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종석 기자의 새 책 <경게 긋기의 어려움>에 대해 프레시안 강양구 기자가 조금 섬세한 서평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글의 말미에 등장하는 20대 지식인 김현진, 노정태, 최익구, 한윤형 등은 어떤 이들일까? 나는 이들 20대 지식인들의 글을 접해본 적이 없을 정도로 무지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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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진화한 결과"
[화제의 책] 고종석의 <경계 긋기의 어려움>
기사입력 2009-03-07 오전 9:11:48
▲ <경계 긋기의 어려움>(고종석 지음, 개마고원 펴냄). ⓒ프레시안 |
한국일보 객원논설위원 고종석이 최근 수년간 쓴 칼럼을 묶어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펴냈다. 그는 2006년 칼럼을 묶은 또 다른 책에서 일찌감치 대통령 노무현의 실정을 비판하면서, 한때 그에게 열광했던 자신의 "미욱함"을 반성했었다. (☞관련 기사 : 한 지식인의 고백, "나는 잠시 무엇에 홀렸었다") 그리고 3년, 대통령이 이명박으로 바뀌었다.
한때 노무현 정부의 공과를 놓고 격하게 대립했던 이들이 한목소리로 이명박 정부를 몰아세울 때, 고종석은 한 걸음 물러서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토로한다. 물론 그가 이명박 정부에 호의적인 것은 아니다. 그가 보기에 이 정부는 "(총으로 집권한 5공과 비교할 순 없지만) 노태우 정권까지 포함한 6공의 다섯 정권 가운데 가장 무엄하고 미련한 정권이다."
그러나 고종석은 우군과 적군이 확실한 것처럼 보이는 세상살이가 사실은 그렇지 않음을 강조한다. 많은 이들에게 경계가 또렷해 보이는 것은 현실이 그래서가 아니라 홍세화의 말대로 "사람이 합리적 존재가 아니라 합리화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찰할수록 경계는 또렷해지기보다는 더 모호해지기 마련이다. 이 책은 그 모호한 경계선의 기록이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
"(전직 대통령 아들 C씨가 커다란 책 도매상을 운영하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머리가 어찔했다. 얼마 되지 않는 내 독자들의 일부는 내가 그리도 관련되지 않고 싶어하는 특정 자본을 통해 내 책을 만나고 있었다. 그렇다면, 이런저런 신문에 내 책을 보내지 않고 그 신문들과 인터뷰를 하지 않는 내 '자기만족적' 실천엔 도대체 무슨 의미가 있을까?"
(…) 삼성의 기업 윤리는 조선일보보다 나은가? 내가 바라는 세상에 대해 삼성은 조선일보보다 더 너그러운가? 그럴 거라는 대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그렇다면 삼성 제품을 기꺼이 사서 쓰는 내가 조선일보를 지네 보듯 하는 것은 자연스러운가? 한쪽은 그저 물질을 팔고 다른 쪽은 거기 사악한 정신을 끼워 파니 둘을 나란히 놓는 것은 어불성설인가?"
고종석은 이처럼 "윤리의 논리적 일관성"을 유지하고 싶어 하는 삶이 얼마나 힘든지 호소한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은 이뿐만이 아니다. 공사가 얽힌 실제 삶에서 경계 긋기는 얼마나 힘든가? 그는 "이념이나 윤리를 기준"으로 경계를 긋고도 곧바로 생기는 어려움을 다시 한 번 이렇게 토로한다.
"조선일보와 한겨레에 어떤 경계를 그어놓고 보면, 이내 (사적으로 알고 있는) 딱하다 싶을 만큼 매력 없는 어떤 한겨레 기자들과 (역시 사적으로 알고 있는) 넉넉히 매력적인 어떤 조선일보 기자들이 떠올라 마음이 스산해진다. 그 매력은 재능만이 아니라 됨됨이(예의나 겸손이나 너그러움이나 신의 같은 미덕으로 이뤄지는 개인 윤리)까지를 포함하는 것이다."
물론 고종석은 곧바로 스스로를 다잡듯이 아래와 같이 강조한다. 그러나 왠지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한 번 더 강조하는 말처럼 들리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좋고 싫음은 어쩔 수 없다 해도, 그 호오가 윤리의 논리를, 또는 논리의 윤리를 완전히 동강내서는" 안 된다고. "한나라당이 형편없는 정당"이라는 것은 "그 당의 어떤 당원이나 어떤 지지자가 괜찮은 사람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조선일보가 형편없는 신문"이라는 것도 "그 신문의 어떤 기자가 괜찮은 사람인 것과는 무관하다"고.
치열한 반성에 기반을 둔 경계 긋기
아이러니하게도, 정작 이렇게 경계 긋기의 어려움을 고백하는 고종석의 글이야말로 '치열한 반성에 기반을 둔 경계 긋기'의 한 보기이다. 그의 경계 긋기는 천박한 진영 논리에 매몰되지 않고 철저한 윤리 의식에 바탕을 두고 있다. 예를 들면 퇴임하는 대통령 노무현을 놓고 그는 이렇게 말한다.
"다섯 해 전 새 대통령을 뽑을 때, 한국 유권자들 마음속에선 윤리적 욕망이 파닥거렸다. 지난해 말 새 대통령을 뽑을 때, 그들 마음속에 윤리적 욕망이 들어설 자리는 없었다. 이렇게 된 이유 가운데 큰 것이 자신의 행태였음을 노무현은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탈윤리 대통령 이명박은 윤리 대통령 노무현이 다섯 해 동안 진화한 결과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오래도록, 한국 유권자들은 정치적 결정에 윤리가 끼어드는 걸 꺼릴 것이다. (…) 노무현과 노무현 시대에 대한 평가는 앞으로 분명히 나아질 것이다. 그러나 그때에조차, 노무현이 실패한 대통령이었음은 엄연하다." (물론 고종석은 일부 언론의 반노(反盧) 선동을 비판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이런 고종석의 경계 짓기는 공사를 가리지 않는다. 그는 한때 역시 대통령 노무현에 열광했던 김진석을 이렇게 평한다. 최근 김진석은 '기우뚱한 균형'이라는 개념을 내놓아 일부 지식인을 홀렸다. (고종석의 책을 꾸준히 읽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김진석과 그가 막역한 사이라는 것을.)
"나는 그의 '기우뚱한 균형'을, 저자의 자기정향(自己定向)과 달리, '오른쪽으로 살짝 기운 균형'으로 여긴다. 중도우파를 자처하는 내가 보기에도, 시장사회나 전쟁에 대한 그의 관점이 사뭇 유연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이 참여지식인으로서 실천할 수 있는 것 너머를 이야기하지 않는 절제는 이 책의 두드러진 미덕이다."
절망의 시대, 희망을 말하다
<경계 긋기의 어려움>에서 고종석은 자주 한 세대 터울의 20대 지식인을 언급한다. 김현진, 노정태, 최익구, 한윤형 등이 그들이다. 그는 "나이 차가 이만큼 크지 않았다면, 질투심 때문에 이들의 글을 읽기 힘들었을 것"이라고 농하면서 그들에 대한 애정을 숨기지 않는다.
고종석은 이들에게서 희망을 보면서, 자신을 포함한 기성세대의 반성을 촉구한다. 그의 고백대로 "경계를 찾기 위해 어둠 속의 길을 더듬거리면서도, 청년 편에 서려 애쓴" 탓일까? "해묵은 비관주의"를 들먹이는 것과 달리 이 책의 전체적인 기조는 비관보다는 낙관이다. 모두가 절망을 말할 때, 희망을 말하는 책은 반갑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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