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사회'에 몸을 담은 뒤, 책읽는사회문화재단의 이사님으로 모시고 일한 지, 벌써 4년여의 시간이 지났다. 작년 11월 26일(월요일)에는 교수님께서 한성대학교 지식정보학부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도서관 관련 NGO의 활동을 소개하라고 하시어, 저녁 7시부터 교수님의 '공공도서관경영론'의 그 소중한 시간에 두서 없는 발표를 한 적도 있었다. 그 강의가 끝난 뒤, 대학로로 따로 모시고 술잔을 기울였던 때가 기억난다. 사실 이 교수님과 따로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그렇게 많은 것은 아니었으니 생각해보면 이 날 술자리가 조금 각별한 느낌으로 다가온다. 그때 이 교수님은 특유의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나에게 '먹고 살 거리'에 대해 걱정을 나누어 주셨다. 아마도 사단법인 마을문고 본부 사무국장을 하셨던 때를 떠올리며, '앞길'에 대해 걱정을 해주셨던 것이리라.
기념행사가 끝나고 이번에 간행된 <끝나지 않는 도서관 연가--운지 이용남 교수 정년퇴임 기념문집>(조은글터)이라는 문집에 "안찬수 처장, 도서관 운동에 계속 신선한 바람을 일으켜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어주셨다. 송황(悚惶)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집에 와서 문집을 일별해보니, 이 문집이 나로서는 자료로서도 큰 가치가 있을 듯싶다. 우선 한상완 위원장님께서 가끔 사석에서 말씀하시던, 경남 합천군 묘산면 증촌 마을의 장석순 님에 대한 언급이 눈에 들어왔다. 이용남 교수님의 각혈과 약사절이라 불리는 봉국사의 아름다운 인연이 시작된 이야기는 그냥 흘려 들을 이야기가 아닐 것이다. 봉사활동이라 하지만, 오늘 우리의 후배 대학생들에게 선배들의 이런 이야기들이 전설이나 신화로만 남겨져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해보게 된다.
또 제2부의 '남기고 싶은 이야기'에는 미처 문헌으로 정리되지 않았던 마을문고 운동의 뒷이야기들을 남겨 놓으셨다. "우리 도서관계 전반에 관련된 여러 의미 있는 일들 중에는 미처 문헌에 기록되지 않은 것들이 적지 않으련만은, 그것을 이 장에 담기에는 지면이 너무 부족하고 준비도 덜 되어 다른 기회로 미루기로 한다."고 하셨다. 마을문고 관련 6편의 글은 다른 지면에서는 만나기 어려운 자료가 아닌가 싶다. 실제로 이 글 속에, 그 행간 속에 들어 있는 문제의식에는 지금 내가 부딪히고 있는 문제의 일면과 비슷한 것들이 많았다. 시간이 되면 다시 천천히 읽어볼 생각이다.
이 교수님의 연구실--아마도 지금은 이사를 하셨을지?--에는 몇 가지 추억이 되는 기념품(souvenir)이 있었는데, 그 가운데 내 기억에 남아 있는 것은 어느 신문에 발표한 글을 감사패의 모양으로 기념품으로 만들어놓은 것이었다. 그 글이 이번에 기념문집에도 포함되어 있어서 반가웠다. 이용남 교수님의 심지(心地, 마음의 본바탕)를 잘 드러내는 글이 아닐까 싶다. 아래는 그 글의 전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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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드러운 새싹이 언 땅을 뚫는다
여린 새싹이 기나긴 겨울 동안 얼어붙은 땅을 뚫고 나오는 자연의 섭리에서 부드러움의 힘을 느낀다.
나는 일상적인 생각이나 행동에 있어서 부드러움의 미덕을 믿고 실천하려고 애쓴다.
고정틀을 벗어나지 못한 극단적인 사고나 독선적이고 과격한 행동은 궁극적으로 참된 힘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이다. 부드러움은 우유부단의 유약함을 뜻하지 않는다.
그것은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겸손의 자세이며 이상을 좇되 현실을 외면하지 않는 순리적 행동일 뿐 아니라, 더불어 살아야 하는 공동체를 묶어주는 자유자재한 힘으로 작용한다고 믿고 있다.
-<대학문화신문>, '나의 삶의 철학' (1997년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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