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墨湖)를 아십니까?
1941년에 개항한 묵호항은 동해항이 개항하기 이전까지, 동해안 제일의 무역항이었다고 합니다. 지금의 동해시는 1980년 묵호읍과 북평읍을 합쳐서 만들어진 것입니다. 동해시는 약 10만 명이 조금 안 되는 주민들이 살고 있는 도시입니다만, 북평의 너른 들판이 시내가 되고 묵호항은 다소 쓸쓸함이 감도는, 퇴락해가는 항구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 퇴락의 정서를 담아 심상대는 자신의 첫소설 제목을 이렇게 썼습니다. '묵호를 아는가'. 어느 해이던가, 1990년대 중반 쯤의 일인 것으로 기억하는데, 제가 동해시에서 열리는 시낭송 모임을 참석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 모임을 준비한 이가 바로 심상대여서 '검은 호수'라고 번역될 '묵호'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기회가 있었습니다. 마르시아스 심이라는 필명을 쓰기도 하는 이 사람의 입담은 조금 걸쭉합니다. 인터넷을 이리저리 뒤지니, 한국일보의 하종오 기자가 쓴 짧은 글을 만날 수가 있습니다.
"한때 동해안 제일의 항구였다던 묵호읍, 심상대의 표현대로 '술과 바람의 도시'이자 '어느 집 빨랫줄에나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열려' 있었으며 '집집에서 피워올린 꽁치 비늘 타는 냄새가 하늘을 뒤덮었던' 그곳은 지금은 동해시에 속한 지명으로만 남아 있다. '묵호를 아는가'는 묵호의 아름다운 '한 잔의 소주와 같은 바다'를 고향으로 둔 젊은이가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갔다가 상처만 안은 채 돌아오면서 시작한다. 하지만 돌아온 고향이 떠나기 전의 고향일 수는 없다. 고향은 결코 방황하는 젊음에게 답을 마련해주지 않는다. 다시 등을 떠밀 뿐이다. 묵호도 그랬다. '산다는 것을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곳'인 묵호도 돌아온 주인공에게 구토를 일으키게 만든다. '바다는 부드럽게 출렁이는 젖가슴으로 돌아온 탕아의 야윈 볼을 투덕투덕 다독이면서' 인간의 바다로 다시 떠나라고 말할 뿐이다. 온갖 추악한 욕망이 들끓는 세속의 바다에서 삶의 답을 찾아야만 하는 것이 젊음의 숙명이다."(원문출처: http://news.hankooki.com/lpage/culture/200807/h2008071402422284210.htm)
그런 묵호에 다녀왔습니다. 2009년 6월 12일 오전 10시 묵호동주민센터에서 열리는 북스타트 선포식 때문이었습니다. 전날 김해시의 여러 일정을 마치고 서울로 돌아왔다가는 오전 10시에 열리는 북스타트 선포식에 도저히 시간을 맞출 수가 없을 것 같아, 부산에서 밤차를 타고 포항을 거쳐 동해시 버스터미널에 내리니 새벽 2시 45분이었습니다. 밤 거리에 내려서 보니 밤 손님을 기다리는 택시 몇 대가 시동을 끈 채 터미널 앞에 대기하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묵호로 들어갈 마음이 도저히 들지 않을 정도로 몸이 지쳐 있었습니다. 어디선가 잠시 눈을 붙여야 할 듯싶어 눈을 들어 보니 '리츠칼튼 모텔'의 간판이 보입니다. '리트칼튼 호텔'을 패러디한 듯한 모텔. 터미널 바로 옆에 붙어 있는 모텔로 들어가 간단하게 샤워하고 눈을 붙였습니다.
*사진출처: http://news.e-cluster.net/publish/php/articleview.php?diaryDate=2008-04-11&idx=640§ion=7
아침에 택시를 타고 묵호항으로 들어가면서 기사 분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바다에 물고기의 씨가 말라가고 있어요."
"바다도 풍년, 흉년이 있는데, 완전 흉년이지요."
"요즘 명태가 잡히나요? 요즘 명태가 없어요."
묵호의 중심지 거리인 중앙극장 부근을 지나면서 택시기사는 연신 문을 완전히 닫아버린 상가를 보라면서 하염없이 이야기를 늘어놓는데, 열에 아홉은 걱정 섞인 이야기뿐이었습니다. 바닷물의 온도가 점점 올라가는 아열대 기후로 변해가는 기후도 문제인 것 같았고, 묵호보다도 번화해져가는 북평 쪽에서 살고픈 주민들의 마음 때문인 것도 같았습니다.
사람이 자꾸 모인다고 해야 사람이 모이지, 사람이 자꾸 흩어진다고 하면 흩어질 뿐인데, 기사 분의 말씀이 어찌 그런가 싶었습니다. 택시를 내릴 때 기사 분의 말씀을 들으니, 동해시의 중심이 완전히 북평 쪽으로 넘어가서 그곳 사람들이 주도권을 잡아서 그런 것 아니겠느냐는 식으로 말합디다. 그런 것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아무튼 이제 묵호에서 "오징어가 만국기처럼 열려 있는 풍경"을 다시 보기는 쉽지 않겠다는 느낌만은 분명하게 받았습니다. 꽁치 비늘 타는 냄새는 맡을 수가 없었습니다.
묵호동주민센터의 모습
"바다! 우리의 미래, 굼의 항구도시 묵호" 준공석에 새겨져 있는 묵호의 구호
묵호동주민세터에서 내려다보이는 동해
묵호동주민센터. 언덕바지에 참 번듯하게 지어놓은 건물이었습니다. 지어진 지 오래지 않은 건물에는 아직 시멘트의 차가운 냄새가 났습니다. 1층에는 민원센터가 있었고, 2층에는 주민의 정보센터를 만들어가고 있었습니다. 북스타트 선포식은 3층에서 열렸습니다. 잘 지어진 3층의 강당에서 아기를 안고 온 엄마들과 권영성 묵호동 동장님과 이영희 시의회 부의장과 북스타트 자원활동가와 하이원리조트의 김창완 사무국장과 고필훈 주임, 그리고 무엇보다도 실무를 담당한 김동희 씨와 더불어 조촐하지만 따뜻한 북스타트 선포식을 열었습니다.
이영희 동해시의회 부의장과 한 아기. "까까 주까, 까까"
선포식 준비의 한 장면. 김동희 씨의 후덕한 모습이 잘 나오지 않았습니다.
김창완 사무국장이 마치 조카인 듯 덥석 한 아이를 안고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을 보니, 보기 좋았습니다.
권영성 묵호동 동장님의 인사말씀
이영희 동해시 의회 부의장의 축사
자원활동가 위촉장 수여
북스타트 꾸러미 배포
북스타트 꾸러미 수령자 명단 확인
묵호동 주민센터 1층의 민원센터 옆에 마련되어 있는 영유아실
묵호동주민센터 바로 옆에 있는 어린이집의 모습. 아기를 안고 있는 엄마 두 분이 어린이집 마당을 한참 동안이나 쳐다보고 있어서 말을 거니, 안고 있는 아이는 셋째 아기고 저 마당에 둘째 아기가 놀고 있다고 합니다. 물건 사고팔기 놀이를 하는 모양인데, "어여 옷 팔어, 어여 옷 팔어'라고 손짓을 계속합니다.
선포식이 끝난 뒤 서로 이야기꽃을 피우며, 집으로 돌아가고 있는 엄마들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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