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한겨레21의 권태선 논설위원이 쓴 북유럽의 교육에 대한 글을 이 블로그에 스크랩 한 적이 있었다. 북유럽 교육을 둘러본 이들의 답사기가 반갑다. 프레시안에는 김명신 선생(문화연대 공동대표)의 글이 또 다른 시리즈로 올라오고 있다. 프레시안에 연재되는 '김명신의 카르페디엠' 칼럼 가운데 3꼭지를 옮겨놓는다. 김명신 선생은 지난번에 도서정가제와 관련된 토론회에서 만나 뵌 적이 있다. 단아한 분이다. 이 글을 읽으며 신문사에서 훈련받은 기자나 논설위원과는 다른, 어쩌면 생활현실에 밀착된 시민운동가의 시각이 더 정확하게 사태의 맥락을 짚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다.
이 시리즈의 첫머리에서 김명신 선생은 미래학교에서의 경험을 들려준다. 학교 관계자가 프레젠테이션을 통해 학교의 현황 등을 설명할 때 수용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을 보고, 이렇게 말했다는 것이다. "지금 여러분이 각자 가장 유용한 방식,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적어두는 것처럼 학생들도 공부에 적용하는 각자 방식이 다르다."
다양성에 대한 갈급함이 전해진다. 그런데 나와 같은 독자로서는 김명신 선생의 둘째 아이가 했다는 말이 더 절실하게 다가온다. "다양성, 학생 개인의 배움의 속도 차이가 존중되는 나라에 와서 왜 그리 주입식으로 뺑뺑이를 도냐?라며 비난했다."
이 '비난'을 들으며 몇 년 전에 미국의 도서관문화 탐방을 갔을 때를 떠올렸다. 뭔가 우리에게 갈급함이 있는데--그것이 교육이든, 도서관이든, 정치든, 경제든--그만큼 갈급하기 때문에 문제를 찬찬히 그리고 천천히 풀어내지 못하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게 되는 것이다. 오늘 우리의 외국 탐방이나 시찰이 백 년 전 유길준의 '서유견문'이 되어서는 곤란할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간이 많지 않다는 느낌을 떨쳐버리기 힘들다. 이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 시리즈 글의 마지막에서 김명신 선생은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리고 있다.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중요한 지적이다.
"한 나라의 교육 문제는 사회문제와 경제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맥락을 파악하고 중층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서 교육은 세계 경제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을 잠시나마 경험해보니 지난 20년 가까운 교육 운동이 실패한 것도 교육 문제를 다른 분야와 너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때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치, 경제 등 교육운동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지않은 채 민주적인 교육제도를 말하고 실행한다는 이미 절반의 실패가 예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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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09173149&Section=03
"당신은 펜을 들고, 친구는 카메라를 든 것처럼"
지난 1월, 교육운동가, 교사, 교수들 정확히 39명이 떼를 지어 핀란드 교육을 돌아보았다. 내친 김에 스웨덴 교육도 둘러보았다.
주변 사람들은 내가 왜 이번에 핀란드를 가는지 궁금해했다. 지난 몇 년 전부터 교육단체들 사이에서 갈수록 시장화되는 한국 교육에 숨이 막힐 지경이면 늘 단골메뉴로 핀란드 교육이 화제에 올랐다. 그럴 때마다 속으로 부러움과 절망이 교차했다.
인구 500만 명으로 합의를 존중하는 핀란드. 인구 5000만 명의 다양한 집단 가운데 이미 교육문제가 이념문제가 되어버린 한국에서 핀란드를 운운하는 것이 과연 적당한가라는 의문이 끊이지 않았다. 그렇잖아도 인천공항으로 향하는 내게 연세대 민경찬 교수가 전화로 당부했다. "그들의 상황과 한국 상황은 너무도 다르니 감안하고 보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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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1월, 교육운동가, 교사, 교수들 정확히 39명이 떼를 지어 핀란드 교육을 돌아보았다. 스웨덴 교육도 둘러보았다. ⓒ김명신 |
나는 이번 여행을 대학생이 된 두 아이와 함께했다. 두 아이에게 맡긴 역할은 통역 보조였지만 그보다는 교육운동을 하는 엄마가 오랫동안 주장해온 교육 공공성, 한국에서는 좀처럼 체감하기 어려운 추상적인 교육 공공성을 함께 보고 배울 기회를 가지기로 한 것이다. 두 아이 가슴에 핀란드와 스웨덴 교육이 어떤 인상이 남겼는지는 알 수 없으나 교육운동하는 부모로서 절박한 심정으로 그 애들이 겪은 경쟁 교육, 입시 교육이 아닌 다른 교육도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그들은 고스란히 경쟁의 한국 교육을 온몸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이번 여행은 두 나라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여러 급별 학교를 방문하여 그 학교의 설립 취지와 운영 방식을 듣고 교내를 돌아보고 질의 응답하는 것이 주 프로그램이었다. 세계 최고의 복지를 자랑하면서도 교육에 시장화 바람을 도입하려는 스웨덴 국가교육청을 방문하고, 교육이 지방자치단체 책임이 된 핀란드 지자체협의회 등을 방문해 그들의 교육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는 분주하고 빡빡한 일정이었다. 적지 않은 여행 경비를 모두 자비로 부담한 이번 탐방 길에서 오고간 시간을 합한 9일 동안, 관광이라고는 도합 6~7시간이었으니 이번 여행에 한국 교육 관계자들에게 얼마나 절박했는지 그 방문 목적이 대강 짐작이 가리라.
작은 아이는 한시도 쉴 틈 없이 하나라도 더 보겠다고 서두르는 우리 일행을 보며 안타깝다는 듯이 "다양성, 학생 개인의 배움의 속도 차이가 존중되는 나라에 와서 왜 그리 주입식으로 뺑뺑이를 도냐?"라며 비난했다. 일리가 있는 지적이었지만 우리 어른 일행은 그만큼 절박했다.
여행 일정상 먼저 둘러보게 된 스웨덴, 그 첫날 방문한 푸트럼(미래) 학교에서 겪은 인상적인 일이 기억난다. 우리 일행이 학교를 방문해 학교 관계자의 프레젠테이션을 받을 때 각자 다른 유형으로 내용을 기록했다. 노트북에 적는 사람, 메모하는 사람, 그냥 듣기만 하는 사람, 생각하는 사람, 영상으로 담는 사람,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사람… 그것을 본 그 학교 관계자가 이렇게 말했다. "지금 여러분이 각자 가장 유용한 방식,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용을 적어두는 것처럼 학생들도 공부에 적용하는 각자 방식이 다르다."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은 그렇게 개별화에서 시작된 것이 아닐까? 아마 그 장면이 여행의 의미의 처음이자 모든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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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에서 방문한 푸트럼(미래) 학교. ⓒ김명신 |
민주적 가치에 바탕을 둔 스웨덴 교육
스웨덴은 작은 나라로서 인재 양성이 주요 정책 과제이다. 국가가 새로운 인재 유형을 수립하고 이를 개발하기 위해 교육 정책을 수립해 나가는 것이다. 서로에게 민주주의 가치가 중요시되는 것이었다. 그들은 무엇보다 오늘의 교육 목표가 내일의 시민을 만드는 것이며 학생의 창조성, 비판적 사고, 자기 신뢰, 사회적 소통을 중시하고 있다. 노벨상 시상식장인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사를 안내하던 한국 이민자이자 그곳 중학교 교사인 한인자 선생님은 이렇게 말했다.
"시의회장은 사방 막힌 벽이 아닌 양면 유리창으로 되어 있다. 국민의 의견이 의사당 열린 창으로 들어오고 의회의 결정이 열린 창을 통해 국민들에게 전달된다는 의미이다. 또 의사당 좌석 배치가 한 면은 호수를 보이는 멋진 전경이나 호수를 등에 지고 앉는 이들을 위해 맞은편 벽에 아름다운 장식을 해놓았다. 누구도 우연히, 필연적으로 불평등해지는 것을 막기 위한 인위적인 노력이 이 사회에서는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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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스웨덴의 스톡홀름 시청사. ⓒ김명신 |
스웨덴은 사회민주주의 정신에 입각해 1989년 교육이 중앙정부에서 지방정부로 이양되었다고 한다. 국가는 교육의 목표를 정하고 지방정부는 이러한 정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실천하고 책임을 진다. 9학년 동안 의무교육을 하는데 대학까지 무상교육을 한다. 이를 두고 미국의 일부 교육평론가들은 스웨덴은 의무교육 기간을 최소한으로 두면서 개인의 자율을 존중한다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지난 15년 동안 스웨덴 사회도 변화가 일어 유럽연합(EU)에 가입했고, 국가 기간산업에 민영화 바람이 불었으며, 이민자가 급속히 늘어 10%에 달하게 되었다.
스웨덴은 경제 구조 개편과 효율성을 교육에 연결해 '경쟁' 개념을 받아들였다고 한다. 일부에서 경쟁은 좋은 것으로 인식되기도 하여 시장 중심적 운영체제를 도입했다. 우리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명분으로 한국 정부가 지금껏 시도하지 못해 안달이 난 학교 유형인 자율학교-기업형 학교, '쿤스캅 스쿨'을 방문했다. 증시에 상장되고 연 7% 정도의 비교적 고수익을 낸다고 한다.
자율학교는 운동장 없는 빌딩에 교실과 복도로 이루어진 한국의 강남 학원 내부 같은 전경이었다. 이 학교는 교사와 학생이 학생 개개인의 교육 성취 목표를 정하고 이를 철저히 점검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이 기계처럼 매주 진보하는 기계가 아닌 다음에야 무리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동시에 들었다.
핀란드와는 달리 교육 정책에 신자유주의를 일부 도입한 스웨덴은 현재 교육 공공성을 바탕으로 교육에 시장 방식을 도입한 학교, 다양성을 중시하는 학교, 공공성이 장점인 학교 등 세 종류의 학교 그룹이 각축전을 벌이고 있다. 웁살라 대학에서 만난 스톡홀름 교육청의 황석준 선생님은 스웨덴 내에서도 시장화된 교육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견해가 있다며 우려했다. 이에 교원 차등연봉제, 기업이 참여하는 학교를 설립해 논란이 되고 있다. 핀란드는 단위학교결정권이 있는데 반해 스웨덴은 지역교육청의 감사가 영향을 끼친다. 이것이 핀란드에 비해 학력이 뒤처지는 이유, 스웨덴 교육의 한계로 지적되곤 한다.
현재로서는 기업학교의 성과는 아무도 예측하기 어렵다. 그러나 한국과 달리 국민 사이에 부정적인 인식은 있으나 큰 저항이 없는 것은 굳건한 사민주의 바탕으로 사회적으로 임금이나 고용 여건이 평등하기 때문에 교육 정책에 일부 시장원리를 받아들였다고 해서 한국처럼 심각한 부작용이 남발되지는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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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는 학부모들의 학교 선택권을 명분으로 한국 정부가 지금껏 시도하지 못해 안달이 난 학교 유형인 자율학교-기업형 학교를 방문했다. 증시에 상장되고 연 7% 정도의 비교적 고수익을 낸다고 한다. ⓒ김명신 |
한국 정부도 교육 개방을 통해 외국의 학교법인이 이익금을 송금하도록 추진하고 있으며, 한국의 사학재단도 같은 대우를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사학재단들은 그나마 있는 사립학교법을 아예 없애려고 한다. 특히 신자유주의 교육 개혁에서는 자율형 사립학교, 차터 스쿨 개념을 당연시하는데, 정부는 호시탐탐 정책을 도입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교육운동단체는 이를 막으려고 전선을 치고 있다.
한편, 스웨덴은 복지국가답게 교육 취약대상자인 여성, 지역, 노동계층에 동일 교육기회를 주려 노력을 지속해오고 있다. 유럽연합(EU) 역시 지식기반의 중심으로 만들고자 적극적으로 협력하고 있다. 이들 나라는 볼로냐 프로젝트를 통해 대학 교육의 국경을 없앴다. 이번에 보니 스웨덴과 핀란드도 그 무렵부터 잘못된 교육을 고치도록 노력했고 결국 성공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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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0203739&Section=03
경쟁과 협력…누가 더 많이 웃고 살까
화염병과 휴대전화의 나라, 핀란드
핀란드는 호수와 숲의 나라이다. 최근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세계적 인기를 얻은 휴대전화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유선전화를 설치하다가 전봇대를 세우며 자연이 파괴되자 무선전화로 획기적으로 바꾸었다고한다. 그 결과 노키아가 등장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휴대전화 강국이라도 길거리에서 휴대전화을 꺼내든 이는 찾기 어려웠다. 이들은 꼭 필요한 전화만 하는 듯했다.
핀란드는 러시아와 스웨덴으로부터 700년이라는 오랜 식민지를 거쳤지만 자신들의 언어를 간직한 강인하고 생존력이 강한 나라이다. 그래서 화염병이 세계 최초로 생겼다고 한다. 러시아의 침략에 맞서기 위해 러시아 탱크에 화염병을 몇 개씩 투척해 그들을 막아내기도 했다는 것이다. 국민들은 잘 단결하고 합리적이라고 한다.
내가 초등학교에 다닐 적 사회 시간에 배운 바로는 '핀란드는 분단국과는 교류를 안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다가 이후 북쪽과 남쪽 모두 외교를 터서 중립국도 아닌 것이 외교 방식이 낯선 먼(?)나라'로 암기했던 기억이 난다. 최근 핀란드는 노키아라는 세계적 인기를 얻은 휴대전화 회사로 널리 알려져 있다. 얼마 전부터 핀에어라는 직항기가 인천과 헬싱키 직항로가 개설되어 8시간 만에 닿을 수 있는 심리적으로 가까운 국가가 되었다. 지도상에 러시아의 성 페테르부르그 바로 옆에 붙어 있다.
오랜 식민지 기간을 거치다보니 자신들에게 맞는 교육 제도가 있을 리가 없어서 스웨덴과 독일로부터 교육 제도를 수입했는데 부정적인 영향이 커지자 자신들만의 교육 개혁을 찾아 나섰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 일이다. 그들은 그렇게 통합고등학교 제도를 도입해 학생을 독일처럼 어린 나이 때부터 인문계와 실업계로 나누는 것을 피하고 통합 교육을 통해 학생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현시키려 애썼다. 특히 1등하는 아이보다는 성적이 뒤처지는 학생들에게 더욱 관심을 쏟아 위해 평균 학력을 높여 나갔다. 중학교 시기에 학급당 인원수를 획기적으로 줄여 학력차를 보충하는 방식을 고수하고 있다. 핀란드도 인구의 도시 집중을 막을 수 없어 날씨가 온화한 남부 해안가에 발달한 도시 중심으로 인구가 모여들고 이에 따라 학교 간 학력차를 보이고 있어 우려를 낳고 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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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라또까르따노 학교. 교사들이 학교 운동장에서 눈썰매를 끌어주고 있다. 아주 춥지 않은 한 겨울철 실외활동은 필수이다. ⓒ오영희 |
스웨덴과 핀란드가 교육 개혁에 나선 이유
핀란드와 스웨덴 두 나라가 교육 개혁에 전념할 수밖에 없는 이유는 EU국가로서 두 나라의 생존이 절박한 과제이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미국과 일본의 위협에 직면한 국가로서 생존에 온힘을 기울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는 세계 최강이라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이번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도 유아 교육의 확대, 교사 수준 향상, 부시 정부가 내세운 경쟁 교육 정책의 보완 등을 내세웠다. 교육이 사회 발전에 근본이고 변하지 않고는 도태됨을 알기 때문이다.
비록 시장화라는 잘못된 길을 택했으되 한국도 여기서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핀란드는 그 과제를 국민의 계층 갈등으로, 서열화와 분열로, 구시대적 삽질로 풀지 않고 통합 교육으로 평등성이 담보된 교육 정책으로 풀어 나갔다. 교육 기회와 결과의 평등을 바탕으로 인간 관계안에서의 협동, 자발성과 흥미와 서실과 양심 등 두 나라 모두 각각의 철학과 경제수준에 맞게 최선을 다해 유아부터 직업 교육에 이르기까지 교육에 특별한 신경을 쏟고 있었다.
특히 두 나라는 '학력'이란 개념을 점차 확장해 나가고 있었다. 학력을 주입식 교육을 넘어 문제 해결력과 소통 등 보다 넓은 범위에서 파악하고 개인의 소양과 역량을 키운다는 것으로 점차 개념을 넓혀가는 것이다. 나도 아이를 키우지만 그들의 확장된 학력 개념을 접할 때 절로 무릎이 쳐칠 정도였다. 학력 개념 속에는 소통 능력과 시민성을 포함시키며 두 나라는 교육의 수월성과 평등성에 성공한 나라로 꼽히고 있는 것이다.
PISA 시험의 의미
세계 각국이 2000년부터 시작된 국제학생평가프로그램(PISA) 시험 결과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이 시험이 단순히 주입식 학력을 측정하는 것을 넘어서 문제 해결력과 그밖에 창의성, 학습에 대한 태도와 지적 호기심 등 여러 지표를 측정할 수 있는 도구로써 점차 한 나라 교육 정책 결정에 의미를 갖기 때문이다. 얼마전 독일이 PISA 시험 순위가 몇 단계 향상되어 국가적 잔치를 벌였다는 소식을 그무렵 독일로 안식년을 갔던 정현백 교수에게 들은 적이 있다. 그만큼 세계가 관심을 기울이는 부문인데 한국은 성적이 좋아도 좋은 줄을 모르고 칭찬에 인색하며 교육을 타박만 하니 아쉬움이 크다.
핀란드의 세계적 학업 성취가 화제가 되고 그들의 교육 방식과 한국 교육 방식 사이에 큰 차이가 부각되면서 지난 몇 년 동안 핀란드에서 중등학교협의회 회장인 피터 교장선생님이 방한하기도 하고 헬싱키 대학의 OECD PISA 토미 연구원과 야리 교수등 관계자가 방한하여 핀란드가 최고의 국제적인 학력으로 우뚝 서게 된 배경에 대해 워크숍을 하기도 했다.
지난해 이맘때 문화방송(MBC) 에서는 <열다섯 꿈의 교실>이란 특집방송을 통해 핀란드 교육과 한국 교육을 집중 조명하며 비교하기도 했다. 두 나라 똑같이 학력이 세계 최고 수준인데 한국은 가장 공부를 많이 해서 얻은 학력이고 하나는 공부에 목을 매지 않고 얻고 개인의 자발성에 기초해 얻은 결과였기 때문이다. 방송 중 PISA 관계자는 말했다. "그 이유는 한국 교육의 경쟁과 핀란드 교육의 협력 때문이다." 나는 그때도 망치로 머리를 탕하고 얻어맞은 기분이었다. 1년 내 그 말이 내 속에 맴돌았다.
그들은 한결같이 말했다. "경쟁은 스포츠에서나 있다."
낙오자 없는 핀란드 교육
핀란드 교육에 낙오자는 없다. 같은 배를 탄 학생들이 하선하지 않고 무사히 안전한 항구에 이르도록 하는 것이 학교 교육의 목적이라고 얼마 전 방한한 요우니 교수가 거듭 강조했다. 그는 한국의 일제고사 존재 자체에 놀라움을 표했다. 그를 반대한 교사들이 해고를 당했다는 대목에서는 더욱 비판을 했다. 핀란드 학생도 고등학교와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도 치르고 스트레스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10대로서 감당해 낼 수 있는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는 것 같았다. 한국보다 훨씬 덜 불행한 10대라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시험은 학생의 서열을 정하기보다 내가 학습하는 태도, 내가 아는 것을 점검해보는 학습의 과정으로 존재한다. 고교 졸업 무렵 다시 한 번 시험을 봐서 대학에 진학한다.
핀란드의 모든 학교는 크든 작든 밝고 따뜻한 현관을 가지고 있었고 교장실은 있는 듯 없는 듯 학교 한구석에 자리했다. 각 교실마다 다양한 밝은 천의 커텐이 각 교실마다 다른 분위기를 만들며 부드러운 변화를 주고 있었다. 개중에는 대학처럼 넓은 카페테리아가 학교의 중심에 자리한 학교도 있었다. 라또까르따노 학교를 방문했는데 마침 눈이 온날이라 운동장에서 흥겨운 눈썰매가 한창이었다. 아이들은 추운 겨울에도 방한복을 입고 눈밭에 나가 뒹굴며 놀았다. 모든 아이들은 여벌의 방한 방수 옷을 두고 다니며 놀이에서 돌아와서는 건조시켜 다음날을 대비했다.
학교를 개축하느라 임시교사에서 수업이 이루어졌는데 밖에 눈보라가 몰아쳐도 교실 안은 따뜻해 일부 학생들은 반팔차림으로 공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 2학년 혹은 3학년때부터 핀란드어와 스웨덴어를 제외한 외국어를 교사, 학생, 학부모가 선택할 수 있고 교육목표를 공동으로 세운다. 교사가 사회적으로 신뢰받으므로 학부모들의 학교 참여는 그다지 필요치 않으며 대신 개별 학생의 학습 목표를 논의하거나 교육 과정을 의논할 때 학부모는 반드시 참여한다. 학생, 학부모, 교사가 삼자협의를 통해 개별 학생에게 필요한 공부와 진도를 선택하고 결과를 점검하고 다시 한번 학습 계획을 협의해 나간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중3때 전국시험을 봐서 진학한다. 약간의 선호학교가 있기는 하지만 대략 집근처 학교에 진학하고 5킬로미터(㎞) 이상 통학할 경우 국가에서 교통비를 지급한다고 한다. 고등학교는 무학년으로 각자 필요한 코스를 이수하도록 했다. 중3때, 고3때 시험을 치룬다.
야르벤빠 고등학교를 방문했다. 1000여 명이 가까운 학생들이 재학하고 있어서 대학생처럼 고등학교에서는 18개 코스를 정해 이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다. 건물은 방사형으로 지어져 카페테리아를 중심으로한 중앙으로 학생들이 집중되고 분산되게 설계되어있다. 체육이 필수 과목이라 중요시하고 체육실이 위치한 공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기위해 5~6인씩 그룹으로 베드민턴, 농구, 여자하키 코스를 돌아가며 섭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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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앙홀이 있는 야르벤빠 고등학교. 박원순 변호사 모습이 보인다. ⓒ김명신 |
첨단산업이 발전된 나라답게 내가 방문한 고등학교에서는 학생이 자기 카드를 현관문에 접속해야만 문이 열리는데 이를 통해 그 학생의 학교 수업 행적이 다 기록된다고 한다. 직업반과 인문반의 넘나듦이 유연한 통합 고등학교과정을 택하고 '평준화다 아니다'를 거론할 필요없이 공부 잘하는 학생과 공부 못하는 학생이 한데 어울려 협동과 개별학습을 벌인다.
한 예로 사랑을 주제로 한 수업을 참관했다. 학생들은 칠판에 섹스, 오랄섹스, 키스 등 '사랑'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을 적어놓았고 교사는 학생들의 흥미를 바탕으로 종교, 성교육, 문학 작품에서 나타난 사랑에 이르기까지 일주일에 세 시간씩 6주간 인터넷사이트를 활용하고 학생들은 에세이 발표를 하며 통합적으로 '사랑'을 주제로 한 수업에 집중한다. 오래전 내 아이도 외국에서 국제학교를 다니며 세계사 시간에 한 학기 동안 제2차 세계 대전만 배운 적이 있었다. 학생들이 깊게 공부하며 공부하는 방법을 익히고 평가를 통해 자신의 학습태도를 보완해나가는 과정이 학교이자 학습이었다.
핀란드에서는 학생의 학부모의 사회경제적 차이와 학습의 우열이 본격화적으로 드러날 즈음인 중학교 때는 학급당 인원수를 반으로 줄여 학력차를 좁힌다. 중학교는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에 비해 학급당 인원수가 절반이다. 이처럼 잘하는 학생은 그냥 두어도 잘하므로 그대로 두고 못하는 학생들을 끌어올리는 것이 핀란드 교육 방식이다. 이를 통해 개별화 교육과 다양화 교육을 만족시키는 것이다. 그리고 고등학교는 2년 반부터 4년 사이에 마칠 수 있다. 고등학교를 졸업했다고 해서 반드시 곧바로 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아니고 필요하면 인턴 일을 하거나 여행을 하며 자신의 진로에 대해 생각해보거나 휴식기를 가진 후 결정할 수 있도록 모든 가능성이 열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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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문객들에게 학교를 설명하는 야르벤빠 고등학교 학생과 방문 일행. ⓒ김명신 |
직업 교육과 학생 인권
핀란드는 직업 교육이 활발하다. 졸업생이 고교를 졸업하고 현장에 막바로 투입될 것을 상정해 핀란드는 고등학교에서 직업학교에서 직업 교육에 혼신의 힘을 기울인다. 옴니아 직업고교, 직업 교육 센터를 방문했다. 여학생 직업반 중 현재 인기 직업은 미용 직종이다. 그래서 경쟁률도 높다고 한다.
내가 방문한 고등학교에 미용반에서는 미용 중 가장 흔한 일중 하나인 머리 감기기와 머리 맛사지 시험에 교사가 모델이 되어 깔깔거리고 웃으며 시험 평가를 하고 있었다. 동네사람들도 동네 미용실보다 저렴한 가격에 자발적으로 머리커트, 피부 맛사지 등 기꺼이 학생들의 미용실기대상이 되어준다. 그 애들이라고 시험이 없는 것은 아니나 먹고 사는데 필요한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에 집중하고 이를 위해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이다.
핀란드는 이민자는 받지않고 난민만 허락하는데 이민자가 급증하므로 아무래도 사회경제적 배경이 낮은 아프리카계 학생들이 직업반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은지 의료보조원 교육을 받는 구성원은 모두가 유색인종으로 구성되어 있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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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옴니아 직업학교. ⓒ오영희 |
한국의 교육운동가로 살면서 한국 교육을 고발하고 싶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직업 교육과 학생 인권 문제에 있어서 특히 그러하다. 학벌주의, 학력 간 임금 격차 등을 다 제쳐놓고라도 한국이 실업계 학생이 절반인데 그들 교육에 손놓고 있는 현실이다. 한국의 실업계 학생들은 앞다투어 대학에 진학하고 있다. MB정부는 마이스터교를 100개 세운다고하나 직업 교육이 바로서지 않는 한 현재 질곡에서 헤어나기 어려울 것이다. 옴니아 직업고교를 방문해 핀란드 직업 교육을 돌아보며 '누구는 나라 잘 만나서 웃고 사는구나, 누구는 나라 잘못 만나서 근심이 떠나지 않네…'라는 탄식이 저절로 나왔다. 때마침 용산 참사 소식이 인터넷을 통해 전해진 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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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313131403&Section=01
"한국 부모들, 심리학을 공부하세요"
이번에 만난 헬싱키시 인근 에스푸지역의 포요이스 따삐올라 중·고교 교장 선생님은 여성으로서 지난해 경기여고 100주년 초청 행사로 '핀란드의 여성'을 강연하고자 한국을 방문했었다고 했다. 짧은 방한 기간이었으나 그녀는 한국 교육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그녀는 한국 교육에 대해 조심스럽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한국 학부모와 교사들은 심리학을 다시 한 번 배웠으면 한다. 24시간 쉬지 않고 계속되는 학습이 결국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게 한다는 것을 반드시 한국 학부모들이 기억했으면 좋겠다."
그녀는 진심으로 우려를 담아 말했다.
지금 한국은 핀란드와 상황이 다르고 철학이 다르다. 학생들은 미래를 위해 현재를 저당잡힌 채 마구잡이로 일제고사와 대학 입시에 내몰려 있다. 학생은 평등한 것이 아니라 분기별로 나오는 성적표에 의해 부모로부터, 교사로부터 차별받고 있다. 성적을 기준으로 높이높이 인간 피라미드를 쌓으며 대부분 아이가 피라미드에 쌓인 받침돌로서 기능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분모가 되는 학생들이다. 당신이라면 어느 것을 택하겠는가? 그리고 우리는 어떤 교육을 택해야 하는가? 지금 지구 반대편에서 또 다른 교육이 가능한 것이다.
"서로 다른 아이는 서로 다르게 학습한다."
한편, 이번 여행의 코디네이터 중 하나인 핀란드에 사는 교민 곽수현 씨에게 들은 바로는 핀란드 사람들은 교육과 관련해 집중력에 매우 관심을 쏟고 있다고 한다. 아이의 집중력을 해치지 않기 위해 아이가 열중해 노는 한두 시간 동안은 절대 아이에게 말을 걸지 않지 않는다고 했다. 레고 블록을 만들 때도 그러하다고 한다. 그리고 집중력이 뒤처지는 아이들에게 특수교육 차원에서 배려했다.
이에 반해 한국 부모들은 아이가 노는 꼴을 거의 못 보는 것은 물론 아이들의 시간을 엄마가 조작하고 조정함으로써 아이의 집중력을 방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오후 네 시, 일찌감치 어두워지는 북부 유럽의 저녁 엄마들은 아이들을 5겹으로 싸서 유모차에 끌고 다녔다. 추위에 적응하기 위해 밖에서 재우는 것을 때로는 자연스럽게 생각할 만큼 일상화시킨다고 했다. 하긴 늦은 저녁 아이를 셋이나 동행한 유모차 엄마를 지하철에서 흔히 목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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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 옴니아 직업학교의 건축과 실습현장. ⓒ오영희 |
다른 교육이 가능하다
이번 여행 중 핀란드에서건 스웨덴에서건 목이 마르면 아무 화장실에 들어가 수도꼭지에 입을 대고 마셨다. 처음엔 생수 생각이 간절했는데 날이 지나면서 자연스러워졌다. 그들은 내 건강을 지키기 위해 개인적으로 물을 사먹는 돈을 세금으로 낸 후 수돗물 전체를 깨끗하게 유지하는 길을 택한 것이다. 개인노력의 분명한 한계를 공동으로 풀어낸 것이다.
인구 500만 명의 핀란드와 인구 5000만 명 대한민국이 놓인 상황은 분명 다르다. 그러나 두 나라 모두 식민지를 겪었고 생존을 위해 노력한 것은 마찬가지이다. 다만 한 나라는 교육의 철학과 민주주의의 가치를 바탕으로 평등의 가치 위에서 교육을 보았고 누구든 교육의 의지가 있는한, 한 학생이라도 배에서 내리게 하지 않고 낙오시키지 않는다는 일념으로 학생을 대했다. 결국 핀란드는 자율성과 다양성, 국가발전이라는 세 가지 목표를 이루었다.
반면 한국은 학생을 상품화시키고 서열화시키고 있다. 한국은 다른 교육을 생각할 여유도 정치적 리더쉽도 가치도 공유하고 있지 못하다. 그 결과 아이들이 불행하고 교육이 실종된 것이다. 각자 열심히 마우저뚱 초상을 그렸는데 다 그려놓고 보니 메릴린 먼로의 초상이 되어버린 어느 화가의 그림처럼 각자 열심히 교육에 매진했는데 결국 교육은 사라지고 입시라는 괴물만 남았다면 우리는 어찌해야 할까?
교육 개혁이란 것이 학생들의 취미와 적성을 살리고 교육을 통해 행복에 한 발짝 더 다가서야하는데 학생에게는 과도한 부담을 교사에게는 무력감을 불러일으키고 있으며 도리어 더욱 악화되고 있는 것이다. 모두들 학벌이 문제이고 공교육 부실이 문제라고 한다. 그러나 학벌 대책은 늘 중장기 대책으로 밀어놓는다. 정권을 5년 잡는 정부가 학벌 대책을 중장기로 밀어놓는다는 것은 결국 안하겠다는 것이다. 공교육 부실의 1순위로 모두들 거대학교, 과밀학급이 문제라고 하면서도 한국의 경우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이 33.6명, 중등이 35.5명이다. 올해 발표된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OECD 국가 평균 학급당 학생 수는 초등이 21.4명, 중등은 24.1명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는 저개발 국가 수준에 머물고 있는 학급당 학생수를 외면하고 있다. 저출산 시대를 맞아 자연적으로 인구수가 감소되기만을 기다리는 것이다. 그렇다면 과밀학급이 아닌 농어촌 교육은 무사한가? 아니다. 모두들 도시로 몰려들고 있다. 특목고가 점차 모든 중학생이 가고 싶어하는 학교가 되었는데 특목고는 행복한가? 아니다, 특목고생도 사교육을 받는다. 강남 지역 학생들도 천차만별 차별을 당하고 있다. 학벌 때문에 명문대, 지방대학생이 분노한다. 그러면 명문대생은 행복한가? 그들도 취직을 위해 영어 점수 높이기에 목을 매기는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지금은 청년백수 혹은 청년 인턴 대열에 분노하며 혹은 크리넥스 티슈처럼 풀죽어 합류해 있다.
결국 한 나라의 교육 문제는 사회문제와 경제문제와 밀접히 연결되어 있어 맥락을 파악하고 중층적으로 풀어나가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 더구나 지금처럼 세계화된 시대에서 교육은 세계 경제 흐름과도 연결되어 있다. 이번 여행을 통해 핀란드와 스웨덴의 교육을 잠시나마 경험해보니 지난 20년 가까운 교육 운동이 실패한 것도 교육 문제를 다른 분야와 너무 따로 떼어놓고 생각한 때문이라는 후회가 밀려왔다. 정치, 경제 등 교육운동가로서는 어쩔 수 없는 한계 때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실패한 원인이 된 것이다. 또한 일상적인 삶에서의 민주주의가 확립되지않은 채 민주적인 교육제도를 말하고 실행한다는 이미 절반의 실패가 예고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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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핀란드에서 핀란드어 시간에 학년이 섞여서 조별 수업을 하고 있는 장면. ⓒ오영희 |
핀란드는 조세부담률이 40% 정도 되나 한국은 27%다. 그러나 만약 여기에 사교육비를 더하면 40%도 훌쩍 넘을 것이다. 한국의 교육 관계자들은 '두 나라는 근본적으로 세금부담률이 다르다'는 앵무새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돈의 문제, 인식의 문제가 철저하게 다른데 세계 최고 학력이라는 같은 결과를 낳는다면 문제는 이 지점부터 풀어야하는 것이 아닐까? 실종된 한국 교육을 찾아 나서야겠다.
마지막으로 이 글을 빌어 이번 여행에 동행한 38분의 교사, 교수, 운동가, 학생, 이번 여행이 있기까지 모든 수고와 노력을 아끼지 않은 이용관, 안승문 선생, 핀란드 현지의 안애경씨, 통역에 수고한 이병곤, 동원, 라슈, 교육외 부문에서 참여한 권태선 한겨레 신문 논설위원님과 박원순 변호사와 일행 중 최고 연장자인 이부영 님과 헬싱키에서 시를 낭송해주신 도종환 시인께 감사말씀을 전한다. 우리들 일행은 거의 모두 서로 다른 영역에서 한국 교육을 고민하면서 그 출구를 열기 위해 노력한 전문가들이었다, 우리 일행은 여행 중 수없이 동어반복을 했지만 그 열정과 의지, 그 진정성 하나로 2월부터 다시 만나 한국교육의 새로운 출구를 열기 위해 노력할 것을 약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