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관의 대화적 공공성은 사회적 자본을 풍부하게 한다"는 생각을 계속 해오고 있다. 시민들이 도서관 정책, 도서관의 건립과 운영에 주체적으로 참여함으로써 새로운 관계와 신뢰를 형성해나가는 것, 그 구체적인 방법과 세부적인 실천은 최근 나의 가장 큰 관심사이기도 하다.
한겨레신문의 한승동 기자 쓴, 로버트 퍼트넘의 <나 홀로 볼링--미국의 쇠퇴하느 사회적 자본>에 대한 서평을 옮겨놓는다. 미국의 쇠퇴하는 사회적 자본을 우려하는 그의 목소리가 한국에 소개되고, 그것도 무려 3만 8천원짜리 책으로 전달되는 것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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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인과 백인 함께 즐기는 볼링의 사회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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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홀로 볼링>
로버트 퍼트넘 지음·정승현 옮김/페이퍼로드·3만8000원
하버드대 케네디행정대학원에서 공공정책 분야를 맡고 있는 로버트 퍼트넘 교수가 1995년 <민주주의 저널>에 발표한 논문 ‘나 홀로 볼링(BOWLING ALONE)-미국의 쇠퇴하는 사회적 자본’은 학계뿐만 아니라 미국 사회 전체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퍼트넘은 2000년에 이 논문을 수정 보완한 <나 홀로 볼링-미국 공동체의 붕괴와 소생>이라는 책을 써냈다. 거기에 이런 얘기가 실려 있다.
로버트 퍼트넘 교수의 미국사회 분석
1970년 이후 ‘사회적 자본’ 급격히 쇠퇴
“개인간 신뢰·협력적 네트워크 강화해야”
1997년 10월29일 이전까지 존 램버트와 앤디 보쉬마는 미시간주 입시란티의 볼링장에서 동네 볼링 리그를 통해서만 서로 아는 사이에 불과했다. 미시간 대학병원 직원으로 근무하다 은퇴한 64살의 램버트는 신장이식수술 대기자 명단에 이름을 올려놓고 3년째 기다리고 있었다. 우연히 램버트의 딱한 처지를 들은 33살의 회계사 보쉬마는 그를 찾아가 자기 신장 한 쪽을 기증하겠다고 했다.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우리가 병원에 있었을 때 앤디가 이렇게 말하더군요. ‘존 나는 정말 당신이 좋고 깊은 존경심을 품고 있어요. 나는 이런 일이 다시 생겨도 망설이지 않을 거예요.’ 그 말을 듣고는 눈물이 나서 목이 메었답니다.” 그 지역의 <앤아버 신문>에 실린 사진을 보면 두 사람은 직업과 세대만 다른 것이 아니었다. 보쉬마는 백인, 램버트는 흑인이다. 그들이 함께 모여 볼링을 쳤다는 사실이 세대와 인종의 차이를 뛰어넘게 했던 것이다. <나 홀로 볼링>을 꿰뚫는 핵심 주제는 바로 “그들이 함께 모여 볼링을 쳤다”는 문장에 응축돼 있다.
그런데 문제는 지금 미국 사회가 나 홀로 볼링 쪽으로 마구 달려가고 있다는 것이다. 1992년 설문조사에서 미국 취업노동자의 4분의 3이 ‘공동체 붕괴’를 얘기하면서 ‘이기심’이 매우 심각한 문제라고 응답했다. 1999년 조사에서도 미국인의 3분의 2가 시민적 삶이 최근 쇠퇴했다고 답했으며, 응답자의 80% 이상이 공동체를 더 강조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왜 이렇게 됐는가? 그 결과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이를 되돌려 놓으려면 어찌해야 하는가? <나 홀로 볼링>을 관통하는 실천적 문제의식이며, 책 구성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 지은이는 이를 위해 미국의 사회개혁가 리다 하니판이 처음 사용한 ‘사회적 자본’이란 개념을 활용한다. 피에르 부르디외 등도 재활용한 이 개념은 개인들 사이의 신뢰와 상호 연계, 그리고 이로부터 발생하는 사회적 네트워크, 호혜성과 신뢰의 규범, 협력적 네트워크로 요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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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사회적 자본은 1930년대 대공황 시대를 뺀 20세기 3분의 2 시기에 걸쳐 풍성했으나 1970년대 이후 돌연 급전직하로 쇠퇴하기 시작해 30여년간 계속되고 있다. “나날이 늘고 있는 사회적 자본의 적자액은 학업성적, 안전한 동네, 공평한 세금납부, 민주주의 정부의 업무수행 능력, 일상생활의 정직성, 심지어 우리의 건강과 행복까지도 위협하고 있다.” 조지 부시 정권 8년간 더욱 황폐해진 미국의 사회적 자본 실태는 이 책의 문제의식을 한층 더 도드라지게 한다. 역사상 비슷한 시기가 있었다. 1세기 전인 1870~1900년 ‘금박의 시대’와 1900~1915년 ‘진보의 시대’인데, 기술혁신과 부의 팽창이 이뤄졌던 그때도 범죄의 물결, 부족한 교육, 빈부격차 확대, 도시의 타락과 정치적 부패가 극심했고 사회적 자본은 퇴락했다. 왜?
지금의 사회적 자본 쇠퇴를 부른 요인을 지은이는 몇 가지로 나눠 그 중요도를 수치로 표시한다. 시간과 돈의 압박 10%, 교외지역의 도시화와 장거리 출퇴근 10%, 전자화된 오락 수단, 특히 텔레비전의 영향 25%, 그리고 세대교체 50%. 지은이는 2차대전이라는 공통의 경험을 토대로 사회참여에 헌신적이었던 세대가 참여에 무관심한 개인주의적 신세대로 급속히 대체된 것이 결정적 요인임을 여러 지표들을 동원해 설명한다.
금박과 진보의 시대는 사회적 자본 퇴락의 시기이기도 했지만 사회적 자본 재건을 위한 반격이 시작된 시기이기도 했다. 그 결과 지금까지 남아 있는 미국 사회의 주요 단체와 조직 등 사회적 연계망들은 대부분 그때 만들어진 것이다. 거기서 교훈을 찾아내야 한다는 게 지은이 생각이다.
그런데 지역주의나 동창관계에 토대를 둔 배타적이고 폐쇄적인 이익집단·연계망은 오히려 사태를 악화시키지 않을까. 지은이는 사회적 자본을 개방적인 연계형과 폐쇄적인 결속형으로 나누고 연계형 쪽을 강화하는 게 해법임을 보여준다. 다양한 편차를 보이는 미국 주들의 실태조사를 토대로 작성된 여러 그래프들은 연계형 사회적 자본 증대와 삶의 질 향상이 정비례 관계에 있음을 실증한다. 한 가지 짚어볼 것은, 지은이가 구조적 요인을 경시하지 않았느냐는 지적이다. 예컨대 1세기 전과 1970년대 이후 미국 사회적 자본의 쇠락은 ‘시장의 과잉’ ‘자본의 과잉’과 밀접한 상관관계가 있다는 것이다. 1970년대 이후의 사회적 자본 쇠락은 1940년대 뉴딜정책이 구축한 자본-노동의 균형 붕괴 및 신자유주의 도입과 얽혀 있다.
지은이가 주도한 하버드대 33인 토론회 ‘사와로 세미나-미국의 시민 참여’ 멤버였던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된 것은 더 이상의 사회적 자본 파괴를 막아야 한다는 21세기 미국 사회 구성원들의 위기의식의 소산이었을 것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사회적 자본이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21세기에 미국 시민들 선택과는 정반대로 시장과 자본 과잉의 길을 택했다.
한승동 선임기자 sdhan@hani.co.kr
원문출처: http://www.hani.co.kr/arti/culture/book/342692.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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