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4월 29일 토요일

강진국(姜辰國), 농촌사업을 부대한 농촌문고 창설의 급무(6), 동아일보 1936년 3월 6일자 기사(칼럼/논단)

농촌사업을 부대한 농촌문고 창설의 급무(6)

강진국

 

7. 농촌문고 지도자의 지도정신 

다음으로 초두에 약속하엿든 농촌문고 지도자정신에 대한 설명의 필요를 여기서 느낀다. 

농촌문고의 지도자는 이상 서술한 사업의 실지 운용자이며 실험자이다. 이 사업이 소기의 성과를 맺고 못 맺음은 오로지 지도자의 수완과 그 장중(掌中)에 매어 달렷으니 소()하여는 부락의 개발과 운명을 지배할 개척자이오 대()하여는 조선의 문화와 그 발전을 담당한 책임자이니 그 직책의 중차대함이여! 

그러므로 우리 지도자들은 농촌운동의 중심이 되고 부락 동정(動靜)의 목표가 되어야 할 것이니 백절불굴할 공고한 의지와 적수천석(滴水穿石)의 진지한 태도와 지성(至誠)을 갖고 이 사업에 임할 것이다. 나는 여기 관련된 실례를 들어 이 구체적 방법론을 대신, 아니 설명하고저 한다. 

야마구치현(山口縣) 하기시(*편집자 주석: 荻市라고 되어 있으나 萩市의 잘못이다.)에서 약 2(조선 리수 里數로는 20리) 되는 산촌에 아키라기(明木)라는 농촌이 잇으니 4백여 호에 인구 2천여를 갖은 농촌이다. 5백원의 근소한 경비와 고등소학(高等小學) 졸업의 학력을 갖은 지도자로서 경영되는 문고(文庫)(小圖書館)가 있으니 그대로 그것인 전 일본 쵸손(町村) 도서관의 모범 도서관이란 지칭을 받고 있는 아키라기도서관(明木圖書館)이다.* 이 도서관의 우월하고 유명한 소이는 그 지도자인 이토 신이치(伊藤新一) 씨의 열렬한 성의와 그의 견인불발한 의지와 노력에 잇다.** 그의 경영담 중에서 우리가 연구하여야 할 지도문제에 가장 큰 교시와 격려를 줌이 잇으므로 이것을 약술하야 우리 문고 지도자의 지도정신에 참고의 양식을 제공하려 한다. 

이토(伊藤) 씨는 고등소학을 통학하는 동안 하기 시에 잇는 도서관에 다니며 도서의 이용법 특히 각종 참고서를 보는 방법이라든지 사전(辭典)의 인용방법(引用方法)이라든지 기타 독서방법에 취()하야 시간 경제상 독서능률에 관한 지도를 그 도서관 책임자로부터 받아가며 열심히 공부하엿으매 졸업 후에도 입리되는 그 도서관에 전심으로 통학 독습하야 소학교 훈도시험에 합격한 후 아키라기소학교(明木小學校) 훈도가 됨이 그의 발단이다. 아키라기도서관은 메이지 39(*편집자 주석: 1906년이다.) 러일전쟁(日露戰爭)의 승전을 기념하야 그 무라()(*편집자 주석: (무라, )은 일본에서 마을集落이나 기초지자체의 일종이다.)의 1호농(豪農)이 특지(特志)로 건설하여 준 것이라 한다. 예산은 근소(僅少)하고 도서관에 대한 일반의 이해는 박약하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이 고결한 책임을 맡은 그는 말 그대로의 진지한 태도와 불요한 정신으로 지성껏 촌민의 지도와 문고의 발전을 도모하야 꾸준이 노력함이 그 문고로 하여금 금일의 지위에 이르게 한 것이다. 그 방법은 이러하다. 

그 사무적 업적에 관하여는 더 말할 것도 없다(이것도 필요한 중요 참고자료이나 여기서는 생략한다) 소예산(少豫算)으로 문고의 내용을 충실이 한 수완의 일례를 보건대 농촌을 배경하니만치 그들의 환심을 사는대 여념이 없다. 

농민들의 무지와 경박은 정도의 차는 잇을망정 피차의 공통한 점이니 웬만한 성의와 노력과 실적만 보인다면 그들의 신망과 환심을 사는 것을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다. 그는 부단한 노력과 독서와 연구와 연마(硏磨)로 그 소장한 문고의 대부분을 소화(消化)하엿다


*2023년 4월 현재, 아키라기도서관의 누리집  https://hagilib.city.hagi.lg.jp/akiragi/indexaki.html

**편집자 주석: 검색하여보니, 이런 문건도 검색되어 나온다. 伊藤新一 編, 明城瀧口吉良講演 ; <三尊>, 明木圖書館, 192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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