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칼럼] 문학을 질식시키지 말라 /강동수
쥐꼬리 '문학나눔' 그마저 없애는 정부
기초예술단체 지원 줄이기 바쁜 부산시…노벨상 타령 왜 하나
- 국제신문
- 수석논설위원 dskang@kookje.co.kr
- 2013-10-31 19:37:52
- / 본지 23면
며칠 전 서울에서 문학전문 출판사를 운영하는 한 후배와 모처럼 만나 술자리를 가졌을 때다. 이런저런 이야기 끝에 박근혜 정부의 문화예술 정책으로 자연스럽게 화제가 옮겨갔다. 문득 그가 정부가 '문학나눔'사업을 폐지하려 한다며 어두운 표정을 짓는 것이었다. 속사정을 들어보니 딱한 노릇이 아닐 수 없었다.
'문학나눔'이란 복권기금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 우수 문학도서를 구입해 산간벽지와 달동네, 교도소, 고아원, 사회복지시설 등 문화소외지역의 작은 도서관에 무료 배포하는 사업이다. 영세 출판사들로선 매출에 다소 도움이 되고 작가들도 인세 수입이 좀 늘어난다. 더 중요한 건 이 제도가 출판사들로 하여금 장래성 있는 신진작가들의 책을 펴내도록 자극해 왔다는 대목이다. 문화소외지역의 도서관들도 다양한 문학도서를 기증받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서울뿐만 아니다. 요즘 주목받는 '산지니' 등 부산 출판사들과 지역 작가들도 신세지고 있다.
2005년 첫해엔 52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가 한때는 14억 원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올해는 40억 원 수준으로 겨우 회복됐던 터다. 한데, 정부 입맛대로 예산을 늘렸다 깎았다 하는 것도 모자라 내년엔 그마저 없앤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책을 내기 어려운 젊은 작가들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이라는 게 후배의 걱정이었다.
내막을 알아보니 '문학나눔사업'을 폐지해 '우수 학술·교양도서 선정 사업'과 통합한다는 게 문체부의 계획인 모양이다. 문체부는 두 사업을 합쳐 예산을 더 늘릴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야말로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격이다. 문학도서는 시장에서 이른바 교양이란 당의정(糖衣錠)을 씌운 자기계발서 따위에 밀려난 지 오래다. 부수 기준으로 전체 도서의 13%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작년엔 6.6%나 줄었다. 이런 판에 시나 소설책을 학술·교양도서와 함께 묶어 놓으면 지원폭이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죽 위기의식을 느꼈으면 진보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와 보수 쪽인 한국펜클럽이 두 사업의 통합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냈을까.
문학과 기초예술에 대한 홀대는 지자체가 한술 더 뜬다. 부산만 해도 수십 명쯤 골라 발간비의 1/3도 채 못 되는 300만~400만 원의 문예진흥기금을 주는 게 전부다. 지역 출판사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도 찾아보기 어렵다. 부산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축제인 요산문학제는 창설 당시 지원금 3000만 원이 16년 동안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국제'란 타이틀만 붙이면 온갖 잡동사니 행사에 '부엌데기 국솥 푸듯' 퍼주면서 말이다. 최근 부산문화재단은 문학을 포함한 기초예술단체에 연간 2건 주던 지원금을 1건으로 줄였다. 소속 예술인은 늘고, 물가는 오르는 판에.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깎으려만 드는지 모를 일이다. 후발단체가 의욕적으로 사업을 기획해 부산시에 신청을 해도 '신규사업 지원 불가'란 진입 장벽에 막히기 일쑤다. 결과적으로는 기초예술에 지원될 돈이 열흘간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블랙홀처럼 빨려들어 간다. 부산의 기초예술인들은 화려한 영화제 개막식을 TV로 지켜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다. 휘황한 조명 아래 레드카펫을 걷는 배우 서너 명을 초청하는 데 드는 돈만 줘도 시민을 위한 조촐한 문화행사 하나 때깔 나게 벌여볼 수 있을 텐데 하며….
'문화융성'이란 구호를 요란하게 외치고 있는 박근혜 정부다. '문화융성위원회'도 구성했다. 예술인들이 행여나 하고 기대를 걸었던 터다. 그런데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더 열악해져 간다. 문학을 포함한 기초예술이 무너진 모래밭 위에 문화산업이니, 영상산업이니 하는 누각을 지은들 얼마나 버틸까.
전국 4만2157개 출판사의 94%인 3만9620 곳이 지난해 단 한 권도 발간하지 못했다. 지금도 숱한 작가들이 원고뭉치를 들고 책 내줄 출판사를 찾아 신발이 닳도록 헤맨다. 출판사의 무능을 탓해야 하나, 팔리지 않는 글이나 쓰는 문학인의 뒤떨어진 감각을 꾸짖어야 하나. 아무래도 좋다. 그래도 문학의, 기초예술의 숨통을 죄지는 말라. 이래놓고선 왜 한국 작가들은 노벨상도 못 받느냐고 훈계할 건가.
출처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31101.22023193632
'문학나눔'이란 복권기금의 일정 부분을 떼어내 우수 문학도서를 구입해 산간벽지와 달동네, 교도소, 고아원, 사회복지시설 등 문화소외지역의 작은 도서관에 무료 배포하는 사업이다. 영세 출판사들로선 매출에 다소 도움이 되고 작가들도 인세 수입이 좀 늘어난다. 더 중요한 건 이 제도가 출판사들로 하여금 장래성 있는 신진작가들의 책을 펴내도록 자극해 왔다는 대목이다. 문화소외지역의 도서관들도 다양한 문학도서를 기증받으니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일이 아니겠는가. 서울뿐만 아니다. 요즘 주목받는 '산지니' 등 부산 출판사들과 지역 작가들도 신세지고 있다.
2005년 첫해엔 52억 원의 예산이 배정됐다가 한때는 14억 원으로 줄어들기도 했다. 올해는 40억 원 수준으로 겨우 회복됐던 터다. 한데, 정부 입맛대로 예산을 늘렸다 깎았다 하는 것도 모자라 내년엔 그마저 없앤다는 거다. 그렇게 되면 가뜩이나 책을 내기 어려운 젊은 작가들의 입지가 크게 좁아질 것이라는 게 후배의 걱정이었다.
내막을 알아보니 '문학나눔사업'을 폐지해 '우수 학술·교양도서 선정 사업'과 통합한다는 게 문체부의 계획인 모양이다. 문체부는 두 사업을 합쳐 예산을 더 늘릴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런데 이야말로 닭 잡아 먹고 오리발 내미는 격이다. 문학도서는 시장에서 이른바 교양이란 당의정(糖衣錠)을 씌운 자기계발서 따위에 밀려난 지 오래다. 부수 기준으로 전체 도서의 13%수준에 그친다. 그나마 작년엔 6.6%나 줄었다. 이런 판에 시나 소설책을 학술·교양도서와 함께 묶어 놓으면 지원폭이 훨씬 줄어들 수밖에 없다. 오죽 위기의식을 느꼈으면 진보 문학단체인 한국작가회의와 보수 쪽인 한국펜클럽이 두 사업의 통합을 반대하는 공동성명을 냈을까.
문학과 기초예술에 대한 홀대는 지자체가 한술 더 뜬다. 부산만 해도 수십 명쯤 골라 발간비의 1/3도 채 못 되는 300만~400만 원의 문예진흥기금을 주는 게 전부다. 지역 출판사에 대한 정책적인 배려도 찾아보기 어렵다. 부산의 가장 대표적인 문학축제인 요산문학제는 창설 당시 지원금 3000만 원이 16년 동안 단 한 푼도 오르지 않았다. '국제'란 타이틀만 붙이면 온갖 잡동사니 행사에 '부엌데기 국솥 푸듯' 퍼주면서 말이다. 최근 부산문화재단은 문학을 포함한 기초예술단체에 연간 2건 주던 지원금을 1건으로 줄였다. 소속 예술인은 늘고, 물가는 오르는 판에.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을 어떻게 깎으려만 드는지 모를 일이다. 후발단체가 의욕적으로 사업을 기획해 부산시에 신청을 해도 '신규사업 지원 불가'란 진입 장벽에 막히기 일쑤다. 결과적으로는 기초예술에 지원될 돈이 열흘간 열리는 부산국제영화제에 블랙홀처럼 빨려들어 간다. 부산의 기초예술인들은 화려한 영화제 개막식을 TV로 지켜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다. 휘황한 조명 아래 레드카펫을 걷는 배우 서너 명을 초청하는 데 드는 돈만 줘도 시민을 위한 조촐한 문화행사 하나 때깔 나게 벌여볼 수 있을 텐데 하며….
'문화융성'이란 구호를 요란하게 외치고 있는 박근혜 정부다. '문화융성위원회'도 구성했다. 예술인들이 행여나 하고 기대를 걸었던 터다. 그런데 기초예술에 대한 지원은 오히려 더 열악해져 간다. 문학을 포함한 기초예술이 무너진 모래밭 위에 문화산업이니, 영상산업이니 하는 누각을 지은들 얼마나 버틸까.
전국 4만2157개 출판사의 94%인 3만9620 곳이 지난해 단 한 권도 발간하지 못했다. 지금도 숱한 작가들이 원고뭉치를 들고 책 내줄 출판사를 찾아 신발이 닳도록 헤맨다. 출판사의 무능을 탓해야 하나, 팔리지 않는 글이나 쓰는 문학인의 뒤떨어진 감각을 꾸짖어야 하나. 아무래도 좋다. 그래도 문학의, 기초예술의 숨통을 죄지는 말라. 이래놓고선 왜 한국 작가들은 노벨상도 못 받느냐고 훈계할 건가.
출처 http://www.kookje.co.kr/news2011/asp/newsbody.asp?code=1700&key=20131101.22023193632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