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6년 2월 4일 베나레스의 힌두 대학 개교 기념식장에서 간디는 이렇게 말했다.
"저는 이 대학의 청년들은 자기의 고유한 방언으로 수업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말은 우리 자신의 반영이지요. 만일 우리의 방언이 가장 위대한 사상을 표현하기에 너무나 빈약하다고 한다면 저는 이렇게 답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차라리 빨리 이 땅을 떠나는 게 낫소! (중략) 지난 50년 동안 우리가 우리 말로 교육을 받았더라면 오늘 우리는 독립 인도에서 살고 있을 깃이며, 학식 있는 우리 동포들이 자기 나라를 외국처럼 느끼지도 않을 것이며 민족의 가슴에 말을 걸 수 있을 것입니다. (<힌두 스와라지> 151쪽의 주석에서)
오늘 우리는 민족의 가슴에 말을 걸 줄 아는 사람을 키워내고 있는 것일까?
이옥순 교수가 교수신문에 쓴 칼럼을 옮겨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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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http://www.kyosu.net/news/articleView.html?idxno=17843
* 이옥순 연세대·인도근대사
[문화비평] 영어는 힘이 세다!
연전에 인도에 있는 유명한 영어기숙학교를 방문했다가 재학생의 절반이 한국인이어서 놀란 적이 있다. 맹모를 능가하는 한국 엄마들의 교육에 대한 열성이 어제오늘의 현상은 아니지만 세상과 차단된 그 먼 히말라야 산중의 기숙학교에서 그들을 보니 반가움에 앞서 복잡한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국제적으로 알려진 그 학교 뿐 아니라 영어로 수업을 진행하는 인도의 웬만한 ‘좋은 학교’에서도 한국 학생들을 얼마든지 만날 수 있다.
교육을 위해 해외로 아이들을 보내는 부모의 입장은 다양할 것이다. 입시위주의 국내 교육에 대한 반감과 그 대안적 선택일 수도 있고, 일찍이 영어로 공부를 시켜 자식을 무한경쟁의 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게 하려는 욕심도 있을 것이다. 내가 인도에서 만난 아이들은 거의 다 현지교육에 만족한다고 대답했다. 시설이 좋고 커리큘럼이 다양하며 교사진도 훌륭하다는 평이었다. 입시로부터 해방감과 영어가 능숙한데서 오는 만족감도 컸다.
그럼에도 영어가 교육의 대세인 우리나라에서 느끼는 불편한 감정은 그 아이들을 만날 때도 찾아왔다. 교육학에 문외한인 내가 어린 나이에 부모를 떠나 이방의 문화에서 성장하는 것의 문제를 논하려는 건 아니다. 다만 인도 근대사를 공부하는 사람으로 영국이 인도에 부과한 영어교육의 목표와 그 부정적 효과를 어느 정도 알기에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우상’이 돼가는 영어교육에 대해 일말의 우려를 갖는 것이다. 인도에서 영토정복을 마무리한 영국은 19세기 전반에 제2의 식민화, 곧 인도인을 영국의 문화에 동화시키는 단계로 나아갔다. “일단 전함과 외교관을 보낸 뒤 영어교사를 보낸다”라는 말대로 영국이 시작한 가장 중요한 정책은 인도인에게 영어교육을 부과하는 거였다. 그 이유는 영어로 교육받은 인도인이 머지않아 “피와 피부는 인도인이지만 관점과 취향, 도덕과 지성은 영국인”으로 식민통치의 열성적인 협력자가 되리라고 여긴 때문이었다.
‘갈색 피부의 영국인’인 인도인들이 영국의 통치를 당연시하고 영국산 상품을 선호해 경제적으로 이득이 될 거라는 전망은 영어로 교육받은 힌두들이 자기의 종교를 지키지 못하고 ‘갈색의 기독교인’이 될 것이며 “우리 문학을 통해 우리에게 친숙해진 인도의 젊은이들이 우리를 이방인으로 여기진 않을 것”이라는 확신으로 이어졌다. 영국의 대학에서 영문학을 가르치기 훨씬 전부터 인도에서 영문학이 학교와 대학의 학과목으로 채택된 건 그런 연유였다. 그 결과 양복을 입고 영어에 능통하며 영국적 취향을 가진 ‘유색인 영국신사’가 탄생했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타고르가 “우리들의 정신은 유아시절부터 영문학으로 구성됐다”고 고백했듯이 초서와 밀턴을 읽으며 영어교육을 통해 이방의 문화에 노출된 그들은 점차 유럽을 선망하고 그 문화와 가치를 우수하다고 내면화하면서 “인도인의 복잡한 맘을 이해하기 어렵게 됐다” 자신의 전통과 사회로부터 멀어진 것이다.
세상이 촘촘히 연결되고 사람의 이동과 교류가 빈번해진 오늘날에 소통의 언어로서 영어의 중요성은 한층 높아졌다. 식민지시대 인도인이 그랬듯이 영어를 배워 경제적 반대급부와 사회적 위상의 이동을 추구하는 건 비판받을 일이 아니다. 영어라는 창구를 통해 넓은 세계를 내다보고 배울 수 있는 이점도 크다. 험한 세상을 건널 ‘다리(橋)’를 하나 더 갖고 있는 셈이랄까. 그러나 유용성만 강조되는 영어교육에도 이면이 없을 순 없다. 식민지시대 인도의 고등학생은 영어와 모국어를 배우는 데 주당 19시간을 들였다. 언어만 학습한 그들에게 큰 미래는 없었다. 오늘날 우리나라에서 목도되는 영어에 대한 과도한 강조도 청소년에게 다양한 걸 배우고 경험할 기회를 박탈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영어가 성공과 직결되는 상황에서 영어에 투자 기회가 적은 계층이 사회적 이동의 가능성을 갖지 못한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무엇보다 다른 언어를 배운다는 건 그 언어의 기반인 문화와 전통에 동화되는 동시에 자신의 언어를 소홀히 함으로써 자신이 속한 사회와 전통으로부터 소외됨을 의미한다. 오늘날 영어로 ‘미드’를 보는 청소년들은 미국의 문화에 친숙해지면서 ‘우리의 것’에서 멀어진다. 피와 피부는 한국인이지만 관점과 취향은 거의 미국인인 그들을 보면 일제강점기 일본어교육에 목숨을 걸고 반대한 조상들이 떠오른다. 일본에서 해방된 지 반세기만에 우리는 영어에 의식마저 사로잡혀버린, 식민지적 무의식에 포박당하고 말았다. 언어는 때로 총보다 강하다.
(이옥순 서강대 동아연구소·인도근대사) <교수신문> 09. 03.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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