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신문>의 기사와 광고로 찾아본, 도서관, 서적관, 도서실, 문고 등의 용어 9. 1906년
참조1: 권은경, <개화기·일제치하의 공공도서관에 관한 연구(1)>, 『도서관연구』 v.22. n.4, 1981년 8월 30일.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198173879550402.pdf
참조2: 이춘희, <근대한국도서관사 연구-개화기의 근대도서관 성립과 그 성격을 중심으로>, 『한국문헌정보학회지』 제29집, 1995년 12월.
https://koreascience.kr/article/JAKO199525720332456.pdf
圖書企畫
近日韓國官人中有志人이 大韓圖書舘을 設立야 文化를 增進기 爲야 新書籍을 發刊야 國民의게 傳布 次로 趣旨書 發表며 規則을 撰定얏 議長一人摠務一人評議員六人事務會計書記等人員을 議定고 資本金을 鳩合 評議員은 尹致昊李鳳來閔衡植李範九諸氏로 定고 旣徃美國에 遊學야 卒業 白象奎氏家에셔 會同提議다더라
"圖書企畫", 대한매일신보(국한문)[大韓每日申報(국한문)], 19060210
*편집자의 주석: 이춘희 교수님의 <근대한국도서관사 연구>(한국문헌정보학회지 제29집, 1995년 12월)에서 언급하고 있는 ‘한국도서관’(韓國圖書館) 관련 기사(황성신문, 광무10년(1906년) 2월 12일(2) 잡보)가 잘 찾아지지 않음. 참고로 <대한매일신보>(국한문) 1906년 2월 10일자 기사를 삽이하여 놓음.
*2023년 4월 30일 현재, 인터넷 검색 상으로는 <황성신문> 1906년 2월 12일자 1면과 2면이 누락되어 있는 듯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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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紀念의 圖書舘
●美國紀念의 圖書舘 美國紐育府부라온 大學校総長후완스 氏가 主唱하야 故國務卿헤이 氏의 紀念圖書舘을 剏設랴 美國富人가네기 氏가 該剏設費로 十五萬弗을 寄附얏더더라
"美國紀念의 圖書舘",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214
賀圖書舘之設立
論 說 賀圖書舘之設立◎今地球上世界列强이 凡爲敎育而設備者ㅣ可謂周到詳至矣라 盖當此競爭之時代야 優勝劣敗 理勢之必然故로 欲其國力之發達인 必先民智之開明이오 欲其民智之開明인 捨敎育以外 無他道焉이라 由是로 列强之所以孜孜講究於敎育之術야 爲敎育而設備機關을 靡不窮極而完全者ㅣ此也니 敎育之機關은 不特在學校而已라 凡人民之才德을 必從書籍而養成며 人民之智識을 必資書籍而發達故로 書籍者 敎育之根本也라 學者ㅣ受業於學校之時에 自有敎科之書야 毋論普通與專門고 講習於當科之書어니와 及其卒業以後 世界之書籍이 無窮고 古今之文字가 充汗니 苟不能博覽而廣搜면 無以增進其知見而難免孤陋之譏리니 雖老生宿師라도 終身莫離者 豈非書籍之良友乎아 然而書籍을 不可人人求得이오 亦不可人人貯置者니 雖有志閱覽이라도 其於難購難得에 何哉오 是以로 現今列强이 爲此凖備야 有圖書舘書籍庫等之設立야 凡大都府郡之間에 鱗次而櫛比焉니 或有政府之官立者며 或有人民之私立者야 世界古今의 各種書籍圖畵와 及新聞雜誌之屬을 無不貯蓄야 以需有志之借求縱覽고 又於學校之內에도 別有書籍等陳列之所야 有時許人閱覽焉故로 以貯書之多로 亦爲競爭其聲價니 此其敎育之設備가 豈不完全而周精者乎아 噫라 我韓은 自前으로 有奎章閣弘文舘隆文樓等藏書之所로 是 帝室之圖史所貯也니 非翰閣 經筵之臣이면 無得以窺其藏이오 其外世家鉅室과 豪富貴族之家에 頗多書籍之藏이나 亦皆貯置於庫樓之中야 付之塵煤蠧敗之物고 閱百歲而不一展覽더러 借癡之惡習이 成痼야 亦不許有志之求借故로 至有借荆州之誚니 民智之愚昧를 從何以啓發哉아 近日有志紳士諸人이 慨然遺憾於此야 業已發起고 倣列强諸國의 書庫圖舘之制야 將經紀圖書舘之設立니 吾輩 對此美舉야 不勝感賀而攅頌노니 此乃我韓剏有之盛事也라 此舘이 若成立이면 其於開導文明之功이 豈下於一二學校之設立哉아 然而我韓之習이 每多有初鮮終之患야 毋論何件事業고 未免此等痼獘니 惟願有志諸君子 毋蹈此習고 必要熱心注力야 期速完全而成立을 區區擎祝也노라
"賀圖書舘之設立",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215
편집자 주석: 편집자의 '엉터리 번역'은 여기서
논설: 도서관 설립을 축하함(賀圖書舘之設立,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년 2월 15일)
http://transpoet-textcube.blogspot.com/2023/04/1906-2-15.html
賀圖書舘之設立
論 說 賀圖書舘之設立◎今地球上世界列强이 凡爲敎育而設備者ㅣ可謂周到詳至矣라 盖當此競爭之時代야 優勝劣敗 理勢之必然故로 欲其國力之發達인 必先民智之開明이오 欲其民智之開明인 捨敎育以外 無他道焉이라 由是로 列强之所以孜孜講究於敎育之術야 爲敎育而設備機關을 靡不窮極而完全者ㅣ此也니 敎育之機關은 不特在學校而已라 凡人民之才德을 必從書籍而養成며 人民之智識을 必資書籍而發達故로 書籍者 敎育之根本也라 學者ㅣ受業於學校之時에 自有敎科之書야 毋論普通與專門고 講習於當科之書어니와 及其卒業以後 世界之書籍이 無窮고 古今之文字가 充汗니 苟不能博覽而廣搜면 無以增進其知見而難免孤陋之譏리니 雖老生宿師라도 終身莫離者 豈非書籍之良友乎아 然而書籍을 不可人人求得이오 亦不可人人貯置者니 雖有志閱覽이라도 其於難購難得에 何哉오 是以로 現今列强이 爲此凖備야 有圖書舘書籍庫等之設立야 凡大都府郡之間에 鱗次而櫛比焉니 或有政府之官立者며 或有人民之私立者야 世界古今의 各種書籍圖畵와 及新聞雜誌之屬을 無不貯蓄야 以需有志之借求縱覽고 又於學校之內에도 別有書籍等陳列之所야 有時許人閱覽焉故로 以貯書之多로 亦爲競爭其聲價니 此其敎育之設備가 豈不完全而周精者乎아 噫라 我韓은 自前으로 有奎章閣弘文舘隆文樓等藏書之所로 是 帝室之圖史所貯也니 非翰閣 經筵之臣이면 無得以窺其藏이오 其外世家鉅室과 豪富貴族之家에 頗多書籍之藏이나 亦皆貯置於庫樓之中야 付之塵煤蠧敗之物고 閱百歲而不一展覽더러 借癡之惡習이 成痼야 亦不許有志之求借故로 至有借荆州之誚니 民智之愚昧를 從何以啓發哉아 近日有志紳士諸人이 慨然遺憾於此야 業已發起고 倣列强諸國의 書庫圖舘之制야 將經紀圖書舘之設立니 吾輩 對此美舉야 不勝感賀而攅頌노니 此乃我韓剏有之盛事也라 此舘이 若成立이면 其於開導文明之功이 豈下於一二學校之設立哉아 然而我韓之習이 每多有初鮮終之患야 毋論何件事業고 未免此等痼獘니 惟願有志諸君子 毋蹈此習고 必要熱心注力야 期速完全而成立을 區區擎祝也노라
"賀圖書舘之設立",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215
大韓中央圖書舘臨時事務所를
廣 告○大韓中央圖書舘臨時事務所를 京城南署會賢坊美洞六統六戶李容汶氏家로 定얏오니 僉君子 照亮홈
"大韓中央圖書舘臨時事務所를",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219
書物寄附
●書物寄附 大韓中央圖書舘臨時事務所를 美洞李容汶氏家로 定얏 安慶善氏의 寄付 物品이 如左四書一帙、封神演義一帙、史要一帙、水滸誌一帙、東國歷史一帙、博物新編一帙、空冊二卷、簡筆五柄、周紙二軸、鉛筆二柄中羊毫筆一柄、眞墨一張、硯一介、安氏가 年少有志을 人皆讚誦더라
"書物寄附",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219
贊助多書
●贊助多書 農協李範九氏 開明에 留意야 敎育發達에 贊成이 不尠다더니 近日圖書舘設立을 爲야 自家에 貯置얏던 日本新書中百科全書百三十二帙을 寄附얏다니 此 不少 價額인 第一로 補助이 實로 圖書舘成立에 大段贊助이라고 穪誦藉藉더라
"贊助多書",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222
有志寄凾
●有志寄凾 日本에셔 十六年을 游學던 洪俊植氏가 圖書舘으로 各種書類七十八種合二千七百一卷을 寄附야 其成立을 贊成얏다더라
"有志寄凾",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223
志士寄付
●志士寄付 幼年學校敎官申鳳休氏가 中央圖書舘의 設立을 聞고 文學興國䇿一帙과 富國䇿一帙과 自西徂東一帙을 寄付야 贊成 意를 表얏더라
"志士寄付",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303
圖師有志
●圖師有志 鍾路圖章雕刻師徐敬淳氏가 新設中央圖書舘에 該舘所用各種印章을 寄附얏다니 該氏의 有志를 贊揚만더라
"圖師有志",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306
圖書舘評議會
●圖書舘評議會 近日有志紳士吳翰泳氏가 大韓圖書舘을 剏設 事로 熱心經營은 已報얏거니와 其人員을 選定이 如左니 圖書舘長은 度大閔泳綺氏오 評議長은 宮大李載克氏오 書籍委員長은 學大李完用氏오 評議員은 閔商鎬尹致昊諸氏等凡二十五人인 昨日度大閔泳綺氏私第에 會同야 設立方針을 協議얏 該舘舍及資金에 關 一切事務를 舘長以下委員諸氏가 自擔實施기로 確定얏다더라
"圖書舘評議會",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326
*편집자 주석: 도서관평의회(圖書舘評議會) 근일 유지신사 오한영 씨가 대한도서관(大韓圖書舘)을 창설할 일로 열심히 경영함은 이미 알렸거니와 그 인원을 선정함이 다음과 같으니 도서관장은 탁대 민영기 씨오, 평의장은 궁대 이재극 씨오, 서적위원장은 학대 이완용 씨오, 평의원은 민상호 윤치호 제씨 등 모두 25인인데, 어제 탁대 민영기 씨 사저에서 회동하여 설립 방침을 협의하였는데 관사 및 자금에 관한 일체 사무를 관장 이하 위원 제씨가 자부담 실시하기로 확정하였다더라.
賀大同書觀之設立
論 說 賀大同書觀之設立◎我韓全國이 凡十三道에 京城以外 惟平安一路가 最先開明하야 新立之學校가 相望하고 新學之敎育이 菀興하야 彬彬然文化之發達이 頗可觀하니 盖平壤은 本三姓之故都오 箕師之遺墟라 其人民이 皆有勇敢前進之性格故로 於變化舊習하며 開進新學에도 比他道에 最銳하야 所以爲各道之先矛하니 風土之關於開發이 豈淺尠乎哉아 近聞平壤之有志紳士秦文玉郭龍舜金興淵諸氏가 發起協議하고 倡設大同書觀하야 以八千圜之資金으로 將購取東西洋新舊書籍하야 爲書籍縱覽所하며 兼又發刋各種書籍하야 以資民智之開發而文化之烝進이라하니 吾軰 對此書觀之設立하야 不能無同情之感發故로 聊以㣲言而贊成하노니 盖人之腦髓智覺이 元有優劣之等級이로 必資於聞見之博然後에 能擴長其知識하며 啓發其思慮하니 聞見之博은 捨書籍以外에 無他道焉이라 以故로 自古學問家ㅣ必廣蓄書籍하야 以資考閱而採取焉하고 其有志廣學者 又有藏書山寺하야 以待學士之求覽焉하며 近日泰西諸國은 專爲公衆之普閱하야 其通衢大都에 莫不有圖書舘書籍庫之類하야 俾資公衆之縱覽케하니 盖皆開民智擴文化之主見也라 惟我韓國은 尙未有此等事業之注意者하야 久爲識者之慨然이러니 近來京城은 有吳翰泳諸氏之圖書舘이 設立하고 閔泳徽氏之書籍舘이 將設하고 外方은 有平壤之大同書觀하야 爲全國廣智之嚆矢하니 推此觀之면 從玆로 我韓國內之文明이 庶幾乎將發達矣라 吾軰 不堪攅賀之情하야 希望其成立之完全也어니와 均是國民이어 奚獨平壤人士만 有志於開明之事業하고 外他諸道 都無一個有志之士乎아 於此에 又不無寒心之想하야 尾告數言하노니 各道諸君子도 宜其奮志協力하야 經營於此等事業이면 諸君子之榮譽幸福이 豈下於官一品糓萬石之人哉아 諸君子 宜視諸大同書觀而興起也夫힌져
"賀大同書觀之設立",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328
*편집자 주석: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다음과 같이 기술되어 있다. “1906년 3월 평양에 설립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립공공도서관. 당시 서울에서는 대한도서관의 설치운동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었는데, 서북지방 신문화운동의 중심지였던 평양에서도 유지 진문옥(秦文玉)·곽용순(郭龍舜)·김흥윤(金興潤) 등이 뜻을 같이하여 8,000원의 설립기금을 마련하여 대동서관을 개관하였다. 대한도서관이 끝내 빛을 보지 못한 데 비해 대동서관은 비록 규모는 작지만 무료입관과 출판사업 시행 등 근대도서관으로서의 특징을 지녔다는 점에서 도서관사적인 의의가 크다.”(집필자 김세익, 참고문헌 『황성신문』(1906.3.28.)
書舘又設
●書舘又設 前秘書丞李舜夏氏가 帝國圖書舘을 剏設기로 同志者에게 趣旨書을 刋佈얏다더라
"書舘又設 ",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402
閔氏盛舉
●閔氏盛舉 閔輔國泳徽氏가 國民의 開明上進步됨을 注意하야 某某紳士와 協議하고 書籍舘을 設施다은 已報하얏거니와 近聞 則業已日本에 注文하야 機械活字와 電氣銅版지 購入터인 將次印刷物을 大擴張하고 敎課書類와 及其他書籍等物을 編纂或繙譯하야 敎育事務을 刷新完全케다 巷說이 有하니 吾軰 同氏의 熟心에 對하야 感賀하 同情을 不堪하노니 從此로 我國의 文化가 發達됨을 十分希望하노라
"閔氏盛舉 ",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406
平安道學校振興事業
論設平安道學校振興事業◎一世之人이 皆以已往에 權寵盖世로 誹議던 正一品輔國閔泳徽氏를 吾儕 特以其材能風力으로 推評을 不辭노니 盖氏 我韓의 經濟家、政治家에 一座를 占據만 材局이라 十餘年前에 平安道觀察使로 在任 時에 特히 鉅額의 廪俸을 捐야 管下四十餘郡에 每郡二三百兩式寄附고 各其郡紳士로 出貲合力야 郡郡이 鄕約契를 設施얏 此 藍田呂氏의 鄕約規則을 倣行이니 其時代에 社會라 學校라 程度가 未開하얏슴으로 鄕約契를 設行이러니 嗣後로 各郡에셔 因此資金야 殖利 錢이 鉅額에 達지라 近日에 至야 風氣가 漸闢야 敎育을 崇奬으로 昨冬에 閔輔國이 平安南北道各郡의 鄕約所에 委凾야 佈告기를 現時局文化를 隨야 社會로 變遷지니 將該資金야 各其學校를 設立고 存本取息야 學校의 經費를 充用케라얏슴으로 其凾佈全文을 曩日本紙에 已揭얏거니와 近日西來傳說을 得聞 則果然各郡紳士諸人이 閔約長의 凾佈를 承接고 將次學校를 設立랴고 紛紛措劃다니 原來關西一路의 風氣勇進前進之想이 多 故로 全國內人文의 發達됨이 最히 平安道로 推許나니 今又閔約長의 指揮로 因야 四十餘郡에 一齊히 學校를 設立면 開明의 知見이 大進야 文化의 發達을 可期지니 間接으로 國民을 啓導 効能이 專是閔輔國의 成績이라 然則我韓에 唯一敎育家의 榮譽도 氏의게 歸지니 吾軰 此에 對야 十分攅頌을 不已더러 且聞書籍舘을 剏設고 敎科等書籍을 編纂刋佈다니 此 尢全國第一等의 事業이라 感賀을 何堪리오 然且平安道紳士에 對야 又警告것이 學校實施 一事를 各其肩擔얏슨즉 宜其百倍努力야 期於實施擴張지니 脫或不然이면 非但閔約長의 罪人이라 抑又國家의 罪人이될지니 吾軰 此로 諸紳士에게 又希望不已노
"平安道學校振興事業",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407
大韓自强會演說
●大韓自强會演說 敎育의 効果 大垣丈夫氏余ㅣ大韓時局의 最先務된 敎育問題에 對야 我의 所見을 諸君의 面前에셔 演說을 幸榮으로 認고 又諸君이 我會의 演說을 傾聽시 貌樣이 有을 見고 國事에 熱心심을 忖度야 玆에 感謝 意를 表노이다 夫敎育에 家庭敎育과 學校敎育과 社會敎育의 區別이 有고 社會敎育中에도 數種의 分類가 有니 即新聞을 讀야 內外의 形勢를 知며 世事의 善惡을 知이 其一이오 演說을 聞야 政治의 得失을 知며 事物의 是非를 知이 其二오 圖書舘의 內外書籍을 播讀야 古今成敗興兦의 由來를 知며 內外先哲의 所說을 覺이 其三이오 演劇塲에 入야 古來의 忠臣義士와 孝子節婦의 言動을 實見야 勸善懲惡의 理義를 悟이 其四니 現在協律社 亦是演劇塲이라 穪나 多數妓生을 會集야 青年輩의 淫情을 誘起야 風俗의 壞亂을 顧念치아니고 但二三子의 私槖에 充을 目的으로 協律社 决코 此等類中에 不入으로 知지로다此를 要컨 幼者와 小年은 家庭敎育과 學校敎育의 二種에 屬고 丁年以上은 多히 社會敎育의 範圍에 屬니 文明國에셔 新聞의 効能과 演說의 感化力을 激穪야 國民敎育에 著大 効果가 有다야 上下ㅣ勸奬不已거 韓國에셔 郡守等地方官이 其管下에 新聞頒布를 妨害거나 新聞을 返送 者ㅣ有니 此 秦皇이 其民을 愚케과 類似야 文明의 敵이며 開進의 賊이오 又大韓皇帝의 聖意에 悖戾 罪人이라 謂지라 盖家庭敎育과 學校敎育은 十年乃至十五年을 經過치아니면 其効果를 奏키 不能지로 社會敎育中新聞과 演說은 卽時人心을 感動케야 國民의 意思를 左右에 偉大顯著 効果를 奏니 此 世界文明國實驗上에 何人이던지 舉皆承認고 反對이 曾無도다本問題에 揭바 敎育이라은 右陳區別分類中一部分에만 便倚치아니고 敎育의 本旨目的을 総括指定야 定義를 說야 其効果를 論述코져노니 卽敎育이라은 人으로야곰 事物의 理를 知며 人生本來의 義務와 權利를 覺知케야 自主向上의 念을 養成고 衣食住의 三者를 完成야 健全 國民으로 國家社會에 立케에 在거 韓國의 從來敎育은 國家社會의 現象及人生의 權利義務를 說明치아니고 但歷史을 依야 過去의 國家를 知케며 經書를 依야 國家에 對 禮儀道德만 敎授에 不過니 此敎育은 格物致知의 本義를 發揮고 自主向上의 念을 起케야 國家社會에 馳驅만 健全 國民을 養成에 適當치못이 明暸 事實이로다事理의 知與不知에 關야 近時一例를 舉진 日前訓練院에셔 學生運動會를 設行 時에 計筭競走의 優等生申某를 由某라 書을 籍口고 該優等生에게 賞品을 不給얏스니 此學部官吏에 行動이 事理를 不觧이 太甚것이 全國에 由姓이 無고 且申姓의 本人은 現今衆人萬視間에 優等者된 事實을 顯出 後에 姓名의 誤書에 籍口을 不得지라 現今文明國의 法律에 廁間外에 放尿 者 五錢의 罰科가 有나 今에 郊外無人의 地에 放尿 者가 有지라도 此法文에 照야 處罰치아니은 何故오 該法文의 眞意가 公衆衛生을 爲야 人家稠密 處에 放尿을 制止기 爲이오 郊外無人의 地 公衆衛生에 關係가 無야 處罰치아니어 萬若學部官吏流의 所見으로 論면 法文에 廁間外라얏슨즉 城內와 郊外를 勿論고 全國內廁間外에 放尿을 罰자고 又殺意가 有야 殺人 者와 誤殺 者가 有다면 死 一般이라 同罪로 論자리니 此 事理를 不究며 事實을 不據고 但外樣名式에만 拘泥이라 余 全國의 敎育을 句管 學部官吏가 反히 他處로셔 敎育을 受이 可쥴노 認노라 〔未完〕
"大韓自强會演說",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524
盲人의 圖書舘
●盲人의 圖書舘 英國에셔 倫敦、리파불、파민、볜산스、푸리마스、윅키 六箇所에 盲人을 爲야 設施 圖書舘이 有 皆無料로 盲人에게 凸字圖書의 搜讀을 許다더라
"盲人의 圖書舘",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704
大邱廣學會趣旨
●大邱廣學會趣旨 國勢之岌嶪至此者 由乎民智之未開耳라 如斯闇昧야 自棄自愚而已면 當此競爭劇烈時代야 將爲人凌踏며 爲人奴隷야 其結果 必如紅人黑種之駸駸然消滅矣리니 嗚呼라 寧不愯然懼惕者乎아 現今世界列强은 皆以研新學開民智로 爲第一急務야 其注力於敎育者ㅣ可謂至矣라 其國內에 自京都州府로 以曁閭巷坊里히 學校之設이 鱗次櫛比야 多者 數白萬이오 少猶不下於屢萬이며 又其小兒之未及學齡者 有幼穉園고 其壯年之紳士 有博物舘圖書舘博覽會演說會討論會講義會書籍縱覽會新聞縱覽所等各種設備야 互相講究學術며 鍊磨智識야 精益求精에 遊藝不輟故로 其民智日新며 國力日進야 所以致如彼之富强而雄飛於宇內어날 我韓之膠守舊染며 狃於積獘야 不思循時通變之義고 但搜索於訓誥之槽粕며 或徒尙於無用之詞章야 畢生冗冗에 茫昧世變니 有何適用於時局이며 有何稗益於家國哉아 彼 日究於開明이거 我 日事於虛文이면 是 彼進而我退也오 彼優而我劣也니 惡得免優勝而劣敗者歟아 迨此今日야 如欲扶植獨立之權인 莫如以敎育으로 養成民國之精神이니 是以로 前後之詔勅이 屢降시고 公私之校舍가 相望야 庶幾民智之發達과 國步之前進을 可期日而待也라 雖然이나 嶺之風氣가 自來閉固야 拘於舊習에 憚於新學니 譬如重門鎻錀이 猝難破開라 若無講論以先之며 曉觧以入之면 莫能回心而向學일 此本會所以設立而欲民之廣學者也라 所謂新學은 豈有他事리오 只是開發民智왓 擴張民業이니 民智民業이 有何反舊乎아 惟願僉君子 互相勸勉야 日以警世救民之藥石으로 砭入人人之腦髓야 力救獨立之基礎면 異日大韓之精神이 必將權輿於此會矣리라
"大邱廣學會趣旨",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0827
部令
○部令 學部今第二十三號 普通學校令施行規則 〔續〕第二十條 普通學校每日敎授始終의 時刻은 左開範圍內에셔 學校長이 定 이라 四月一日로봇터 九月三十日지 始業時刻午前八時 終業時刻午後 三時 十月一日로붓터 三月卅一日지 午前九時 午後四時第二十一條 普通學校의 休業日은 左 와 如이라 一 萬壽聖節 一 千秋慶節 一 開國紀元節 一 興慶節 一 機天紀元節 一 日曜日 一 春季休業 四月一日로붓터 同 月十日지 一 夏季休業 七月十一日로붓터 八月三十一日지 一 冬季休業 十二月二十九日로 봇터 翌年一月七日지 一 名節 寒食前日로 寒食日지 秋夕前日로 秋夕日지 陰歷十二 月二十八日로 翌年正月初七日지第二十二條 第二十一條外에 每年一 定 日에 休業코져 時 學校長 이 學部大臣의 認可를 受이라第二十三條 傳染病預防과 非常 灾 變及其他特別 事情을 因야 休業 必要가 有 時 學校長이 學部大 臣의 認可를 受야 臨時休業을 得 이라 前項의 事實이 切迫 時에 臨時休 業 後에 其事由를 具야 迅速히 學 部大臣에게 報告홈이라第二十四條 學校長은 士地氣侯을 隨 야 冬季及夏季休業은 第二十一條 期日을 不抅고 兩期를 通야 六十 日以內에셔 學部大臣에 認可를 受 야 適當 休業日을 定을 得이라 第三節 學級編制及敎員排置第二十五條 學校長은 學年初에 學徒 數五十人以下로 學級을 編制고 各 學級의 學年區別과 學徒數를 學部大 臣에게 報告이라 特別 事情이 有야 前項에 依키 難 時 其理由를 具야 學部大臣의 認可를 受이라第二十六條 普通學校에셔 學級에 敎員一人을 置호 敎員이 無 時에 副敎員或代辦敎員으로 補充을 得이라 第四節 補習科第二十七條 補習科 普通學校를 卒 業 者 普通學校에셔 補習케으 로 目的을이라第二十八條 補習科의 敎科書 學校 長이 其土地情况에 依야 定고 學 部大臣에게 報告이라第二十九條 補習科의 修業年限은 三 個年以下로이라第三十條 補習科의 每週敎授時數 六時以上三十二時以下로이라 第五節 教科用圖書第三十一條 普通學校教科用圖書 學部에셔 編纂것을 用호 特別 境遇에 學校長이 學部大臣의 認可 를 受야 學部編纂以外의 圖書를 用 을 得이라 第三章 入學及退學第三十二條 普通學校에 入學 期日 은 學年初로브터 三十日以內로호 特別 事情이 有 者 期日以後라 도 入學을 許이라第三十三條 學校長은 新入學徒의 學 籍簿를 調製이라 (未完)
"部令",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1015
特別廣告
●特別廣告今日敎育擴張의 時機를 當야 學問界의 程度가 愈益澎漲바 本書店은 斯業에 多年經歷으로 一層銳意前進야 各項新舊書籍을 出版、蒐集고 江湖 諸彥의 眷住심을 報酬코져오니 幸須倍舊光顧심을 伏望 一 宗敎書類 一 語學書類 一 歷史書類 一 地誌及地圖書類 一 法律及政治書類 一 筭術及理科書類 一 小說及文藝書類 一 小學敎科書類 其他國內新聞雜誌會報等一切取次各外方學校에셔 請求데 郵送費를 本書舖에셔 特當홈 皇城中署罷朝橋越邊便 朱翰榮書舖
"特別廣告", 황성신문[皇城新聞], 1906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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