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권우 씨의 <호모 부커스>에 대해 한겨레가 엄청나게 큰 기사를 내보냈다. 이 기사를 따라가 보면, 몇 가지 키워드를 뽑아낼 수 있다.
호모 부커스(책 읽는 사람들):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상력을 키운 사람들. 쉼표 같은 게으른 독서가 바람직하다 깊이 읽기와 겹쳐 읽기 읽기 위한 읽기가 아니라 쓰기 위한 읽기 독서운동의 정치성 -----------------------------------------------------------------------
책읽기의 왕도를 아십니까 | |
‘책벌레’ 도서평론가 이권우씨의 인문학적 독서 제안 느리게·깊이 읽고 쓰고 토론하면 “당신도 호모 부커스” |
이권우 지음/그린비·1만1900원
여기에, 마을이 하나 있습니다. 책 읽는 데는 도가 튼 ‘호모 부커스’들이 사는 마을이지요. ‘호모 부커스’들은 책을 읽어 마침내 참사람이 된 이들입니다. 이들은 정신적으로 성숙할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 요구하는 다양한 능력도 갖추고 있지요. 공자처럼 책을 읽어서 마침내 ‘성인’이 된 사람들입니다. 마을에는 항상 책에 뿌리를 둔 다양한 아이디어와 문화 상품들이 넘쳐나 사람들을 즐겁게 합니다. 이곳에서 진보적인 삶, 곧 다양한 가치관을 지닌 개인이 더 많은 자유를 누리며 사는 삶은 책을 놓고 벌이는 토론에서부터 싹틉니다. ‘우리집 앞마당을 개발하네, 마네’를 놓고 말싸움하기보다는 책에서 끄집어낸 다양한 가치들에 대해 얘기를 나누며 타인을 진정으로 이해하는 법을 먼저 배웁니다. 이들은 책을 읽으면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상력을 키운 사람들이기에, 나보다 어려운 처지에 있는 이들을 돕고 나와 완전히 다른 이들과도 한데 어울려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에게 혁명은 일상입니다. 책읽기는 기본적으로 새로운 것을 꿈꾸는 ‘혁명’이기에, 호모 부커스들은 한명 한명이 모두 혁명가입니다. 이들은 날마다 변신을 꿈꿉니다. “지배적인 것, 압도적인 것, 유일한 것, 의심받지 않는 것을 희롱하고, 조롱하고, 딴죽 걸고, 똥침 놓”을 줄 아는 이들입니다.
허무맹랑한 마을이라고요? 종종 ‘왜 무엇을 해야 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할 때는 그것을 했을 때 얻을 결실을 먼저 생각해 보는 게 도움이 됩니다. 책읽기가 우리의 삶과 세계를 ‘이렇게’ 변화시킬 수 있다는 얘기를 담은 <호모 부커스-책읽기의 달인>을 보니, 유토피아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상상만 해도 행복한 마을입니다. ‘호모 부커스’들이 득시글대는 유토피아를 만들려면, 사람들을 먼저 책으로 끌어와야 할 터. 그러려면, “뻥을 좀 쳐야 할 터.” 지은이가 조금 쳐놓은 뻥을 내친김에 더 부풀리면 이렇듯 행복한 유토피아가 그려지네요. 말하자면, <호모 부커스>는 ‘책벌레’로 소문난 도서평론가 이권우씨가 ‘책으로 만든 유토피아’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 같은 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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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읽으면 ‘이렇게 된다’는 얘기를 했으니, 이제는 ‘어떻게 해야 하나’에 대해 얘기해야겠군요. 지은이는 ‘책읽기의 달인’이 되는 독서법을 몇 가지 제시합니다. 우선 <삼국지>보다는 <서유기>를 읽으라고 하는군요. “고전의 지혜라고 포장된 처세술”이 담긴 책보다는 삶의 참된 진리를 찾으러 떠난 여행을 그린 ‘동물환상동화’가 정신의 높이를 따졌을 때 훨씬 위에 있다고 합니다. 권위 있는 누군가가 ‘좋다더라’해서 무조건 맹신하고 읽어대지 말라는 겁니다. 무언가에 쫓기듯 되는대로 게걸스럽게 ‘속독’하기보다는 느리게 읽으라고도 합니다. 완행열차를 타고 간이역마다 들르며 고향 가기까지의 풍광을 즐기는 시간이 진정 값진 시간이듯, 경쟁과 불안에서 지친 마음을 쓰다듬으며 책 읽는 시간을 음미하라는 말입니다. 일상이 정지되고 주위를 낯설게 둘러보고, 그곳에서 다시금 새로운 생각을 시작하는 ‘쉼표’ 같은 게으른 독서가 바람직하다고 그는 말합니다. “느리게 살 권리가 내게 있다는 점이다. 나는 느리게 사는 첫걸음은 천천히 읽기에 있다고 여긴다. 읽기의 영토마저 속도주의자들에게 넘길 생각은 추호도 없다. 천천히 읽어야 분석이 되고, 게으르게 읽어야 상상이 되고, 느긋하게 읽어야 비판할 거리가 보이는 법이다. 책을 천천히 읽는 것은 그 자체가 새로운 세계를 꿈꾸는 것이다.” 모든 게 빛의 속도로 변하는 세상에 선전포고와도 같은 말이군요.
그는 깊이 읽고, 겹쳐 읽으라고도 합니다. ‘독서의 후폭풍’을 즐기며 지은이가 쓴 책을 다 찾아내 읽거나, 매혹당한 주제를 다룬 다른 책들을 불러 모으는 게 ‘깊이 읽기’입니다. ‘겹쳐 읽기’는 책끼리 경쟁시키며 읽는 겁니다. 책이 지닌 한계를 깨닫게 해주고 책 너머에 있는 새로운 내용을 상상하게 해주는 방법이지요.
자신의 세계관과 감성을 옹호하고 보충하고 지지하는 ‘각주의 책읽기’와 ‘이크! 이것도 모르고 있었네’라는 생각을 하며 읽는 ‘이크의 책읽기’도 함께 병행해야 합니다. ‘각주의 책읽기’로 높이 쌓아 올린 자신만의 성채를 ‘이크의 책읽기’로 허물어야 더욱 넓고 단단한 세계를 만들 수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책을 읽다 보면 ‘읽기’ 능력은 월등히 높아지겠지요. 하지만 지은이는 여기서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합니다. ‘읽기를 위한 읽기’에 그쳐서는 그저 책을 사는 고급 소비자만 늘어날 뿐이라는 겁니다. 그렇게 애를 썼는데 문화자본의 배만 불리는 일을 하면 배가 몹시 아플 겁니다. 따라서 지은이는 ‘쓰기 위한 읽기 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책을 누가 쓰고 무엇을 주제로 삼았건, 그것은 탐식가인 읽는 이에 의해 그 내용과 형식이라는 살과 뼈가 샅샅이 발려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읽는 이에 의해 재구성되어 또다른 무엇인가를 낳는 밑거름이 되어야 한다”는 게 지은이의 생각입니다. 독후감과 독서토론이 바탕이 될 때 그저 책을 ‘읽기’만 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책을 쓰는 ‘생산자’가 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세상을 향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사람이 세상을 바꿀 기회도 지니고 있는 거겠지요.
따라서 지은이는 말합니다. 책 읽자는 운동은 지극히 정치적인 색깔을 띨 수밖에 없다고요. 여기서 ‘정치’는 정치적 이념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계층별 차이를 최소화하거나 철폐하자는 평등 운동의 성격을 띠는 말이라고, 그는 친절하게 설명합니다. 노숙인들에게 인문학을 가르치는 ‘클레멘트 인문학 코스’ 프로그램이 세상을 바꾸는 전복적인 힘을 가질 수 있는 이유와도 비슷한 이치겠지요.
그는 주장합니다. 책 읽는 능력은 청소년 시절에 키워야 한다고요. 늦을수록 이미 벌어진 사회적 격차를 줄이기 힘들어지기도 하고, 빨리 익혀야, 사회가 급격하게 변해도 스스로 적응할 능력을 기를 수 있다고요. 그러려면, 어른들이 먼저 책을 읽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책읽기는 다음 세대에게 물려줄 수 있는 가장 가치 있는 유산이라는 겁니다. 이렇게 세대에서 세대로 책읽기를 대물림하다 보면, ‘호모 부커스’들이 사는 마을을 만들 날이 언젠가는 오지 않을까요?
김일주 기자 pearl@hani.co.kr
지은이와 함께
세상도 인생도 바꾸는 ‘책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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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정보의 덩어리’로 보는 실용적인 시각보다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책읽기를 통해 삶의 기본을 다질 수 있는 인문적인 독서법을 일러주는 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어느 게으름뱅이의 책읽기> <각주와 이크의 책읽기> <책과 더불어 배우며 살아가다> 등을 통해 ‘도서평론가’로 이름을 알린 이권우(45·사진)씨는 “우리나라 사람이 쓴 인문적 독서론이 없다”는 생각에 몇년 전부터 <호모 부커스-책읽기의 달인>의 출간을 준비해왔다. 필요한 정보를 독서로 수집하는 법을 알려주는 실용서나 초등 독서 교육을 다룬 어린이책은 많아도 세대를 아울러 책읽기의 필요성과 방법론을 얘기하는 책은 보이지 않았다. 마치 한참 동안 <서유기> 완역본이 출간되지 않고 다양한 버전의 <삼국지>만 난립했던 것처럼,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책읽기에 필요한 기본적인 이정표가 없었던 셈이다.
책에 풀어놓은 그의 ‘독서론’은 오랫동안 ‘책벌레’로 살아온 경험에 바탕을 둔 것이다. “책읽기는 공자 되기”라고 자신 있게 운을 떼는 그도 “젊어서 세상과 불화했”으며 책을 읽다가 “사람 됐다”고 말한다. 젊은 시절 “세상이 나를 몰라준다”며 표류하던 그를 잡아준 게 책이었다. 만화 잡지 <만화 광장> 기자로 시작해 출판사 몇 곳과 다양한 잡지사를 거쳐 <출판저널>의 기자와 편집장을 지낸 그는 책읽기를 업으로 삼는 사람이 되면서 외적인 조건에 연연하지 않고 스스로 만족하는 삶에 이르는 길을 책 속에서 발견했다고 한다.
책벌레 생활을 수십 년 하며 서평을 써 온 그가 단순히 ‘서평 기자’에 머무르지 않고 독서운동에 힘쓰는 이유는 스스로 ‘문화 권력자’가 되는 것을 경계해서다.
“서평 기사를 쓰는 일은 결국 출판사의 돈을 벌어주는 일이고, 어떤 책을 읽으라고 누군가를 ‘계몽’하는 성격을 띠기 때문에 문화권력 의식이 생기기 쉽습니다. 참사람이 되려면 다른 사람이 나와 같은 문화생산자, 나의 ‘짝패’가 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내 직업의 기반을 흔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그게 나를 겸손하게 합니다.”
책읽기를 통해 마침내 ‘문화 생산자’에 이르는 길을 안내하는 <호모 부커스>는 책벌레에서 시작해 겸손하고 정열적인 ‘문화 운동가’에 이른 여정의 결과물을 집약한 책인 셈이다.
‘쓰기를 위한 읽기’를 주장한 사람으로서, 이권우씨는 앞으로도 스스로 ‘쓰기를 위한 읽기’를 해왔음을 증명해야 하는 숙명을 안고 있다. “앞으로 유토피아를 주제로 한 책과 백범 김구 평전을 써볼 생각입니다. 1980년대 출판운동사도 써보고 싶습니다.”
글 김일주 기자, 사진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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