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 2010년 10월 13일자 경희대 실천인문학센터 최준영 교수의 기고문 '먹고 살기 힘든 세상에 웬 책이냐고?' 을 옮겨놓는다.
최근 전국 지자체에서 책읽기 사업이 한창이다. 마을 곳곳에 작은도서관이 들어서는가 하면 북스타트, 아침독서, 한 도시 한 책, 저자 초청 북 콘서트 등 다양한 책읽기 행사와 독서장려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지금, 지자체는 독서 중’이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다.
책읽기의 중요성이야 여기서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다만 지금 왜 전국의 지자체들이 책읽기 사업에 열을 올리고 있는지, 그 까닭을 살펴볼 필요는 있을 듯하다.
지방자치 초기 각급 지자체에선 경쟁적으로 지역축제 등 대규모 행사를 기획해 왔다. 개중엔 지역의 정체성과 지역민의 자부심을 고취하는 등 지역을 대표하는 브랜드로 성장한 축제도 있고,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다. 심한 경우 지역민들조차 “우리 지역에서 왜 이런 축제를 열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털어놓은 엉터리들도 있었다.
그래서다. 지방자치 15년을 넘어선 지금 각 지자체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모색하고 있다. 더 이상 선심성 혹은 겉치레 사업으로는 시민들의 호응을 얻을 수 없다는 자각과 함께 내실 있는 자치서비스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음을 감지한 것이다. 책읽기 운동의 전개는 그런 의미에서 특히 눈여겨볼 만하다. 지자체의 일회성 행사가 아닌 시민 각자가 자기 삶의 내면을 들여다 보고, 스스로 변화를 이끌어 내는 것이 바로 책읽기 사업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때마침 인문학의 중요성이 인식되고 있는 사회적 분위기에도 부합하는 것일 테고 말이다.
그러나 취지가 좋고, 방향이 옳다고 해서 누구나 공감하는 건 아닌 듯하다. 민선 5기 출범 직후 ‘책 읽는 도시’를 선언한 경기도의 모 기초단체장이 지역신문의 뭇매를 맞고 있는 것을 보면 말이다. “먹고 살기도 힘든 세상에 왜 한가하게 책 타령이냐”는 것이 지역신문의 일갈이었다. 과연 그런가? 어디 한번 생각해 보라. 우리가 진실로 삶을 견디는 힘이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가를.
전국의 지자체에서 책읽기 운동이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이 훨씬 실질적이며 의미있는 일이다. 지자체마다 방식과 내용, 접근법도 다르고 다채롭다. 일찍이 출판단지를 조성한 파주시는 2011년 파주 북 엑스포를 준비하고 있고, 김해시와 강릉시가 ‘책 읽는 도시’를 선포한 지 오래다. 전남의 순천시·신안군·강진군이 책 읽는 도시를 주창하고 있으며, 청주와 대구, 부산, 서울, 경기 등 어디랄 것도 없이 책 읽기 운동에 매진하고 있다.
몇 해 전부터 ‘노숙인을 위한 인문학 강좌’에 참여했던 필자 역시 책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편이다. 인문학 강좌에 참여했던 한 노숙인이 이듬해 TV에 나와 했던 말을 두고두고 기억하는 까닭이다. “책을 모르던 시절 술과 노름에 빠져 지내다 노숙까지 하게 됐습니다. 인문학 강좌에 참여해 책을 읽기 시작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됐습니다. 책이 저를 살렸습니다.”
최근 필자는 한 지자체의 말직을 맡아 ‘책 읽는 도시’ 사업을 열심히 거들고 있다. 세계 최고의 부자 빌 게이츠가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조국도, 어머니도 아닌 동네의 작은 도서관이었다”고 말한 것처럼, 30년쯤 지난 미래의 어느 날 세계적인 명사가 된 한국인이 “오늘의 나를 만들어 준 것은 내가 나고 자랐던 마을에서 추진했던 책읽기 운동 덕분이었다”고 말하는 것을 상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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