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0년 10월 29일자 [사설] 국방부 ‘불온서적’ 합헌 결정 유감스럽다
헌법재판소가 어제 군대 내의 ‘불온도서’ 반입·소지 등을 금지하고 있는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 2에 대해 재판관 6 대 3의 의견으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지난 2008년 7월 국방부 장관이 이 조항을 근거로 영국 케임브리지대 장하준 교수의 저서 <나쁜 사마리아인들> 등 23권의 책을 불온서적으로 지정하자 군법무관 7명이 기본권과 양심의 자유 등을 침해당했다며 낸 헌법소원에 대해 2년 만에 결정이 내려진 것이다. 그러나 이는 헌법소원을 제기한 군법무관들에 대한 파면·감봉 등 국방부의 터무니없는 중징계 속에 군인의 기본적 권리보호에 대한 새로운 결정을 기대했던 사람들에겐 실망스럽기 그지없는 결과다.
이번 사안의 쟁점은 ‘불온’이라는 모호한 개념과 이를 토대로 한 자의적인 도서지정이 헌법상 명확성의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느냐는 것이다. 당시 국방부의 ‘불온도서’ 목록은 국제적인 조롱거리가 될 정도로 시대착오적이었다. 학술원에 의해 우수도서로 지정되거나 세계적인 석학이 쓴 검증된 책들도 포함돼 있었다. 국가인권위도 “군대 내 서적 및 기타 표현물에 대한 제한조치에 관해 명백한 기준과 절차를 마련해 명시적인 법률상 근거를 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공식적으로 밝혔다. 그럼에도 헌재는 “해당 조항이 무엇을 금지 또는 허용하는지 예측할 수 있기 때문에 명확성의 원칙에 반하지 않는다”고 했다. 과잉금지 원칙 위배에 대해서도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훼손할 수 있는 책들로 불온서적의 범위를 한정했다”며 인정하지 않았다.
어떤 책을 선택하고 읽을 것인지는 인간이 누려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다. 헌재는 이번 결정을 통해 국가안보와 국토방위의 효과적인 수행이라는 군의 특수성만 강조할 게 아니라 군인들이 명확한 기준에 의해 책 읽을 권리를 침해받지 않도록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어야 한다. 세계적으로 권위를 인정받고 정부기관이 독서를 권장한 책에 개념조차 불명확한 ‘불온’이라는 딱지를 붙이면 군인들은 어떤 책을 읽으라는 것인가. 헌재는 중요한 결정을 내릴 때마다 정치적 판단을 지나치게 개입시킨다는 세간의 비판을 되새겨야 한다. 이번 결정이 나오기 전부터 일각에선 헌재가 천안함 침몰 이후 여권이 조성한 ‘안보 최우선’ 분위기에 편승할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돼왔다. 헌재의 이번 결정은 군인들의 헌법상의 기본권 보장에 새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기회를 저버린 결과로 유감을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한겨레 2010년 10월 29일자 [사설] 군이 퇴행의 우물을 못 벗어나도 괜찮다는 건가
헌법재판소가 국방부의 ‘불온서적’ 지정에 대해 합헌 결정을 내렸다. 군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는 내용의 불온도서에 대해선 이를 금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본권 수호의 보루여야 할 헌재가 되레 명백한 기본권 침해에 면죄부를 줬으니 유감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헌재도 인정한 대로, 국방부가 불온서적 지정의 근거로 삼은 군인복무규율 제16조의2는 ‘알권리’를 제한하는 규정이다. 이로 인해 학문·사상·양심의 자유도 침해받을 수 있다. 군인이 일반 국민에 견줘 거주·이전의 자유 등 기본권을 어느 정도 제한받을 수밖에 없는 특수한 처지라고 하더라도, 그 제한은 꼭 필요한 범위에 그쳐야 하고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은 침해할 수 없는 게 원칙이다. 기본권의 예외없는 보장은 법치주의의 핵심이다.
그런데도 헌재는 국가안보에 필수적인 군의 정신전력을 보전하기 위한 것이라며 불온서적 지정에 손을 들어줬다. ‘국가의 존립·안전 또는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해하거나 반국가단체를 이롭게 하는’ 불온서적은 군의 정신전력을 심각하게 저해하므로 이를 금지하는 게 자의적이지도 지나치지도 않다는 논리다. 사실상의 검열로 알권리 등 기본권이 본질적으로 침해됐는데도, 그런 사실엔 눈감은 꼴이다.
문제된 책들을 보면 이런 주장은 억지임이 금세 드러난다. 국방부가 불온서적이라고 지정한 책은, 교육과학기술부가 양서로 추천했거나 방송이 권장도서로 뽑은 책, 대학의 교양수업 교재, 세계적 석학의 저서, 여러 언론이 올해의 책으로 꼽은 베스트셀러 등이었다. 현 정부의 경제정책 등에 비판적인 책은 있을지언정 국가의 존립과 체제를 해치거나 북한을 이롭게 할 책은 없었다. 유독 군만 불온하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시민사회는 물론 여당 의원들까지 군의 잘못을 비판한 것도 그 때문이었다. 이렇게 군이 사회 일반의 지성과 인식 수준에도 못 미친 채 퇴행할 때 정신전력이 더 심각하게 저하되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마당에선, 불온서적 지정이 명확한 기준에 따라 지나치지 않게 적절히 이뤄졌다는 헌재의 변명은 설득력을 잃는다. 기본권을 제한하더라도 명확성의 원칙이나 과잉금지의 원칙 등은 지켜야 하는데, 국방부는 자의적으로 불온의 기준에도 해당하지 않는 책들까지 금지해 기본권의 본질적 내용을 침해했다. 어떻게 이런 일을 위헌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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