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국 셔울에 공립 고가 슴을 셋인 그 쇽에 인이
원문 : ○ 덕국 셔울에 공립 고가 슴을 셋인 그 쇽에 인이 도합 이 만권 가량인 뎨국 고에 인것이 만권이요 대학교 고에 인것이 십오만 팔쳔권이요 뎨국 슈학 고에 인것이 십삼만 륙천권이요 무관 학교 고에 인것이 팔만 팔천 권이요 뎨국 교회 고에 인 것이 칠만 이쳔권이요 셔울 인민 공립 고에 인것이 칠만 륙쳔권인 젼국 인민이 누구던지 이 고에 들어 가셔 아모 이나 보 권리를 주엇 사들이 안셔 볼 방들을 훈륭 게 여 노앗다더라
번역문 : ○ 덕국 서울에 공립 책고가 스물 셋인데 그 속에 쌓인 책이 도합 이백 만권 가량인데 제국 책고에 쌓인 것이 백만권이요 대학교 책고에 쌓인 것이 십오만 팔천 권이요 제국 수학 책고에 쌓인 것이 십삼만 육천 권이요 무관 학교 책고에 쌓인 것이 팔만 팔천 권이요 제국 교회 책고에 쌓인 것이 칠만 이천 권이요 서울 인민 공립 책고에 쌓인 것이 칠만 육천 권인데 전국 인민이 누구든지 이 책고에 들어 가서 아무 책이나 보는 권리를 주었는데 사람들이 안서 책 볼 방들을 훌륭 하게 꾸머 놓았다더라
"덕국 셔울에 공립 고가 슴을 셋인 그 쇽에 인이", 독립신문(서재필)[獨立新聞(서재필)], 18980405
독립신문(獨立新聞)은 1896년 4월 7일에 한국에서 발간된 민간 신문이자 한글, 영문판 신문이다. 서재필을 중심으로, 독립협회(獨立協會)의 기관지로 발간되었으며 미국인 선교사 호머 헐버트가 신문 창간과 발행 작업을 적극적으로 도왔다. 서재필은 당시 4,400원을 발급받고 또 조선정부의 지원을 받아 4월 7일에 처음 발간했다. 4면 중 3면은 순국문, 1면은 영문으로 문장을 썼다. 필진으로는 유길준, 윤치호, 이상재, 주시경 등이 참여하였다. 서재필을 중심으로 발간했으나 그가 미국으로 망명한 뒤에 헨리 아펜젤러를 발행인으로 하여 윤치호가 맡아 발행하다가 독립협회의 해산과 함께 폐간되었다.(위키피디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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