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항해야 할 때 침묵하는 것은 비겁한 죄악이다
To Sin By Silence When We Should Protest Makes Cowards Out Of Men
- E.W. 윌콕스(Ella Wheeler Wilcox)
JFK
-1991년 미국,
-감독 올리버 스톤, 주연 케빈 코스트너
* 줄거리:
1963년 12월 22일 오후 12시 30분, 텍사스주, 달라스. 눈부신 햇살를 받으며 달리 풀라자를 달리는 콘버터블 리무진을 향해 세 발의 총탄이 날았다. 첫 총탄은 케네디(John F. Kennedy: 스티브 리드 분)를 명중시키고, 앞자석에 타고 있는 텍사스 주지사 코날리에게 명중하여 나갔다. 다른 한 발은 표적이 빗나가 길에 맞았고 콘스탄트 파편이 튀어 서있던 사람의 뺨에 튀었다. 느리게 움직이고 있던 차가 나무판자 있는 곳에 왔을 때 또 한발의 강력한 총탄이 그의 머리에 명중했고, 대통령의 몸을 뒤로 밀어냈다. 그리고 총격이 있은지 2시간도 채 지나지 않아 24세의 백인 남자가 체포되었는데 해병대 출신의 하비 오스왈드(Lee Harvey Oswald: 게리 올드만 분)는 한때 소련에 망명한 적이 있으며, 그해 여름에는 뉴올리언즈에서 카스트로 지지운동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23시간 동안 계속된 수사에서, 오스왈드는 계속 “아무도 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로부터 2일 뒤, 경찰서에서 호송되던 오스왈드는 텔레비전으로 중계되는 앞에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를 쏜 것은 잭 루비(Jack Ruby: 브라이언 도일-머레이 분)라는 자로 스트립 쇼를 하는 술집 주인이었다. 그리고 잭 루비 역시 곧 감옥에서 사망했다. 뒤를 이어 대통령이 된 린드 비 죤슨은 국내 여론과 외국의 의심을 무마하기 위해 급히 이 사건을 수사하기 위한 진상조사 위원회를 열었다. 대법원의 얼 워렌 판사를 의장으로 하는 이 위원회에서는 목격자들의 증언을 포함한 여러 자료를 토대로 ‘워렌 보고서’를 작성, 이 사건이 오스왈드의 단독범행이라고 결론지었고, 이 사건은 공식적으로 끝났다.
그러나 그 뒤로 수많은 학자와 수사관들은 이 위원회의 수사방법에 의문을 제기했고, 자기 나름대로의 수사를 시작했다. 그들 중의 한 사람이 짐 개리슨(Jim Garrison: 케빈 코스트너 분) 검사로 그는 JFK 암살 사건의 배후인물을 재판장에 최초로 세운 사람이다. 이때 개리슨 검사에게 새로운 정보를 제공해 주는 X(X: 도날드 서덜랜드 분)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마치 <모두가 대통령의 사람들>에 등장하는 두 기자에게 정보를 제공해 주었던 딥스 루트 같은 인물이다.
X는 개리슨에게 누가, 어떻게 케네디를 죽였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왜 케네디를 죽였는가”가 사건의 본질이라고 얘기하면서 개리슨에게 당신의 승리는 예측할 수는 없지만 사실을 드러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의미가 있다면서 그를 격려한다. 하지만 개리슨이 유력한 증인으로 법정에 세우고자 하는 사람은 차례로 의문사를 당하고 개리슨 팀 내에서조차 내분이 일어날 정도로 개리슨은 곤궁에 처한다. 1963년에 일어나 종결된 지 6년 후인 1969년 개리슨은 JFK 저격사건의 배후 인물로 남부지역에서 입김이 센 경제인 클레이 쇼(Clay Shaw: 토미 리 존스 분)를 기소하여 법정에 세운다.
(줄거리의 출처: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10740)
짐 개리슨 검사의 대사:
"히틀러가 말했습니다. ‘큰 거짓말일수록 더 잘 믿는다’. 단독범 오스왈드가 희생양으로 쓰러진 후 로버트 케네디, 킹 목사처럼 개혁과 평화를 바라며 전쟁을 반대하는 사람들이 모두 죽었습니다. 우린 햄릿입니다. 아버지를 죽인 자가 왕위를 빼앗았으니 말이죠.
케네디의 유령은 아메리칸 드림에 대해 우리들에게 묻죠. 헌법이란 무엇인가? 인간의 가치는? 또 민주주의의 매래는? 대통령이 살해됐는데 법은 무엇을 한 거죠? 잇따른 증인들의 죽음은 자살, 암, 심장마비로 또 교통사고로 위장됐죠.
‘반역은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왜냐면 성공하면 반역이 아니니까. 제프 루더 필름은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왜?... 검시결과와 X레이도 못봤죠. 왜?... 이 사건의 많은 자료를 왜 공개 안하고 있으며 누군가가 원하면 왜 ‘국가기밀’이라면서 거부합니까? 누구를 위한 비밀이죠? 대체 무슨 비밀이 또 누구를 위해 국민의 알 권리를 막는 겁니까? 바로 그런 국가기밀이 악취를 풍기며 나타날 때 그걸 바로 ‘파시즘’이라 부릅니다.
1963년 11월 22일 케네디 암살사건은 분명 쿠데타였소. 또 그 직접적 원인은 바로 월남철수 때문이었소. 전쟁은 미국의 중요한 사업으로 연간 800억불 규모였소. 케네디의 암살음모는 정부 고위층에서 계획되고 국방성의 전쟁주의자와 CIA가 가담했으며 클레이 쇼도 관계했었죠. 이 공개처형을 은폐한 것은 달라스 경찰과 FBI 정보부, 백악관의 공범들, FBI 후버국장과 존슨 대통령도 사건 은폐에 가담했습니다. 이 사건 직후 대통령이란 직위는 말로는 평화를 떠들면서 실제로는 군산복합체의 앞잡이로 전락했습니다.
사람들은 날 보고 미쳤다고 합니다. 출세를 위해 지랄한다는 거죠. 하지만 내가 미쳤다는 걸 증명하려면 케네디 암살로 가장 큰 이익을 본 존슨과 닉슨 두 대통령이 공개해야 합니다. CIA자료 51건과 CIA 비밀메모 중 오스왈드의 소련활동 부분을 말이죠. 그리고 그건 바로 여러분들 것입니다. 세금을 낸 국민의 것이죠. 그런데도 공개하지 못하는 것은 우리가 너무 어린 탓인가요? 아니면 누군가 다칠까봐? 그래서 75년 뒤에나 공개합니까?
저는 지금 40대니까 전혀 희망이 없죠. 하지만 8살 난 제 아들은 2038년 9월 어느 날 CIA와 FBI의 문서 보관서에서 볼 수 있을 겁니다. 물론 또 다시 연기될지 모르죠. 그래서 백년 뒤에나 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언젠가 진실은 밝혀져야죠. 그게 안 된다면 이런 정부는 필요 없습니다. 독립선언서에 있듯이 새 땅을 찾아가야죠.
우리들 선조가 말했습니다. ‘애국자는 정부와 싸워야 한다.’ 힘든 결정이 남았습니다. 공개 안 된 증거도 보셨습니다. 우리는 어릴 때 ‘정의’라고 하면 배운 말이 있죠. ‘정의는 언제나 승리한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그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게 되죠. 정의는 늘 권력으로부터 심한 위협을 받기 때문에 권력과 싸우는 게 힘들죠. 여러 증인과 목격자들이 용기 있게 앞에 나섰고, 8,000달러란 큰 돈이 전국에서 모였습니다. 한 푼 한 푼 평범한 가정주부에서부터 노동자, 학생, 세일즈맨 같은 어려운 사람들이 보낸 겁니다. 심지어 택시 기사들, 간호사들, 아들을 월남에 보낸 사람들까지. 왜죠?... 관심이 있기에. 진실을 원하기에. 나라를 되찾고 싶기에. 믿음을 갖고 싸우는 한 이 나라는 국민의 것이란 믿음 때문이죠.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인데 정부가 진실을 숨기고 국민이 정부를 믿을 수 없다면 그건 이미 내 조국이 아닙니다.
테니슨이 말했죠. ‘권위란 죽은 왕을 잊게 한다.’ 케네디 암살은 우리 역사상 가장 추악한 범죄입니다. 그 범죄를 심판하고 권력과 맞서 정의를 되찾읍시다! 여러분의 임무대로 클레이 쇼를 판결하십시오. ‘조국이 내게 뭘 해줄까가 아니라 내가 조국을 위해 무엇을 해줄 것인지’란 케네디의 말을 기억하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를 되찾읍시다. 그 무엇보다 중요한 결정이 여러분께 달렸소."
참고: http://en.wikipedia.org/wiki/JFK(film)
참고:
http://www.youtube.com/watch?v=Sfyp_dy--gA&hl=ko
http://video.yahoo.com/watch/2228016/7022411
http://www.dailymotion.com/video/x3fhw1_jfk-assassination-digitally-remaste_news
http://fr.truveo.com/JFK-Inside-the-Target-Car-Zapruder-Film/id/3540140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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