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노시립도서관이 목표로 삼은 것 3. 발족, 실천, 그 영향
마에가와 츠네오(前川恒雄, 히노시립도서관 초대관장)
1965년 9월 21일, 이동도서관을 시작했다. 2,000권 정도밖에 싣지 못한 이동도서관을 과연 시민들이 이용해 줄까 하는 불안과 반드시 성공시킨다는 확신과 함께한 출발이었다. 처음에는 거의 없었던 이용자는 차츰 늘어나 이동도서관이 주차하는 곳에 따라서는 이용자가 너무 많아 포기하고 돌아가는 사람이 나올 정도가 되었다. 히노시민 앞에 나타난 진정한 도서관은 환영을 받았고, 시민들은 도서관의 본질적인 기능을 피부로 느꼈다.
우리는 이용자와 친구가 되어 어떻게든 이용자의 요구를 들어주려고 했다. 모든 시민이 모든 자료를 자유롭게 이용한다는 자유주의사회의 도서관 철칙을 지키려 했다. 리퀘스트(예약) 시스템은 이를 위해 꼭 필요한 조건이었다. “이렇게 하면 질 나쁜 책만 요구된다.”는 비판이 <도서관잡지図書館雑誌>에 실렸지만, 실제로는 가르침을 받을 만한 책이 많았다.
겨우 2,000권밖에 없는 이동도서관으로 이용자의 모든 요구에 부응할 수는 없었다. 이용자의 읽고 싶은, 조사하고 싶은 책 이야기를 들으면, 다음 순회 날에는 꼭 가져가려고 했다. 시민들은 한껏 상담을 해왔고, 나는 그 상담에 맞추어 다음 순회 날까지 준비하였는데, 그것은 상당히 힘든 일이었다. 책이 없는 경우에는 친구가 있는 큰 도서관에 부탁하여 비공식적으로 빌렸다. 대출해줄 책임이 있는 도립도서관都立図書館은 빌려주지 않았다.
무엇이든 빌려주는 것이 공공도서관의 임무이지만 나는 시민의 지적 호기심을 자극하고 더 높은 목표에 맞는 책을 갖추려고 노력했다. 히노가 이동도서관으로 아주 많은 대출을 기록한 것은 시민에게 최선을 다해 질 나쁜 책으로 이용자를 낚았기 때문이며, 자료 보존을 없애 버렸기 때문이라는 편견은, 오랫동안 도서관계, 문화인, 언론 사이에 남아 있었다. 도서 선택에 따라 이용자의 요구는 바뀌며, 그것이 또한 선택에 반영된다는 유기적인 관계는 실천을 통해 알 수 있으며, 그것이 내 도서선택론図書選択論의 기본이었다. 선택과 요구의 유기적 관계는 도서관 운영에도 적용되며, 지자체의 행정선택行政選択에도 적용된다.
1년 후, 이러한 실천을 정리한 <업무보고業務報告>를 펴냈다. 많은 도서관원이 이 보고를 읽고, 업무 개선에 도움을 받았다. 이 무렵부터 히노시립도서관과 비슷한 방향으로 시민에게 서비스를 제공하는 도서관이 나타났다.
시민의 요망에 힘입어 분관도 하나씩 만들어졌다. “움직이지 않는 도서관을 갖고 싶다”는 어떤 어린아이의 소망에 맞춰서 만들어진 전차도서관電車図書館(1966년)은 그 모습과 놀라운 이용에 의해 널리 알려지고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이것을 본 히가시무라야마東村山 시민이 주택단지에 전차도서관을 만들었다. 이런 도서관을 도저히 시민이 운영할 수 있는 게 아니라고 하면서, 시가 시립도서관을 설치하도록 활동하였고 이를 실현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일본 각지에서 히노처럼 활동하는 도서관을 요구하는 주민운동住民運動이 일어났다.
히노에서는 도서관친구모임図書館友の会이 완전히 자발적으로 생겨나 스스로 학습할 기회를 만들었다. 이와는 별도의 일이지만, 2006년 히노에서 분관과 카운터를 위탁하겠다는 안이 나왔을 때, 시민은 강하게 반대하였고, 바바馬場 시장이 영단을 내려 이 안을 철회했다.
1969년 히비야도서관日比谷図書館의 관장으로 스기 토시오杉捷夫 선생(도쿄대 명예교수)이 취임했다. 선생은 도쿄도지사에게 권하여 도청 내에 도서관 진흥 프로젝트 팀이 발족해 나도 그 일원이 되었다. 팀 회의를 통해서는 좀처럼 새로운 도서관의 실태를 이해시키는 것이 쉽지 않았지만, 히노 외에 여러 도서관 이용자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다. 이때부터 회의 분위기가 크게 변하였고, 그 이상의 진흥책은 없다고 생각될 정도의 <도서관정책의 과제와 대책図書館政策の課題と対策>을 이듬해 만들 수 있게 되어, 도쿄도의 공식적인 정책이 되었다. 도쿄도는 이것에 기초하여 도서관에 대한 보조제도補助制度를 출범시켰다.
1970년 히노에서의 실천과 경험을 바탕으로 실질적으로는 내가 쓴 『시민의 도서관市民の図書館』이 일본도서관협회에서 발간되어, 공공도서관의 체질 개선에 크게 기여했다.
1973년 히노시립중앙도서관이 준공했다. 이동도서관 서비스를 통해 생겨난 시민과 도서관 직원과의 인간적인 연결을 이 도서관이 그대로 계승할 뿐만 아니라, 세월이 지날수록 아름답게 되는 도서관을 만들고 싶어서, 설계자 키토 아즈사鬼頭梓와 거의 매일 철야하다시피 논의를 거듭했다. 키토 아즈사는 내 생각에 잘 응해주어서 지금까지의 도서관과는 전혀 다른 도서관이 완성되었다. 이것은 이후 일본 도서관 건축의 모델이 되었다.
여기서 다시 한 번 확인해 주었으면 하는 것은 시민이 자립성과 자기교육성을 획득하고, 그러한 시민이 도서관을 기르고 발전시켜, 사회를 향해 발언하는, 한층 더 헌법을 시민생활 속에 실현한다는 것, 이것이 전체 공공도서관의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히노시립도서관이 목표로 삼은 것은 그 선구가 되는 것이었다.
히노시립도서관은 그 후 본격적으로 분관을 잇달아 건립했다. 시청 내의 시정도서실市政図書室은 설계 공모를 통해 채용한 시청사 건설안에 포함되어 있던 ‘분관’을 이용한 것이지만, 시민이 시정 정보에 접하고, 또 시의 안정된 정책 입안을 위해 중요한 일을 하고 있다. 히노시립도서관 전체가 도서관 발족 당시의 이념을 잘 지켜오고 있으며, 역대 시장의 높은 안목 아래, 지금도 일본 도서관의 지표가 되고 있다. 나는 히노시립도서관이 이 철학을 앞으로도 잘 지켜나가고 계속해서 발전시켜 나갈 것을 진심으로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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