 마음을 안정시키고 슬픔을 삭이는 데는, 종려나무 삿갓을 쓰고 오동나무 나막신을 신고 산색을 보고 강물 소리를 들으며 방랑하는 것이 제일입니다.”
<근묵>은 또한 필적의 진위를 판가름하거나 특정 작가의 모범적 필체를 볼 수 있는 기준작을 제공해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예컨대 현재 별로 남아 있지 않은 박제가나 목판이 대부분인 황기로의 글씨 등이 수록돼 있다. 편지 형식의 변천을 일목요연하게 살필 수 있고 수결(手決·오늘날 사인처럼 겉봉투 이음매에 써넣어 문서를 열어보지 못하도록 한 것)이나 전각사 연구에도 중요한 자료다. 독특한 문양을 찍어 사용했던 시전지(詩箋紙·시나 편지를 써보낼 때 쓰는 종이)와 한지의 변화도 읽을 수 있다.
<근묵>은 1981년과 95년 두 차례 영인본이 발간된 적이 있으나 원본의 모습을 제대로 전달하는 데는 크게 미흡했다. 6년간의 작업 끝에 나온 이번 간행본은 실물과 같은 크기로 원본을 그대로 촬영해 필묵의 질감을 최대한 살렸다. 번역과 주석을 붙여 일반 독자들도 내용을 쉽게 알 수 있게 했다. 81년 영인본 때의 청명 임창순 선생의 탈초를 바탕으로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이 번역했다. 전 5권 100만원. 한편 성균관대 박물관은 <근묵> 원본과 영인본, 오세창 선생의 글씨와 인장 등을 전시하는 특별전을 다음달 말까지 연다. <김진우기자 jwkim@kyunghyang.com>
원문출처: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906291724035&code=960201
성균관대 100주년 기념관에서 29일 열린 기자간담회에서 하영휘 가회고문서연구소장(가운데)과 김채식 성균관대박물관 학예사(오른쪽) 등이 <근묵> 원본과 영인본을 살펴보고 있다. 김세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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