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년 '親북 冊파'가 대한민국을 접수하나?
-김학원: 지금은 지난 20~30년간의 변화와는 다르다. 지금은 이전과는 또 다른 근본적 전환기인 것 같다. 지난 수십 년간 책의 위기가 말해졌지만, 여전히 최근까지 책의 공간이 곳곳에 있었다. 예를 들자면, 지하철도 그런 공간이었다. 지금까지 지하철은 책과 <메트로>와 같은 무가지가 경쟁하는 공간이었다. 그런데 최근에 책은 지하철에서 사실상 퇴출되었다. 이제 지하철에서는 책 대신 스마트폰이 무가지와 경쟁한다. 책이 지배권을 행사하던 마지막 공간 중 하나를 스마트폰에 내준 것이다. 지하철만 그런 게 아니다. 침대는 어떤가? 하루 종일 컴퓨터 앞에 있었던 사람도 침대에서는, 수면제 대신 사용하는 용도더라도, 책을 펼치는 사람이 꽤 있었다. 그런데 이제 침대에서도 스마트폰으로 뉴스를 검색하고, 영화를 본다. 즉, 테크놀로지의 발전으로 책이 온전하게 지배력을 부분적으로라도 행사하던 공간이 갑자기 사라진 것이다. 이미 지하철, 침대는 책의 공간이 아니다. 이런 점에서 지금 책의 위기는 과거에 말해졌던 위기와 질적으로 다르다. 이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지 좀 더 근본적인 접근이 필요한 것도 이 때문이다.
-장은수: 1930년대에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베냐민은 바로 이런 미디어 환경의 변화를 염두에 두고 근대적 지식의 생산-소비 구조를 근본적으로 성찰했다. '기계 복제 시대의 예술 작품'이나 '사진의 작은 역사' 등은 그 성찰의 결과이고, 그 덕분에 우리는 테크놀로지가 만들어 낸 새로운 미디어를 인문학적으로 전유할 수 있게 되었다. 한마디로 말해 그 순간 기술은 인문학으로 변화한 것이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어떤가? 계속해서 책의 위기, 인문학의 위기를 말하면서도 정작 새로운 테크놀로지들이 현재의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 그것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지에 대한 이야기는 극히 드물다. 기술의 충격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의 부재는 시민들에게 기술 만능주의자의 이데올로기를 추종하게 했고, 그것은 다시 시민들의 인문학에 대한 무관심을 이끌어 냈다. 새로운 매체에 대한 인문학적 성찰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많은 인문학자들이 칸트를 이야기하지만, 칸트의 철학으로 스마트폰을 사유하지 못한다. 베냐민은 오래된 사유의 전통과 최첨단 매체의 등장을 하나로 이음으로써 미래를 전망할 수 있는 인문학적인 눈을 만들었다. 스마트폰의 등장과 관련해서 최근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게 전자책이다. 그런데 전자책의 '충격'은 있는데, 전자책에 대한 진지한 성찰은 부족하다. 스마트폰 또는 전자책이 위기를 불러오는 게 아니라, 그에 대해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위기가 생긴 게 아닐까? 현재 전자책에 대한 담론이 단말기 생산업자의 논리를 그대로 반복하는 경우가 태반이다. /성찰적 지식과 대안적 지식은 길항한다. 고유한 성찰적 지식이 없으면 현장에서 대안을 얘기한다고 해도 기존에 있었던 말들의 동어반복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현장의 문제의식에서 멀어지면 성찰적 지식이라 해봐야 자기 독백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독백은 근대적 지식의 근본적인 특징이자 약점이다. 근대적 지식은 모두 독백으로 이뤄져 있다. 책은 혼자 쓰고 혼자 읽는다. 독백으로 쓰이고 독백으로 읽는다. 그것이 근대적 책의 규칙이다. 그런데 이런 근대적 지식과는 반대로 전근대 지식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대화 속에서 탄생했다. 소리 내어 읽기는 근본적으로 대화적이고, 타자의 존재를 의식함으로써 성립한다. 근대적 지식은 대화에 기반을 둔 지식에 의해 견제당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자폐로 떨어질 수 있다. 근대적 지식이 혼잣말을 하지 못하도록 균형을 잡는 게 바로 편집자의 역할이다. /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현상 중 하나가 바로 시민 지식인의 등장이다. ...강단 지식인들과는 구별되는 수많은 시민 지식인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들은 학교의 연구자들과 마찬가지로 능동적으로 자기가 관심 있는 것을 지속적으로 탐구한다. 정규 교육과 관계없이 스스로 공부하고, 부족한 부분은 각종 강좌를 찾아가거나 토론 모임 등을 통해서 보충한다. 이런 시민 지식인들이 진화한 형태가 바로 파워 블로거, 또는 마니아들이다.
-이홍 : 산업사회의 중심은 생산자였다. 정보사회의 중심은 누구인가? 권력은 생산자에서 소비자로 이동했다. 대세이고 거스를 수 없다. 그런데 출판은 아직도 생산자 중심의 사고를 고집하고 있다. 근대 지식의 성격 탓인지도 모르겠지만, 책이란 여전히 저자가 독자에게 일방적으로 무엇인가를 전하는 것이고 출판은 이런 구조를 독점해왔다. 정보화는 기본적으로 지식이나 정보의 생산뿐만 아니라 관계의 피드백을 통해 비판되고 수정되고 교체되어야 하는데 종이책은 이 문제에 대단히 비탄력적이다. 그러므로 자기 진화의 핵심은 종이책과 구조로서의 출판이 탄력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정의란 무엇인가>, <그들이 말하지 않는 23가지>의 히트가 인문학에 대한 본질적인 부활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나는 '인문학 열풍'의 진정성을 확인하려면 특히 고전 읽기의 흐름을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그런 징후는 쉽게 감지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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